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Chapter 21. 이길 때는 확실하게 이겨야 하는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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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이길 때는 확실하게 이겨야 하는 이유 (1)
#1 승리 인터뷰
‘평소’처럼 가볍게 경기를 끝낸 나는 ‘평소’ 하던 것처럼 짐을 싸고 덕아웃을 나섰다.
‘평소’와 달라진거라고는 그때는 하지 않았던 아이싱을 어깨에 하고 있다는 정도 뿐이다.
집에 가려는 나를 감독이 불러 세웠다.
“야, 임마! 너 어디가?”
감독 애송이가 당황해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제길 살짝 도망치려고 했더니 걸렸나?
“어, 집이요?”
사실 수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하고 칭찬도 받으려고 했지만 최대한 뻔뻔하게 말했다.
“너, 생각보다 많이 또라이구나?”
“제가요? 뭐 잘못한거라도 있습니까?”
오늘 경기는 깔끔하게 완투로 이겼는데? 왜 퇴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난리지?
설마 오늘 5타수 3안타를 친 대 타자에게 특타라도 치라고 하는 건가?
솔직하게 나에게는 노히트 노런 만큼 기분이 좋은게 5타수 3안타라는 기록이다.
노히트 노런은 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기록인 반면 5타수 3안타는 온전히 내 실력으로 이뤄낸 기록이라 더욱 뜻깊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구태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제자를 보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놈아, 인터뷰하러 가야지. 고등학교때도 했잖아.”
“아, 인터뷰를 해야 하는 군요.”
아, 깜빡했다. 인터뷰를 깜박한 이유는 ‘평소’에는 인터뷰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월드시리즈도 아니고 무슨 인터뷰를 해?
물론 고등학교때는 경기를 끝내고 가끔 인터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는 팬들도 얼마 없고 프로도 아니다보니 야구를 한다기 보다는 친구들이랑 논다는 개념이 강했다.
오늘은 워낙 옛날 생각이 많이 나다보니 나도 모르게 ‘평소’처럼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럼 인터뷰만 끝내면 쉬러가도 됩니까?”
“니 마음대로 하세요.”
구태성의 허락도 받았겠다 후딱 인터뷰 끝내고 합법적으로 수지랑 데이트하러 가야지!
다시 그라운드로 올라가니 인터뷰 존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캐스터는 은근히 드러나는 몸매를 자랑하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영선수, 여기에요!”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여자 아나운서, 수지만큼은 아니지만 예쁘긴 하다.
“안녕하십니까? 대전 호크스 선발투수 사이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사이영 선수. 오늘 데뷔전에서 아주 인상깊은 활약을 하셨는데요.”
당연히 내 공이 쩔어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을 그대로 언급해봤자 좋은 소리를 못들을게 뻔하다.
“중학교 때같이 호흡을 맞춘 진목 선배의 리드가 좋았습니다.”
“리드라고 하기에는 볼 배합이······.”
어허, 팩트폭력 멈춰!
“저는 전적으로 진목선배가 던지라는 곳으로 던졌을 뿐입니다.”
내가 이렇게 팀원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경기는 누가 뭐래도 내가 잘해서 노히트 노런을 한 경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진목선배를 치켜세워주면 당연히 진목선배의 사기가 올라간다.
사기가 올라간 진목선배는 또 투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렇게 팀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 정말 다양한 신기록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최대 연속 3구 삼진, 세계 최고 구속, 데뷔전 노히트 노런까지 이러한 기록을 세울거라고 상상은 하셨나요?”
뭐 그게 별거라고! 솔직하게 내가 공을 던지던 시절에 구속이 측정되었으면 160~170km/h짜리 공은 수도 없이 찍혔을 텐데!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속의 경우에는 겨울동안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160km/h 후반의 공을 던졌습니다. 날이 풀리니 역시 공이 조금 더 빨라지네요.”
“아, 그렇군요.”여 아나운서는 뭐가 불만인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잠시 인이어로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여 아나운서는 가장 민감 할 수 있는 질문을 해왔다.
“아, 그리고 오늘 정말 아쉽게 퍼펙트게임을 놓치셨는데요.”
