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인연은 집을 나서야만 마주친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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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산맥 동쪽의 분지형 도시 아야쿠초.
케추아어로 ‘죽음의 모퉁이’란 뜻이다.
한국의 여행객들은 잘 찾지 않는 도시다.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자들 역시 축제 기간 외에는 많이 찾질 않는다.
하지만 페루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도시가 아야쿠초다.
1824년 페루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대전투가 바로 이곳 아야쿠초 인근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아야쿠초 공항은 지방의 작은 공항이다.
당연히 보딩브릿지가 없다.
이온과 남매는 스텝카(계단차)를 통해 활주로로 내려왔다.
낮에는 적당이 따뜻한 기온, 저녁은 딱 산책하기 좋은 선선함.
날씨는 한국의 초가을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활주로에서 공항청사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헌데 걷다보니 호흡의 불편함을 느꼈다.
“괜찮아?”
영재가 여동생에게 물었다.
“좀 어지럽긴 한데...... 약 먹을 정도는 아냐.”
영재는 손이 혹시 차갑지는 않은지, 손발이 저리지 않은지 여동생을 꼼꼼히 챙겼다.
한국의 유명한 산도 올라가보지 않은 여동생이다.
하물며 그 보다 훨씬 높은 고산지대에 왔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물 자주 마셔. 소변 참지 말고 그때그때 보도록 하고.”
이온은 경험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천천히 몸을 적응시키는 것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빨리 숙소로 가서 쉬는 게 좋겠어.”
일행은 발걸음을 빨리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 중심가로 이동했다.
✻ ✻ ✻
남미의 도시들은 거의 대부분 식민지 시절 스페인 사람들이 만들다시피 했다.
때문에 도시마다 스페인식 광장 문화가 남아 있다.
페루 또한 다르지 않다.
도시 중심에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아르마스 광장이 존재했다.
시청, 시의회, 성당 등이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들어서 있기 때문에 호텔, 식당, 각종 편의시설 또한 자연스럽게 함께 형성되어 있다.
이온과 남매가 광장 서쪽 구역의 한 건물로 들어갔다.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일하고 있는 작은 사무실에 이온과 남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 어떻게 오셨어요?
약간 뚱뚱한 체형의 전형적인 남아메리카 인디오 여성이 어색한 영어로 물었다.
- 디스꿀뻬(실례합니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이곳이 국제워크캠프 사무실이 맞습니까?
- 이번 캠프에 참가하는 캠퍼?
-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온 나이온이라고 합니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던 메스티소(혼혈) 여성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이온 일행에게 다가왔다.
- 올라~
- 올라. 세뇨라.
워크캠프에서 일하는 여성 두 명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이온의 스페인어 억양이 친숙한데다가,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인이기 때문에 호감을 보이는 것이다.
페루는 스페인식 인사법 도스 베소스(Dos besos)를 사용한다.
양쪽 뺨을 번갈아 맞대면서 입으로 ‘쪽‘ 소리를 내는 인사법이다.
이 인사법은 처음 보는 사이 또는 남자끼리는 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온은 악수로 인사를 나누려고 했다.
그런데 뚱뚱한 인디오 아줌마는 처음 만나는 이온과 거리낌 없이 도스 베소스 방식으로 인사했다.
- 환영해.
- 만나서 반갑습니다.
남매는 낮선 인사법이 어색해 악수를 하려고 했지만, 티나의 억센 손길에 이끌려 도스 베소스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메스티소 여성과도 양쪽 뺨을 번갈아 맞댔다.
“환영해. 한국의 친구들. 나는 이번 캠프의 코디네이터 가브리엘라야.”
“실무와 캠퍼 지원을 맡고 있는 티나라고 해.”
“한 달 동안 잘 부탁합니다.”
메스티소 여성 가브리엘라는 이온이 참가하는 워크캠프의 현지인 총책임자였고, 티나는 아야쿠초 지역의 국제워크캠프 매니저였다.
“뭐라고 불러야 돼?”
티냐가 친근하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저는 이온, 여기 남매는 각각 영재, 영지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온은 아야쿠초가 처음이 아니라면서?”
“KOICA와 함께 리마에 온 적이 있어요. 그때 봉사를 마치고 혼자서 아야쿠초와 끼누아를 여행한 적도 있어요.”
“어땠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버스 여행은 최악이었지만.
굳이 호감을 보이는 현지인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다행이다.”
