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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22화 (122/227)

#122화 금실이 좋으셨나 봐요

겨우 허기만 채울 정도로 식사를 마친 강현.

그 뒤에도 식당 두 개를 더 갔다.

‘확실히 음식 자체는 로벤투스보다 낫네.’

향신료나 식자재를 다루는 게 익숙해 보였다.

특히나 시장에서 팔던 음식이 인상적이었다.

마른 과일에 꿀을 발라서 과자처럼 팔고 있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온 강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로벤투스보다 낫긴 하지만, 요리 방식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슈와 아나를 만났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다.

‘역시 일주일 가지고는 힘들어.’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강현은 힐끗 옆을 보았다.

배가 볼록하게 솟아오른 설기와 토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인상에 남을 정도로 특별한 음식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만한 것도 없었다.

무난한 수준.

덕분에 설기만 포식했다.

강현은 괜히 심술이 나서 통통하게 올라온 설기의 배를 두드렸다.

“그르르.”

괴로운 듯 몸을 비트는 설기.

피식 웃은 강현은 설기를 놔두고 지도를 꺼냈다.

“다음 마을까지는 거리가 좀 있네.”

잠깐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다음 마을까지 다녀오면 이 주가 훌쩍 넘을 거다.

게다가 다음 마을이라고 해서 확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음?”

그러던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카브리 옆에 있는 거대한 숲.

강현이 있던 숲과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제법 컸다.

카브리에서 걸어서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숲의 현자.

마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루면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정도면 괜찮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웠다.

언제 또 오겠는가.

‘좋아. 숲까지만 다녀오자.’

결심을 굳힌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설기야, 내일은 좀 일찍 움직이자.”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 *

아침이 되자 퉁퉁 부은 설기를 볼 수 있었다.

“늑대가 아니라 강아지네.”

늑대 특유의 날카로움이 사라졌다.

어제 먹은 게 아직도 소화가 안 된 것이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강현은 설기의 볼을 쿡, 찔렀다.

어제 쓴 돈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한 달 식비를 넘어설 거다.

“끼잉.”

앓는 소리를 내는 설기. 그런 설기와 달리 토리는 멀쩡해진 모습으로 강현의 어깨 위로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는 투구와 강현을 번갈아 보며 쳐다보았다.

“맞다. 잠시만.”

강현은 투구를 꺼내서 안에 천과 방석을 깔았다.

작은 방석을 구겨 넣자 안락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어제 시장에서 사 온 것이었다.

‘이게 위생적으로 깔끔하지.’

방석을 빤히 쳐다보던 토리가 조심스레 발을 내밀었다.

방석 안으로 들어간 뒤, 이리저리 살피더니 곧 드러누웠다.

“마음에 들어?”

강현이 그런 토리의 배를 간지럽혔다.

간지러운지 몸을 비틀던 토리가 쿠션 속으로 숨었다.

제법 마음에 든 모양.

강현은 웃으며 투구를 배낭에 걸쳤다.

그렇게 강현은 카브리를 나섰다.

* * *

카브리를 나서자 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이 닦여 있었다.

강현은 슬쩍 주위를 확인하고 길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길을 따라가다가는 마슈와 아나 때처럼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숲으로 가야 하기도 하고.’

굳이 길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직 낮임에도 어두워진 주변.

새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이따금 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마치 여긴 너희의 영역이 아니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보통이라면 이런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숲에 돌아온 것 같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든 건 강현뿐만이 아니었다.

“아우우우우!”

옆에 있던 설기가 하울링을 했다.

동시에 숲에 정적이 찾아왔다. 새는 물론이고 벌레들 또한 숨을 죽였다.

놀란 강현이 옆을 돌아보자 설기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제 소화가 된 건가?’

아니면 고향과 비슷한 숲에 왔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을 수도 있었다.

강현은 웃으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너무 겁주면 안 돼. 여긴 쟤네 집이야.”

“컹!”

우리가 침입자였다.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박, 사박.

강현이 걸을 때마다 풀잎이 흔들렸다.

진하게 올라오는 숲의 향기.

그에 따라 설기의 꼬리도 흔들렸다.

‘여기에 숲의 현자가 있는 건가.’

강현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빽빽하게 올라온 나무들. 그 너머로는 어둠만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 인간의 경우였다.

강현의 시선이 설기에게 향했다.

“설기야.”

강현의 부름에 설기가 고개를 돌렸다.

쫑긋 올라오는 귀.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겠어?”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눈을 껌뻑이는 설기.

어려운 걸까? 설기의 이런 반응은 강현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설기도 못 찾는 건가?’

정말로 마법이라도 부리는 걸까.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시오.”

“…니까.”

멀리서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

그걸 들은 강현의 눈이 커졌다.

설기가 고개를 갸웃한 건 못 찾기 때문이 아니었다.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숲 가운데 서 있는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저분이 숲의 현자인가?’

길게 내려온 수염. 흙에 더러워지긴 했지만, 정갈한 옷차림이었다.

그전에 보았던 마을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야말로 현자다운 외형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두 개였는데?’

곧 노인의 시선이 숲 너머로 향해 있다는 걸 알아챘다.

“현자시여, 너무 매정하게 그러지 마시오. 그대의 소문을 듣고 왕도에서 여기까지 왔잖소. 그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시간을….”

