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Chapter 20. 2번째 데뷔전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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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2번째 데뷔전 (6)
#1 마운드 위
서진목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이영을 바라봤다.
“너, 설마 몰랐어?”
‘아, 진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네.’
문제는 그라운드에서 사이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이영이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볼을 선언한 심판도 몸이 굳어있었고 서진목이 올라오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내야수들 또한 그 증거였다.
“이영아 괜찮아?”
“괜찮지! 데뷔전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녀석인데 고작 이런 일로 흔들리려고?”
이 자식들 뭐지? 뭔데 지들 마음대로 내가 안 괜찮아지고 괜찮아지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을 해주셔야 알죠.”
내 반응에 녀석들이 석상처럼 굳어버린다.
“하아, 할 말 없으면 정신 사나우니까 그냥 마운드에서 내려가 줄래요? 마운드는 함부로 밟는게 아닙니다.”
“어, 그, 그래! 미안하다.”
“화이팅이야!”
너희들은 다행인줄 알아야해.
나 같은 천사니까 마운드를 밟아도 이해해주는거지 다른 녀석들이면 같은 팀을 상대로 벤치클리어링을 했을거다.
그만큼 투수에게 마운드는 중요한 곳이다.
어휴, 멍청한 야수놈들 때문에 고르게 정돈되어있던 마운드가 울퉁불퉁해졌다.
멍청한 야수놈들은 투수감수성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마운드 위에서 피칭을 해야하는 투수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을거다.
-아, 샤이영 슨슈도 마니 아쉬웠나 봅니다.
-팀원들이 위로차 마운드를 방문했지만 사이영 선수의 표정이 풀리지 않습니다.
중계화면에는 사이영이 인상을 쓰면서 마운드를 정돈하는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녀석들이 올라오고 나서 내 페이스가 흩어졌다.
내가 던진 공은 타자의 방망이에 맞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2루수로 향한 공은 찐따 동기녀석이 가뿐하게 잡았다.
아참, 저 녀석한테 타격에 대한 기본을 알려줘야하는데 왜 지난 회에 나한테 물으러 오지 않았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내가 덕아웃으로 들어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사이영, 고생이 많았다.”
“감독님까지 왜 이렇게 유난입니까?”
“너 설마 5연속 3구 삼진이면 세계신기록이라는걸 모르냐?”
엥? 그게 왜 세계신기록이야? 내가 프로 1년차인가 2년차 때 3구 삼진을 7명인가 9명 연달아 잡았던 거 같은데?
하긴, 그때의 기록은 거의 소실되어서 승 패 평균자책점 탈삼진 정도만 기록되지 몇구를 던져서 타자를 잡아냈다는 기록은 사라졌지?
“아,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설마 아까 볼을 던졌을 때 다 마운드로 몰려든 이유가 고작 그런거 때문이었습니까?”
‘이 녀석에겐 세계신기록조차 고작인가?’
#6회초
따 악!
그라운드에 시원한 배트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5.2이닝 2개의 아웃카운트를 잘 잡은 빌 제임스는 하필이면 또 상대팀 투수 사이영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빌 제임스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역할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길, 끝이군.’
벌써 지난이닝부터 몸을 풀고있는 불펜 투수들은 언제든지 자신을 구원할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운드 위로 창원 티라노즈 감독 송민한 올라오고 있었다.
“Good job.”
송민한은 서툰 영어를 사용하면서 팀의 에이스를 다독여줬다.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어쩌겠어. 올해는 시작부터 쉽지가 않군.’
빌 제임스는 창원 티라노즈의 에이스였다.
당연히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는 잡고가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개막전은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개막전의 결과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얻은 팀은 기세를 올려서 초반에 치고나갈 수 있는 반면 졸전으로 개막전을 치른 팀은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져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프로야구에선 초반 20승을 먼저 거둔 팀이 이후 페넌트레이스에서 고지를 선점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욱 개막전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빌 제임스는 송민한이 꺼낼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빌 제임스는 에이스 답게 초반부터 흔들린 것 치고는 4실점을 하면서 정말 잘 막았다.
하지만 오늘 대전 호크스의 타선은 작년과 달리 뭔가 상대하기 많이 껄끄러웠다.
