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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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4)
#1 잠깐의 휴식
정수지는 2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을 했다.
‘전화를 해도 될까? 아냐, 지금 바로 전화하는 건 너무 없어 보여! 그래도 얼굴을 보고 싶은 걸? 아냐, 매달리는 여자로 보이면 안 돼! 정신차려 정수지!’
이틀 전 정수지는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사이영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날 정수지는 사이영과의 관계에서 한 단계 스텝 업을 위해서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그를 유혹했다.
술에 취하지 않았으면서 술 취한 인생연기를 펼친 정수지는 겨우 사이영을 유혹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사이영은 친절하게 정수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고 곧장 스프링캠프로 합류했다.
물론 사이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정수지에게 톡을 보냈다.
[왕자님♡ : 지금 오키나와 도착했어! 바로 숙소로 향할 것 같아.]
[왕자님♡ :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해야할게 많네. 이것이 루키의 삶인가?]
[왕자님♡ : 병민 선배가 오키나와 가는 내내 잔소리를 해서 한숨도 못 잤어.]
[왕자님♡ : 저러니 여자친구가 없지.]
[왕자님♡ : 자기는 야구랑 열애중이라나 뭐라나?]
[왕자님♡ : 피곤해서 자나보네. 미안해.]
문제는 하룻밤을 꼬박세운 정수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 떨어져서 사이영의 연락을 못받았다는 것이다.
뒤늦게 사이영의 톡을 확인한 정수지는 사이영에게 연락을 해볼까도 했지만 늦은 밤에 연락을 했다가 훈련을 받아야 하는 사이영이 힘들 거라는 생각에 연락을 참았다.
그렇게 연락할 타이밍을 놓치자 점차 부담감이 되었고 정수지는 선뜻 사이영에게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 정수지! 뭐하는거야. 이제 오키나와도 9시가 지났으니 훈련이 다끝났을거잖아. 연락해! 연락하라고!”
정수지는 큰 마음을 먹고 영상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사이영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앗! 잠깐!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오면!’
순간 화장대로 달려간 정수지는 자신의 용모를 점검했다.
‘왼쪽 아이라인이 조금 비뚤어진 것 같은데?’
하지만 이번 연락까지 놓치면 더욱 전화를 걸 자신이 없었던 정수지는 화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사이영의 통화를 받았다.
-수지야!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그, 그러게! 하루 꼬박 잤지뭐야. 그리고 오늘부터 이영이 네가 훈련한다고 바쁘니까······.”
-에이, 아무리 바빠도 네 연락을 못 받을까?
-그런데 왜 얼굴 안 보여줘?
“안 돼! 지금 얼굴 이상하단 말이야.”
-에이, 네 얼굴은 항상 이상 했는 걸?
“뭐?”
-농담이야 농담! 우리 수지 얼굴이야 항상 예쁜데 뭘 그래 얼굴 까먹겠어.
-얼굴 좀 보여줘.
정수지는 용기를 내서 카메라를 바라봤다.
-뭐야 평소보다 더 예쁜데? 화장이라도 했어?
“비, 비비만 발랐어!”
물론 사이영과 영상통화를 하려고 이미 4시간 전에 풀 메이크업을 한 정수지였다.
‘10년 넘게 봐온 이영인데 왜 이렇게 부끄럽지?’
정수지는 사이영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사이영을 유혹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
정수지는 사이영과 지금처럼 계속 편안하면서도 포근한관계가 되었으면 하지만 또 사이영과 더욱 친밀해지고 싶었다.
처음에는 편안한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이영이 세상에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불안해졌다.
그래서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 대신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기위해서 사이영을 유혹했다.
하지만 관계 이후에도 사이영은 전과 같이 행동을 했고 그것은 정수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뭐?”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잖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너무나 다정한 사이영의 모습에 정수지는 왈칵 눈물이 났다.
'그래, 정수지. 이영이가 이런 녀석이라는거 알고 있었잖아.'
“너때문이잖아! 이 나쁜 자식아!”
-미안해. 수지야.
