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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75화 (75/227)

#75화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요

뭉친 면을 휘적휘적 저었다. 그때마다 올라오는 매운 향.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됐습니다.”

강현은 접시에다 면과 국물을 덜어 주었다.

“면과 같이 드시면 됩니다.”

강현의 말이 끝났음에도 바로 먹지 않고 강현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은 시범을 보이듯 면발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룩.

물소리와 함께 면을 넘기는 소리만이 울려왔다.

라면 특유의 얼큰함에 생선과 야채들의 시원함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면은 또 어떤가.

탱탱하게 익은 면이 입안에 감겼다.

강현이 먹는 걸 본 란돌프가 포크를 들어 올렸다.

강현과 달리 젓가락질을 못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면을 돌돌 말아서 입에 넣었다.

“…!”

커지는 눈.

면을 삼킨 란돌프가 국물을 들이켰다.

“…크으!”

나지막하게 터지는 감탄사.

강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떠세요?”

“맛있군! 자네의 요리도 맛있었지만, 이건 뭐랄까.”

란돌프가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맛.

곧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하군.”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했다.

당연했다. 즉석식품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 연구진들의 노력이 담긴 결정체였다.

옆을 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비운 설기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꼬리.

입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강현은 피식 웃고는 새롭게 퍼줬다.

다시 고개를 박고 먹는 설기.

라면의 냄새가 퍼졌는지 늑대 몇이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다가 우두머리의 눈빛을 받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네.’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나눠주더라도 매워서 먹지 못할 거다.

강현이 늑대들을 살피거나 말거나 란돌프와 설기는 경쟁이라도 하듯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회와 생선구이를 먹었던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의 속도.

순식간에 반이 사라진 냄비를 보며 강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열 봉지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섯 봉지만 끓였으면 부족했을 거다.

그 사이 소주병을 비운 란돌프가 아쉬운 듯이 소주병을 흔들었다.

벌써 세 병째.

강현은 그런 란돌프에게 맥주를 건넸다.

강현이 먹으려고 꺼내 놨던 것이었다.

‘난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맥주를 본 란돌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 고맙군.”

그리고는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무서운 음식이군. 이 내가 절제심을 잃다니.”

말과 달리 란돌프는 그릇에 면을 옮기고 있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지?”

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란돌프. 강현은 건더기가 거의 남지 않은 냄비 안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챙겨 올 걸 그랬나?’

그러나 다행히도 란돌프나 설기나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다시 한 그릇을 비우더니 배를 두드리는 란돌프.

그리고 늘어져서 하품하는 설기.

강현은 설기의 볼을 간지럽혔다. 귀찮은지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너 그러다가 다시 살쪄.”

갸웃.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망울.

그러나 이제는 저 눈에 속지 않는다.

“살찌면 또 채소만 줄 거야.”

“…끼잉.”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설기. 역시나 채소는 싫은 것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사냥을 떠나는 늑대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엉덩이를 두드려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정리할까요?”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힘쓰는 건 내게 맡기게.”

둘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 * *

“…컹, 컹.”

“으음.”

설기가 짖는 소리에 강현의 눈이 떠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든 설기.

‘…잠꼬대인가?’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허우적거리는 앞발을 보니 꿈속에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피곤했나 보네.’

어제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밤늦게까지 늑대들과 사냥에 어울렸다.

강현은 설기를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물소리와 함께 쌀쌀한 공기가 강현을 맞이했다.

흐릿한 안개와 끝이 보이지 않는 강물은 이곳이 야생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불을 피우고 물을 올린다.

이렇게 밖에서 자고 난 후에는 항상 따뜻한 물을 마셔 준다. 온기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불을 피우고 끓어오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불쑥, 과일 하나가 나타났다.

“…!”

놀라서 고개를 들자 과일을 든 에밀리야가 웃고 있었다.

“부지런하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과일을 받아 든 강현이 어리둥절했다.

“어제는 떠들썩하더군요.”

“보셨나요? 그럼 같이 오시지….”

생각해 보니 요정의 영역은 강 너머였다. 그녀가 알아채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한 강현의 말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어제는 일이 있어서 자리를 떠날 수 없었어요. 다음 기회에 초대해 주세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한가하게 보여도 그녀 역시 일이 있을 거다.

그녀는 과일을 베어 물고는 강을 돌아보았다.

“여긴 새벽에 많은 동물이 오가죠. 혹시 몰라서 나와 봤는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렇게 강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동화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늑대들을 눈짓했다.

늑대 몇이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강현 씨가 나오기 전까지 늑대들이 지키고 있더군요. 악의가 없다고 설명하는데도 믿지 않아서….”

그녀가 곤혹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강현이 의아해했다.

“…설명이요?”

늑대에게?

그러한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강현 씨도 하얀 늑대와 대화하지 않나요?”

그게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물어 왔다. 강현은 그녀의 물음에 어색하게 웃었다.

이쪽은 설기가 일방적으로 알아듣는 식이었다.

‘다른 이가 보면 비슷한 건가?’

그때, 강현의 눈에 정령이 보였다.

강물 위를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 에밀리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에밀리야의 눈빛을 읽은 강현이 선수를 쳤다.

