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2화 (162/227)

트리 만들어 볼까?

다음날부터 마을이 분주해졌다.

정기훈 작가는 수진과 민호와 함께 마을을 꾸미기 시작했다.

굳이 트리를 살 필요도 없었다.

널린 게 나무가 아닌가.

장만기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빈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행들이 마을을 활보하자 호기심을 느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저게 뭐 하는 것이야?”

“그 있잖아, 크리스마스. 그거 한데.”

“아, 그래?”

그리고 일행들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다들 추위를 잊은 채 작업에 열중했다.

“참 먹고 하세요!”

아주머니의 외침에 일하던 이들이 멈춰 섰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먼저 반응한 이가 있었다.

바로 설기.

아주머니는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설기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에구머니나. 설기 언제 왔어?”

“컹!”

“그래, 네 것도 있어.”

접시 하나를 건네는 아주머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설기를 보며 사람들이 웃었다.

그런 가운데 강현은 곤란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강현, 자네도 가족이나 친한 이들을 부르는 게 어떤가?’

정기훈 작가의 권유였다.

먼저 부모님께 말을 걸었지만, 부모님은 여행 갈 계획이라고 거절했다.

강현만큼이나 칼 같은 부모님이었다.

‘친한 이들이라.’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이세계의 주민들이었다.

란돌프, 노아와 모나, 그리고 에밀리야.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올 수 없었다.

‘…아쉽네.’

그다음으로 떠오른 건 윤섭이었다.

‘바쁠 것 같긴 한데.’

강현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신호가 몇 번 울린 후에나 연결이 되었다.

[어, 강현.]

강현은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밖이야?”

[응. 일 나오긴 했는데, 통화는 괜찮아.]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안 좋으면 바로 말했을 거다.

아니, 전화를 받지 않았을 거다.

[무슨 일이야? 네 성격에 연말이라 안부 인사나 하려고 전화하진 않았겠고.]

역시 강현에 대해서 잘 알았다.

강현은 실소를 흘리고는 용무를 밝혔다.

“이브 때 마을에서 행사하기로 했어.”

[잠깐, 잠깐만.]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핸드폰 너머의 소란스러움이 점점 멀어졌다.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었다.

[지금 크리스마스 초대 맞지? 놀자고?]

“나 말고 우리 마을.”

[그게 그거지!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녹음기 켰으니 다시 말해 줄래?]

윤섭의 말에 강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꼭 한 마디, 한 마디가 많았다.

“그래서 올 거야?”

[그야 당연히…! 못가지. 하아.]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깊은 한숨.

[크리스마스는커녕, 이번 달에 휴무도 없어.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사람을 이렇게 부려 먹어도 되는 거야? 블랙 기업도 이런 블랙 기업이 없다니깐.]

갑자기 푸념을 시작한 윤섭.

하지만 그 블랙 기업의 대표가 윤섭의 아버지였다.

강현이 보기에는 배부른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강현이 본 윤섭의 아버지는 아들이라고 해서 봐줄 상대는 아니었다.

‘더 굴리면 더 굴렸지.’

도망칠 수 없는 일꾼.

아니, 도망친다고 해도 언제든지 잡아 올 수 있는 일꾼.

평소에 게으르긴 하지만, 능력은 확실했다.

강현이었어도 옆에다 놓고 쥐어짰을 거다.

[크으, 천하의 강현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고 했는데, 이걸 못가다니!]

“…끊는다.”

용무는 끝났다.

[자, 잠깐만!]

[실장님, 강현 셰프님이세요?]

통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끈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름을 보니 윤섭.

강현은 핸드폰 진동을 껐다. 용무는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떠올렸다.

‘…정우는 매장 일로 바쁘겠지.’

끝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자신의 인맥이 얕다는 걸 느꼈다.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강현과 인연을 맺은 건 대부분 이 마을과 이세계에서였다.

기사, 마법사에 요정, 심지어 영주와 족장까지.

그 누구도 이러한 인맥을 가지진 못했을 거다.

게다가 마을 사람 역시 강현이 곤란하다고 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손길을 건넬 거다.

“…굳이 밖에서 부를 필요는 없지.”

강현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동시에 설기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토리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낑낑거리며 다시 올라가는 토리.

그 모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그렇다.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었다. 강현의 친구들과 가족은 이미 이곳에 있었다.

* * *

이제 크리스마스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마을에도 활기가 돌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와서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길거리마다 캐럴이 들리는 도시와 비교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강현도 손님이 없는 시간은 나서서 마을 일을 도왔다.

하지만.

“…근데, 강현 자네는 여기서 청소할 게 아니라 매장을 꾸며야 하는 게 아닌가?”

“…아.”

생각지도 못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마을과 다르게 강현의 매장은 그대로였다. 강현의 얼빠진 대답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실소를 흘렸다.

강현이 이상한 곳에서 한 번씩 덤벙대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매장을 꾸미게. 그래도 크리스마스 아닌가.”

황대길까지 말을 보탰다.

