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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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2)
#1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의 고문관
대부분 프로야구팀이 미국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준비하고 2차 스프링캠프로 오키나와를 선택하지만 대전 호크스는 처음부터 오키나와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모두 집합! 밤새 잘 잤나? 오늘부터 너희들은 특별하게 90년대 대전 호크스의 정수를 담은 훈련을 시켜주도록 하겠다”
오 90년대의 정수를 담은 훈련이라? 나도 그거 할줄 아는데 물론 내가 담은 훈련은 1890년대 정수를 담은 훈련이지만 말이야.
“걱정하지마라. 모두 너희 선배들이 경험한 훈련이고 그 훈련을 직접 경험한 나도 죽지는 않았다.”
‘물론 죽고 싶었지만 말이야.’
구태성은 당시 훈련강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헛구역질이 올라오려고 했다.
구태성이 살펴본 바로 대전 호크스는 유독 시즌 초반부터 많이 패배를 쌓으면서 자체적으로 무너지는 경향이 보였다.
구태성은 선배들 사이에서도 유독 큰 키로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사이영을 바라봤다.
‘사이영, 너도 이번 훈련만큼은 쉽지 않을거다. 적어도 고등학교 스프링캠프에서 했던 널널한 훈련이랑은 거리가 있을 테니까.’
“사이영은 알겠지만 나는 훈련에서 성과를 가지는 녀석들을 우선적으로 선발에 사용했다. 맞지?”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공을 던질 수 있었죠.”
“나는 나이도 안보고 너희들의 연봉도 안본다. 오직 내가 보는 것은 너희들의 실력과 끈기다. 이번 훈련을 끝가지 따라온다면 다치지 않는 한 주전은 보장해 주겠다.”
몇몇 후보 선수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2024년 호크스의 스프링캠프를 시작하겠다.”
구태성의 선언을 시작으로 지옥훈련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전호크스의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었다.
훈련 스케줄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오전 7시에 기상해서 정신을 차릴 겸 숙소 근처의 작은 공원을 돈다.
그리고 개인 정비시간을 가지며 8시 30분까지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숙소 앞 주차장에 집결한다.
투수조는 사용할 야구배낭을 버스에 싣고 훈련장까지 달려가는 것으로 훈련이 시작된다.
숙소에서 훈련장까지 거리는 약 5km 9시까지 훈련장에 출근해야하니 30분에 5km를 달려야 하는데 일반적인 평지가 아니라 약간의 오르막길도 있어서 의외로 지치는 녀석들이 많이 보인다.
30대가 넘은 늙은 애송이들도 쉽게 달리는 길을 의외로 뒤처지는 선수들은 젊은 선수들이었다.
“헉! 헉! 헉!”
얼마나 러닝을 안 했으면 고작 이걸 달리는데 숨이 차? 이정균이라고 했나? 곧 죽을 할아버지도 너보다는 빨리 뛰겠다.
나는 뒤처지는 이정균의 등을 밀어줬다.
“정균선배! 뛰어요!”
작년에 토미 존 수술로 인해 한해를 날려먹은 이정균은 23살의 촉망받는 불팬자원이었다.
하지만 토미 존 수술 이후 재활하는 과정에서 팔에 통증을 느껴 재활군에서 훈련을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져있었다.
‘허억! 이제 갖 프로가 된 녀석에게 얕잡아 보일 순 없지.’
이정균은 이를 악물고 달려서 9시 30분 전에 훈련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훈련은 이제부터였다.
“투수조 집합!”
투수 코치는 대전 호크스에서 오래 뛴 한영명이라는 녀석이었는데 부리부리한 눈에 숱검댕이 같은 눈썹이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지금부터 폴대폴을 10회로 간단하게 워밍업을 한다.”
“고작 10회입니까?”
내 이야기에 투수조 놈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아,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해버렸나?
솔직하게 폴대폴로 워밍업을 하려면 한 30회는 달려줘야 하지 않을까?
“오, 사이영! 신인의 패기인가? 마음에 든다! 선배들이 신인의 패기에 밀려야 되겠나?”
