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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5화 (5/127)

〈 5화 〉 내 청춘 후회 없도록......!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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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도시.

혹은 침묵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19Km 떨어진 도시 콜마의 별명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콜마가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800배 이상 많은 공동묘지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간혹 콜마에서 소방관이나 폭주족 장례식이 벌어질 때는 여러 모로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공동묘지까지 가두행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온이 그런 콜마의 공동묘지 중 한곳인 십자가 언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이온의 대부인 해리 굿맨이 묻혀있다.

잘 조성된 공동묘지 안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이온의 발걸음이 멈췄다.

“......!”

해리 굿맨 이름이 새겨진 비석 앞에는 선객이 있었다.

이온은 준비해 온 추모 꽃다발을 슬쩍 바라보다가 해리의 묘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와라.”

잘 관리된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백인남자가 먼저 알은체했다.

선객은 대부의 장남인 로브 굿맨이다.

그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터사이클 스턴트맨 세계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었다.

현재는 유명 카지노 회사의 중역이다.

“3년 만이네요.”

이온의 말투에서 어딘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입대한다고 들은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제대한지 두 달 정도 됐어요.”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다.”

로브의 음성 역시도 그다지 온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냉정하다거나 쌀쌀맞지도 않다.

사무적이라고 해야 할까.

“네가 오늘 이곳으로 올 거라고 폴이 알려주었다.”

“대부께 인사부터 드릴게요.”

이온은 준비해온 꽃다발을 묘지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도 금방 털고 일어나 무모한 도전을 이어갔던 강철의 사나이.

한때 악마도 죽음으로 인도하지 못한다고 했던 전설의 스턴트맨.

그런 해리 굿맨 역시 나약한 인간일 뿐.

병마는 피해갈 수 없었다.

‘군대 건강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대신 대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눴던 대화가 플래시백처럼 떠올랐다.

-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저를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스턴트맨은 싫어?

- 하늘을 슝 하고 날아가는 건 무척 굉장할 것 같지만...... 아빠가 싫어할 거예요.

- 나중에 레오도 꼭 한 번 경험해 봐. 얼마나 굉장한지.

- 네!

묵념을 마친 이온이 돌아서서 로브를 마주했다.

“롭은 어때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넌?”

“아주 건강해요.”

“자만하지 마.”

“알다시피 세가와병이 불치병은 아니에요.”

희귀유전병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난치병도 불치병도 아니다.

도파민 약물을 투여하는 것만으로 치료가 가능했다.

문제는 조기진단과 빠른 치료.

이온은 다행스럽게도 후유증 없이 완치가 되었다.

“리아는?”

리아는 해리 굿맨이 누나에게 지어준 애칭이었다.

“누나의 이름은 이슬이에요.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이름으로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사랑과 고뇌가 듬뿍 담긴 이름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되겠지. 아버지가 이슬의 대부는 아니었으니까.”

비아냥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다.

다만 말투가 건조해서 듣기에 따라서는 쌀쌀맞게 들렸다.

“덕분에 누나도 잘 지내고 있어요.”

“또 도망칠 생각이었냐? 이번에도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어?”

“.......”

이온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부의 묘지에 참배를 드린 후,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계획이었다.

어쨌든 대부의 가족들을 피하는 것이 되어버린 꼴이다.

“나의 형제들에게 좀 더 당당해지는 것이 어떠냐?”

“일부러 피한 적 없어요. 봉사활동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뿐.”

사실 대부의 자식들과 이온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니 그들로부터 이온이 일방적으로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 정확했다.

사연은 이랬다.

토끼발을 이온에게 넘겨준 후부터 해리 굿맨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해리 굿맨은 공중점프 스턴트에서 은퇴했다.

그런 후 야심차게 할리우드 배우의 삶을 시작했다.

할리우드의 벽은 높고 험준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수십 대의 대형버스 위를 뛰어넘었던 무모한 사나이가 넘지 못할 정도로.

어찌어찌 B급 영화 두 편에 출연했다.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절치부심 끝에 스턴트 세계로 돌아와 다시 한 번 공중점프 도전을 도모했다.

그조차 신통치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결국 합병증으로 간 이식을 받는 등 투병을 이어가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그때가 이온이 여덟 살 되던 해였다.

“아빠와 우리 가족의 불행은 행운의 부적을 잃었기 때문이야!”

“수호부적이 사라지면서 아버지가 저주를 받게 된 거야!”

“토끼발을 동양의 꼬마에게 넘겨줘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렇게 대부의 자식들이 이온의 가족을 비난했다.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대부가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온의 아버지마저 사망했다.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대부의 자식들로서는 이온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더 이상 해리 굿맨의 축복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저주의 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어른답지 못했어. 어린애처럼 굴었지.”

“.......”

“불행을 마주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야.”

“대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니까.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두 분에게 가야할 행운과 운명까지 제게 몰아주신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저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결국 알게 되었잖아. 아버지의 토끼발이 사실은 마케팅일 뿐이었다는 걸.”

“진짜 인디언 주술사가 만들었다면서요?”

“맞아. 두 마리 곰과 함께 꿀......, 그 웃기는 이름의 인디언은 분명 사기꾼은 아니었어. 평생 부적을 열 개 정도 만들었다고 알려졌는데, 그의 부적은 아버지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유명 인사였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던 거야. 아버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와의 스토리를 잘 포장해 마케팅에서 이용했던 것이고.”

