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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4화 (4/127)

〈 4화 〉 내 청춘 후회 없도록......!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네. 안녕하세요.”

“......한국 말 할 줄 알아요?”

말을 걸어온 남자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당연하죠. 한국 사람입니다.”

“그랬구나.”

“교포도 아니구요.”

“배틀 잘 봤어요. 아참! 김준열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인젠스님.”

“무슨 영광씩이나....... 하하.”

남자가 겸연쩍은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닉네임 인젠스트릭킹.

국가대표 태권도시범단 출신의 트릭커.

한국인 최초·유일의 국제 트릭킹 대회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여러 지상파 TV 방송에도 출연한 바 있고, 세계적으로 한국의 트릭킹 실력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트릭커였다.

“의성 나씨 29대 손, 나이온이라고 합니다.”

“네? 아...... 하하하.”

김준열로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에 본까지 읊으며 소개하는 이가 있을 줄 몰랐다.

그것도 첨단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다들 레오라고 불러서 교포인 줄 알았지 뭡니까.”

“미국 사람이 멋대로 부르는 애칭이 레오에요. 편하게 이온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어디서 운동해요?”

“뭐 이곳저곳....... 딱히 정해놓고 다니는 곳은 없습니다.”

“격투기나 무술은 뭐 했어요?”

“군대태권도 배운 거 빼곤 딱히 따로 배운 격투기는 없습니다.”

“혹시 비보이?”

“중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7~8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이온이 트릭커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별 것 없다.

넷튜브에서 우연히 트릭킹 동영상을 접하게 되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던 것.

고등학교에 올라 간 후로는 방학 때마다 카나한 서머/윈터 게더링에 참가해 본토 최고의 트릭커들로부터 고급 기술을 배웠다.

여담으로 누나에게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대부 가족을 만나고 온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보이도 못마땅한데, 그 보다 더욱 과격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겠다고 하면 누나가 극렬하게 만류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파워무브 기술이 상당히 안정적이더라니...... 혹시 기계체조도 했어요?”

“공군 군악대 비보이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거기 티오가 나야 뽑지 않나? 경쟁률이 장난 아니라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참고로 공군 군악대 비보이팀은 여덟 명으로 구성되는데, 결원이 발생했을 때 새로운 멤버를 뽑았다.

누군가 제대를 해야 새로 뽑는다.

당연히 T/O가 자주 비는 것도 아니고, 새로 모집한다고 하더라도 경쟁률이 17:1에 육박할 정도다.

입대를 앞 둔 전국의 내로라하는 비보이는 죄다 지원한다.

심지어 아이돌 연습생 출신도 도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온이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근데...... 군대를 갔다 왔다고요? 고등학생이 아니라?”

“제가 좀 동안이라......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 하하.”

여권을 까보라고 할 수도 없고.

김준열은 그러려니 했다.

“형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 올해 스물넷입니다.”

“나는 이게 편해요. 군생활 내내 트릭킹 연습했겠네요?”

“뭐...... 그런 셈입니다.”

사실 군 생활 내내 트릭킹 연습을 하진 못했다.

군악대에 속해 각종 위문공연과 민간 행사를 뛰어야 하고, 공연이 없는 때는 행정병으로 업무도 봐야 해서 비보잉 연습하기도 빠듯했다.

술자리도 아니다.

친한 사이도 아니다.

따라서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했다.

김준열은 지금은 어디서 운동 하냐, 누구와 운동 하냐, 어떻게 운동 하냐, 등 핵심만 간추려서 물어봤다.

딱히 비밀도 아니었기에 이온은 적당히 알려줬다.

“오늘 반가웠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봐요.”

“형님! 잠깐만요!”

이온은 김준열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체육관 라커로 달려갔다.

“생긴 것은 착하게 생겨서, 성격은 서글서글하네.”

라커로 달려갔다 돌아온 이온이 다짜고짜 김준열에게 흰색 티셔츠를 내밀었다.

“형님,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이온이 내민 셔츠에는 이미 많은 이들의 사인이 적혀 있었다.

모두가 유명 트릭커들의 사인이었다.

이온은 스스럼없이 김준열에게 형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그래야 그와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유명한 트릭커다.

한국의 마샬 아츠 트릭킹 판에서 영향력이 상당했다.

그와 친해져서 나쁠 것이 없었다.

‘이 형과 관련해서 나쁜 소문을 들어본 일도 없고.’

김준열이 사인을 해주고 떠났다.

5:5 카오스배틀까지 마무리되면서 이번 년도 카나한 윈터 게더링이 종료됐다.