“궁술이라면 사양할게요. 정말로 여유가 없어요.”

“아뇨. 궁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녀는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정령과 계약할 생각이 있나 물어보려고 했어요.”

“정령요?”

강현의 눈이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러자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정령을 볼 수 있으니 친화력이 있을 거예요. 다른 종족들은 정령술이니 거창하게 부르지만, 마법이나 주술과는 달라요.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면 된답니다.”

강현의 시선이 강을 날고 있는 정령에게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흥미가 있었다.

그러나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아무에게나 가르쳐 줘도 되는 건가요?”

“말했잖아요. 마법이나 주술과는 다르다고요. 정령들이 우리 요정들과 친하기에 함께하는 것이지, 요정이 정령을 독점하는 건 아니에요.”

고개를 끄덕이던 강현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럼 궁술도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말하지 않아도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그건 아무나 가르쳐서는 안 되는구나.’

강현의 표정을 본 에밀리야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물론, 제 권한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배우고 싶으시면….”

“아뇨.”

강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에 권한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자 에밀리야가 시무룩해졌다.

다른 둘이 가르치는 걸 보니 그녀 역시 호승심이 생긴 것이었다.

그때, 멋지게 하늘을 배회하던 정령이 황급히 떠나는 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던 강현은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텐트 문이 열리고 설기가 꼬물꼬물 기어 나왔다.

나오자마자 길게 하품하는 설기.

곧 강현의 곁으로 걸어오더니 다시 몸을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에밀리야가 미소 지었다.

“정말 잘 따르네요.”

“예.”

강현도 웃으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간지러운지 손길을 피하는 설기. 그러나 자리를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런 설기를 향해 강현이 입을 열었다.

“설기야, 친구 필요해?”

쫑긋.

설기가 고개를 들어 강현을 보았다. 반짝이는 눈을 본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에밀리야를 돌아보았다.

“혹시 배우는 게 어렵나요?”

“아뇨. 정령에게 마음을 열 준비만 되었다면 가능해요. 강현 씨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강현의 대답에 에밀리야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바로 해 볼까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호기롭게 시작한 것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밀리야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에 물들었다.

“…친화력이 너무 적네요. 정령을 이렇게나 뚜렷하게 볼 수 있는데 어째서….”

정령과 계약을 맺을 만큼의 친화력이 없었다.

그녀의 혼잣말에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강현이라고 알 리가 없었다.

‘다른 세계 사람이라서 그런가?’

강현은 심각한 얼굴의 에밀리야를 보았다.

“괜찮아요.”

아쉽긴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강현보다 더 실망한 이가 있었다.

“끼잉.”

기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설기의 꼬리가 내려갔다.

그러자 에밀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요.”

그녀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음 주, 다음 주 다시 해 보죠.”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아니에요. 제 명예가 걸려 있어요.”

단호한 목소리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

“…뭐가 참 많네요?”

“예. 이건 정령의 친화력을 올려 주는 신기예요. 얘는 정령왕에게 받은 증표이고, 이건….”

그녀의 설명은 한동안 이어졌다.

로브와 활, 티아라와 귀걸이, 그 외의 수많은 액세서리.

하나하나 보면 멋스러웠지만, 저걸 다 착용하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거다.

“귀한 것들 아닌가요? 이렇게 가져오시면 문제가….”

“다 허락받았어요.”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다들 일찍 오셨군요.”

란돌프와 노아, 게다가 로멘과 하만까지.

네 쌍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정령과의 계약이라니. 이런 귀중한 경험을 놓쳐서 안 되지.”

로멘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이게 다 단장 덕분이지.”

로멘의 말에 강현의 시선이 란돌프에게 향했다. 그러자 란돌프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침 일찍 순찰하다가 그녀를 발견했다네. 바로 로멘 님께 알렸지. 이런 일은 다 같이 축하해 줘야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거구나.

강현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그런 강현의 시선이 노아에게 향했다.

란돌프와 달리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노아.

“…난 돌아가려고 했다.”

“제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하만이 수줍게 이야기했다. 수인들이 정령과의 계약을 봤을 리가 없었다.

결국,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준비가 끝났는지 에밀리야가 다가왔다. 커다란 바가지를 들고.

“일단 이거부터 마시세요. 세계수에 맺힌 이슬을 담아 온 거예요.”

“호오.”

옆에서 로멘이 감탄이 들려왔다.

그러나 강현은 세계수가 뭔지도 몰랐다.

“마시고는 이걸로 갈아입어 주세요. 제 할머니께서 정령왕과 계약할 때 입었던 옷이에요. 정령왕의 가호가 담겨 있죠.”

에밀리야가 여기저기 찢어진 나뭇잎 옷을 건넸다.

“아, 안에는 아무것도 입으면 안 돼요.”

“….”

옷을 받아 든 강현은 한숨을 저절로 나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는 관중은 그렇다고 해도 열정적인 에밀리야를 보면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하고 있었다니.’

어쩌면 새벽부터 준비했을 수도 있었다. 힐끗 옆을 돌아보니 설기가 보였다.

잔뜩 기대한 모습.

‘…궁술을 배우는 것보단 낫잖아?’

애써 자신을 다독인 강현은 옷을 들고 나무 뒤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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