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저 사람은 별이 될 거야.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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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에효~”
와아아아!
“후우~”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RPD를 하는 중에 파워무브를 가볍게 보여줬더니, 다음날부터 이온에게 귀찮은 일이 벌어졌다.
이온이 가는 곳마다 꼬맹이들이 따라다니며 ‘와아아‘ 하고 감탄한다.
녀석들을 쫒아낼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어 이온은 한숨을 푹푹 쉰다.
아야쿠초가 엄청나게 큰 대도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다.
그런 도시에서 소문은 또 왜 그리 빠르게 도는지.
“꼬레아에서 온 KPOP 댄서라면서요? 함께 사진 찍어요.”
한국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로 온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찾아와 사진 찍자, 사인해 달라 난리다.
KPOP 댄서 아니라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소년소녀들은 도대체가 믿어주질 않는다.
“댄서가 아니야. 비보이라니까!”
“우와. 꼬레아노 브레이크 댄스!”
“브레이크 댄스 아냐 비보이!”
우와망가 대학 남자봉사단원들까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진진! 갬블! 피지컬스! 블루씨!”
한국 4대 비보이 크루와 레전드 비보이까지 알고 있는 것을 봐서는 페루가 남미 최초로 한국의 비보이를 초청해 공식 공연을 연 것이 맞기는 하는 모양이다.
암튼 그것은 당장 이온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평소에 뭔가 재미난 일 없나 호시탐탐한 기회를 엿보던 이곳 사람들이 이온이라는 이방인으로 인해 뭔가 재미를 찾기라도 한 것처럼, 지나치게 떠들썩했다.
처음 하루 이틀 환대받는 것은 그럴 수 있었지만, 숙소로까지 소녀들이 찾아오니 캠퍼들에게 민폐가 아닐 수 없었다.
‘사생이냐? 자식들이 어디서 못 된 것을 배워서는......’
하루는 오전에 근로봉사를 하고 나서 학교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물티슈로 땀을 닦았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빨래판 복부를 찰나라고 할 정도로 매우 짧게 드러났다.
교실 창가에서 그걸 지켜보던 소녀들이 꺅꺅 대며 난리를 쳐대기도 했다.
그런 일이 며칠 반복되면서 영재가 가만있을 리가 만무.
건수를 잡았다고 여긴 영재다.
하도 깐죽거려서 이온은 친구고 뭐고 한 판 붙을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방학이라 교육봉사를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어.”
“덕분에 한국어 수업을 들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엄청 많아졌잖아.”
영지를 비롯해 여자 캠퍼들까지 이런 분위기를 환영했다.
‘내가 내 묏자리를 판 거지 누굴 탓하겠어. 후우~’
이온은 KPOP 가사와 한국대 서양사학과 조교로부터 전달받은 과제 리포트를 적당히 버무려 수업을 진행해 왔다.
기대를 갖고 찾은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업의 퀄리티를 끌어올려야 했다.
이온이 지구과학 수업을 할 때 한국에서 남미로 향하는 항공노선이 태평양을 횡단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지구가 실제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가 일반적인 2차원 지도에 익숙해져서 동북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 간의 거리가 태평양을 횡단했을 때 짧게 느껴지는 것에 오류가 있음을 알려주고, 그러한 여러 이유 중에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구본을 놓고 알려줬다.
“저 오빠는 문과가 수학도 잘해 과학도 잘해.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저 자식은 체육도 잘해.”
“알고 보니 순둥순둥한 울 이온 오빠가 사기캐였어.”
“대신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
“이온 오빠한테 약점이 어디 있냐?”
“모솔. 크크크.”
“음. 그건 쫌 치명적이네.”
오랜만에 남매의 의견이 일치했다.
안타깝지만 이온은 모태솔로다.
고아가 된 이후로는 시간을 아껴가며 학업과 비보이에 매진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발적인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남녀공학을 다닌 주제에 최단비 등 여사친 서너명을 제외하면 이성과의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국대에 입학해서도 등록금과 카나한 게더링 경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교우관계가 만들어질 여유가 없었다.
“이온 오빠가 은근히 인기가 진짜 많았는데. 내가 이온 오빠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거 전교에 소문나서 노는 언니들도 안 괴롭히고 잘 대해줬고.”