“그때 끼누아의 도자기 장인 몇 분과 친해졌었는데, 아직 날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장담하는데, 그 사람들은 이온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거야.”
“시간이 제법 흘렀어요.”
“유명 관광지인 쿠스코나 해안 도시들과 달리 아야쿠초에서는 동양인을 특히 한국인을 거의 볼 수 없거든.”
이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페루 추천 여행지 중에 요정들의 수영장이라 불리는 ‘아구아스 뚜르께사스‘를 구경할 수 있는 밀푸 투어가 있다.
밀푸 마을을 가기 위해 아야쿠초를 들러야 하기 때문에 간혹 배낭족이나 여행 블로거 또는 여행 콘텐츠 넷튜버들이 방문하는 것 외에는 한국인을 찾아보기 매우 힘든 도시 중 하나가 아야쿠초였다.
잠시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던 가브리엘라가 이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스페인어는 어디서 배웠어?”
“서울이요.”
“이온에게 말을 가르친 선생님이 페루비안이야?”
“하하.”
이온이 웃는 이유가 있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에서 페루 억양을 시시하고 단조로우며 억양이 없다시피 딱딱하다고 평가한다.
이온의 스페인어가 그런 편이다.
그렇다고 꼭 나쁘다거나 잘못 배운 것은 아니다.
페루는 표준 스페인어 쓰는 나라에 가까워 억양이나 단어가 틀린 것은 아니니까.
어쩐 일인지 두 현지 아줌마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 호감을 산 것 같진 않았다.
“앞으로 한 달 간 아야쿠초에서 잘 지낼 수 있는 팁 하나 줄까?”
이온과 남매에게 매우 살갑게 대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꼬레아 델 수르(남한)에서 온 걸 이곳 사람들에게 밝히도록 해. 치노(chino)라고 오해받기 싫다면.”
“예.”
“너희가 한국인이란 걸 알게 되는 순간 아야쿠초의 사람들은 너희들을 열렬하게 환영해 줄 거야.”
캠프 참가 수속은 별 것 없었다.
영재 남매는 한국에서 준비해온 건강검진서를 제출했고, 이온은 내일 중으로 시내 병원에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내일 나머지 팀원들이 도착하면 하게 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예.”
“숙소까지 따로 안내해 줄 필요는 없겠지?”
“찾아갈 수 있어요.”
“피곤할 텐데 가서 쉬어.”
이온과 남매가 두 여성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굳이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라고 하는 거 보니까. 페루가 한류의 인기가 많은가 보네.”
영지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페루는 중남미에서 한류가 꽤나 일찍부터 자리 잡은 국가다.
2000년대 말부터 꾸준히 한국 음악과 드라마가 사랑 받는 곳이 페루다.
한류 동호회 숫자도 남미지역에서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많다.
한때 KPOP 스타들이 남미콘서트투어를 오면 페루를 반드시 들렀을 정도.
게다가 한국의 대기업 브랜드 인지도도 상당히 높다.
한국의 케이블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해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늘었다.
따라서 페루 사람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무척 반겨주는 편이다.
“남미 최초로 한류스타를 초대한 공식행사가 페루에서 열렸어. 그 공식행사가 비보이 공연이었지.”
“오~ 진짜?”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비보이 크루 공식 남미 팬클럽이 페루에 있었다고 하더라.”
“이온 오빠가 한국의 비보이인 걸 알면, 페루 사람들이 막 KPOP 스타 대접해주고 그러는 거 아냐?”
영지가 기대가 듬뿍 담긴 얼굴로 물었다.
“형들이 쌓아놓은 명성 다 말아먹을 일 있냐? 여기 사람들한테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영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공항에서도 KPOP 가수나 드라마 제목도 아니고 닉네임을 자꾸 물어보기에 프로게이머를 물어보는 줄 알았더니 어쩌면 한국의 유명 비보이를 아냐고 물어봤던 모양이네.”
“몰라. 내가 왔을 때만 해도 태권도 하는 현지인과 KPOP 커버 댄스팀 밖에 못 봐서. 아직도 한국의 비보이가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공항에서 페루사람들이 용케 우릴 한국사람으로 구별하는 것도 신기했어. 그치?”
영지가 제 오빠에게 물었다.
“페루에 중국인이 대충 150만 명 정도 살지 아마? 평판은 그렇게 좋지 못한 편일 걸?”
