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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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3)
#1 내부자 사이영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22년간 뛰어온 경험이 있다.
22년 동안 5개의 팀에서 생활을 했는데 대부분 약체팀이었고 선수 경력 내내 우승을 한적은 단 한번 밖에 없다.
그래서 약체팀이 약체팀인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약체팀이 약체팀인 이유는 다양하다.
단순하게 선수단의 퀄리티 문제일 수도 있고, 필드와 프런트 간의 불협화음이 문제일수도 있다.
심지어 선수들끼리 파벌을 만들어 정치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벌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리더쉽의 부제다.
필드와 프런트간의 불협화음이 있어도 리더가 선수단을 장악한다면 그나마 성적은 나올 수 있다.
애당초 바람직한 리더가 있다면 선수들끼리 정치싸움같은건 벌어질 이유도 없다.
그나마 단순하게 선수단의 퀄리티가 문제인 경우는 빠른 시일내에 해결이 어렵지만 이마저도 선수단이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치면 꼴등을 연달아 하지는 않는다.
그럼 대전 호크스는 왜 밥 먹듯이 꼴등을 할까?
물론 지난해의 경우에는 나를 뽑기 위해서 강제로 10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전 호크스는 올해도 겨우 10위에 0.5게임차로 앞선 9위를 했을 뿐이다.
고작 반나절이지만 안에서 본 호크스는 정말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구단이다.
첫 번째로 단순하게 선수단의 퀄리티가 매우 낮다.
그나마 눈에 차는 녀석이라고는 병민 선배랑 중견수로 활약하는 박중범이라는 애송이 정도?
그 외에는 이 녀석들이 프로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엉터리인 녀석들 투성이다.
두 번째로 선수단끼리 사이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젊은 병민선배를 위주로 뭉친 영계파, 그리고 나이 든 선배들로 뭉친 노계파도 문제지만 투수팀과 야수팀의 반목도 상당했다.
심지어 야수팀도 영계파 노계파로 나눠서 신경전을 벌이는데 노계파 인물들은 그나마 협력이 되는 편이지만 영계파는 협력도 안 되서 각개격파를 당하는 느낌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네 야구는 실력보다는 나이가 우선인 유교 야구라 후배들인 영계파가 밀리는 경향이 강했다.
의외로 첫 번째 문제는 쉽게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퀄리티를 뛰어넘는 나 덴튼 트루 영님이 계시니 순식간에 팀의 퀄리티를 서너단계는 올릴 자신이 있다.
적어도 나 혼자서 마운드를 지켜도 작년보다 20승은 더 할 텐데 이정도면 9위권 팀을 충분히 포스트 시즌에 올릴 수 있는 수치다.
즉 하위권 전력이 단번에 중위권 전력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라커룸 리더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만큼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22년 동안 버틴 베테랑 아니 고인물 중에 고인물이지만 여기 있는 애송이들은 이 몸이 어떤 분이신지 1도 모른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고작해봐야 이제 막 시즌을 시작한 애송이로 보일 것이다.
잘 해봐야 그나마 가능성이 어마무시한 루키 정도? 이런 평가로는 라커룸의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노계파 중에 중심이면서도 묘하게 리더는 아닌 정상종에게 다가갔다.
보통 팀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만한 커리어를 쌓은 베테랑은 자연스럽게 팀의 리더가 된다.
루키들은 팀의 리더가 바라보기만 감히 중고참들에게 덤빌 생각을 못할 것이고 중고참들도 리더의 눈치를 보느라 루키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팀에는 정상종이라는 레전드급 선수가 있는데도 팀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다.
왜 정상종이 리더가 되지 못했는지 알기위해 직접 묻는 방법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나는 마운드에서 피하지 않는 승부사니까!
“선배님, 힘들죠?”
정상종이 깜짝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본다.
“응? 아, 이영이구나. 다 나이탓이지 뭐.”
아, ‘그런 것’ 이었나? 생각보다 쉬운 문제로군.
많은 베테랑들이 의외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베테랑이 무너지면 의외로 팀에도 큰 영향이 미친다.
이런 사실은 책상 앞에서 펜대나 굴리는 기자나 세이버메트리션들은 모르는 ‘야구선수’들의 영역이다.
야구는 멘탈스포츠라고 하면서 그들의 정신상태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고작 해봐야 몇 경기에 나와서 몇 경기나 완투를 했고 그중에 몇 경기는 완봉이고 몇 개의 삼진을 잡았다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많은 구단들이 베테랑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평가를 낮추고 그들을 ‘쓸모없는’ 부품으로 여긴다.
많은 베테랑들이 그 순간 무너져내린다.
선수들은 기계가 아니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진짜 몸은 약해지고 할 수 있는 플레이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정작 남의 시선에 의해서 무너진 본인조차 ‘나이’탓으로 돌리며 자신이 쓸모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정상종이라는 애송이는 살아남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는 녀석이라는 점이다.
아니라면 방금 전 라이브피칭 훈련 때 그렇게 억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 테니까.
쓸모가 없어져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녀석은 내가 살릴 수도 있다.
다행이네, 이 빌어먹을 팀에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선배님, 정규일과가 언제까지죠?”
“아, 너는 모르겠구나? 식사시간 이후 야수들은 펑고를 받아야하고 특타를 하고나면 6시에 끝날 거야. 아마 투수도 비슷하지 않을까? 진영이 한테 듣기로는 올해는 식사시간 이후에 코어훈련이랑 아메리칸펑고훈련을 한다는데?”
“생각보다 널널하네요. 지옥을 볼거라면서 역시 허세였나? 그나저나 혹시 저녁식사 끝나고 뭐하세요?”