“그런 거 다 생까고 공부만 팠으니까 한국대 간 거지. 이슬이 누나도 온이가 공부 잘하니까 방학마다 미국 가는 거 허락한 거고.”
“가만 보면 이온 오빠는 무지 순둥순둥하다가도 은근히 독한 데가 있어. 그치 오빠?”
“지 말로는 집중력과 인내력이 조금 강한 것뿐이라는데. 중학교 때 같은 자리에 앉아서 화장실 한 번 안가고 4시간 동안 수학문제만 푸는 거 보고 반 애들 다 GG 쳤잖아.”
남매가 과거를 회상하거나 말거나.
이온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를 예로 들어 중학생들에게 전자기 원리를 설명하기도 하고, 오성테마파크의 롤러코스터로 위치 에너지 관련 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계산해보기도 했다.
잠실타워, 남산타워, 월드컵경기장 등을 예시로 들며 각종 수학문제를 풀어보기도 했다.
이온의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따로 동영상이나 사진을 칠판에 띄워놓지 않아도, KPOP 뮤직비디오, 한국 영화나 드라마, 넷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이온이 예로 드는 것들을 얼추 알고 있었다.
학생이 서른 명이 넘어가면서 KPOP 랜덤 플레이 댄스 게임의 규모도 커졌다.
더 이상 교실에서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랜덤 플레이 댄스 게임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학생들이 너무 많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 하는 수 없이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했다.
수업에 들어오진 않지만 랜덤 플레이 댄스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소녀들도 많아 셋째 주에 접어들어서는 워크캠프 인원을 제외하고 50여 명의 현지 청소년들이 모여 함께 KPOP 랜덤 플레이 댄스 게임을 즐겼다.
두 시간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열혈 KPOP팬도 있을 정도였다.
“왜 사서 일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야. 이깟 KPOP이 뭐라고!”
“애기들 재롱잔치도 아니고 유치하게......”
쯔시안과 하오란이 배가 아파 돌아가실 것처럼 굴면 영재는 그 모습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지도 강남 멋쟁이 나올 때 은근슬쩍 따라서 춘 주제에. 웃긴 놈들.’
샤오엔은 수줍은 듯 부끄럼쟁이처럼 굴다가도 커버 댄스를 출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페루의 소녀들을 보며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산지대인 이곳에 이렇게 많은 소녀들이 즐기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페루는 남미에서 한류 1세대라는 자부심이 있어. 2002년 국영방송에서 <내 가슴에 별을 담다>를 방영하면서 한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페루는 남미에서 한국 드라마가 가장 많이 또 자주 방영되고 한류 동호회 숫자도 가장 많은 나라야.”
샤오엔팀의 현지 리더를 맡고 있는 마리아가 설명했다.
몇 년 전 KOICA 봉사단 멤버로 페루에 왔던 이온이 아는 체를 했다.
“KOICA 봉사단이 활동하는 페루의 9개 지역에서 '한국의 밤' 행사가 열릴 때마다 KPOP 커버댄스 경연대회 우승팀이 와서 공연을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
마리아가 이온의 말을 다시 받았다.
“인구 40만 이상 도시들에서는 KPOP 커버댄스 경연대회가 수시로 열린다고 보면 돼.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남미 KPOP 페스티벌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지고, 남미 경연에서 우승할 정도 실력이면 한국의 창원에서 열리는 월드 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에 출전할 수가 있지.”
“내가 리마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는 한류 관련 동호회가 서른 개 조금 넘고, 동호인 숫자가 대략 20만 명 정도였던 것 같아.”
“한참 전 통계구나?”
“3~4년 전이 그렇게 한참 전은 아니지 않나?”
“내가 알기로 현재 공식적으로 30만 명을 넘었어. BPS 팬클럽만 10만은 될 걸?”
“그러면 뭐해? 미국의 팝음악은 절대 넘을 수 없어.“
쯔시안이 빈정거렸다.
“당연하지. KPOP이 미국의 대중문화 산업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닐까? 현 시점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 대중문화 산업과 비교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나라는 없을 것 같은데?”
설마 너희 중국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
라고 묻는 얼굴을 한 캠퍼들이 일제히 쯔시안을 쳐다봤다.
“......흠!”
쯔시안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문화 강국 미국, 프랑스, 독일 출신 앞에서 그렇다고 대답할 만큼 뻔뻔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KPOP은 팝 음악의 어떤 장르라는 인식이 강했어. 그런데 최근에는 산업의 형태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것 같아.”
