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14화 (14/127)

〈 14화 〉 저 사람은 별이 될 거야.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교육봉사 내용의 모든 것을 한국 관련한 것으로 채우자니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도 살짝 집중이 흐트러지는 것도 같았다.

“한국어 수업이 아닌 일반 수업에서 어제부터 몇 명이 나오지 않고 있어.”

“방학이니까. 그 아이들도 놀고 싶겠지.”

“근데 괜찮냐? 좀 피곤해 보인다.”

이온은 오전에 근로봉사를 하고 오후에 이 학교 저 학교를 순회하며 특별수업까지 진행했다.

주말에는 캠퍼들과 밀푸 투어를 다녀오는 등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일반 수업을 늘리자. 이러다가 너 퍼질까봐 겁나.”

한국벨기에 연합봉사팀은 현지 선생님들과 의논해 토론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토론수업은 에밀리와 카를린이 맡았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다.

토론수업에서는 SEX와 관련한 토론, 담배와 마약 중독에 대한 생각들, SNS와 비디오 게임 중독에 대한 토론, 자아존중감에 대한 이야기 등 폭넓은 주제를 다뤘다.

초등학교 고학년들과 중학생들에게는 따로 성교육도 진행했다.

남학생만 따로 모아서 실제 성기모형을 가지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굳이 그런 것까지 가르쳐야 돼?”

“최소한 몰라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못 할 거 아냐.”

벨기에 두 여학생과 강의를 나누자, 마지막 주에는 이온에게 여유가 생겼다.

“오빠는 책걸상 보수하는데 얼씬도 하지 마. 그냥 놀아!”

영지가 사포나 페인트 붓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교육봉사에게 집중하라고 딴에는 이온을 배려를 한 것이다.

혼자만 쉬는 것도 할 짓이 못되는 것 같아서 졸졸 쫓아다니는 꼬맹이들을 모아 제기차기, 꼬리잡기, 윷놀이, 비석치기 같은 한국의 놀이를 함께 했다.

한국의 놀이가 이곳 아이들에게 맞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괜한 기우였다.

잘만 가지고 놀았다.

하도 제기차기를 많이 해서 툭하며 터지고, 술이 끊어지고 못쓰게 되어버려서 다시 만들어줬다.

토론수업에 빠지려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남학생에게는 비보잉을 여학생에게는  팝핀이나 락킹 기본동작을 가르쳤다.

밑천이 드러날 때 즈음에는 배구공을 주면 알아서 또 자기들끼리 잘 놀았다.

페루국기는 남자는 축구, 여자는 배구라고 할 수 있다.

대도시 시내 골목길뿐만 아니라, 안데스산골 오지 공터에서 사내 녀석들은 무조건 축구, 여자들은 거의 모두 배구를 즐긴다.

페루에서 배구는 가장 사랑받는 국민 스포츠다.

이런 풍조를 이끈 주인공이 바로 한국인이다.

페루에서는 대통령은 몰라도 ‘맘보‘라는 이름의 한국인은 두메산골 오지 촌부도 안다.

88서울올림픽에서 페루 최초 올림픽 은메달의 감동을 선사한 페루 배구계의 영웅이 바로 ‘맘보‘라고 불리는 한국인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외국인임에도 페루의 체육인이 받을 수 있는 모든 훈장을 다 받았까.

암튼 매일 좁은 교실에서만 노동을 하고 수업을 진행하다가 오랜만에 운동장에서 야외활동을 하니 살 것 같았다.

‘야외활동도 마음만 먹으며 뭔가 빡세게 돌릴 수 있을 텐데.’

이온은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봉사를 다녔다.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야외활동 세부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

가령 보물찾기, 팀 대항 게임,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기타 등등.

‘귀찮아......!’

워크캠프도 어는 덧 일주일만 남겨두고 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아무리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아이들이라도 그들과 부대끼다 보면 매일매일이 맑음과 흐림의 반복이다.

때론 별 것 아닌 일에도 사랑과 감사를 느낄 때도 있고, 때론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과 분노가 솟구칠 때가 있다.

그런 생활을 수년째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대단하다고 밖에는.

이온을 가장 슬프게 한 것은 봉사지역 너머의 열악한 환경이다.

이번 워크캠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산간지역 마을의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했다.

칠판이 없어 맨 벽에 칠판을 그린 교실.

책걸상은 온전한 것도 별로 없고, 봉사단이 다녀간 흔적만 남아 있는가 하면.

교실이 없어서 땡볕이 내리쬐는 그늘 하나 없는 곳 모래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받는 곳도 있다.

