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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33화 (133/134)

133화.

성공적인 연설이 끝나고, 나는 소수의 오크 친구들을 불러 식사자릴 가졌다.

야쿠차, 그리고 각 행성의 대족장과 공장 관리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황금콩으로 만든 요릴 맛볼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맛은 그냥 평범했다.

막 한 숟갈 뜨자마자 천상의 맛이 내 뇌를 강타하거나 하진 않았다는 것.

하지만 식사가 계속될수록 오크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코를 훌쩍이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배가 불러서.

오랜 시간 경제난에 시달려 왔던 오크들은 배불리 먹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지 못했다.

식량을 지원받으며 간신히 아사 위기에서 벗어났을 때도, 오크는 내 부담을 덜기 위해 어떻게든 먹는 양을 줄이려 애썼다.

그러니 포만감이란 걸 느낄 새가 어딨겠나.

매일 허한 속으로 살던 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배가 부르다는 감정을 이 식사자리에서 느낀 것이었다.

눈물을 훔칠 정도로 만족한 오크들은 고갤 조아리며 연신 감사함을 표현했다.

“대장님이 아니었으면 언제 저희가 이런 만찬을 맛봤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대장님!”

“평생 모시겠습니다.”

“부담스러우니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황금콩의 재배가 아직 불완전한 게 아쉽군요.”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오크들에게 전해주었다.

이번에 1차 수확한 콩의 양이 제법 되긴 하나 오크 전체에게 풍족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돌아갈 수준은 아니라고 말이다.

황금콩을 키우기 위해 태고괴수나 우주괴수의 피를 연구해야 할 것 같다는 뜻도 밝혔다.

“저희에게 기회를 주십쇼!”

“목숨을 걸고 괴수를 잡아 죽이겠습니다!”

자리에 모인 오크들은 종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땐 어느덧 저녁이었다.

밤하늘에 별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거리는 여전히 환하기 그지없었다.

쉴 틈 없이 라인을 돌리며 신형 전투함을 건조 중인 공장의 불빛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임금 문제라든지 일하며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장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쌍둥이 행성의 신형 전투함 건조 사업은 남부군 수뇌부의 역점 사업 중 하나.

남부가 쫄딱 망하기 전엔 임금 지급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덕분에 오크는 무사히 제국 시장에 편입되어 좀 더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식량이든 뭐든 살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철야를 뛰는 오크의 수도 제법 적지 않다고 했다.

오크가 많이 먹는 건 사실이지만 꼭 식료품이 아니더라도 갖고 싶은 물건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지금처럼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크들도 당당히 제국 발전의 주역으로서 우뚝 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장군…!”

“우주 끝까지라도 따르겠습니다!”

아니, 우주 끝까진 됐고요.

그런 곳까진 갈 생각도 없었다.

이미 제국만 해도 내게는 너무나 넓은 세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내 손은 어느새 오크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었다.

“저는 그럼 여러분만 믿겠습니다.”

* * *

쌍둥이 행성에서 연설만 마치고 돌아오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날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제 오크 사이에서 내 위상은 구원자 혹은 선지자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한마디로 신이 오크를 위해 보낸 남자가 된 것이다.

그 덕에 나는 엄청난 환대 속에 하루를 더 쌍둥이 행성에 머물러야 했다.

아마 호위로 따라온 진저 친구들마저 없었다면 너무나 괴로운 시간이 되었을 터였다.

환대를 받으면서 뭐가 그리 괴롭냐고?

맨날 날 보면 오오! 구원자님. 하며 넙죽 엎드리는 사람들만 종일 보고 있는데 그게 재밌으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 아닐까.

아무튼, 다시 자치령으로 돌아왔을 땐 어느덧 지크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크 준장과 아이스 소령의 결혼식.

장성이면 출세의 최고봉이라 여겨지는 자리였고 지크가 내 동기이기도 했기에 이번 결혼식엔 정말 많은 하객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아마 건설 로봇을 열심히 굴리지 않았더라면 기껏 찾아온 하객들이 들판에 천막을 치고 잤어야 할 정도였다.

이중엔 지크와 친분은 없지만 나를 보기 위해 온 귀족이나 의원들도 있었다.

나는 이미 남부에서 실세 중의 실세였고 지크는 내 동기 중 가장 잘나가고 있었으니 아마 인맥 다지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결혼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우르르 하객들이 자치령에 방문하는 동안 나는 시즈 일족을 만나 작은 상자 하날 건네받았다.

