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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77화 (77/227)

#77화 그럼, 가 볼까?

해답은 에밀리야가 돌아와서 풀렸다.

“식사 말인가요? 자연의 기를 마시기 때문에 굳이 먹지 않아도 돼요.”

에밀리야는 소나의 깃털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머리를 흔드는 소나.

“아, 그런가요?”

강현은 토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강현의 손길에 배를 뒤집어 까는 토리.

쪼그만 두 발이 허우적거렸다.

앞발과 달리 뒷발은 작았다.

‘어쩐지 아쉽네.’

그런 강현의 기색을 눈치챈 에밀리야가 미소 지었다.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먹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아.”

강현은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이것도 직업병인가?’

맛있는 걸 먹게 해 주고 싶은 욕구.

“하지만 어떤 걸 좋아하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정령마다 제각각이니.”

사람과 미각이 다를 수도 있었다.

에밀리야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했다. 이후부터는 강현이 찾아 주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이들도 하나둘 돌아왔다.

모닥불 위에 거대한 고기가 올라갔고, 술잔이 서로 오갔다. 하지만 술자리는 길지 않았다.

모두 일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행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자, 란돌프가 다가왔다.

“강현, 조만간 성에서 자네를 부를 걸세.”

란돌프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마을로 초대했을 때와는 달랐다.

“성이라고 하면….”

“영주님이시지.”

란돌프가 강현의 예상을 확신으로 바꿔 줬다.

영주가 어째서 보자고 했을까.

그러나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강현의 시선이 노아와 하만에게 향했다.

“혹시 향신료 때문인가요?”

“맞네. 향신료는 고가의 품목이지. 대량으로 다루려면 영주님의 허가가 필요해.”

하물며 다른 종족과의 교역이었다.

노아에겐 아직 말하지 않았다.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네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흥미를 가지셨네.”

란돌프의 말에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출신이 불분명한 외지인이 근처에 있다면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숲에만 있었기에 지금까지 조용했던 것이었다.

“정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되네.”

란돌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연히 강현의 눈이 커졌다. 란돌프는 영주의 기사였다.

란돌프는 그런 강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영주님도 그리 딱딱한 분은 아니야. 실망이야 하겠지만, 그걸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걸세. 게다가 이 숲은 인간의 땅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강현이 숲에 있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란돌프는 그리 말하고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잘 생각해 보게.”

강현의 어깨를 두드린 란돌프가 돌아갔다.

홀로 남은 강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영주를 만나는 일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만나지 않으면 향신료도 얻기 힘들었다.

강현이 생각에 잠기자 설기가 다가왔다.

할짝, 할짝.

강현의 뺨을 핥는 설기. 설기의 머리 위에는 토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곳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심각했던 강현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래, 당장 정할 필요는 없으니.”

아직 정식으로 이야기가 나온 것도 아니었다.

강현은 토리와 설기를 쓰다듬고는 몸을 일으켰다.

* * *

다음날, 다시 지구로 돌아온 강현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이세계에 있을 땐 팔팔하던 토리가 지구에 오니 축 처진 것이었다.

“끼잉.”

옆에 있던 설기가 걱정되었는지 토리를 핥아 줬다.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토리를 보며 강현도 근심에 빠졌다.

다시 이세계로 가 봐야 하나 걱정하던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혹시.’

주방에서 견과류와 열매들을 꺼내서 토리 앞에 놓았다.

그러자 깨작깨작 먹기 시작하는 토리.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밀리야가 말했던 자연의 기라는 게 지구에는 희박하거나 없기에 대체할 다른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크기가 작은 탓에, 얼마 먹지 못하고 드러누웠다.

볼록해진 배.

자신의 배를 두드리던 토리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토리야!”

“컹!”

강현과 설기가 놀라자 바닥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입을 오물거리는 토리.

신기하게도 강현에게 의미가 전달되었다.

“그렇게 있는 게 편하다고?”

끄덕끄덕.

길게 하품하는 토리. 다행히 없어진 게 아니었다.

이세계와 달리 지구에서는 계속 모습을 드러내기 힘든 모양이었다.

“알았어. 그럼 잘 쉬고 있어.”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토리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끼잉.”

그 모습을 아쉬운 듯이 바라보는 설기.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쩔 수 없어. 토리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

물끄러미 강현을 바라보던 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이 지나자 토리도 적응이 되었는지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알게 된 게 있었다.

홀짝홀짝 수프를 먹는 토리.

햄스터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음식을 가리진 않았다.

‘하긴, 쥐가 잡식성이긴 하지.’

그리고 성향 때문인지 땅에서 자란 나물이나 불이 닿은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수프를 먹던 토리가 배가 부른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옆에 있던 설기가 와서 토리가 남긴 수프를 마저 먹어 치웠다.

덕분에 매번 매장에만 있던 설기도 요즘 활기차졌다.

설기를 무서워하는 이곳 동물들과 달리 토리가 놀아 주기 때문이었다.

‘이제 살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시간 날 때마다 밖에서 두더지 잡기를 하니 운동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 문제도 없던 건 아니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었다.