겨우 천막을 치고 수업을 하지만 칠판과 책걸상이 아예 없는 학교도 있다.

너무나 슬펐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방인들이 찾아온 것만으로 기뻐했다.

학부형들이 없는 살림에도 감자를 쪄서 대접했다.

‘당신들의 따뜻한 정 잊지 않겠습니다.’

이온은 희귀유전병을 앓고 있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린이재단과 한인자선단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돌봄도 받았다.

“네 잘못은 아무 것도 없어. 물론 네 아빠엄마도 마찬가지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다.“

“이겨낼 수 있단다 아가야. 힘을 내렴.”

어린 나이에 그런 위로와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비록 당장은 이곳 어린들을 위해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일밖에 할 수 없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성공하게 된다면.

아니,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하게 된다면 칠판도 사주고 책걸상도 사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워크캠프의 마지막 주가 찾아왔다.

“파올로, 그만 가서 쉬어. 네 친구들도 그만 철수하라고 해.”

“정말 그래도 돼?”

“남은 작업도 별 것 없잖아. 나와 영재가 마무리 할 수 있어.”

“고마워.”

파올로와 현지 봉사팀이 사라지자 쯔시안이 하던 일을 손에서 놔버렸다.

“이봐. 이온!”

“......”

“우리 팀도 일을 끝마쳤어. 먼저 숙소로 가 있을 게.”

정말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발적으로 워크캠프에서 빠졌으면 모를까, 이제 와서 쫓아낼 수도 없다.

참 골칫덩어리다.

“그냥 없는 놈이라고 생각해.”

여자 캠퍼들은 언젠가부터 쯔시안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데.

중국어를 알아듣진 못해도 욕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안하무인에 지독하게 이기적인 놈이다.

쯔시안이 봉사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녀석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짓을 저질렀다.

“선생님! 꼬레아가 차이나의 속국이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누가 그래?”

“워크캠프의 치노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그렇게 가르쳤어요.”

쯔시안의 만행(?)을 일러바친 고등학생이 옥스퍼드대학 출판사가 발행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보여줬다.

이온은 굳이 현지 고등학생이 내민 교과서를 안 봐도 무얼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옥스퍼드대학 출판사 발행이란 것으로 이미 모든 걸 유추했다.

“뭔데?”

보조교사로 들어와 있던 영지가 세계사 교과서를 확인했다.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영지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당장 욕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오빠는 이걸 보고도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어?”

“별로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서.”

“뭐라고!”

화를 참을 수 없을 만 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사는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 50여 개국에 교과서를 발행하는 국제적 출판사다.

그런 출판사가 발행하는 세계사에 중국 한나라의 영토를 한반도까지 확장시켜 표시하고 있는 지도가 들어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황당함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북미와 유럽, 남미에서 발행되는 많은 세계사 교과서가 이래. 미국의 SAT 과목별 시험 AP교재에도 한반도가 과거 중국의 영토였다라고 버젓이 써있어. 심지어 700년 대 중국 당나라 영토에 신라가 포함된 어처구니없는 세계사 교과서가 있는 게 현실이야. 북미에서 출판된 많은 세계사 교과서에 한국은 중국의 피보호국, 한반도는 당의 속국 같은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는데 뭘.”

“그런 걸 안 바꾸고 여태까지 뭐 했어!”

“인마, 난 일개 대학생이야. 왜 나한테 따져?”

“미안. 오빠! 하도 열이 받아서 나도 모르게......”

“한국대 서양사학과는 매년 유럽으로 답사를 가. 유럽의 박물관, 전시관 가봐. 어떤 가. 중국정부가 자국 기업 앞세워서 그런 데 스폰서를 많이 하거든. 동북아시아 역사 지도 보면 아주 가관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데도 그렇단 말이야?”

“중국 놈들이 만리장성을 억리장성으로 만들어놨어.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늘려놨더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만리장성 복원한답시고 시멘트 붓는 인간들이 어떻게 만리장성을 북한까지 늘릴 수가 있어.”

이미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만 온통 신경이 쏠려 있는 사이.

중국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본과 비슷한 방식으로 역사를 조작해 북미와 유럽의 유력 출판사가 펴내는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관여하고 있다.

“이제 하다하다 만리장성 길이까지 자기 마음대로 늘리냐?”

“걔들은 1만 년 전에 이미 중국인이 화성에 진출했었기 때문에 화성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걸. 아마 지금 조작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지금 농담할 때야?”

맵스오브월드라는 지도 전문 출판사가 있다.