영지가 즉각 맞장구쳤다.
“어딘들 안 그럴까.”
킥.
이온과 영재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류가 하도 난리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외국 나와서 현지인들의 친절을 겪다보니까 참 한국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싶다.”
“국뽕 들이킬 때가 아냐. 조금 있으면 숙소에서 함께 봉사할 캠퍼들을 만난단 말이야. 정신 챙겨.”
남매는 한 달 간 함께 할 동료들이 원만하고 성실한 성격이길 기대하며 이온이 이끄는 곳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 ✻ ✻
세 사람은 아야쿠초 중심가에서 도보로 20분 거리 지역에 들어섰다.
전형적인 스페인 건축양식의 동네.
마을이 전체적으로 아기자기 하고 예뻤다.
건물과 시설들의 빛바래고 낡은 느낌마저 운치를 더하는 느낌이랄까.
“이곳이야.”
이온과 남매가 2층짜리 스페인 풍의 건물로 들어갔다.
‘ㅁ’ 모양으로 건물이 아담한 마당을 둘러싼 형태의 호스텔이었다.
“해외 워크캠프에 참여하면 보통 홈스테이를 한다고 들었는데, 호스텔에 묵게 될 줄이야.”
“숙박비가 따로 들겠지만, 열악한 현지 가정에서 지내는 것 보다는 낫겠지.”
남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이온이 나서서 체크인을 하고 룸키를 받아왔다.
영지가 얼른 이온에게 다가와 룸키를 낚아챘다.
“이층 침대가 한 10개 있는 그런 도미토리 믹스 방 아니지?”
“4인 믹스룸이야.”
“우리 말고 또 한 사람은 누군데?”
“몰라. 내일 캠퍼들이 모두 합류해야 알 걸? 지금은 투숙객이 캠퍼들밖에 없대. 이 주일 후부터 객실이 모두 찰 거란다.”
“......?”
“2월 마지막 주에 굉장히 큰 카니발이 열리거든.”
“우리도 구경할 수 있어?”
“다른 캠퍼들과 의논해 보고 결정하자.”
“오빠는 걱정 안 돼?”
“무슨 걱정?”
“한국인끼리 해외자원봉사를 나가도 별 희한한 인간이 꼭 한 두 명이 끼더라고. 인종도 성별도 제각각인 외국인 가운데 어떤 성격의 팀원이 섞여 있을지 모르잖아.”
“워크캠프가 아무나 지원자를 받지 않겠지.”
잠시 스쳐지나가는 패키지 관광객이 아니다.
무려 한 달을 동료 캠퍼들과 함께 부대껴야한다.
영지는 덜 이기적이고 덜 개인주의적인 동료들과 함께 하길 바랐다.
“해외로 자원봉사 다닐 정도면 다들 착하겠지. 별 걸 다 걱정한다.”
영재가 오빠랍시고 여동생을 안심시켰다.
그들이 묵게 될 4인실은 2층 구석에 위치했다.
다소 비좁아 보이는 실내에 2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오빠가 아래 써. 내가 위로 올라갈게.”
“내일 캠퍼들 중에 여자 애들이 있으면 방이나 침대 바꾸자고 해 볼게. 불편해도 참아.”
“내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오빠들이 남도 아닌데 불편할 게 뭐 있냐? 집에서처럼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지만 마. 죽여 버릴 거야.”
남매가 사용하는 맞은편 2층 침대 위층에 이온이 짐을 풀었다.
내일 합류하기로 한 캠퍼 가운데 여성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자리 주인이다.
이층 침대만 달랑 있을 줄 알았는데, 작은 옷장과 라운드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한 달 동안 묵게 될 방은 작지만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따뜻한 물도 식사도 제공되지 않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런 불편함 정도로는 고생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먼저 도착한 캠퍼들하고 인사하고 올래?”
이온의 제의에 영재가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남매가 모두 고산병으로 기운이 없어보였다.
빨리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내일 마지막 캠퍼까지 합류하면 한꺼번에 인사하는 걸로 하자.”
이온은 휴식을 취하는 남매를 방에 남겨두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너무 늦은 시간에 홀로 배회하는 것은 위험했다.
다른 남미 국가들과 같이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나 강도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온은 숙소가 위치해 있는 블록만 가볍게 산책하고 돌아왔다.
아야쿠초에서의 워크캠프 첫 날이 그렇게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