그렇게 정수지는 사이영과의 거리를 한걸음씩 좁혀갔다.
#2 훈련평가
모든 훈련을 마친 코칭스테프는 하루 있었던 훈련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체로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선수는 기계가 아니고 7개월에 가까운 페넌트레이스를 버티기 위해선 휴식도 필요하다.
그래서 11월 마무리 훈련을 끝으로 2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선수들에게 휴식기를 주는 것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이 휴식기에 관리를 안해서 몸무게가 엄청나게 불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몸이 굳지 않을 정도로만 훈련을 하면서 페넌트레이스동안 지치고 아팠던 육체를 치유하는데 힘을 쓴다.
당연히 스프링캠프 첫날에는 선수들의 체력이 정상일 수 없다.
하지만 유독 혼자 그 큰 키만큼 툭 튀어 나온 녀석이 있었다.
“감독님, 사이영 그 녀석 도대체 뭐하는 녀석입니까?”
“사이영? 나도 그 녀석이 뭐하는 녀석인지 궁금한데 영명이 너는 좀 알겠어?”
“모르겠습니다. 훈련때 보면 그 녀석 고문관이 따로 없습니다. 폴대폴을 뛰는데 더 못뛰어서 안달이 난것처럼 굴지를 않나. 코어강화 훈련을 하는데 자신은 더 많은 코어강화를 해야한다고 휴식시간에도 피지컬실에서 따로 훈련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 지금 하는 훈련 수준도 90년대에 혹사라고 말이 나올만큼 빡빡한 훈련 스케줄인데 여기서 자체적으로 훈련을 더 한다고?’
구태성은 한영명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특히 투수조의 훈련 스케줄은 구태성 본인조차 힘들어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을 만큼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런 스케줄을 하고도 체력이 남아서 자체적으로 훈련을 더했다는 소리에 구태성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혹시 모르니 팀 닥터에게 녀석을 맡겨야하지 않겠나?”
“안 그래도 저녁시간에 급하게 메디컬 체크를 했는데 아무런 이상소견이 없었습니다.”
“고작 하루니 내일은 퍼질지도 모르겠군.”
“글쎄요. 그 녀석 아메리칸 펑고를 받을 때는 신나서 리트리버처럼 외야를 뛰어다니더군요. 얼마나 빠른지 잘못 친 공도 놓치는게 없었습니다. 그 녀석 투수가 아니라 외야에 세워도 수비가 가능할 수준이었습니다.”
‘리트리버? 그건 주빈이에게나 어울리는 별명이고 이영이 그 녀석은 그레이하운드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뭔가 좀 위험해보이면서도 할 건 다 하는 녀석이니까.’
“그래? 그래도 그렇게 달렸으면 마지막 마무리 훈련에서는 좀 퍼졌겠지?”
“아뇨. 마지막 400m 달리기 10세트를 하는데 낙오자를 챙기면서 끝까지 달렸습니다. 4바퀴나 더 말이죠.”
“······그 녀석 뭐하는 녀석이야?”
“그래서 제가 물었던 겁니다.”
데드볼 시대 투수의 훈련량은 현대 코칭스테프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3 그래도 고문관은 계속된다.
나는 눈을 뜨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AM 05: 57]
어제 밤을 세우다 시피 수지를 달래주느라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거의 6시 정각에 눈을 뜬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요가 메트에서 몸을 풀었다.
아, 간만에 훈련다운 훈련을 해서 그런지 살짝 몸이 묵직하다.
이런 묵직한 몸은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훈장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기분좋게 해줬다.
밤세 굳어버린 몸을 풀어준 나는 곧장 샤워를 하고 나와서 아침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7시부터 시작되는 일과에 맞춰서 몸을 푼 나는 어제보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 투수들을 바라봤다.
“병민선배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뿌드득!
정병민은 자신의 직속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사이영 때문에 선배들에게 엄청난 갈굼을 받았다.
‘우리 병민이 후배 관리 똑바로 안하냐?’