이 출판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스, 쿡글, 아마조나스, 브리휘니커와 협력해 전 세계 청소년과 교사, 교육기관, 해외여행자 등을 대상으로 세계지도를 공급한다.

그 지도에는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시기의 만리장성이 한반도 평안남도까지 연결돼 있다.

고구려와 발해가 쌓은 성까지 만리장성에 포함한 것이다.

“서양사학과 학생들은 다 알아?”

“모를 걸?”

“오빠는 어떻게 알았어?”

“1학년 때 유럽 답사 갔을 때 프랑스였나 독일이었나 암튼 박물관에 그런 지도가 있더라. 그래서 지도교수님하고 학생들이 박물관 측에 항의했어. 우리 눈앞에서 지도가 있던 안내판을 치우긴 했는데, 이후로 오류를 수정한 걸 따로 제작했는지는 확인 못했다.”

“페루 와서 한류 때문에 가슴이 웅장해지다가도 진짜...... 아오! 증말!”

“동북공정은 2007년에 끝난 프로젝트다. 포스트 동북공정 같은 거 없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나라 사학계 높으신 양반도 있는데 뭘.”

한국의 일부 사학자들이나 연구원들은 서양의 많은 세계사 교과서에 잘못된 지도나 역사적 내용이 실린 것을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이 아니라 한국사를 몰라서 생긴 단순한 오류라고 주장한다.

- 동북공정 프레임이 한국에게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일을 동북공정에 대입하는 것은 중국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 김치, 한복 등에 동북공정 같은 단어를 합성해 언론 등에서 사용하는 것은 학계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중국 일부 젊은층의 혐한 행위를 확대해석해 지나친 우려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한국의 역사학자도 있다.

사이버 상에서 민간 외교관 노릇을 하는 모 단체가 전 세계의 이런저런 역사적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민간의 힘만으로 수백·수천 건의 오류를 일일이 모니터하고 시정을 요청할 순 없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교과서의 경우 한 번 개정되면 기본 20년씩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류를 지적해도 십년 만에 가까스로 수정이 될까 말까 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 사회가 눈앞에 반일반중으로 시야가 좁아져 있을 때,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정부와 민간 합작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역사왜곡을 벌이고 있고, 십여 년 전부터는 중국이 비슷한 수법으로 전 세계 학술단체와 박물관, 전시관 등에 중국기업을 앞세워 스폰서를 하면서 동북공정을 착실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현무4 실전배치하고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 뭐하냐? 세계인들이 어릴 때부터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배우는데......”

뒤 늦게 사실을 알게 된 영재가 냉소했다.

영지가 씩씩거리며 겨우 분을 삼키고 있는데, 카롤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럽 KPOP행사가 턱없이 부족하거든. 그래서 재팬페스트나 망가페스트, 차이나페스트 같은 데서 KPOP행사를 열어줘. 일본이 주최하는 행사에서는 만국기에 태극기를 달아주는 편인데, 중국이 주최하는 KPOP 이벤트에서 태극기를 별로 못 본 것 같아. 그것도 김치 사건이나 한복 사건하고 연관된 걸까?”

“후우. 진짜 이것들을 어떻게 해줘야 착해지지?”

“아마 중국이 민주화된다고 해도 한 50년은 지나야 정상 비슷해 질 걸.”

“우리 살아생전에 착해지지 않는다는 뜻이야?”

영재는 대답 대신 썩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오빠,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한국대잖아?”

“한국대와 무슨 상관? 한국대생이 뭘 할 수 있는데?”

“암튼!”

“화 낼 필요 없어. 이런 사실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이 한둘이냐? 사이버 민간사절단에도 외교부에도 교육부에도 다 제보가 들어가 있어.”

“근데 왜 이런 교과서가 아직도 있는데?”

“스팀플렉스 같은 민간기업이야 독도나 동해표기 역사왜곡 이슈가 터지면 한국시장 매출에 바로바로 반영되니까 즉각 조치해주지만. 이런 세계적인 출판사가 뭐가 아쉬워서 즉각 시정해주겠냐? 내부 검토 중이라면서 적당히 뭉개다가 개정판 낼 때 또 다시 한국에서 따지면 시정해 줄까말까 하겠지.”

“하여튼! 어떻게 된 게 국뽕에 좀 취해보려고 해도 그럴 틈을 안 주냐! 뭐 항상 우리 민족은 긴장하면서 살아야 되나. 진짜 뭣 같네!”

“진짜 드럽고 치사해서 G2가 되던지 해야지......!”

그건 좀 많이 갔다.