내년을 기약하며 참석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카오스 배틀에서 이름 있는 트릭커들과 대등한 대결을 펼치자 싹수가 있다고 판단되었던 걸까.

한국의 트릭커들이 몰려와 인사와 격려를 건넸다.

“혼자 놀지 말고 우리 체육관 와서 함께 운동해요.”

“우리 크루 대표가 한국에서 최초로 더블 성공한 건 뭐.... 자랑 축에도 못 끼지. 어때요? 들어올래요?”

“우리와 술 한 잔 안 할래요?”

자신의 크루와 체육관을 어필하며 이온을 영입하려고 애썼다.

이온은 귀국한 후에 각각의 체육관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이온이 직원들과 함게 장내를 정리하고 있는 풍채가 좋은 50대 중반 남자에게 다가갔다.

“폴 아저씨!”

“레오. 오늘 떠나는 거냐?”

폴 카나한은 카나한 체육관의 설립자 중 한 명이자 북미 1세대 트릭커다.

가라데 고수이면서 현직 할리우드 스턴트 코디네이터이기도 했다.

“이온이라니까요. 이온 나. 나. 이. 온!”

이온이 자신의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미국인들에게 이온 발음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리스 신화 속 아테네 왕의 이름이기도 하며 화학 용어도이기도 한 ‘ION’이 뭐가 그리 부르기 어렵다고 한결같이 ‘Leo'라고 부르는 것인지.

한국의 친구들이 유치하게 ‘나이롱’ ‘게토레기’라고 놀리는 것보단 듣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본래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부모님이 고민 끝에 만들어주신 소중한 이름이었으니까.

“왜 애칭을 거부해. 레오레오?”

“어휴~”

어릴 때야 애칭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헌데 성인이 되어서까지 어린 시절의 애칭으로 불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여전히 어린애 취급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에서는 애칭을 부름해서 친근감과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용맹하고 강하며 위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초원의 사자라고 불러주면 좋아해야지. 별자리도 사자자리라며?”

“제 별자리는 또 어떻게 아셨어요?”

“인범이 알려줬지.”

“아버지가요?”

“비록 희귀병 때문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인범은 네가 언젠가 초원의 지배자 사자처럼 강한 사내가 되길 바랐어.”

“물가에 내놓은 아기 다루듯 하셨습니다만?”

“자식이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은 부모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네네. 그렇다고 해둘게요.”

가족이 아닌 누군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깊은 우정을 나누지도 않았으면서 친구라고 말해주는 것도 감사할 만 했다.

생전의 이온의 아버지와 폴은 하는 일도 활동 지역도 달랐다.

이온의 아버지는 모터사이클 스턴트의 전설이자 아들의 대부인 해리 굿맨을 지원하는 매니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연예계로 대입하자면 로드매니저와 비슷한 포지션이었다.

반면에 당시의 폴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마샬 아츠 스턴트더블(대역)이었다.

두 사람은 모터사이클 공중점프 및 매니지먼트 지원팀원과 스턴트더블로 분야가 전혀 달랐지만, 활동지역이 같았고 스턴트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또한 이온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군대를 다녀왔다.

군대에서 태권도 2단을 따기도 했다.

두 사람은 태권도와 각종 군용무기 부분에서 의외로 잘 통했다.

“사무실로 가자.”

“먼저 가 계세요. 짐 좀 가져 올게요.”

이온은 라커에 들어있는 커다란 여행용 백팩을 챙겨 사무실로 갔다.

이온은 제 안방인양 냉장고에서 스포츠음료를 꺼내 마셨다.

“인범은 피지컬에 좋았어.”

이온의 유전병이 아내 쪽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폴 카나한 또한 그렇게 단정했다.

적어도 이온의 아버지는 외형적으로 건장한 편이었으니까.

참고로 자녀가 유전병에 걸릴 경우 부계의 탓이니 모계의 탓이니 가정이 파탄나기도 한다.

이온은 자신의 부모님들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겁은 얼마나 많았는지. 또 실패를 두려워했어. 그래서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이 될 수 없었지. 인범은 어시스턴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어.”

이온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희귀병을 앓던 자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던 아버지가 겁쟁이에 실패를 두려워했다는 말이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는 무모해질 수도, 없던 용기도 낼 수 있는 법이란다. 가정과 직업이 안정이 되면서 모험이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 그럼에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지만.”

“.......”

“인범이나 굿맨씨나 지금의 네 모습을 보았다면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거다.”

폴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훌렁.

이온이 땀에 젖은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토끼발 부적을 목에 걸었다.