‘허허 라떼는 말이야 으디 감히 1년차 머리에 피도 안마를 루키가 훈련 더 시켜달라고 코치님에게 징징 거리지도 못했어!’
‘와, 유성중 애들 요즘 잘나가네! 어? 이래서 늙으면 은퇴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구나.’
그동안 정병민은 대전 호크스 마운드의 에이스로 선배들에게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었기에 터치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지옥훈련 때문에 가뜩이나 예민해진 선배들인데 사이영이 나서서 트롤짓을 하자 그 분노의 화살은 모두 정병민에게 향했다.
‘그래! 사이영 저 녀석이 아무리 뭔가 있어보이고 덩치도 나보다 크고 어른스럽다고 해도 내가 선배다.’
정병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사이영을 노려봤다.
“아직 잠이 덜 깨셨어요? 그렇게 눈을 부릅떠도 잠이 안 달아나면 세수를 하세요 세수를!”
안타깝게도 유성중 3학년 피셜 가장 눈치 없는 후배 2위를 달리는 사이영(1위는 단연 우민규)에게 분위기를 잡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하아, 그래 저 녀석에게 뭘 바라겠어. 그냥 좋게 좋게 타이르자.’
“이영아. 오늘은 제발 적당히 하자.”
흥! 사나이 덴튼 트루 영의 사전에 적당히란 없다!
“선배, 제가 중학교때 알려드렸던 명언 기억하십니까?”
“무슨 명언? 너 명언충이라 명언 엄청 했잖아. 물론 대부분 애니 대사긴 했지만 말이야.”
“이슬 맺히는 새벽부터······.”
건방진 애송이가 감히 내 말을 끊는다.
“어둑해질 때까지 노력할 각오가 없는 사내는 투수가 될 생각도 해선 안 된다? 그건 무슨 애니에서 나온 대사야?”
애니 대사라니! 저 명언은 무려 덴튼 트루 영이라는 전설적인 투수이자 전무후무한 레전드 투수가 현역시절 했던 인터뷰로 당시 모든 투수들의 금과옥조가 된 명언 중에 하나다.
“기억하시네요? 얼마나 노오력을 안하셨으면 고작 하루 훈련으로 얼굴이 반쯤 죽습니까?”
정병민은 이가 갈렸지만 사이영에게 한 소리 할 수 없었다.
프로에 데뷔도 못한 녀석보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동안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10년차가 넘은 베테랑들도 이제 막 프로에 입문한 사이영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정병민을 불러서 사이영을 자제(?) 시키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었다.
“노오력을 하란 말입니다. 노오오오오오력을!”
‘크흑! 이제 갓 프로에 데뷔한 꼬맹이에게 잔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아, 내가 이러려고 프로에 데뷔했나 자괴감이 드네.’
그렇게 대전 호크스의 스프링캠프 2일차가 시작되었다.
#4 악으로 깡으로!
사이영 때문에 한층 강화된 지옥훈련을 하게 된 대전 호크스의 투수진
그 중에서도 이번 훈련을 가장 힘들어하는 선수는 이제 막 훈련에 복귀한 이정균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그나마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기본 훈련은 한 상태였지만 토미존 수술 이후 회복훈련에만 전념한 이정균에게 이번 지옥훈련은 정말 가혹한 스케쥴이었다.
그렇다고 30세 이상의 베테랑들도 하는 훈련을 23살의 젊은 투수 이정균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기에 이를 악물고 훈련을 해야만 했다.
‘크흑, 수술전만해도 이 정도는 따라 갈 수 있었을 텐데!’
“정균 선배 달려!”
무엇보다 이정균을 힘들게 하는 이는 이제 막 루키로 팀에 합류한 사이영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지옥훈련을 트롤짓을 하면서 더 힘든 훈련으로 만든 장본인이 PT를 하듯이 바로 옆에 붙어서 등을 밀면서까지 훈련을 시키는 지독함을 보여주자 이정균은 폭발했다.
“야, 사이영! 너 나한테 불만있냐?”
“뭐야? 무슨 일이야!”
“정균이가 폭발했나 본데?”
웅성 웅성 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