“맞아. 사실 KPOP 안에는 이 세상 모든 음악의 장르가 다 들어가 있어서 음악적 분류는 의미가 없어. MJ풍의 디스코나 60년대 펑크 디스코를 재해석한 BPS는 정말 미친 것 같아. 그들은 깔 수가 없겠더라.”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러야 KPOP라고 정의하는 것 같은데, 글쎄 내가 볼 때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파생된 모든 음반문화를 KPOP이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봐.”
벤트, 맥스웰, 바스티앙이 KPOP에 대해 나름 각자의 생각을 들려줬다.
각자 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현재 재학 중인 엘리트들이 KPOP의 정의와 산업적 측면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는 것은 업계 종사자가 아님에도 괜히 가슴이 뿌듯해진다.
“우와!”
현지 학생들의 랜덤 플레이 댄스 게임을 구경하던 영지가 탄성을 터트렸다.
“애네 진심 미쳤어!”
“또 뭔데?”
“재들 추는 노래가 넷튜브에 공개된 지 삼일 된 거야. 최신곡을 커버하는 거라고!”
“난 저 여자애들이 50곡이 넘는 KPOP의 안무를 다 외우고 있다는 게 더 놀랍다.”
세계 곳곳에서 KPOP 커버 댄스팀이 또는 동호회원들끼리 혹은 한국의 밤 행사에서 또는 일본 페스티벌 및 망가페스티벌에서, 중국 관련 행사 등에서 지금 이 시간 KPOP 랜덤 플레이 댄스 게임(챌린지)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대도시 공공장소 어딘 가에서는 KPOP 커버 댄스팀들이 넷튜브에 올릴 동영상(KPOP IN PUBLIC)을 촬영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KPOP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십대 계집애들이란.......쯧. 특히 저기 사내자식들이 계집애처럼 걸그룹 댄스를 추는 건 정말 꼴불견이야.”
유럽 출신의 캠퍼들이 일제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 몰라서 지껄인 말은 아니겠지?“
여전히 맥스웰은 중국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여장을 하고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춤을 추는 걸리시(girlish) 댄스를 모른단 말이야? 단순히 여자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댄스의 한 장르잖아? 그런데 뭐 계집애처럼 걸그룹 댄스를 춘다고?”
“......”
쯔시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중국의 경극에도 단(旦)이라고 해서 남자가 여자 분장을 하는 것이 존재했으니까.
가만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한국인팀의 현지 리더 파올로가 입을 열었다.
“KPOP은 남미 청소년들에게 축복이란 말도 있어.”
“하긴 따로 놀 거리가 없으니까 저런 KPOP 따위로라도 시간을 보내야겠지.”
캠퍼들은 쯔시안이 왜 저렇게까지 한국과 한류에 대해 깎아내리려 애쓰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중국인 하오란 그리고 중국계 싱가포르인 샤오엔은 그 이유를 짐작했지만.
이온과 남매는 어떤 열등감의 표출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열등감이든 뭐든 크게 관심도 없었다.
파올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KPOP이 청소년들의 탈선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거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페루는 남미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코카인 재배 국가야. 인신매매와 미성년자 성매매도 여전하고. 또 청소년들의 임신과 출산으로 미혼모가 많은 것도 큰 사회문제야. 십대 미혼모들이 빈민의 한 축이 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십대들이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때론 마약에도 손을 대고, 성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어린 남녀가 어울리다가 덜컥 임신을 하게 되고, 카톨릭 교리 때문에 함부로 아이를 지울 수도 없고. 남자 녀석들은 아기와 여자를 책임지기 싫어서 도망가 버리고.”
최근까지만 해도 인구 45만 도시 중 한곳의 여학교에서 40명에 가까운 여학생이 임신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고, 아야쿠초의 한 중학교에서도 8명의 남학생들이 졸지에 아버지가 되는 바람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는 일이 있었다.
그만큼 페루에서 청소년들의 조기 임신 문제가 심각하다.