그래, 당연히 이 질문도 나와야겠지.
여기서 오늘 공을 놓친 이수담을 까는 순간 팀 분위기는 개판이 될 수 있다.
안그래도 보이지 않게 투수조 타자조로 나눠서 세력싸움을 하던 녀석들이지 않나?
내가 이수담을 조금이라도 까는 순간 곪아 있던 감정이 터질 수도 있다.
“라이트에 공이 들어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퍼펙트게임은 투수 혼자서 아무리 잘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렇다 내가 진정으로 삼진을 잡으려고 했던 티라노즈 4번 타자 유진용은 결정구를 던지고도 외야플라이로 살아나갔다.
경기 초반 내 직구에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에게서 쉽게 삼진을 뽑았지만 타순이 한바퀴 돌고나서는 내 공에 방망이를 맞추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구속을 낮춰서 맞춰 잡는 피칭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15k밖에 얻지 못했다.
사실 나는 삼진보다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뽑아내는게 더 좋은 투수라고 생각하기에 나에게 삼진은 큰 의미가 없다.
시원하게 삼진을 잡는것도 좋지만 이 팀은 내가 삼진으면서 경기를 풀어갈 만큼 여유로운 팀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중반부터 구속이 떨어지다가 갑자기 유진용 선수에게 170이 넘는 강속구를 던지셨는데요.”
“마운드 운영의 일부입니다.”
“예, 정말 놀랍습니다. 루키인 사이영 선수가 베테랑 못지않은 마운드 운영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음, 잘못하다가 NASA가 나를 해부하겠다고 달려드는건 아니겠지?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승 쉴드다.
“저에게 마운드 운영을 알려주신 분은 고등학교때부터 저를 지도하고 계신 구태성 감독님입니다. 구태성 감독님은 경기 운영부터 투구 메커니즘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역시, 대전 호크스 레전드의 수제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엄마! 아빠! 올해는 진짜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그리고 정수지, 사랑한다!”
#2 대전 호크스 갤러리
[근------본 그 자체! 펄럭~]
<사이영이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사진>
시바, 이게 근본이지!
근본있는 부모님 밑에서 모태 호크스가 됨
대전 출신으로 유성중, 대전고를 나와서 대전 호크스 1라운드 1픽으로 입단!
데뷔전 그딴거 모르겠고ㅋㅋ 최대 3구 3진 신기록, 최고구속 신기록, 노히트 노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설의 레전드 태성이형님이 마운드에서 던지는 것 같은 쫄깃함은 없었지만 조낸 안정적인 마운드 운영ㅋㅋㅋㅋ
청출어람을 벌써해버린 사이영 엌ㅋㅋㅋ
심지어 인터뷰까지 근본넘치는거 실화냐?
┗>(작성자)와, 우리 롸끈한 회장님 아들분 어찌나 일을 잘하시는지!
┗>너 이 새끼 사이영 우승시 방출 조항 달았다고 조낸 까던 새끼 아니냐?
┗>(작성자) 응, 아니야. 내가 그랬을리 없어.
┗>그런데 막상 데뷔전부터 미친놈처럼 공던지는거 보고 좀 아깝긴 함 그 조항만 없었으면 호크스 6년 연속 우승각인데!
┗>아 맞지 맞지! ㄹㅇㅋㅋ
┗>그래도 저런 조건 없었으면 사이영 바로 메이저로 빤스런 쳤을걸?
┗>(작성자) 그러니까 프론트가 일을 잘하는 거지! 저런 투수를 메이저에 안뺏기려면 그런 계약이라도 했어야지.
┗>ㅇㅈ
대부분 사이영의 호투를 칭찬하는 글이었지만 가끔 어제 실수했던 이수담을 저격하는 글도 있었다.
[아 근데 이수담 이ㅅㄲ는 어떻게 야구하냐?]
이 ㅅㅂㅅㄲ만 아니었어도 어제 우리 이영이 퍼펙트하는건데 ㅅㅂㅅㅂ
평범한 뜬공도 놓칠 수준의 수비
어깨는 소녀보다 약해서 신생아 어깨
방망이라도 좋으면 참고 넘어가겠는데 무려 코너외야수가 0.263/0.300/0.357 엌ㅋㅋㅋ 홧병나 돌아가시겠다.