“아닙니다!”
말은 아니라고 하는데 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지?
“좋다. 그럼 신인의 패기를 생각해 15회로 늘려주지.”
삐익!
고등학교때 했던 폴대폴은 시간안에 들어오는 방식의 훈련이 아니었지만 90년대 폴대폴은 50초 안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편 폴을 찍고 돌아와야 카운트가 되는 훈련이었다.
아직 체력이 남아 있을 때야 쉽게 50초 안으로 뛰고 들어올 수 있지만 10회가 넘어가면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고 한다.
물론 평소에도 이정도 훈련은 정말 워밍업으로 달리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훈련이었다.
한영명은 사이영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저 녀석 진짜 괴물인가? 프로에서 10년 이상 구른 베테랑들도 저기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 가뿐하게 15세트를 하다니!’
심지어 사이영은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열등반으로 가서 선수들을 독려하며 끝까지 달리게 만들었다.
폴대폴로 워밍업(?)을 끝낸 선수들은 각자 저마다의 루틴으로 어깨와 몸을 풀면서 라이브 피칭을 준비했다.
문제는 여기서도 사이영은 유독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다른 투수들은 저마다 조를 맞춰서 캐치볼을 하고 몸을 푸는데 오직 사이영만 폴대폴을 달리고 있었다.
몇몇 투수들은 그런 사이영을 괴물 보듯이 했다.
“사이영, 너는 캐치볼 안하냐? 해줄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해줄까?”
“저는 원래 캐치볼을 안 합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투수들에게 캐치볼은 자신의 구위를 점검하고 어깨를 예열시킬 수 있는 좋은 워밍업운동이었다.
만약 캐치볼을 하지않고 곧장 불팬 피칭을 한다면 제구도 엉망이 되고 부상을 당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사이영의 캐치볼은 그의 전적(?)을 알고있는 정병민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코치님 진짭니다. 저 녀석 캐치볼 시켰다가 저 녀석 동기랑 싸움나서 중학교 감독님도 저 녀석은 캐치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야?”
“진짭니다. 아마 감독님도 저 녀석 캐치볼 하는 건 본적이 없을 겁니다.”
한영명은 곧장 구태성에게 달려갔다.
“한코치 뭐 문제라도 있나?”
“사이영 저 녀석 원래 캐치볼을 안합니까?”
“아, 그 녀석? 그냥 시키지마. 시켜봤자. 옆에 있는 녀석에게 언더 토스만 할 걸?”
“그런데 공을 던질수는 있습니까?”
‘한 코치도 라이브 피칭 때 보면 알게 되겠지.’
구태성은 자신의 후배이기도 한 한영명을 놀려줄 생각에 그냥 씨익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라이브 피칭 시간이 돌아왔다.
투수조가 몸을 푸는 동안 야수조는 2조로 나눠서 식사를 했다.
반면 투수조는 로테이션마다 번갈아가면서 밥을 먹어야 했다.
참고로 나는 밥을 아주 꼼꼼히 먹는 편이다.
적어도 밥 한 숟가락을 뜨면 50번은 씹어야 음식물을 삼키는 편이라 식사시간이 길었다.
나는 평소에도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기 때문에 원래 밥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내 라이브피칭 순번은 애매한 5번이었다.
“다음 사이영!”
아,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저 애송이 투수코치놈 진짜 물어버릴까보다.
나는 반쯤 먹던 도시락(이미 한 개는 까먹고 2번째 도시락)을 내려놓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타석에는 대전 호크스의 4번 타자면서 FA 먹튀로 유명한 정상종이 서 있었다.
뭐야? 저 불안해보이는 늙은 애송이는? 제법 어깨도 넓고 빵도 두꺼운게 파워는 있어 보이는데 눈까리가 이미 동태눈까리다.
저런 녀석이 어떻게 4번 타자를 치고 있지? 설마 중계로 본 것보다 대전 호크스 상황이 더 심각한가?