“남미의 학부모들은 자녀들과 약속을 해. 성적이 오르거나 성실하게 생활한다면 KPOP 콘서트에 보내주겠다고. KPOP 콘서트 티켓구입은 평범한 가정의 부모들에게 엄청난 지출이야. 물론 남미의 모든 십대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페루의 10만 이상의 청소년은 KPOP과 한류로 인해 더 이상 길거리나 클럽 따위를 전전하며 방황하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신의 우상들의 노래를 따라서 부르고 춤을 연습하면서 삶이 바뀌어가고 있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벗어나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적어도 지금까지 KPOP은 남미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재가 닭살이 돋는지 팔을 벅벅 문질렀다.
“뭐가 되었든 십대 시절에 폭 빠져서 놀아야지. 뭐든 즐기면서 하는 그것이 진정성이니까. 놀이든 공부든 운동이든.”
“진정성 멋진 말이야!”
캠퍼들이 이온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쯔시안은 떼를 쓰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망한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남미 전체로 봤을 때 매년 우수한 경제 성장률, 뚜렷한 소득 증가는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어. 그런 면에서 페루의 미래는 매우 밝아.”
하오란마저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의 자화자찬이었다.
저 정도 수준으로 어떻게 중국 5위권 대학에 입학했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쯔시안과 하오란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대국, 한국은 소국임이 틀림없는데, 서양인 들은 오로지 소국인 한국만 인정하고 중국은 평가절하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다.
이온과 영재 그리고 영지가 그 속을 모를 수가 없다.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져다 붙이며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훔치려드는 족속들이니 그 음흉함을 한국인으로써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 ✻ ✻
아야쿠초는 성당도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카톨릭 성당이 많다.
도시 내에만 무려 22개의 성당이 있었는데, 그것들 대부분이 300~500년 전에 건축된 것들이다.
물론 유럽의 성당들처럼 근사하고 아름답진 않다.
소박한 대로 그럭저럭 성당 투어를 하는 재미는 느낄 수가 있다.
주말이 되면 이온은 남매를 데리고 다니며 함께 아야쿠초 일대를 관광했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임을 밝히면 예외 없이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면서 현지인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 수업 듣는 학생과 부모를 길거리에서 만나기도 했다.
가끔 헐렁하게 구는 영재조차 혹시나 현지인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남기게 될까봐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암튼 인원수가 많아 봉사프로그램과 관광은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거의 매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모두 모여서 이야기시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술도 마시게 되고, 술 마시기 게임도 하고, 각자 소소한 장기도 자랑하고.
순간순간을 추억에 남기기 위해 누군가 스마트폰을 혹은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대면 모두가 웃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곤 했다.
밉상도 그런 밉상이 없지만, 이때만큼은 쯔시안도 무리에 끼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온, 내가 올린 RPD 넷튜브 동영상 댓글에 한국어가 달렸어.”
카롤린이 이온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 ㅎ 이온아 거기 어디냐? 거기서 뭐해? ㅎㅎ
┖ 에어트랙이 존나 형편없네. 누가 가르쳤어 저거.
┖ 누구십니까? 저 아세요?
┖ 필승. 병 816기 비보이 로닌입니다. 형님!
┗ 반갑다 로닌. 얼마만이냐? 잘 살고 있냐?
공군 군악대 소속 비보이 출신들이 한글로 댓글을 단 것이다.
동영상 제목에 해시태그로 #Korean B-boy가 달려 있어서 넷튜브 추천알고리즘을 통해 보게 된 모양이다.
이온은 대충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오빠, 이 사람들 되게 웃긴다. 넷튜브 댓글로 정모를 하고 있어.”
영지가 깔깔대며 댓글들을 읽었다.
이런 것 때문에 이온은 SNS를 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은 사람 중에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악대 선임 중에는 제대한 이후로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들도 더러 있다.
보통 그런 이들은 눈치가 더럽게 없다.
이온이 엮이기 싫다는 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잠깐 보자’ ‘연습 같이 하자’‘술 먹자‘ 막무가내다.
카롤린이 스크롤을 내려 스페인어로 적힌 댓글 몇 개를 보여줬다.
한국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댓글도 보이고, 뜬금없는 이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댓글도 있었다.
- 몇 달 전 한국의 비보이 레전드 블루씨와 버스킹을 했습니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한국 비보이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브라질도 방문해 주세요.
┖ 산티아고 추가. 함께 놀아 봅시다.
┖ 쿠바 하바나 릴레이션 크루는 한국 비보이를 환영합니다.
때로 SNS는 이렇듯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비록 그 기회가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