뒷머리를 긁적이던 강현은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매장으로 돌아온 강현은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음.”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충 트리나 가져다 놓으면 되려나?’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컥, 매장 문이 열렸다.

“삼초온!”

“아, 안녕하세요.”

상후와 미영이. 그러나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강현 형.”

조금은 수줍게. 그러나 전보다는 늠름해진 곽도현이 있었다.

“어쩐 일이야? 숙제?”

“아뇨! 도와주러 왔어요!”

대답한 건 상후였다.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을 도와준단 말인가.

곽도현은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는 걸 보여 줬다.

전등과 장식품.

크리스마스 용이었다.

그를 본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강현이 매장 이야기를 들은 게 방금 전이었다.

어떻게 알고 온 걸까.

그러자 곽도현이 입을 열었다.

“만기 삼촌이 말해 주셨어요. 강현 형이라면 매장도 안 꾸몄을 거라고.”

그러면서 귓불을 만지작거리는 곽도현. 귀가 살짝 붉어졌다.

강현은 그 이유를 알았다.

‘형이라.’

삼촌에서 형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강현이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손이 필요했는데. 고마워. 들어와.”

강현의 대답에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예!”

“네!”

우르르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덕분에 매장 안에 있던 설기가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설기에게 가 있지 않았다.

가지고 온 짐을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장식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다 어디다 장식하게?”

벽에 건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아, 그거는요.”

곽도현이 말하다가 창문 너머를 보았다.

강현의 시선도 창문 너머로 향했다.

그리고 멀리서 트리를 들고 오는 장만기와 눈이 마주쳤다.

“동생!”

반갑게 손을 흔드는 장만기.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 * *

장만기는 가지고 온 트리를 매장 앞에 내려놓았다.

“아이구, 허리야.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나 봐.”

장난스럽게 허리를 두드리는 장만기.

그런 장만기를 본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날 이후 매일같이 마을에 오는 장만기였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이사를 오시지.”

“괜찮아. 안 그래도 빈집 하나 정리 끝나서 거기 지내고 있어.”

강현은 장만기의 대답에 눈을 껌뻑였다.

농담 삼아서 건넨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 살고 있었다니.’

매일 볼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강현의 시선에 장만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손으로 술잔 모양을 만들었다.

“일만 하면 집에서 다녀도 상관없는데, 뒤풀이에 참여 못 하잖아.”

장만기의 말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결국, 술을 마시기 위해 머문단 소리였다.

‘형님답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을 사람.

자신을 찾는 것인가? 강현은 자신을 찾는 것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동생! 부탁한 거 끝났어!”

“어휴, 누님 외모만 출중한 게 아니라 손도 빠르네. 갈게요!”

장만기의 대답에 여인이 꺄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빨리 와.”

그리고 돌아가는 여인.

곧 장만기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동생. 그럼 나도 가 볼게.”

“…예, 다녀오세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현의 어깨를 두드리고 떠나는 장만기.

“아니, 누님. 같이 가. 뭐 맛있는 거 숨겨 놨어? 왜 그리 발이 빨라.”

마을을 올라가는 장만기를 보며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양반이네.’

누가 보면 마을 사람인 줄 알 거다.

아니, 전부터 마을에 있던 사람인 마냥 섞여 들어갔다.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자 곤혹스러운 표정의 곽도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형, 이거 어떻게 넣어요?”

장만기가 가져온 트리.

매장에 놓기에는 너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강현은 트리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 * *

결국, 트리는 밖에 놓기로 했다.

억지로 쑤셔 넣다가 나뭇가지가 다 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라 인조 나무이긴 하지만,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입구 옆에 세워 놓고 꾸미자 그럴싸한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안에다 하고 싶었는데.”

“으응.”

상후의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영이.

실망한 게 눈에 보였다.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가서 트리라도 사와야 하나.’

그때,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한쪽 벽에 쌓아 놓은 상자.

바로 빈 병들이었다.

‘…요즘 다들 술을 많이 마셨지.’

마을을 꾸미다 보니 매일같이 술자리가 열렸다.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럼 트리 만들어 볼까?”

아이들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트리요?”

“어떻게요?”

강현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교육에는 좋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보내는 것보단 나았다.

강현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재밌겠다!”

“저, 저요! 병 모아 올게요!”

“저도 도울게요.”

후다닥 매장을 빠져나가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니….

‘…앵벌이라도 시킨 것 같은데.’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다시 상자에 향했다.

‘색도 녹색이니 트리로 적당하지.’

재활용도 되고, 이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강현은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 * *

“그래서, 다음 주에는 오지 못한단 소리군.”

“예.”

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란돌프가 맥주를 들이켰다.

타닥, 타닥.

모닥불의 불꽃이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맥주캔이 란돌프의 손에 들려 있으니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궁금하네요. 강현 씨가 사는 곳의 축제.”

옆에 있던 에밀리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네요.”

그러나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로멘 님께서 연구하고 계시다니 언젠가 가능하겠지.”

란돌프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았다.

공간 계열 마법은 마법사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이세계라니.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