“대부는 토끼발의 행운을 진심으로 믿으셨어요.”

“징크스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자신만의 루틴이란 게 있으니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

그 절박함 때문에 믿고 싶지 않아도 절로 믿어지는 미신.

이온은 자신이 목에 걸고 다니는 토끼발이 단순히 미신만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이 부적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치유 속도와 회복력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니까.

그 말을 누구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세상 어떤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는 누나조차 망상으로 치부했었다.

“한때 토끼발을 돌려드리지 않은 걸 후회했어요.”

“아버지가 돌려받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더라도 두 배의 저주로 돌아왔을지도 몰라. 더욱 심각한 불행이 너와 우리 모두에게 찾아왔을지도 모르지.”

“독실한 기독교인 아니었어요?”

큭.

로브가 실소를 흘렸다.

기독교를 믿는 신자로서 미신과 저주를 말하는 것이 어딘지 우스웠다.

로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없애버리는 게 어때?”

“두 분의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유품이에요.”

“다시 강조하지만, 없애버릴 생각이라면 반드시 불태워야 한다.”

누굴 위해 강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너무 오랜 시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없애긴 해야 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세상 모든 이들이 너의 편이, 또 친구가 될 순 없어. 캘리에 대해서는 너무 섭섭지 말았으면 좋겠다.”

캘리는 대부의 막내딸이다.

대부의 자녀 중 특히 그녀가 이온을 무척 싫어했다.

이온의 면전에서 대놓고 널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미워하지도, 그렇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아요. 지금의 관계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얼마나 더? 다음 생에?’

이온은 그렇게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내가 널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와 가족들을 보러왔으면 좋겠다.”

“여전히 라스베이거스 샌즈 카지노에서 일하세요?”

“응.”

“미셀과 꼬맹이들에게 제 대신 안부 전해 주세요.”

이온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로 작별인사를 대신한 로브가 먼저 쿨 하게 돌아섰다.

형수와 조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때론 왕래도 했던 사이지만.

친한 듯 하면서 거리를 두는 관계.

그 정도 애정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가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그의 자녀들과도 친하게 지는 것이 맞지만, 굳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다가서려 애쓰고 싶진 않았다.

로브가 떠나고 묘지에는 이온 홀로 남았다.

- 내가 한창 공중점프 도전을 이어가던 시기의 미국은 꽤 살만 했단다. 사람들은 굳이 위험을 찾지도 도전하지도 않던 시절이었지. 사실은 나의 공중점프 성공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아니야.

“슈퍼스타라고 했어요. 내 친구들도 부러워하는 걸요.”

- 내가 한 도전의 성공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다치고 또 다쳐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 롤리-폴리 토이 같은 그런 모습이 날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던 거야. 롤리-폴리 토이가 뭔지 레오도 알지?

“쓰러져도 즉시 일어나는 장난감!”

- 대중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온갖 것들을 마케팅에 동원했단다. 두 마리 곰과 함께 꿀이란 이름의 인디언 주술사를 알게 된 것은 우리 팀에게 행운이었지. 그런데 그런 마케팅이나 선전보다 더욱 대중을 열광시킨 것은 따로 있었단다.

“뭔데요?”

- 나의 계속된 실패.

“에이. 말도 안돼요!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 그 역시 마케팅이었지. 실패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할까. 내 유명세는 계속된 실패에 있다고 할 수 있단다. 실패야 말로 군중을 흥분시키지. 왜 그럴까?

“......?”

- 다음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내가 다시 도전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더 큰 기대를 안고 내 도전을 볼 수 있다는 그 짜릿함에 중독된 거야. 그렇게 성공은 무수한 실패들이 반복되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란다. 실패를 무서워하지 말고 그것을 적이라고 여기지도 말거라. 그러면 언젠가 성공이란 진정한 친구 녀석이 네 앞에 떡 하니 나타날 테니까.

“네! 명심할게요.”

- 부디 토끼발이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너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부렸으면 좋겠구나. 나에게 그랬듯이.

이온이 7살 되던 해, 할리우드에서 다시 모터사이클 공중점프 스턴트계로 돌아온 대부와 나눈 대화였다.

실패는 불행이 아니다.

결과도 아니다.

과정이다.

불행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무언가를 할 때가 아니라.

그리고 불행을 피하려고 몸부림칠수록 놈은 더욱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온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야 말로 불행이란 놈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수 있게 해줄 뿐이다.

이온은 올해 24살이다.

남은 20대의 시간을 트릭커로 보낼 것인지.

일반적인 대학생들처럼 취준생의 길에 발을 들여놓을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창업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전혀 새로운 직업세계에 도전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후회 없도록......!”

이온이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던 손을 빼 가슴어림의 토끼발 위치에 가져다 댔다.

부적이란 게 믿음이 없으면 그저 장신구나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는 법.

“지금까지 이놈을 의지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요.”

평온하던 공동묘지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이온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마치 대부가 이온의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쪽.

이온이 해리 굿맨의 묘비에 손키스를 남겼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쳤다.

몇 시간 후.

콜마를 떠난 이온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온이 탑승한 항공기는 한국행이 아니었다.

멕시코를 경유해 리마의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항공편이었다.

이온의 다음 목적지는 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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