[받아.]

[근데 누구 주려고?]

시즈 일족의 검은 순양함은 이제 공사가 막바지 단계였는데 나는 이들의 함선을 추가 개량해 주는 대가로 남부에서는 나지 않는, 희귀한 보석 반지를 부탁했다.

“정말 예쁜걸.”

[빛의 감람석이야. 행운을 상징해.]

빛의 감람석.

제국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저 먼 은하의 바다 행성.

그곳 한가운데 솟은 빛의 나무가 수천 년 이상을 품어 만들어낸 보석 결정체였다.

반짝이는 반지를 확인한 나는 다시 상자를 닫아 품 안에 넣었다.

[존. 결혼해?]

“생각은 있지. 당장은 아니지만.”

[못 보고 가는 게 아쉽네.]

[존 결혼식이었다면 우리도 구경했을 텐데.]

우주 괴수 추격장치 완성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제 검은 순양함의 개조만 끝나면 시즈 일족은 제국 영토를 떠나 머나먼 항해에 나설 예정이었다.

제국을 둘러싼 주변 우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나.

상황이 안정되기 전까진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게 시즈 일족의 오랜 전통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럼 언제쯤 돌아와?”

[우리도 몰라.]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때쯤이면 존은 이미 죽고 없겠네.]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우리는 인간보다 오래 살아.]

[인간은 백 년도 살기 힘들지.]

[불쌍해….]

시즈 일족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자 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작은 미어캣들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인간을 불쌍하게 보고 있는 이 상황, 뭔가 기분이 묘했다.

* * *

결혼식 축하를 명분으로 자치령을 찾은 사람 중엔 유독 군수 기업 관계자들이 많았다.

이 중엔 아크팩토리를 적대시하던 기업에 몸담은 인원도 상당했는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들이 축하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게 아니라는 것 정돈 알 수 있었다.

현재 남부 군수 시장의 흐름은 모두 아크팩토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사일, 레이더, 함선 건조까지.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에 끼지 못한 군수기업이 설 자린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았다.

이러니 적대 기업들의 눈깔이 훽 하고 도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집단을 이루어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내게 대화 자릴 만들어주길 요청했고 나는 무슨 헛소리가 튀어나올지 궁금해 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분위기 한번 칙칙하네.

칙칙하다 뿐이랴.

손에 총만 안 들었지 눈빛만 보면 날 쏴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에 전부 모여 있었다.

이들은 아크팩토리가 주장하는 프로젝트 참가에 따른 로열티 지불 정도가 너무 과하다며 상생을 주장하고 나섰다.

상생이라니….

내가 중앙에 있을 때를 노려 우리 회사를 홀라당 밟아버리려던 위인들이 할 말인가?

엿이나 드쇼. 하고 중지 손가락을 척 들어주고 싶었지만 이제 대장까지 된 마당에 그런 품위 없는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내일 조간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존 메이어, 법규를 날리다- 같은 게 헤드라인으로 걸릴 테니까.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로열티 80퍼센트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건 우리 보고 사업을 접으란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접으라는 거 맞는데?

‘말귀 잘 알아듣는구만.’

“하다 못해 나노 테크놀러지처럼 50퍼센트라도 해주셔야죠.”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왜 안 된단 말입니까!”

당연히 안 되지.

나노 테크놀러지는 아크팩토리가 사업 확장을 하기 전부터 오래도록 업계 1위를 유지해 온 초거대기업이었다.

그런 굴지의 강자가 지난 미사일 발표 때,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백지 수표를 제안해 오지 않았던가.

업계에서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그걸 나도 잘 알았기에 그만한 대우를 해준 거고, 근데 뭐?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에라이 양심 없는 녀석들.

여기선 나도 가감 없이 팩트만으로 상대를 두들겨 팼는데 어찌나 아팠던지 다들 얼굴이 붉게 변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결국 끝까지 가자는 겁니까?”

“저는 조건만 받아들이면 과거에 여러분의 기업이 우리에게 한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흐름에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가자는 쪽이 지금 누구겠습니까.”

양측의 주장이 한 치도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자 결국 참다못한 상대측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려는 때였다.

내가 그들을 향해 한마딜 던졌다.