가방에서 깨끗한 셔츠를 꺼내 갈아입는데, 폴이 다소 놀랐다는 투로 묻는다.

“그걸 아직도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어?”

“아버지의 유품이니까요.”

제작된 지 삼십년도 훌쩍 넘었다.

털색도 바랬고, 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온은 토끼발을 버릴 수 없었다.

두 분의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일한 물건이었기에.

“네 아빠는 말이다. 미신 신봉자였어. 그것도 병적으로 집착했지. 어떤 날은 네가 입었던 환자복에 자신의 피를 아홉 방울인가 떨어뜨리고 아무도 없는 레드우드 숲으로 들어가서 태워버렸지. 그리고 정성을 다해 절을 108번 하더라. 코리아의 영험한 샤먼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나..... 내심 우스웠지만, 인범이 너무나 진지해서 웃을 수 없었어.”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흉을 보는 거예요?”

이온이 볼멘소리로 쏘아붙였다.

폴이 무안했던지 태세를 전환했다.

“네 아빠의 바람대로 사자처럼 늠름하고 건강하게 성장해서 다행이다.”

“사자는 게을러서 싫어요. 호랑이라면 모를까.”

“사자 무리는 일부다처 사회야.”

이온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유머랍시고 하는 것인데, 위트는커녕 유치하기만 했다.

와락 인상을 구긴 이온의 표정이 꽤나 웃겼던 모양이다.

으하하하.

폴이 능글맞게 웃어재꼈다.

“실없는 소리 할 거면 전 그냥 가고요.”

“팀에 들어올래?”

“팀?”

이온이 되물었다.

폴 카나한은 할리우드 스턴트팀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팀으로 들어오란 건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WCMA.”

“저보다 훨씬 뛰어난 트릭커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걸로 아는데...... 챔피언이 둘이나 크루에 있지 않았어요?”

“전설의 스턴트맨 데어데블이 대부였던 트릭커는 네가 유일하지.”

“......!”

“네 아빠와 친분도 있었고.”

그의 말은 개인적인 친분과 함께 이온을 마케팅에 써먹을 수 있단 뜻을 내포했다.

자신의 체육관을 위해서든 WCMA 크루에 대한 홍보든 뭐든.

“제안 고마워요. 폴.”

“고민도 안 해보고 거절이야?”

“학업도 마쳐야 하고.....”

“이슬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

“네.”

“넌 어른이야.”

“누나가 슬퍼할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트릭커가 직업으로써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았다.

“마음이 바뀌면 말해. 언제든 환영하니까.”

“......”

이온은 확답을 삼갔다.

“서머 게더링에 올 거야?”

“장담 못해요.”

어쩌면 이번 윈터 게더링이 이온의 마지막 참석이 될 지도 몰랐다.

복학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군대에서 사회로 돌아온 이 시대 청춘의 숙명이다.

이온이라고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폴이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물고는 이온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여름에 재회할 수 있기를 기대하마.”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하세요.”

폴을 가볍게 안으며 작별인사를 나눈 이온이 곧바로 체육관을 나섰다.

잠시 이런저런 추억이 묻어있는 카나한 체육관을 눈에 담았다.

훗날 오늘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이번 윈터 게더링은 그의 삶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들 모두가 이온의 건강에 유난히 집착했다.

아기 때 희귀병을 앓았던 탓이다.

- 조심해.

- 무리하지 마.

- 그러다 큰일 난다.

- 정말 괜찮아?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들어왔던 말이다.

유전병 완치판정을 받았음에도 매사 물가에 내놓은 아이 다루듯 했다.

때문에 이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각종 스포츠와 비보잉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이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금이야 옥이야 이온을 끔찍이 생각했던 아버지와 조부모님은 돌아가신지 오래되었고, 유일한 가족이랄 수 있는 누나와 고모 역시 성년이 된 이온에게 더는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무탈하게 군대까지 다녀왔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 슬픈 일이야.‘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난 보낸 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의미였으니까.

타인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인정받으려 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물론 그것이 심하면 병적 상태가 된다.

관심병이 바로 그렇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관종짓'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지 않았던가.

이온은 관심종자가 아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칭찬을 갈구하는 어린이도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트릭킹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관중들이 이온에게 보낸 환호와 박수갈채는 평가다.

이온의 트릭킹 실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이다.

또한 지금까지 겪었던 무수한 실패에 대한 보상이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따라붙었던 ‘발달지연’ ‘희귀병’ ‘허약한’ ‘고아’ 같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누구보다 활력 넘치는 긍정적인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이온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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