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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21화 (121/227)

#121화 손해가 아니라 투자다.

마슈가 돌아오자마자 일행들은 길을 나섰다.

하룻밤 사이에 친해진 덕분인가, 어제보다는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지나왔던 마을들과 다르게 높은 돌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바로 카브리였다.

마을이 아니라 도시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규모.

강현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렇게 돌벽 가까이 가자 검문소가 보였다.

규모가 큰 만큼 검문도 까다로웠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쉬운 법.

강현은 일행들을 따라 태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검문소에 있던 경비는 마슈와 아나를 기억하는지 말을 걸었다.

“마차 꼴이 엉망이군. 혹시 습격이라도 당한 건가?”

경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마슈와 아나를 걱정하기보다는 마을 근처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강도나 맹수. 둘 다 주의해야 했다.

경비의 물음에 마슈는 고개를 저었다.

“놀란 말들이 날뛰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제야 경비는 긴장을 풀었다.

“운이 나빴군.”

경비의 말에 마슈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마슈의 말이 옆에 있던 강현의 양심을 비수처럼 찔러 왔다.

“그래도 맹수가 내려왔을 수도 있으니 한번 확인해야겠군. 그쪽은?”

경비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경비는 강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마차가 넘어졌을 때,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방향이 같아서 동행했습니다.”

강현은 품에서 신분패를 꺼냈다.

그러자 경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거, 로벤투스분이셨군. 로벤투스는 남이 아니지. 무슨 일로 오셨나?”

말과 달리 경비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다.

“여행입니다.”

“여행. 좋지. 좋은 시간 되시게.”

경비는 신분패를 돌려줬다. 그리고는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경비가 눈짓하자 뒤에 있던 이들이 길을 열었다.

그렇게 길을 지나가던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마슈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마슈의 물음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전에 만났던 경비들과 달리 강압적인 느낌이라.”

말을 놓는 것부터 그러했다. 이제까지 만났던 경비들은 친절했다. 강현의 말에 마슈가 미소 지었다.

“강현 씨는 여행이 처음이신가 보군요. 이 정도면 부드러운 편입니다.”

옆에 있던 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모든 이방인이 우리처럼 조용히 있다가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미리 경고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지.”

강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했다.

무기의 휴대가 자유로운 시대였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대비해야 했다.

강현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아나를 보았다.

나이에 맞게 의젓해 보였다. 아나는 강현의 시선에 흥, 하고 턱을 세웠다.

나름 표정 관리를 하는 것 같지만, 우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아나의 뒤로 마슈가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일행들은 마차를 입구 근처에 있는 마구간에 맡기였다.

영지에서 운영하는지 경비가 삼엄했다.

강현은 마구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설기가 가까이 간 것만으로도, 말들이 날뛰고 있기 때문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마슈와 아나가 마차를 맡기는 걸 지켜보았다.

그렇게 마차를 맡기고 나온 둘의 걸음이 멈췄다.

이제 정말로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주변을 구경하던 설기의 시선이 일행들에게 향했다.

마슈가 먼저 입을 뗐다.

“강현 씨는 언제 돌아갈 예정이십니까? 저희는 말을 구하고 내일….”

“아니.”

아나가 마슈의 말을 잘랐다.

마슈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나가 말을 이었다.

“우린 왕도로 갈 거다.”

“…또?”

아나의 말에 마슈가 눈을 껌뻑였다. 왕도에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도에는 사치를 즐기는 귀족이 많아. 당연히 금을 원하는 이들도 많겠지. 왕도에서 금과 은을 처분할 것이다.”

마슈는 처음 듣는 소리인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아나의 이야기를 들은 강현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혹시 어제 이야기 때문입니까?”

그러자 아나가 작은 이마를 모았다.

“…어느 정도는. 하지만, 네 말만 무조건 믿고 가는 건 아니다. 거래가 끊겼다고는 하나, 고작 백 년.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가죽이나 식물은 이미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백 년 사이에 생태계가 바뀌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의 눈이 커졌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맞는 이야기야.’

수인은 어떨지 몰라도, 요정이라면 백 년은 그리 큰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

마슈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찾아봐야지. 인간 기준이 아니라 그들이 흥미 있어 할 만한 물건들을.”

아나의 말에 마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손해가 클 텐데?”

마슈 역시 상가의 자식이었다. 여기까지 오가는 시간도 있었다.

상인에게 시간은 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물건 중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마슈의 질문에 아나가 코웃음 쳤다.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마슈를 보았다.

“손해가 아니라 투자다. 이번 한 번만 거래할 게 아니지 않은가?”

아나의 말에 마슈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로벤투스 영주 또한 왕도에서 수학했어.”

아나는 말하면서 강현은 힐끗거렸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 강현의 모습을 본 마슈가 허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넌 언제 그런 정보를….”

둘은 항상 붙어 있었다. 그러자 아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세비야에서 들었다.”

“아, 그때인가.”

기억이 떠올랐는지 마슈가 고개를 주억였다.

“혹시 몰라서 기억하고 있었지. 그땐,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아나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강현, 넌 로벤투스에 있을 거지? 다시 만났을 때, 이 빚은 갚겠다. 이건 상인 아나 스테판으로서의 약속이야.”

“미래의 대상인이 될, 맞지?”

“그래.”

강현의 대꾸에 아나가 미소 지었다.

당돌한 모습.

말을 놓고 있었으나 경비 때와는 달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가자.”

“지금? 밥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지는 게….”

