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32화 (132/134)

132화.

천년공의 소식은 제국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중앙은 제국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천년공이 하필 남부에 새 둥지를 튼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서부 시민들은 엘다란에게 짓밟힌 영토를 천년공이 다시 회복시켜주진 않을까 기대를 품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천년공은 제국이 돌아가는 일엔 관심없다는 듯 무신경한 태도로 분지를 거닐고 있었다.

거대한 드래곤이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사람의 형태를 한 채였다.

은색의 긴 머리칼, 외눈 안경에 로브를 걸친 천년공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가 영원의 현자라 불리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외견만 보면 아마 그보다 더 현자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마법사는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게 그 콩인가?”

“그렇습니다.”

“기운이 약하긴 하지만 제대로 살아있는 것 같은데.”

황금콩의 씨앗을 심은 자리.

땅에 손을 짚은 천년공은 무언가를 느끼는 듯하더니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내게 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콩이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다른 식물과는 뭐가 다른지 하는 것들이었다.

기억도 쏙쏙 뽑아내는 상대에게 차마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 콩에 대한 비밀과 오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상당히 희귀한 식물인 모양이군. 그럼 이 콩으론 오크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그 혜택은 오크뿐만이 아니라 제국 전체가 받게 되겠지요.”

“혹시 이런 생각해본 적 없나? 이 콩으로 인해 오크가 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거기까지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인구 증가 속도에서 오크는 제국의 그 어느 종족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했다.

만약 식량 문제만 해결된다면 오크는 언젠가 제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종족이 될 터였다.

종족의 숫자는 곧 힘. 아마 그때가 되면 오크는 인간을 제치고 제국 연방의 정점에 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크 황제라….’

황금 옥좌에 인간이 아닌 오크가 앉은 모습을 상상하니 딱히 어색하지도 않았다.

만약 오크가 인간을 얕잡아 보거나 착취하기 시작하면 그건 좀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다시 말없이 콩을 살피기 시작한 천년공을 뒤로 하고 나는 쫄래쫄래 따라온 공녀에게 말을 걸었다.

“공녀님은 왜 오셨어요?”

“우리 아빠 아직 환자야. 나 안 보는 데서 또 쓰러지면 어떡해?”

-절대 안 쓰러질 것 같은데.

이제 막 중독에서 회복한 환자라곤 믿기 힘들 만큼, 천년공의 몸에서 뿜어지는 마력의 기운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이 분지쯤은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느낀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생각이 짧았다고 둘러댔지만 말이다.

“그런데 방금 천년공께서 하신 말씀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오크가 황제 되는 거?”

“예.”

“나랑은 아무 상관 없지. 누가 황제가 되든 똑같은데.”

하기야 누가 옥좌의 주인이 되든 드래곤들하곤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들은 정점에 군림한다기보단 조력자 포지션에 위치한 종족이었으니까.

인간이든 오크든 굳이 우호적인 드래곤을 적으로 돌리고 싶진 않을 터였다.

“근데 있잖아. 아빠는 미래를 볼 줄 알거든.”

“네…?”

“진짜 오크가 제국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점성술 몰라?”

공녀는 천년공이 별을 보고 앞날을 읽을 수 있다며 소곤거렸다.

그때였다.

천년공이 콩에 대해 무언가 알아냈다며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이 콩 역시 일반적인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을 거 같군.”

“법칙 말입니까?”

“엄청난 생명력을 품은 식물이 발아하려면 당연히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생각, 해본 적 없나?”

천년공의 질문에 나는 어비스데몬의 코어를 떠올렸다.

행성을 황폐화하며 에너지를 뽑아내는 저주받은 물건.

만약 이 콩도 그러한 계열의 물건이라면 오크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농사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천년 공이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칼을 쥐더니 손바닥을 그어 땅 위에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공녀가 깜짝 놀라 뭐 하는 거냐고 소리쳤지만 천년공은 묵묵히 피를 짜낼 뿐이었다.

“어떤 식물은 아주 특별한 에너지만을 양분으로 살아가기도 하지. 이를테면 태고괴수의 피같이 불멸하는 것들.”

태고괴수가 뭐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우드득 소릴 내며 금색 식물 줄기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어어?”

여진이 계속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솟아나는 줄기들.

마치 어렸을 적 동화 속에서 읽은 커다란 콩나무가 분지 한가운데 피어난 것 같았다.

그렇게 수십 미터, 수백 미터를 넘어 구름에 닿을 듯 치솟은 나무엔 큼지막한 잎사귀와 함께 노란 빛을 띠는 거대한 콩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남부의 내로라하는 식물학자들이 그렇게 용을 쓰며 매달려도 안 되던 것을 천년공은 단 한 번에 해결해버린 것이었다.

-엄청나군. 느껴지나?

‘그래.’

진은 나무를 보며 속삭였고 나는 그 의견에 공감하며 고갤 끄덕였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황금콩에선 오크의 전설 그대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걸 한입 먹으면 배가 부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다만 옆에서 나무를 바라보던 천년공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살짝 인상을 썼다.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피를 뿌렸고, 식물이 성장했지. 그게 다야.”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자넨 어림없지. 한 만년쯤 살면 모를까.”

