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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76화 (76/227)

#76화 넌 뭘 먹니?

구멍이 뚫려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뭇잎 옷으로 갈아입은 뒤, 로브와 장신구들을 장식했다.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이 된 느낌.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반지 낄 자리를 찾아보던 에밀리야가 아쉬워하면서 물러났다.

이미 포화상태였다.

강현으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상태라면 움직이기도 힘드니.’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바라보자 표정들이 제각각이었다.

“음.”

화려함에 눈살을 찌푸리는 노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탄성을 뱉으며 박수를 치는 란돌프.

그리고 그 옆에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로멘까지.

그러나 그들 셋보다 부담스러운 건 하만의 눈빛이었다.

“와, 예뻐요!”

말투에 부러움이 묻어났다.

강현으로서는 하만의 미적 감각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기는 이러한 강현의 모습이 신기한지 앞발로 두드리고 있었다.

“이제 정령을 부를 거예요. 모두 뒤로 물러나 주세요.”

일행들은 에밀리야의 말에 따랐다. 아까까지 장난스러운 모습이 사라지고 진지한 눈빛으로 에밀리야를 지켜보았다.

전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준비하는 에밀리야.

강현은 슬쩍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한국이었으면 미신 같은 건데.’

이세계니 다른 특별한 게 있을 거다.

“…어?”

그리고 정말로 있었다.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몸 안쪽 어딘가가 간지러운 느낌.

그와 함께 강현의 몸에서 작은 불빛이 흘러나왔다.

일행들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불빛들은 한동안 강현의 몸에서 머무른 후 사라졌다.

“…끝인가?”

란돌프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란돌프.

정령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인간인 란돌프가 정령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설령 볼 수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목을 돌려서 주변을 확인한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과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실패한 건가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분명 느낌이 있었는데….”

“컹!”

어딘가를 보며 짖는 설기.

자연스레 일행들의 시선도 향했다.

“어?”

툭, 툭.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은 강현의 로브 자락이 들썩거렸다.

강현이 슬그머니 로브 자락을 들어 올리자 작은 생물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나.”

에밀리야의 감탄. 강현은 놀란 눈으로 작은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햄스터와 비슷한 생김새. 그러나 앞발은 두더지처럼 컸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작은 정령이었다.

강현이 슬쩍 손바닥을 내밀자 그 위로 올라왔다.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정령.

“아직 어린 정령이네요.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아, 예.”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야가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더니 에밀리야의 손으로 옮겨가는 정령.

곧 정령과 대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땅. 두 가지 원소를 다루는 정령이에요.”

“두 가지요? 좋은 건가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강현의 손을 지나서 어깨 위로 올라간 정령.

정령을 본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희귀하긴 한데, 두 가지 원소를 다루기에는 이 아이의 힘이 너무 미약해요.”

강현은 그 뜻을 이해했다. 스토브는 두 개지만 연결된 원료가 적다는 의미.

차라리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그때, 어깨 위에 있던 정령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화르륵.

“우왓!”

깜짝 놀란 강현이 몸을 움츠리자 정령이 데구루루 떨어져 내렸다.

그런 강현을 에밀리야가 진정시켰다.

“정령의 힘은 계약자에게 해를 입히진 못해요.”

“아.”

그러고 보니 뜨겁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바닥으로 추락한 정령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런 정령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가는 하얀 솜 뭉치.

설기가 킁킁 코를 가져다 대려고 하자 정령이 땅속으로 몸을 숨겼다.

갑자기 사라진 정령의 모습에 설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설기 뒤에 땅을 파고 나온 정령.

‘저래서 안 보였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기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자 다시 땅속으로 숨었다.

하늘과 달리 땅속은 설기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 튀어나오는 정령과 그런 정령을 쫓기 위해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설기.

강현에게 정령의 감정이 전해졌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지금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신비한 느낌.

설기 역시 신이 났는지 꼬리가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좋네요.”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작아서 설기 때문에 다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저런 상태라면 잘 지낼 수 있었다.

설기를 따돌리고 다시 강현의 몸에 올라타는 정령.

뒤늦게 정령을 발견하고 달려오던 설기가 멈춰 섰다.

아무리 설기라도 강현에게까지 달려들진 않았다.

강현은 어깨 위로 올라온 정령의 배를 간지럽혔다.

간지러운지 몸을 비비는 정령.

설기가 그런 강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강현은 설기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기분 좋은 듯 울음을 토하는 설기.

새로운 친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계약이 끝났으면 내가 마법을 써도 되겠는가?”

로멘이었다. 그제야 일행들의 표정이 보였다.

다들 정령이 궁금한 눈치.

“아, 예. 이제는 상관없어요.”

에밀리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로멘이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에서 보라색 빛이 서서히 퍼져 갔고.

곧 일행들의 눈이 커졌다.

“오호.”

“귀여워!”

강현의 어깨 위에 있는 정령을 보며 감탄을 토하는 일행들.

일행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정령이 등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을 본 에밀리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아이로는 전투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거예요.”

에밀리야의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아, 괜찮아요. 오히려 좋은데요.”