‘생각보다 널널해?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스프링 캠프보다 빡신데?’
“선배님! 저녁식사하신 다음에 뭐 하실거냐구요.”
“나? 아, 그래! 방망이 좀 돌리다가 자러가겠지?”
“어? 그러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너를? 내가?”
“예, 선배님만이 가능합니다.”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후배가 도와달라는데 도와줘야지.”
“감사합니다.”
하, 사람 하나 살리는 것도 절을 해가면서 살려야하네. 이 애송이 녀석 너는 복 받은 줄 알아!
#2 야간훈련
“그래, 이영아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잠시만요. 아 저기 오네요. 진목선배 여기에요!”
“야, 내가 그래도 선밴데 이 시간에 나를 부르는거 맞냐?”
어허! 메이저 경력 22년차 대선배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군 애송이 포수녀석!
“아, 선배도 내 커브를 받으려면 연습좀 해야할거 아니에요. 잘 좀 부탁드릴게요.”
그렇다.
나는 무려 팀의 리더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내 천금같은 어깨를 사용할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설마 훈련이 라이브배팅이야?”
“네, 그나마 팀에서 선배님이 제일 베테랑이시니까 변화구 타이밍도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저는 변화구 컨트롤을 늘려서 좋고, 선배는 타격감을 끌어올리실 수 있으니 좋고 진목선배는 제 변화구를 받을 수 있으니 좋고 일석삼조 아니에요?”
하필이면 그 돌이 내 어깨라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지만 말이야.
정상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 상황으로는 이영이가 던지는 직구에는 절대 반응 할 수 없다. 변화구가 올 걸 알고 있으니 변화구 타이밍에 맞춰서 배팅을 하면 타격감이 살아나지 않을까?’
정상종은 일말에 희망을 가지고 타석에 섰다.
“선배님 일단은 제가 3가지 폼으로 커브를 던질건데 처음은 오버헨드로 던져볼게요.”
‘3가지 폼으로 커브를 던져? 그게 가능은 한건가?’
가끔 프로에서 팔 각도를 조절해 던지는 투수가 존재하긴 한다.
그런 투수들은 대부분 쓰리쿼터로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다.
문제는 그런 투수들의 제구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투수는 너무 예민한 생명체라 팔 각도가 1도만 달라져도 투구에 어마무시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즉 지금 사이영이 하는 이야기는 정상종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뜻이었다.
“일단 한번 던져봐!”
나는 하프 피칭(부상이나 회복중인 투수들이 실제 경기 절반정도 거리에서 투구를 하는 피칭)을 하듯이 가볍게 공을 긁었다.
슈우우우우웅 파앙!
미트를 찢을 것 같은 패스트 볼과 달리 살짝 던진 커브는 기가 막힌 궤적을 그리며 진목 애송이의 미트에 박혔다.
“방금게 네 커브야? 각이 예술인데?”
“아, 죄송해요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벗어났네요. 그래서 방망이를 안휘두르신거구요.”
사실 저 공은 주심이 그날따라 아내랑 싸워서 기분이 더럽거나 하필이면 그때 모래바람이 불어서 눈에 모래가 들어가 공을 못본게 아니면 스트라이크를 선언할 공이지만 일단은 저 열정넘치는 애송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하, 이게 인턴의 삶이라는 것인가? 내 꼬맹이들은 잘 하고 있겠지?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네.
“어? 어. 그래.”
‘방금 거 스트라이크 아니었나?’
정상종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다시 정신을 다잡고 타석에 섰다.
‘낮에 그 어마무시한 공과 달리 이번 공은 칠만하다.’
“하나 더 갑니다!”
사이영이 크게 와인드업을 하면서 공을 던졌다.
끝까지 팔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긴 팔을 이용해 투석기처럼 가장 높은 지점에서 날아오는 커브는 마치 2층에서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이미 한번 궤적을 확인했다. 각이 예리하긴 하지만 구속도 생각보다 빠르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맞출 순 있을거야.’
하지만 워낙 예리하게 꺾이는 커브는 아슬아슬하게 정상종의 방망이를 피해 포수의 미트로 들어갔다.
와, 저걸 못치네? 얼마나 타격 메커니즘이 망가져있는거야?
나는 고작해봐야 전력에 50%도 안내고 공을 던지고 있다.
만약 내가 전력으로 커브를 뿌렸다면 방금 공보다는 훨씬 날카롭고 빠르게 떨어졌을 것이다.
아마 RPM을 체크하면 2000후반대는 나오지 않을까?
일부러 지금 던지는 공은 손에서 잘 빠지라고 로진도 바르지 않은 공이었다.
여기서 루키가 건방지게 타격 포인트를 뒤로 잡아라 혹은 변하기 전에 타격을 해라
는 건방진 소리를 하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물건너 간다.
프로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았다는 것은 자신의 강점을 이해하고 있다는 소리다.
지금은 못 쳐도 몇 번 공을 눈에 익히면 충분히 칠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하다.
“공 몇 개만 더 보자!”
“예, 갑니다.”
그리고 이번에 저 녀석이 공을 못 쳐도 상관이 없는게 나는 마운드에서 고일만큼 고인 나는 타자의 타이밍을 피해서 투구를 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지만 상대방 타자의 타이밍만 알면 얼마든지 상대 방망이에 공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악!
지금처럼 말이다.
“오, 제 공을 이렇게 빨리 치는 분은 처음 봤어요.”
“그래? 몇 개 더 던져볼래? 타이밍이 잘 맞네!”
정상종이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웃지 마라 애송이 정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