“…응? 내 고기 어디 갔어?”

“벌써 치매야? 그쪽 말고 누가 먹어.”

이장의 말에 박 씨 할머니가 면박을 줬다.

“…아닌데. 남겨 놨는데.”

억울한 듯 말하는 이장. 그런 이장에 앞에 배가 볼록해진 토리가 있었다.

강현과 설기의 눈에만 보이는 토리.

당연히 이장은 토리의 존재조차 몰랐다.

곧 옆에 누워 있던 설기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는 이장. 영문을 모르는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박 씨 할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엄한 애 의심하지 말고. 다 먹었으면 어서 일어나.”

강현은 계산하고 떠나는 이장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아직 어려서인가, 호기심도 많았다.

게다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행동도 거침이 없었다.

‘저건 가르쳐야겠네.’

안 그러면 이장처럼 억울한 사람들이 계속 나올 거다.

새로운 가족이 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 *

그렇게 토리에 대해서 알아가는 사이 어느덧 촬영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정말 안 가도 돼?”

강현의 말에 고개를 붕붕 내젓는 설기.

그리고 흥미가 없다는 듯이 바닥에 엎드렸다.

‘전에는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더니.’

강현으로서는 당혹스러웠다. 설기를 위해서 애견 놀이방까지 알아본 강현이었다.

설기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되긴 했지만, 또 안 데려가면 삐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설기는 잘 다녀오라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강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다녀올게. 일찍 올 테니 얌전히 있어.”

“컹!”

대답한 설기가 뒷발로 목을 긁적였다.

강현의 호주머니 속에 빼꼼 고개를 내민 토리.

설기와 달리 강현의 곁에서 떨어질 수 없기에 같이 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으니까.’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택시를 타러 나섰다.

* * *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아직 추석이 오려면 이 주나 남았다. 추석날 방영하기 위해서 미리 촬영하는 것이었다.

좀 이르긴 하지만, 출연진들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메인이 되는 셰프들. 추석 전후로 요식업이 바쁘기 때문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창문 너머로 향했다.

전에는 상후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원해서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음은 차분했다.

그때, 토리가 강현의 무릎 위로 기어 올라왔다.

커다란 포도알을 들고서.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야금야금 포도를 갉아 먹는 토리. 포도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바지가 축축해졌다.

강현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서 토리를 휴지 위에 올려놨다.

그러는 사이에도 포도알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꼭 쥐고 있었다.

점점 식탐이 많아지는 토리였다.

“이제 얌전히 있어야 해.”

고개를 끄덕이는 토리. 하지만 강현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모나보다 더 말썽꾸러기네.’

다행이라면 작은 몸집 탓에 큰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다.

강현은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버스에 승객이 적은 덕분에 강현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만일 사람들이 많았다면 강현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강현은 손가락으로 토리의 머리를 꾹 눌러 주고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포도알을 먹는 토리.

‘덕분에 외롭진 않네.’

혼자가 아니었다. 강현의 입꼬리가 휘었다.

* * *

서울에 도착한 강현이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윤섭이었다.

“어.”

[이제 슬슬 도착했지?]

윤섭의 말에 강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감시라도 하는 건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방금 도착했어.”

강현의 대꾸에 윤섭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황대길 선생님도 나온대.]

“황대길 선생님?”

강현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한식의 대가. 게다가 평론가로서도 유명했다.

무엇보다….

[전에 네 요리 욕한 사람이잖아. 자신이 한식 대가면 다인가….]

투덜거리는 윤섭.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뭐.”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을 한 것이었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황대길 선생님의 비평이 독하다는 건, 요식업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그만큼 실력이 있기에 인정받는 것이었다.

강현의 담담한 대꾸에 오히려 윤섭이 당혹스러워했다.

[…정말 괜찮겠어?]

“안 괜찮으면? 몇 시간 뒤가 촬영인데?”

[그렇긴 하지.]

그렇다고 촬영을 펑크 낼 순 없었다. 윤섭이 아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짜, 이런 날에 내가 같이 가야 하는데.]

“괜찮아. 애도 아니고.”

촬영도 처음이 아니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강현의 부활이잖아. 그리고 널 욕하던 놈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도 봐야 하는데. 그걸 놓치다니!]

분통을 터트리는 윤섭. 계속 오고 싶어 한 이유가 있었다.

‘…그쪽 때문이었나.’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곧 윤섭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현장은 문제없겠지. 세나랑 소현이도 있고, 같이 간 매니저들한테도 부탁했으니까.]

소현. 윤섭이 담당하는 아이돌이었다.

이번에 게스트로 참여한다. 일명 연예인 시식단.

강현은 과거에 봤던 소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크게 안심은 되지 않는데.’

세나라면 모를까. 소현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기댈 정도로 어리숙한 강현이 아니었다.

“알았어. 이제 난 가 볼게.”

[그래! 잘하고 와!]

경쾌한 인사를 뒤로하고 통화를 끝냈다.

짧은 통화였지만, 끝나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응원받는 것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럼, 가 볼까?”

강현은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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