G2가 되지 않더라고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현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벨기에도 은근히 인종차별 하는 나라야. 근데 에밀리와 카롤린 봐라. 한류 때문에 한국인에게 호감 만땅이잖아. 샤오엔도 아마 어릴 때 어른들이 한국 개무시하는 소리 많이 듣고 자랐을 걸? 싱가포르 꼰대들은 아시아에서 일본하고 지들만 문명인이고 한국은 야만인 중국은 짐승이라고까지 했어. 근데 샤오엔 봐라 매일 영지 따라다니면서 한국의 피부관리법이나 화장품 브랜드와 제품 물어보고 배우려고 하잖아. 국뽕에 취해도 문제지만, 좋지 않은 일들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 우리만 똑똑한 것도 아니고. 한국인 중에 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잠시 열 받고 넘어갈 순 없잖아.”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겠지.”

“그게 뭔데?”

사실 일개 대학생으로써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사이버 외교사절단 홈페이지에 제보를 하고, 외교부 및 문체부 홈페이지도 들어가서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

그리고 혹시나 페루 학생들이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배웠다면 바로잡아주는 것 정도.

그것이 이온과 남매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세계사 수업 중에 아시아 역사를 배워본 적이 있는 사람.”

이온의 질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한국사를 배워본 적은 없고, 주로 중국 역사를 뭉뚱그려서 배운 정도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사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는 중국이 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다는 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랬던 한국이 현대에 와서 중국이나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경제와 문화가 발전한 것이 부럽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도 기분이 좋을리 없는 한국인 삼인방이다.

“중국 역사에서 고대국가 체제를 확립한 것을 기원전 202년 즉 한나라로 보고 있어. 너희가 중국이라고 알고 있는 그 대륙에 한나라 이래로 존재한 왕국은 모두 60개. 이 60개 왕조의 평균 존속 기간이 평균 64.77년이야. 이들 왕조 중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국가가 가장 최근 왕조인 청나라로 296년, 당나라가 289년, 명나라가 276년이지. 일부 중국인이 한나라가 가장 존속기간이 길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전한과 후한 사이에 공백 기간이 긴데다가 그 기간에 신나라라는 왕조가 존재했기 때문에 합쳐서 존속 기간을 계산하진 않아.”

이온은 비록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지만, 자신의 수업에 들어온 학생만이라도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에 오염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길 바랐다.

“중국은 한나라 이후 300년을 넘긴 나라가 단 하나도 없어. 200년 이상 존속한 나라도 다섯 개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치노들이 자신들이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과거 왕조들은 어땠을까? 가장 최근의 왕조였던 조선은 존속 기간이 518년이었고, 그 이전 왕조 고려는 475년이야. 신라라는 이름의 왕조는 무려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까? 어떻게 속국이 종주국보다 오랜 기간 존속할 수가 있지? 그것을 어떻게 납득 가능하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과거 왕조들은 정치군사경제 모든 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이야. 그런 증거는 차고 넘쳐. 속국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대부분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한반도 지역에 백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했어. 어떻게 됐을까?”

“이겼어요! 만약 패배했다면 왕조들이 500년을 채우지 못했을 테니까요.”

“맞아. 치노들이 패배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후에 얼마 안 가서 침략했던 왕조가 망했어. 칭기즈 칸 알지? 그 강성했던 몽골제국 역시 고려를 흡수하지 못하고 독립왕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치노들이 몽골민족에 지배를 받고 있을 그 때에 말이지.”

물론 고려와 조선은 금-원-청 등의 중국대륙 강대국에 사대를 했다.

국가의 자주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국으로써 패권을 인정하는 것이었지, 그들 국가에 지배를 받는 속국 입장은 아니었다.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왕조를 오래 존속시켰다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측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측면 모두를 따져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속국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차지하고 있는 국토가 작다고 해서 그 민족의 역량과 꿈까지 결코 작지 않아. 그걸 한국인들은 지난 세기부터 증명해오고 있어. 마찬가지로 잉카의 후예들인 너희들이 비록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꿈과 목표를 세우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야.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지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야.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버릇은 과거에 집착해 게을러지는 것이고 게으른 자는 반드시 거짓말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어. 너희가 어떤 민족처럼 거짓말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또 그들의 거짓말에 속지도 않는 현명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기대할 게. 그 동안 부족한 수업 들어줘서 고맙다. 마지막 수업에서 보자.”

짝짝짝.

학생들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박수를 이온에게 보냈다.

만남은 반드시 이별을 예약해둔다.

캠퍼들은 워크캠프 봉사프로그램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아야쿠초의 학생들은 캠퍼들과의 인연을 좀 더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열성을 다해 함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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