그렇게 몸을 돌려서 걷는 아나. 마슈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곧 마슈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이리 됐으니 다음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때는 이 녀석도 같이.”

마슈가 허리에 걸린 검을 두드렸다.

“마슈. 빨리 와.”

“…적어도 오빠는 붙이라니까. 그럼!”

한숨을 내쉰 마슈가 아나를 뒤따랐다.

멀어지는 둘을 보던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좋은 사람들이었어. 그렇지?”

“컹!”

설기가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빼꼼, 주머니 속에 숨어 있던 토리도 얼굴을 내밀었다.

강현의 시선이 마을로 향했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

이 정도 규모라면 식당도 많을 거다.

그렇게 활기찬 마을을 보자 강현의 마음도 설레어 왔다.

* * *

여관에서 짐을 푼 뒤에 바로 마을로 나왔다.

‘로벤투스 성도 크긴 했는데.’

이곳 카브리 역시도 로벤투스에 비교될 만큼 거대했다.

오히려 사람은 이쪽이 더 많은 듯했다.

강현은 천천히 마을을 구경했다.

그런 강현 옆에 들뜬 표정의 설기가 뒤따랐다.

“컹! 컹!”

무언가를 보고 짖는 설기.

설기의 시선을 따라간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건물 위로 올라오는 연기.

바로 식당이었다.

“그래, 가자.”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설기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식당 안은 떠들썩했다.

대부분 이 마을 주민처럼 보이긴 했지만, 중간에 상인이나 모험가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강현이 자리에 앉자 꼬마 아이 하나가 무언가를 건넸다.

그걸 본 강현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강현이 그 정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메뉴판이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식당은 메뉴판이 없는 곳이 더 많았다.

메뉴가 한정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기에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었다.

낭패한 심정으로 메뉴판을 보던 강현의 눈에 꼬마 아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메뉴판을 건네고도 떠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꼬마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메뉴 설명 필요하세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강현은 꼬마의 눈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공짜는 아니지?”

“그럼요.”

싱긋 웃는 꼬마. 식당이 바쁜 와중에 강현의 앞에만 서 있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지?”

“동전 두 개요.”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동전을 건넸다.

생각보다 저렴했다.

‘팁 개념인가.’

동전을 받자 꼬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위에부터 구운 하뭄 고기랑 구운 새고기, 그리고 아래는….”

차례대로 메뉴를 설명하는 꼬마.

강현은 꼬마의 설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부탁하는 이가 많나 봐?”

꼬마의 행동이 익숙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물음에 꼬마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가끔 있어요. 손님처럼 상인분들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강현은 꼬마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상인들이 아니면 대부분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

‘하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곧 강현의 시선이 꼬마에게 향했다.

그런 강현의 시선을 알아챈 꼬마가 배시시 웃었다.

“저도 글은 못 읽어요.”

말하면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외웠단 소리였다.

그리고는 강현을 보며 입을 뗐다.

“역시 한 번 듣고는 고르기 힘들죠? 다시 설명할까요? 두 번째부터는 반값입니다.”

“그럴 필욘 없단다.”

강현은 웃으며 메뉴를 말했다.

하나가 아니라 무려 네 가지. 음료까지 합치면 다섯 가지였다.

꼬마의 눈이 커졌다.

“…손님, 머리가 좋으시네요.”

“너만큼 하겠니.”

강현의 대꾸에 꼬마가 멋쩍게 웃었다.

“그럼 벌꿀주부터 준비해 드릴게요.”

그리 말한 꼬마가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강현은 그런 꼬마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영리하네. 아니, 얌체 같다고 해야 하나.’

일부러 설명을 어렵게 했다.

구이 종류에는 무엇무엇이 있고, 볶음에는 무엇이.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기억하기 쉽다.

말하는 이도 그게 편할 거다.

그러나 꼬마는 메뉴 하나하나를 따로 설명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헷갈릴 만했다.

하지만 양식을 다루는 강현에게는 이 정도 메뉴는 우스운 수준이었다.

외지인에게만 써먹을 수 있는 방식.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지.’

강현은 꼬마와 이야기하면서 다른 테이블을 확인했다.

짧은 순간이라서 확신할 순 없었지만, 외지인이라고 해서 덤터기를 씌운 것 같진 않았다.

얼마 뒤 벌꿀주가 나왔다.

벌꿀주를 가져다준 건 다른 아이였다.

꼬마와 닮았지만, 나이가 좀 더 많았다. 아마도 꼬마의 형일 거다.

벌꿀주를 한 모금 입에 넣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성에서 먹었던 게 낫네.’

로멘과 란돌프가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어서 음식들이 하나둘 나왔다.

테이블에 쌓여 가는 음식들.

“낑.”

앓는 소리에 강현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어딘지 불만스러워 보이는 설기.

강현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 혼자 먹기에는 많지만, 설기가 먹기에는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 하나로 끝낼 거야?”

“끼잉?”

설기가 눈을 깜빡였다.

“다른 식당들도 가 봐야지.”

강현의 말에 축 처졌던 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컹!”

환하게 웃는 설기.

폴짝 뛰어서 강현의 옆에 있는 의자 위로 올라왔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정도 규모면 시장에서도 음식을 팔 거야.’

이런 식당 말고 길거리 음식.

설기와 달리 강현의 위는 작았다.

그러니 최대한 다양하게 먹어야 했다.

설기와 강현, 둘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둘과 달리 토리는 음식보다는 테이블이 마음에 드는지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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