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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3화 (163/227)

163화 가서 식사나 하죠

헛기침한 강현이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연말에 뭘 하나요?”

강현의 물음에 일행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연말이라면, 신력을 말하는 건가?”

란돌프의 물음. 그제야 강현은 아차 싶었다.

다 같이 모여 있지만, 각기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었다.

날짜 개념이 서로 다를 수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에밀리야였다.

“저희는 따로 안 챙겨요. 지난번 성년식처럼 3, 5년 주기마다 의식을 치르긴 하지만, 연말에 맞추진 않아요.”

1년마다 축하하기에 요정의 삶은 너무나도 길었다.

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을 모시는 신관들이라면 다르지만, 굳이 챙기진 않아.”

“그러고 보니 인간분들은 평소에도 신력을 사용하시죠?”

에밀리야의 물음에 일행들의 시선이 란돌프에게 향했다.

란돌프는 일행들의 시선에 수염을 긁적였다.

“제국력도 사용하긴 하지만, 에밀리야 씨 말대로 제국과 떨어진 아국의 경우에는 잘 안 쓰지. 외교적인 행사가 아니면 대부분 신력을 쓰긴 하네. 하지만….”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연말 행사라면, 장비와 훈련 점검 그리고 정산 정도 하는 게 다네. 끝나고 성의 관리들끼리 수고했다고 술자리를 가지는 정도일세.”

업무란 소리였다.

망년회나 송년회 같은 개념은 없다는 소리였다.

‘하긴.’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도 신년에 제야의 종과 같은 행사를 하긴 하지만, 과거에는 설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럼 잘 되었네요. 신력으로 보면 곧 연도가 바뀌잖아요?”

에밀리야의 말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정도 남았군.”

벌써 그렇게 되었나. 옆에서 노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정말도 다들 신경 안 쓰는 분위기였다.

“모처럼이니 저희도 뭔가 해 봐요.”

“뭔가라면…?”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배시시 웃었다.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아직 두 달이나 남았다.

에밀리야의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돌아온 마을.

여전히 활기가 가득했다.

시끌벅적한 마을.

강현은 여기저기 번쩍이는 전구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며칠이 지나도 익숙해 지지가 않네.’

하지만 그리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층의 집으로 올라가기 전에 매장 안을 확인했다.

홀 중앙에 놓은 녹색 트리.

소주병으로 만든 트리였다.

만들 때는 어설퍼 보였으나, 이렇게 완성되고 보니 제법 그럴듯했다.

아니, 직접 만들었기에 그리 느껴지는 걸 수도 있었다.

강현의 시선이 트리 장식으로 향했다.

색종이를 잘라서 만든 장식.

미연이의 작품이었다.

울퉁불퉁했지만 귀엽게 느껴졌다.

그 장식뿐만이 아니라 트리 곳곳에 강현과 아이들의 손길이 느껴졌다.

‘저거면 충분하지.’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웃음을 흘린 강현은 설기, 토리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며칠 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 * *

“컹! 컹!”

강현을 향해 짖는 설기. 그걸로 부족했는지 강현이 덮고 있던 이불을 물어서 치웠다.

“으음.”

이불이 치워지자 불어오는 냉풍에 강현이 몸을 떨었다.

눈을 뜬 강현은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알람이 울리지 않은 건가?’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니 알람이 울리려면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다.

어제도 마을 꾸미는 걸 돕느라 늦게 잠든 강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설기를 보았다.

헥, 헥.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

평소의 설기라면 강현보다 늦게 일어났을 터.

“…무슨 일이야?”

“컹! 컹!”

강현의 물음에 창문까지 뜀박질한 설기가 다시 짖었다.

강현은 열려 있는 창문을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춥더라.’

이불을 빼앗은 것만으로는 이렇게 춥지 않을 거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창문으로 향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올라오는 김.

그리고 창문 너머에는 눈에 덮인 새하얀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많이도 왔네.’

저녁부터 오기 시작하더니 제법 쌓였다.

그러나 설기가 강현을 부른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마을로 들어온 차들.

심지어 이미 들어온 차들도 보였다.

강현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늦게 알람을 맞췄다고는 하나 아직 이른 시간.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차가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현은 겉옷을 챙겨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 강현을 따라가는 설기.

설기의 꼬리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 * *

강현이 내려가자 눈을 쓸고 있던 이장이 반겼다.

“왔어?”

이장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도 나와서 눈을 쓸고 있었다.

어르신 삼인방도 강현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강현이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손님들도 돕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손님이 어느 정도 올지는 미리 조사했다.

숙소와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이렇게 북적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강현의 물음에 이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 이 근처 마을에서 놀러 온 양반들이여. 할 일 없으니 아침부터 온 거지.”

“아.”

강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옆 마을에서 놀러 올 걸 예상해서 넉넉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치를 넘어섰다.

“우리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네.”

정기훈 작가의 말에 다른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골 마을의 한가함을 너무 몰랐다.

장날이 열리면 아침부터 가서 수다를 떠는 게 시골 어르신들이었다.

하물며 근처에서 이런 축제를 한다니까 아침 일찍부터 나와 있던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황대길이 입을 열었다.

“눈은 우리가 쓸 테니 자네는 사람을 데려가서 식자재를 더 사 오게.”