작년의 대전 호크스는 빌 제임스같은 에이스에게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막말로 빌 제임스가 주무기인 체인지 업을 봉인하고 던져도 퀄리티 스타트는 충분한 팀이었지.’
하지만 오늘은 빌 제임스가 전력을 다했지만 고작 5.2이닝 4실점 4자책점으로 쓸쓸한 퇴장을 해야 할 만큼 타선의 응집력이 대단했다.
‘그중에는 9번 타자를 치는 저 녀석의 존재가 크다.’
투수면 투수답게 그냥 얌전히 덕아웃에서 휴식이나 취할것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악착같이 타자로 나와서 3타수 2안타를 때리는지 송민한은 사이영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제발 상영이가 잘 막아주기를 바랄뿐이다.’
하지만 주상영은 작년에도 패전 처리조를 하는 투수였고 사실상 주상영이 올라왔다는 것은 송민한이 이번 경기를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뀐 투수의 초구를 그대로 노려친 박중범의 홈런을 쳤다.
덕분에 빌 제임스의 최종 성적은 5.2이닝 5실점으로 팀의 에이스라고 하기에는 많이 민망한 성적이 되었다.
“와! 얼마만에 이렇게 시원하게 이겨보냐!”
“헤이, 9번 타자가 나보다 잘 치면 어쩌자는 거야 브로!”
팀의 5번째 득점을 거둔 나는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덕아웃에 들어 왔다.
퍽!
누구냐? 감히 어르신의 뒷통수를 때린 녀석이!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봤지만 뒤에는 찐따미를 풀풀 풍기는 동기 녀석뿐이었다.
설마 저 녀석이 내 뒤통수를 때린 건 아닐 거야.
나랑 눈이 마주친 찐따 녀석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내 눈을 피했다.
역시 저런 찐따놈이 나를 때릴 리가 없지.
그렇다면 선배놈들중에 한 놈인가? 이 수치는 필히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홈런치고 들어오면 갚아줘야지!
“봤노라! 때렸노라! 홈런쳤노라!”
마치 개선장군처럼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박중범을 향해 우리팀은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누가 나의 뒤통수를 때렸는지 모르겠고 중범선배는 확실하게 아니지만 그런 것을 따질 이유는 없다.
일단 내가 맞았으니 화를 푸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퍼억!
맛이 어떠냐! 싸가지 없는 중범선배놈아!
“야, 임마! 사이영! 나 네 선배야.”
“저 아닙니다.”
“뭐? 개소리하지마! 너 손 휘두르는거 다봤어.”
쳇, 그 난리통에 나를 봤다고? 차라리 기억을 못하게 잠시 정신을 잃을만큼 강하게 때릴걸 그랬어.
너무 약하게 때렸나? 다행인줄 알아! 같은팀이니까 이정도인거지 다른팀이었으면 지금쯤 깨어났을 거니까!
“축하의 의미였습니다.”
“두번 축하했다가는 사람 죽겠다?”
“제가 자주 축하해줬는데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튼 중범이 녀석의 홈런 덕분에 스코어는 6:0 압도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대승이라기엔 충분한 스코어가 되었다.
#8회 말
‘아, 이번에도 안타를 못 치면 정말 퍼펙트게임을 당할 수 있다.’
KBO최초 퍼펙트게임의 희생양이라는 부담감이 유진용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서 유진용은 2번째 터석에서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고작 5회, 상대가 퍼펙트 피칭을 하고 있다지만 그렇게 욕을 먹을 플레이는 아니었기에 시도 할 수 있었던 작전이었다.
유진용은 설혹 욕을 먹더라도 어떻게든 진루타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번트를 했지만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기습번트 수비를 해내는 사이영 덕분에 아웃카운트만 늘릴 뿐이었다.
그리고 4번 타지인 유진용이 기습번트까지 실패했다는 소식에 팀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실제로 창원 티라노즈의 덕아웃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만큼 조용했다.
퍼펙트게임은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도 부담감이 엄청나지만 실제로는 퍼펙트를 당하는 입장에서도 받는 부담감은 엄청나다.