나는 간단하게 패스트 볼 3개로 정상종을 삼진으로 잡고 팀의 중견수이자 1번 타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정문을 상대로 연거푸 커브만 3개를 던져서 또 삼진을 잡았다.
지난 시즌부터 대전호크스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고 있는 서진목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저 미친놈 못보던 사이에 공이 더 좋아졌잖아?’
서진목은 중학교 시절 사이영의 공을 받다가 엄지손가락이 부러진 경험이 떠올랐다.
‘프로에 와서 미트질에 익숙해졌으니 망정이지 잘못했다가는 또 엄지손가락이 부러질 뻔 했네!’
서진목의 포구가 발전한 만큼 사이영의 속구도 발전했다.
아니 사이영의 속구는 서진목의 포구보다 더욱 발전했다.
다만 사이영의 속구를 잡다가 엄지손가락이 나간 경험이 있던 서진목은 은근슬쩍 최주빈에게 ‘사이영의 공을 받는 노하우’에 대해 물었다.
그때 최주빈은 ‘절대 겁먹지 말고 어설프게 프레이밍을 할 생각을 안 하면 공을 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만약 주빈이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또 엄지손가락 골절로 이번 스프링캠프는 날려먹었겠지.’
대전 호크스의 포수진은 이제 프로 3년차에 접어드는 서진목까지 기회가 주어질 만큼 빈약했다.
#2 정상종
“이정도면 밥 먹어도 되겠습니까?”
정상종은 건방지지만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후배를 바라봤다.
‘공 3개를 던지는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정상종은 젊고 패기있는 신인인 사이영이 두려우면서도 부러웠다.
비록 지금은 공갈포 소리를 듣고 있는 정상종이지만 그도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포 유격수로 한해 평균 20개가 넘는 홈런과 장타율 5할은 가볍게 기록하는 강타자였다.
문제는 나이가 들고 에이징커브가 오면서부터 팬들은 돈값을 못한다고 압박을 했고 그 압박감에 짓눌려 플레이는 더욱 엉성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나도 저런 패기넘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젊음이라는 무기를 잃어버린 노병은 당당한 사이영을 보면서 이를 악 물었다.
정상종도 자신의 야구인생이 이번 스프링캠프에 달려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수비범위는 줄어들었지만 안정적인 유격수비 덕분에 작년에 기용된 정상종이지만 상황이 많이 달랐다.
대전 호크스는 올해 2차 1라운드 픽으로 대전호크스는 유격수 조치현을 뽑았다.
그리고 대전 호크스 프런트도 은근슬쩍 자신의 노하우를 조치현에게 전달해주는 것을 요청하는 걸로 봐서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조치현이 살짝만 두각을 드러내도 종상종의 자리는 위태로울 것이다.
이미 야구판에서 15년 넘는 세월을 버틴 정상종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악착같이 노력했지만 젊음과 패기로 무장한 조치현과의 대결에서 비교우위를 잡을 수 없었다.
“후우!”
‘야구 진짜 어렵네.’
“선배님. 곧 교대입니다.”
후반부 수비를 해야하는 정상종은 이를 악물고 내야 글러브를 착용했다.
정상종은 최선을 다해서 라이브피칭 훈련에 임했다.
내야 강습타구를 향해 몸을 날린 정상종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공을 놓치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정상종은 자신의 글러브를 바라봤다.
‘이 글러브도 많이 낡았구나.’
정상종은 낡고 볼품없어진 자신의 글러브가 마치 자신의 신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감각적인 수비를 보여준 정상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왔다.
‘낡고 볼품없는 너지만 그래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냐.’
라이브피칭을 마지막으로 오전 훈련은 끝이 났다.
1시간의 휴식 후 오후 훈련을 해야 했기에 정상종은 편안한 그늘로 이동해 퍼질고 앉았다.
그때 뒤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힘들죠?”
이미 프로에서 수 많은 시즌을 경험한 정상종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한 루키들중 하나겠거니 생각하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마 전 자신을 상대로 압도적인 피칭을 이어나간 15억의 루키 사이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