“이 흐름이 영원하진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군 수뇌부가 우리 아크팩토리를 밀어주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술입니다. 그리고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남부의 존속 때문이고요.”

결국 남부가 중앙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남부도 이대로 가면 아주 작살이 날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우릴 콕 집어 밀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그게 지금의 흐름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남부 상황만 안정되면 다시 시장을 이전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

내 말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기업 관계자들이 얼굴에 물음표를 잔뜩 띄웠다.

“쉽게 말해 우리가 독점하는 일 없이 다른 기업에게도 살길을 열어주겠단 말입니다.”

“아.”

“단, 지금은 안 됩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엔 능력 있는 선두주자가 시장을 이끌고 가는 게 맞습니다. 이게 어디 보통 상황입니까? 전쟁에서 지면 남부는 그대로 끝입니다. 황제든 대원수든 반기를 든 남부를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귀족은 모두 참하고 시민은 다른 경계로 잘게 찢어 흩어버릴 겁니다.”

살벌한 이야기에 일부 관계자는 목울대를 꼴깍 움직였다.

단순히 겁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껏 제국이 반란 이후 어떻게 뒤를 수습했는지 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전쟁이 영원하진 않을 겁니다. 중앙과는 몇 년 내로 결판이 나겠죠. 융족이야 휴전 중이니 논외로 둬야겠습니다만.”

“몇 년입니까…? 5년?”

“전쟁이 언제 날지 알면 제가 점집을 차리지 왜 군인을 하고 있겠습니까. 중앙에 가서 물어보시든지요. 언제 쳐들어오실 거냐고.”

“크흠!”

요지는 이러했다.

우리의 기술은 남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더도 말고 위기를 넘길 때까지만 꿀 좀 빨겠다.

아크팩토리의 기술이면 그만한 자격은 되지 않느냐.

이후엔 다시 로열티도 낮춰주고 예전의 시장으로 돌려주겠다.

그러니 너희도 이 흐름에 합류해라.

우리는 절대 과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라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관계자들이 본사에 소식을 전해도 되겠느냐며 잠시 자릴 비웠다.

어차피 한 번에 의견이 정리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다만 저들은 결국 이번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망하는 길뿐이고, 조금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시장도 원래대로 돌려주겠다고 했으니까.

물론 시장 논리라는 게 결국 기술 좋은 놈이 독식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저들이 바라는 건 아크팩토리가 업계 1위가 되더라도 적은 로열티 비율로 자신들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주는 것일 터였다.

2~30퍼센트 선에서 맺어지는 그런 계약 말이다.

“회장님 말씀… 믿어도 되겠습니까?”

“지금껏 한 입 가지고 두말한 적은 없습니다. 여러분 중엔 지금 있었던 대화를 녹음해 둔 분도 계실 테니 나중에 말을 바꿀 수도 없을 테지요.”

내 말에 몇 명 관계자가 아주 미세하게 몸을 움찔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마 이곳을 빠져나가자마자 내가 시장 안정을 약속했네 어쩌네 언플을 하고도 남을 인간들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저들에게 한 이야기는 모두 진심으로 한 것들이었다.

남부가 안정되고 다시 평화를 되찾으면 나는 시장 독식을 해제하고 그 이익을 여럿과 나눌 마음이 충분했다.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내가 저들에게 이야기한 ‘몇 년’보다 훨씬 남부의 위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것뿐이었지만.

-그렇게 빨리 남부의 위기가 끝날까?

‘아마 아닐걸?’

물론 중앙과 크게 한판 붙는 건 몇 년 내로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남부를 둘러싼 위험 요소는 중앙 말고도 이미 널려 있었다.

그 모든 위협이 몇 년 내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낙관적인 예측이었다.

-그러니까 대놓고 거짓말을 한 거네?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어.’

-몇 년 뒤에 시장을 돌려주겠다며.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몇 년 뒤엔 중앙과 결판이 날 확률이 높다고 했지. 시장을 돌려주는 건 남부가 안정화 된 뒤라고 했고.’

-아….

이래서 사람 말은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거든.

물론 이 중에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 이들은 제법 있는 듯했다.

끝까지 기간에 대해 확답을 받고 싶어 했던 걸 보면 말이다.

당연히 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을뿐더러, 이 위기의 끝이 언제일지….

나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저 지금은 최선을 다해, 다가올 위험에 맞서 준비할 뿐이었다.

꿀도 좀 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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