한계를 뛰어넘은 장생종의 피엔 특별한 힘이 담긴다는 것.

바로 이 피가 천년공이 주장한 황금콩을 키우는 열쇠였다.

“그나저나 어쩐다. 오늘은 내가 도와줬지만 이걸 계속 도와줄 수는 없어.”

천년공이 말하길 황금콩은 다시 열매를 땅에 심어 피를 뿌리고, 재차 수확의 시기를 거쳐야 하는데 이번에 힘을 크게 소진해 당분간은 열매를 맺게 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우리 드래곤은 이러한 식물을 키우는 데 부적합한 종족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멸의 힘을 지닌 생물의 피를 구해야 해.”

“불멸이요?”

“그래. 불멸. 그에 적합한 피를 구할 수 있는 곳을 한곳 알고 있긴 한데 하필 황성이군.”

천년공은 황성 깊은 곳에 태고괴수의 피로 된 웅덩이, 불멸의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저 혹시 태고괴수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짐승이지. 까마득한 시간을 살았고, 그에 걸맞은 힘을 지닌 존재들이야. 제국 영토에도 한 마리 있었는데 지금은 위구라고 부르는 그곳이 본래는 놈의 둥지였네.”

천년공은 제국이 갓 태동하던 시절, 초대황제와 드래곤들이 이 흉악한 괴물을 토벌해 불태우고 썩지 않는 피를 황성 지하에 두어 보관해왔다고 했다.

“그럼 그 피를 손에 넣기 전까진 다시 식물을 재배할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나도 임시처방을 한 것일 뿐, 매번 이렇게 싹을 틔워줄 순 없거든.”

“그렇군요….”

“너무 실망할 필요 없어. 소원은 다른 거로 다시 들어주지.”

“아, 아닙니다. 괜히 신경 쓰시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일단은 말이야. 저것들부터 수확하게나. 대충 보기에도 상당한 양이 열린 것 같으니.”

천년공은 머리 위의 황금콩 줄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새 커다란 우산처럼, 줄기를 사방으로 뻗은 황금 나무들이 분지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 * *

<존. 아빠가 결국 우주 괴수는 태고괴수의 아종이니까 덩치도 크고 적당히 오래 산 놈들을 잡아 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내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아무튼, 다시 한번 아빠 치료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할게. 그럼 다음에 또 봐.>

“예.”

-우리 공녀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초면에 사람 시험해 본다고 냅다 바닥에 찍어누르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뭐부터 해야 할까.’

황금콩에 대해선 조금 더 연구가 필요했다.

정체불명의 희귀식물이 열매를 맺었다는 소식에 식물학자들은 크게 흥분하더니 자진해서 24시간,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이미 맺힌 열매만 해도 커다란 포대로 수백 자루 이상이었다.

나무 자체가 워낙 크기에 열매의 크기도 사람 머리만 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렇게 연구 첫날.

식물학자들은 이 황금콩이 기존에 있던 그 어떤 식물보다도 압도적인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른 종족도 아니고 무려 오크의 허기를 해결 가능한 식물 아니던가.

사람의 경우 콩 한 쪽을 건조시켜 쪼개면 열매 하나로만 한 달 가까이 생존 가능하단 결과가 튀어나왔다.

물론 수분 공급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이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나는 즉시 열매 일부를 자루에 담아 오크의 쌍둥이 행성을 방문하기로 했다.

한창 융족과 전쟁이 계속되던 시절, 공장 시찰을 위해 방문했던 이후로 오래간만이었다.

갑자시 불시에 방문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야쿠차를 통해 미리 방문 일정을 알려주었는데 이게 웬걸.

쌍둥이 행성을 코앞에 둔 나는 우주에 펼쳐진 광경일 보고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엔터프라이즈호를 맞이하기 위해 우주엔 마치 보이지 않는 도로가 난 듯 무수한 신형함들이 줄을 서서 긴 띠를 이루고 있었다.

남부에서 가장 뛰어난, 이제 막 공장에서 생산된 최신 이클립스급 구축함들이었다.

행성 관리를 맡은 야쿠차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사령관님이 온다는 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냐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환영 행사를 준비했다는 말을 꺼냈다.

<전부 대장님을 먼발치에서라도 직접 뵙기 위해 모인 인원들입니다.>

-누가 보면 우리가 황제인 줄 알겠다.

진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황제보다도 더 성대한 환영식 아닌가 싶었다.

이런 환영식은 불필요하니 어서 사람들을 물리라고 했지만 인파가 흩어지긴커녕 오히려 더 많은 함선이 대기권 위로 올라와 엔터프라이즈호의 강하를 맞이했다.

그렇게 이어진 전투함의 행렬은 엔터프라이즈호가 착륙할 때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이거 황금콩을 구해왔다고 발표라도 하면 진짜 난리 나겠는데?

‘뭐 처음부터 원하는 게 그거였으니까.’