심지어 KBO에서는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퍼펙트게임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팀이 자신의 팀이 될 거라는 생각에 팀 분위기는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는 5회처럼 막무가내로 번트시도를 할 수조차 없다. 내 실력으로 저 녀석의 공을 쳐야만 해!’
패색이 짙은 싸움이긴 하지만 유진용에게도 몇 가지 승산이 존재했다.
그중에 하나는 도저히 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이영의 광속구도 이제 슬슬 눈에 익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8회가 되면서 사이영이라는 괴물도 지쳤는지 160 초반의 직구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확실한건 녀석은 지쳤다!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녀석의 특성상 타이밍만 잘 노리면 외야로 공을 보낼 수 있다.’
오, 저 녀석인가?
상대팀 타자들은 대부분 눈빛이 죽어있었지만 이 팀에서 유일하게 눈빛이 살아있는 녀석이 있다.
지난번 타석에서는 건방지게 번트를 시도한 녀석이다.
하지만 녀석은 이번만큼은 나에게 번트를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야구에서 투수는 왕이고 그것은 야구라는 스포츠가 만들어지고 나서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을 보호하기 위한 ‘불문율’들이 살아서 아직까지 버젓이 남아있는 곳이 야구판이었다.
그중에서는 기록을 이어가고있는 투수에게 번트를 시도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사실 이 불문율이 생긴 이유는 번트로 인해서 자신의 기록이 깨진 투수는 기분이 나빠지고 그로인해서 빈볼이 날아오면 오히려 자신들이 더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즉 기록달성 직전의 투수에게 번트를 시도하면 매우 높은 확률은 확률로 빈볼이 날아오고 빈볼에 맞으면 자신들이 손해니 투수를 존중한다는 식으로 정신승리를 한 것이 저 불문율의 진면목이다.
심지어 내 공은 다른 투수의 공보다 맞으면 아플것이 자명하니 진짜 개똥멍청이가 아닌 다음에야 8회에 번트시도를 할 인간은 없다고 봐야한다.
즉 저 녀석도 나와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지.
나는 크게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던졌다.
[시속 168km/h]
“우와아아아아아아!”
우리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다른 타자들은 눈빛이 죽어있어서 구위보다는 제구위주로 피칭을 한 반면 아직까지 투지를 잃지 않은 저 녀석에게만큼은 전력을 다한 공을 던져야 한다.
갑작스럽게 구속이 5km/h이상 올랐는데 녀석은 거의 내 공을 따라온 스윙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또 스트라이크! 이제 진짜 ‘결정구’를 사용할 때다.
나는 마운드 위에서 어깨를 크게 한번 돌리며 ‘결정구’를 던질 준비를 했다.
스으으으으응~
평소와는 다른 소리를 내며 포수를 향해 날아가는 공, 저런 공은 전생에도 던져본 경험이 없다.
[시속 173km/h]
엄청난 위력을 지닌 공이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따 악!
그런데 놀랍게도 녀석은 내 공을 때렸다.
그것도 내야를 넘어서 외야까지 날아간 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에 담긴 위력이 워낙 강해서인지 녀석의 공은 멀리 뻗지 못했다.
아웃을 직감하며 천천히 1루로 달려가는 녀석, 그런데?!
“어? 어? 어!!!!”이 구장에 있는 모든 관중들이 비명을 지른다.
살펴보니 외야에 있는 이수담이 타구 방향을 못잡고 술 취한 아저씨처럼 그라운드를 어지럽게 뛰어다녔다.
좀처럼 낙구지점을 찾지 못한 이수담은 결국 머리위로 날아오는 공을 저글링 하면서 땅에 떨어트렸다.
“······.”
결과는 애러로 인한 출루, 8이닝까지 기록되던 퍼펙트게임은 어처구니 없는 외야수의 실책 한방에 끝나고 말았다.
이수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손을 들어줬다.
뭐, 익숙한 일이다. 투수가 아무리 잘해도 퍼펙트게임은 쉽지 않다.
그야말로 팀 전체가 완벽해야 얻을 수 있는 경기가 퍼펙트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모든 팀원들이 마운드를 향해 달려왔다.
아, 괜찮으니까 제발 내 마운드에서 사라져!
나는 손을 들어 녀석들을 막고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9이닝 15k 1애러 노히트 노런, 이게 내 데뷔전 성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