나이라도 적으면 참겠는데 나이도 이제 거의 꽉차지 않았냐?
이 ㅅㄲ는 야구 어떻게 하는거냐?
┗>우리 외야수 팜을 봐봐 ㅅㅂ 수담이 정도면 존나 잘하는거얔ㅋㅋㅋㅋㅋㅋ
┗>(작성자)아니, 그게 잘하는거면 미치겠네 ㄷㄷㄷ
┗>야, 어제 근본좌인터뷰 못봤냐? 실제로 야간경기에 라이트 안에 공이 들어가면 잡기 어렵다잖아.
┗>(작성자)그냥 이영이가 존나 착해서 선배 똥꼬 빨아준거아님?
┗>그래도 가장 큰 피해를 본 이영이가 괜찮다는데 니가 왜 시비냐 ㅋㅋㅋ
┗>오지랖 넓은것도 병이다.
그마저도 사이영의 인터뷰 덕분인지 이수담에게 화살이 날아가기 보다는 병먹금을 당하는 추세였다.
사이영은 단 한경기 만에 대전 호크스의 골수팬들의 마음을 훔쳐버렸다.
#3 기분좋으신 회장님
김승화는 오랜만에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다.
“으음, 오늘따라 유난히도 개운하군.”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녹슬어가고 있는 몸이 오늘따라 윤활유라도 발린 듯 매끄럽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휴, 그렇게도 좋아요?”
“아, 좋지 그럼! 자기는 데뷔 노히트 노런이 쉬운 줄 아나?”
“시끄럽고 밥이나 드세요.”
대외적으로는 롸끈한 회장님으로 불리지만 집에서 만큼은 잡혀사는 김승화는 조용히 아침밥을 먹었다.
그리고 호랑이 같은 마누라를 피해 자신의 안식처인 그룹 회장실로 출근했다.
“정비서, 어제 호크스 경기 다시 틀어봐.”
김승화는 본인이 직접 경기를 틀 수 있으면서도 굳이 정비서에게 경기를 틀게 지시했다.
자신의 아들인 김동진이 만든 팀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김승화를 곁에서 보필한 정비서 정지훈은 사실 김승화와 거의 친구나 다름없었기에 김승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회장님 얼굴이 활짝 피셨네. 저리도 좋으실까?’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이나 다름이 없었다.
김승화는 어제 있었던 2024KBO 개막전을 다시 시청했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그룹 안화의 회장인 김승화는 정말 바쁜 사람이다.
그럼에도 오늘 오전만큼은 정비서와 함께 어제 있었던 경기를 본 김승화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비서.”
“예, 회장님.”
“우리 애들이 큰일을 했는데 사기를 올려줄 겸 금일봉이라도 하사할까? 한 이삼천이면 되겠지?”
“저, 회장님 구태성 감독이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금일봉과 회식은 미뤄 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태성이가? 흠, 기강이 헤이 해질까봐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직 추측 선수들의 나이가 어리니 금방 흔들릴 수 있습니다.”
“에휴, 태성이 녀석 때문에 화끈하게 기분도 못 내고 이게 뭔가!”
김승화는 자신의 돈으로 기분좋게 회식하는 선수들을 기대했지만 구태성이 거절했다기에 밀어 붙이지도 못했다.
김승화는 구태성의 팬이기도 했고 그를 억지로 호크스 사령탑에 앉힌 사람도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올해 우승 보너스를 약속 하시지요.”
‘우승 보너스라? 쪼잔하게 50% 100%가지고는 의욕을 불어넣기 힘들겠지?’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우승을 못한 호크스기에 온갖 방법을 사용한 김승화였다.
하지만 올해야 말로 느낌이 달랐다.
김승화는 본인의 별명답게 롸끈한 우승 현상금을 내걸었다.
“좋아. 그럼 올해 우승을 하면 시원하게 연봉300% 보너스가 나간다고 알리게!”
“······알겠습니다.”
“음, 그리고 시즌 MVP에게는 연봉 500%를 준다고 하게.”
그야말로 롸끈한 회장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