노인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노인이 현자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강현은 노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숲 너머에서 그림자 하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누가 오라고 했어? 그리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나와 대화를 하고 싶으면 그만한 대가를 내라고.”

숲속에서 걸어 나온 이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입에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었고, 걸친 옷은 흘러내려서 어깨가 드러나고 있었다.

흡사 자다 나온 모양새.

도저히 현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여인의 말에 노인이 재빨리 답했다.

“대가라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내….”

“지식이라고 말할 거면 입 다물어.”

여인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러나 노인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식이야말로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재물이오.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학문을 닦는….”

“난 학자가 아니라 정보상이라고. 젊은 놈이 벌써 말귀가 막혔어?”

“그러니 대가로 내 지식을 드리겠다는 것 아니오. 등가 교환. 그대의 지식과 내 지식을 바꾸는 것이지.”

“난 그 쪽에게 궁금한 게 없어. 돈 안 되는 일에 머리를 쓰고 싶진 않아. 그러니 그만 꺼져.”

“그렇다면 내 나중에….”

“후불은 없어.”

심드렁한 눈빛으로 내뱉는 여인.

그러다가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넌 또 뭐야?”

그제야 노인도 강현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모이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둘의 대화를 듣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숲의 현자는 저 여인이었다.

‘…현자가 아니라 정보상이지만.’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음, 정보를 사려고요.”

강현의 대꾸에 여인이 의심의 시선을 던졌다.

“이 젊은 놈처럼 지식으로 때우겠다는 건 아니지?”

젊은 놈?

아무리 봐도 여인이 더 젊어 보였다.

그러나 강현은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아나가 쫓겨날 만하네.’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강현은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일단 돈은 있습니다만….”

강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여인의 눈빛이 바뀌었다.

여인이 파이프를 한 모금 빨았다.

곧 담배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

“좋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고객이네.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여인의 물음에 강현이 잠시 머뭇거렸다.

혹시나 해서 오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거다.

여인의 재촉하는 시선에 어쩔 수 없이 강현이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요리들의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괜찮다면 요리법도….”

어렵사리 말을 꺼낸 강현의 시선이 여인을 향했다.

그리고 강현은 파이프를 물고 있던 여인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욕이 분명했다.

‘그럴 만하지.’

강현이 여인이었어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거다.

한숨을 내쉰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로 마가 꼈나. 왜 며칠 전부터 이런 이상한 녀석들만….”

“…실례했습니다.”

여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강현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너, 잠깐만.”

자리를 떠나려던 강현은 갑작스러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아까와 다르게 심각한 표정.

강현은 곧 여인의 시선이 향한 게 자신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여인은 투구를 보고 있었다.

투구에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지.’

바로 투구 안에 있는 토리를 보고 있었다.

곧 여인의 시선이 강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기에게 향했다.

“…하얀 늑대?”

설기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신기한 놈이군. 넌 들어와.”

“예?”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제 할 말만 하고 숲으로 걸어가는 여인.

“자, 잠시만요.”

강현의 다급한 외침에 여인이 발걸음이 멈췄다.

“이런,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어. 금방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어?”

“예?”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따라가던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문?

익숙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곧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이 강현을 뒤따르려다가 벽에 막힌 듯 뒤로 튕겨 나갔다.

여인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강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정정하지. 신기한 놈이 아니라 이상한 놈이었어. 따라와.”

그렇게 여인이 숲 안으로 향했다.

강현은 뒤에 있는 노인을 힐끗거리고는 여인을 뒤따랐다.

* * *

숲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나무와 함께 작은 오두막이 나왔다.

바로 여인의 집이었다.

여인은 오두막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고는 앞에 빈 의자를 파이프로 가리켰다.

강현이 자리에 앉자 여인이 강현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인간이 어째서 정령을 데리고 있지?”

역시나 여인이 본 건 토리였다.

“혹시 요정이세요?”

강현은 여인의 귀 쪽을 힐끗거리며 물었다.

머리카락에 덮여서 보이지 않는 귀.

에밀리야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정령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인 또한 인간이 아니란 뜻이었다.

‘에밀리야와 느낌은 다르지만….’

얼떨결에 따라오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정보상들은 대부분 술집에 있었다.

정보를 모으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숲 한가운데 머무르고 있었다.

어떻게 정보를 모은다는 걸까?

강현의 물음에 여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반쪽만.”

“예?”

“요정과 인간의 혼혈이라고.”

여인이 자신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매끄러운 목선과 함께 귀가 보였다. 인간보다는 긴 귀.

그러나 요정이라고 보기에는 짧았다.

강현이 놀란 눈으로 여인을 보았다.

여인은 강현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왜? 더럽게 느껴져?”

“아뇨. 음….”

강현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서 금실이 좋으셨나 봐요.”

“…뭐?”

타 종족 간의 혼혈이라니. 이 세계를 아는 강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안 싸우신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여인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강현을 보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은 후에나 입을 뗐다.

“이렇게 웃어 본 적은 오랜만이야. 너, 재미있는 녀석이네.”

그녀는 담배 연기를 뿜고는 말을 이었다.

“난 맹약이 맺어지기 전에 태어났어.”

“아.”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강현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요정의 피도 섞였으니.’

그제야 여인이 노인에게 했던 말들이 이해되었다.

서른 중후반으로 보이지만, 여인은 백 살이 넘었다.

‘아나가 착각했네.’

여인은 여인의 나이에 걸맞은 말투를 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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