그렇다. 이렇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손님이라고 해도 근처 마을 사람들이었다. 다들 손을 보태서 눈을 쓸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날도 따뜻해서 금방 녹을 거다.

“예.”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마침 빗자루를 들고 오는 민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민호와 함께 급히 읍내로 나가서 장을 봐 왔다.

장을 봐서 마을에 돌아오자 눈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벌써 삼삼오오 모여서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안주는 땅콩이나 마른오징어였다.

제대로 된 안주도 없이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마을을 보니 저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강현이 생각했던 파티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

‘하긴.’

이리될 줄은 예상했다.

고개를 돌리자 강현의 매장에 불이 켜진 걸 볼 수 있었다.

벌써 요리를 시작한 것이었다.

민호 역시 매장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옮길 테니 들어가세요.”

민호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매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열기가 강현을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온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상과 달리 낯선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람을 불러 놓고 일을 시키나.”

“와서 놀면 뭐 하나. 이렇게 돕는 거지.”

“허, 참. 자네 못 보던 사이에 참 뻔뻔해졌구먼. 이러려고 일찍 오라고 한 건가?”

툴툴거리는 노인. 그러나 말에 친근함이 묻어났다.

곧 안에 있던 이들이 강현의 존재를 눈치챘다.

요리하고 있는 황대길의 옆에는 조리복을 입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강현을 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자네는 이 셰프가 아닌가?”

“예,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강현도 안면이 있는 이였다.

같이 방송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당숙진.

화교 출신으로 중식의 대가.

강현은 황대길과 당숙진을 번갈아 보았다.

둘의 친분이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둘 앞에 있는 설기를 볼 수 있었다.

얌전하게 앉아 있는 설기.

강현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명당이란 건가.’

맛있는 음식이 나올 자리.

그런 설기를 보고 있을 때, 당숙진이 강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셰프가 여긴 어쩐 일인가?”

“어쩐 일은. 주인이 제 매장에 오는 건 당연하지.”

황대길의 말에 당숙진이 눈을 껌뻑였다.

황대길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여기가 이 셰프의 매장이라고?”

“예.”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당숙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주인도 없는 주방에 날 끌고 온 건가?”

주방. 요리사에게 있어서 민감한 장소였다.

황대길이 입을 열기 전에 강현이 나섰다.

“괜찮습니다. 황대길 선생님께서 자주 도와주십니다.”

“허, 참.”

당숙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황대길과 강현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 친구의 주방치고는 인간미가 있다 싶더니만.”

황대길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당숙진은 개의치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듣지. 먼저 요리부터 빼자고.”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둘이 쓸 때도 꽉 찼던 주방이었다.

셋이 들어가니 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딪히는 일 없이 매끈하게 이어졌다.

당숙진은 힐끗, 강현을 보며 감탄했다.

‘더 늘었군.’

전과 볶음 요리.

지금 하는 요리는 강현의 전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대길과 당숙진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둘을 보조했던 것처럼.

당숙진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은 노련함.

‘…제대로 만든 요리를 한번 먹어 보고 싶군.’

보조할 때도 이런 실력이라면 직접 한 요리는 어떨까.

궁금증이 생긴 당숙진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이 하나가 더 늘어난 덕분에 음식 나가는 것도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요리가 나왔을 때, 강현이 손이 멈췄다.

“전 요리들을 나르고 올게요.”

주방 앞에 쌓이기 시작한 그릇.

설기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강현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치마를 벗는 강현.

하지만 강현이 홀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딸랑, 딸랑.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응언.

강현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응언이 배시시 웃었다.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응언 뒤에는 동네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우르르 몰려오더니 음식을 가지고 나가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아주머니 몇 분은 강현을 밀어내고 주방에 들어왔다.

“자, 잠깐만. 이 무슨.”

놀란 당숙진이 눈을 껌뻑였다.

“아이구, 많이도 했네.”

“전이랑 제육볶음이죠? 우리가 좀 하고 있을 테니 좀 먹고 와요.”

강제로 당숙진의 팬을 뺏는 아주머니.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당숙진이 어버버 하는 사이 셋은 주방 밖으로 쫓겨났다.

요리하던 팬을 뺐다니.

당숙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달리 강현과 황대길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니, 왜 여기서….”

다들 집이 근처였다. 음식을 하려면 집에서 해 와도 되었다.

그러자 응언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이장님이 주방을 뺏지 않으면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안 나오면 가스라도 잠그라고 하셨습니다.”

강현과 황대길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손님이 오는데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알아들었죠? 어서 가서 쉬다 오세요. 두 시간 있다가 교대해 줘야 하니 술 너무 마시지 말고.”

멍하니 있는 셋을 매장 밖으로 밀었다.

당숙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화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자 황대길이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았나. 쉬는 시간이라고. 두 시간 정도 쉬다가 오세.”

“이대로 놔두고?”

“아까는 일 시킨다고 뭐라 하더니 이젠 쉬는 것도 불만인가. 주인도 가만히 있는데 왜 자네가 그러나.”

황대길의 말에 당숙진이 눈을 껌뻑였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강현 역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쪽 테이블이 비었네요. 가서 식사나 하죠.”

강현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힐끗 매장 안을 보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그 앞에서 음식을 받아먹는 설기.

‘나올 생각이 없나 보네.’

설기도 이 축제를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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