설기와 놀아 줄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게다가 불을 다룰 수 있으니 강현의 마음에 쏙 들었다.

어차피 강현이 싸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전투라면 이 검으로 충분하니.”

“수인의 체술도 있다.”

둘의 대답을 들은 에밀리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이런 느낌.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진짜 괜찮아요.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네요. 좋은 친구를 소개해 줘서 고마워요.”

강현이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손을 타고 올라오는 작은 정령.

강현의 진심을 읽었는지 에밀리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와 달리 란돌프와 노아는 무언가가 걸리는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야겠네요.”

그때, 하늘을 날던 소나가 에밀리야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에밀리야의 정령.

“오.”

“와….”

위풍당당한 모습에 일행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상위 정령인가? 대단하군.”

일행들의 칭찬에 날갯짓하는 소나. 그러다가 눈을 반짝이는 설기를 보고는 슬그머니 날개를 접었다.

일행들은 소나의 위용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강현은 볼 수 있었다.

설기를 본 순간, 파르르 떨리던 소나의 다리.

아직 설기가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일행들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늠름하게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일행들의 관심이 소나에게 옮겨지자 어느새 강현의 머리 위로 올라온 정령이 불을 뿜었다.

정확히 손바닥 반만 한 불꽃.

이 초 정도 불을 뿜고 난 뒤, 지쳤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입 사이로 올라오는 연기.

눈도 빙그르르 돌고 있었다.

그를 본 에밀리야가 웃으며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너도 대단하단다.”

에밀리야의 칭찬에 다시 힘이 났는지, 강현의 손바닥 위로 내려온 정령.

일행들의 시선 역시 정령에게 향했다.

‘이름이라.’

정령을 본 순간부터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에 나왔던 만화 영화.

“토리로 하자.”

성은 햄.

손을 빼면 똑 닮았다.

고개를 갸웃하던 정령이 곧 마음에 드는지 손바닥 위에 몸을 비볐다.

“토리라. 좋네요.”

“귀여운 이름이군.”

다른 일행들도 괜찮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토리를 설기 앞까지 데려갔다.

“이제 네 동생이야. 잘해 줘야 해.”

“컹!”

강현의 말에 씩씩하게 짖는 설기. 곧 토리가 강현과 설기를 번갈아 보더니 슬그머니 설기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런 토리가 마음에 드는지 폴짝폴짝 뛰는 설기.

둘의 모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좋은 일이 생겼으니 축하해야지. 내가 적당한 녀석을 사냥해 오겠네.”

란돌프의 말에 하만이 눈을 빛냈다.

“그럼 제가 불을 피울 준비를 할게요!”

“그거라면 제가….”

강현이 나서려고 했으나 란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쉬게.”

“맞아요! 스승님! 전에 배웠으니 해 볼게요.”

노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난 간단하게 마실 술을 챙겨 오겠다.”

“오! 수인족의 술인가? 기대되는군.”

강현이 어색한 표정을 짓자 로멘이 입을 열었다.

“그래, 오늘 정도는 편히 있게. 늘 얻어먹기만 했으니 미안할 거야.”

로멘이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어울리고 싶지만, 하던 일이 남아서 가 보겠네.”

그리 말한 후 강현과 에밀리야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정령 계약이라. 진귀한 경험을 했어. 다음에 보답하겠네.”

휘적휘적 걸어가는 로멘을 시작으로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설기도 사냥을 나선 란돌프를 따라갔다.

“음, 저도 과일을 가져올까요?”

사용한 물건들을 정리하던 에밀리야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물건들을 돌려놓으러 강을 넘어가야 했다.

그리고 강현은 에밀리야의 말에 잊고 있던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에밀리야 씨.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강현의 말에 에밀리야가 커다란 눈을 껌뻑였다.

“예?”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주셨던 열매. 혹시 조금만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열매라면….”

“그, 목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 라탸의 열매 말씀이시군요. 상관은 없는데 이유가 있나요?”

에밀리야의 눈이 호기심에 반짝였다. 거절이 아니라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주변에 목이 안 좋은 친구가 있어서 선물하려고요.”

강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굳이 숨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목에 좋은 다른 과일이나 열매도 몇 가지 챙겨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금방 가져오죠.”

싱긋 웃은 에밀리야가 손을 올리자 소나가 날아와서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는데도 가뿐하게 날아올랐다.

그대로 강 너머로 향하는 에밀리야.

‘저렇게 넘어가는구나.’

상상도 못 했다. 강현은 멀어지는 그녀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에밀리야에게 부탁한 건 세나를 위해서였다.

‘설기의 침은 좀 그러니깐.’

강현과 달리 세나의 문제는 정신적인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설기의 침이 효과가 있겠지만….

‘위치가 위치이니.’

목을 낫게 하려면 침을 삼켜야 했다.

그건 세나도 원치 않을 거다. 볼을 긁적인 강현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제 뭘 하지?”

홀로 남겨진 강현. 그때, 땅속에서 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설기를 따라간 게 아니었구나.”

강현은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로운 식구가 생겨났다. 토리와 장난을 치던 강현은 문뜩 의문점을 떠올렸다.

“…근데 넌 뭘 먹니?”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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