바쁜 시간을 쪼개 오늘 쌍둥이 행성에 들은 이유는 오크들의 숙원인 황금콩 재배 성공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반쪽짜리 성공이지만 그래도 당장 이 신비의 열매를 직접 가지고 돌아왔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는가.

오크들을 모아놓고 내가 당신들의 보물을 가지고 돌아왔소! 라고 자신 있게 발표하면 오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아마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게 뭔데?

‘당연히 오크의 충성심이지.’

오크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언젠가는 오크가 제국 사회의 주류가 될 수도 있고, 인간과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내가 있는 한!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거 아닌가.

이것이 오늘 쌍둥이 행성에서 오크들을 상대로 실외 연설을 준비한 이유였다.

저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생각해 봐라.

오크를 제국 사회의 일원으로 끌이자고 주장한 건 나였다.

그런데 오크가 잘못을 한다?

그 똥물을 누가 다 뒤집어쓰겠는가.

당연히 나다.

물론 지금은 쌍둥이 행성이 남부 최고의 생산 허브 중 하나가 되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 그런 공로 따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드넓은 대지 위에 마련된 연단.

나는 오늘의 연설을 위해 단상 위에 올랐다.

연간 강수량이 처참해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땅.

지난번 방문 당시, 수십만 오크를 눈앞에 뒀을 때도 정말이지 엄청난 규모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오크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평선 끝까지, 오크 머리통만 보이는 지경이었다.

내 인기가 이렇게 대단했나?

야쿠자 이 자식, 강제로 사람 동원한 거 아니야?

평범하게 생각하면 누군가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가장 인기가 있을 앞줄.

그곳엔 이제 막 장교로 임관한 오크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말이다.

일단 장교들이 모두 연기파 배우가 아니라면 최소한 저들만큼은 자의로 이 자리에 나온 게 분명해 보였다.

이마저도 자리가 협소해 나오지 못한 오크들은 스크린 앞에 모여 드론이 송출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오크를 위한 연설이 시작됐다.

“친애하는 오크 동지들이여.”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와 잠시 날 당황케 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오크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번역 마법을 쓰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우릴 동지라고 불러주셨어!]

[존 메이어님! 우리의 인도자!]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대하는 위대한 분!]

이 광경을 지켜보던 진은 묘한 감탄사를 자아냈다.

-이게 군인이야. 사이비 교주야….

한참이 지나도 박수가 그칠 기미가 없자 나는 손을 들어 저들의 열기를 진정시켰다.

오크는 제국 사회에 편입되기 전까지 융족에게 사실상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나는 저들을 융족의 압제에서 해방한 영웅이었던 셈.

영웅의 손짓에 오크들이 힘겹게 열기를 억눌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화를 위해 힘써준 여러분의 노고를 제국 모두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국은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으로 안전해지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이 땅에 왔을 때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척박한 황무지였던 이곳에서, 나는 수백억 명의 꿈과 희망을 엿보았습니다. 나는 그때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리 제국의 미래를 이 가능성 있는 종족과 함께해야겠다고! 누구나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말입니다.”

“와아아아아-!”

“존 메이어! 존 메이어! 존 메이어!”

순간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굉음과 진동이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내가 뭐라고 하는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수준이었지만 나는 꿋꿋이 연설을 이어갔다.

“지금 이 앞쪽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장교 친구들도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여러분이 직접 주역이 되어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장성이 되어! 영주가 되어! 저 넓은 우주로 오크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크가 어떤 종족입니까! 한때는 우주 전역을 누비던 위대한 종족 아닙니까!”

“와아아아!!!”

“존 메이어, 만세!”

“존 메이어 님…!”

내 이름을 목놓아 외치는 오크들.

그중엔 너무 과했던 나머지 헉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자들도 있었다.

-존…. 너 천직이 따로 있었구나.

진이 내 연설을 보며 혀를 내두르는 사이, 어느덧 연설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존 메이어! 여러분께 한시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여러분의 헌신에 조금이나마 보답을 하고자 합니다.”

내가 자루 속에 들어있던 수박만 한 열매를 꺼내 들자 오크들의 흥분이 잠시 가라앉았다.

다들 저게 뭐지? 싶은 표정이었다.

잘 봐라! 이게 당신들이 그렇게나 원했던 보물이니까!

“이것이 바로 선조들의 숙원, 황금콩의 열매입니다!”

연설의 클라이맥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어쩐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크들의 반응은 조용하기만 했다.

‘뭐지?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

-어쩐지. 연설이 앞에서부터 너무 팍팍 치기만 하더라. 쉴 구간도 줬어야지.

‘아….’

아쉬운데.

황금콩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고비를 넘긴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했는데….

하필 클라이맥스에서 김이 새다니.

나도 모르게 시무룩한 표정이 나올 뻔한 그때, 오크들이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더니 천천히 엎드리기 시작했다.

마치 잔잔한 물결이 지평선 끝까지 파도를 타는 것 같은 광경.

그 순간 오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

“구원자. 존 메이어시여….”

쌍둥이 행성의 모든 오크가 나를 영원히 따르겠노라고 맹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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