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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시골 마을.
강현의 마을과 달리 집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거리도 좀 더 북적거렸다.
강현은 자전거를 손으로 끌면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컹! 컹!”
“어, 거기구나.”
설기가 짖는 방향을 본 강현의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강현의 말에 설기가 의기양양하게 턱을 세웠다.
마을 한쪽에 있는 슈퍼. 슈퍼에 들어가자 할머니 한 분만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혹시 나물 있나요?”
“으응?”
앉아있던 할머니가 강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모양.
“아니에요.”
강현은 고개를 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슈퍼가 그리 크지 않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야채 코너.
‘...작긴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네.’
허브 종류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바랄 순 없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읍내에 나갈 일이 줄어들 거다.
게다가 몇몇 품목은 읍내의 마트보다 저렴했다.
‘흙이 많이 묻긴 했지만.’
큰 상관이 없었다. 고작 테이블 다섯 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나물은···. 저깄네.”
명이와 곰취, 머위까지. 다양한 나물이 있었다.
“어?”
여러 나물을 담던 강현의 손이 멈췄다.
“이런 것도 있네.”
녹색 풀. 언뜻 보면 잡초처럼 보이는 녀석이었다.
강현은 그것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필요한 것을 다 고른 강현은 계산대로 갔다.
“다 해서 얼마인가요?”
“으응?”
고개를 갸웃하는 할머니를 향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얼마, 인가요!”
다른 채소들과 달리 나물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강현의 물음에 그제야 할머니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다섯 개.
‘...오만 원은 아니겠고.’
그렇다고 오천 원은 너무 저렴했다.
강현은 혹시 몰라서 천 원짜리 다섯 장을 꺼냈다.
“이거요?”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 할머니가 돈을 챙겼다.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슈퍼 밖으로 나온 강현은 고개를 돌려 슈퍼를 바라보았다.
“...할머님, 괜찮을까?”
누가 물건을 훔쳐 가도 모를 거다.
‘가격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볼을 긁적인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갈까?”
“컹!”
바구니에 나물을 담은 강현이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 * *
또 한 번의 언덕.
마을로 돌아온 강현은 매장으로 향하지 못하고 집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리했어.’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정말로 그 언덕을 자전거로 오갈 수 있는 건가?
할짝, 할짝.
씻지도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운 강현을 설기가 와서 위로해줬다.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샤워로 땀을 씻어낸 강현이 다시 매장으로 내려갔다.
먼저 나물을 삶았다.
여섯 가지의 나물. 그리고 주방 앞에서 설기가 서 있었다.
잔뜩 기대하는 눈빛.
그러나 강현이 삶은 나물들을 건네주자 실망으로 바뀌었다.
흔들리던 꼬리가 멈췄다.
“...”
빤히 강현을 올려다보는 설기. 마치, 자신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배신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번만 부탁해.”
강현의 말에 못마땅한 듯이 입을 가져갔다. 역시나 설기의 꼬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반이나 남긴 설기.
‘여기까지는 예상했어.’
강현은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무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간을 하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설기의 꼬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설기 없이 해야겠네.’
결국, 나물을 먹던 설기가 뒤로 돌아서 털썩 주저앉았다.
꼬리도 귀도 쳐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더 먹지 않겠다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시무룩한 설기를 위해 고기 하나를 구워주고는 다시 도마 앞에 섰다.
‘그래, 언제까지 설기만 기댈 순 없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했다.
“...어려울 건 없어. 모두 기억에 있는 재료들이야.”
기억을, 감각을 떠올리면 된다. 강현은 굳은 얼굴로 팬을 잡았다.
* * *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사 온 나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여러 식자재가 머릿속에서 엉키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엉킨 실오라기를 억지로 끌어당긴다.
강현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봄나물은 저마다 향이 강하다. 많이 섞는다고 해서 맛있어지는 게 아니었다.
‘향과 맛은 살려야 해.’
메인은 한 가지.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 하더라도 보조하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과욕은 오히려 균형을 무너트린다.
오일에 마늘만을 넣는다.
마늘의 색이 갈색빛으로 변하면 양파와 페페론치노를 넣어준다.
너무 강하지 않게 조금만.
그 뒤로 미리 해감해둔 바지락과 화이트 와인을 넣고 뚜껑을 닫아준다.
이것이 바자락의 비린 맛을 잡아줄 거다.
바지락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뚜껑을 연다.
처음에는 야채 삶은 물로만 하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그럼 나물의 향이 너무 강해.’
파스타 면과 따로 놀 것이다. 그렇기에 해산물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닭으로 끓인 육수와 달리 깔끔하니 나물의 맛을 해칠 일도 없었다.
그렇게 물이 끓어오르면 면을 넣는다.
면에 간이 배어들 수 있게 잘 졸여준다. 그리고 면이 거의 다 익었을 때, 나물을 넣는다.
나물은 원추리.
강현이 마지막에 골랐던 나물이었다.
이미 한 번 데친 후 찬물에 씻은 상태라 살짝만 데워준다는 느낌으로 섞어준다.
원추리의 녹색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접시에 담은 후 삶아서 썰어놨던 고사리로 위에 모양만 내준다. 색감과 함께 봄의 향을 덧씌워주는 것이었다.
이걸로 완성.
강현의 눈이 번뜩였다.
* * *
완성된 접시를 설기 앞에 놓는다.
설기는 뿌루퉁한 눈으로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컹.”
아까도 그리 말하지 않았냐는 물음. 이제는 안 속는다고 고개를 돌렸다. 고기로 달래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진짜 마지막.”
그러자 설기가 못 이긴 척 고개를 돌렸다.
조심스럽게 파스타를 먹는 설기.
강현은 설기가 먹을 때까지 숨을 죽였다.
“...어때?”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짖었다.
아까와는 다른 반응.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다행히 입맛에 맞는 듯 보였다.
그제야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완전히 안심 할 수는 없었다.
이제까지 중 가장 반응이 좋다는 것이지 고기를 먹었을 때보다는 약했다.
‘...취향이니 어쩔 순 없지만.’
아쉬웠다.
그러한 강현을 보던 설기가 번쩍 몸을 일으키더니 매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깐, 어디를···.”
순식간에 사라진 설기.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은 눈을 껌뻑였다.
너무 나물만 먹여서 토라진 건가?
얼떨떨해하던 강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접시를 치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설기가 나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알겠다고. 간다니깐.”
매장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또 한잔 걸쳤는지 코가 붉어진 이장이 보였다.
설기가 그런 이장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끌고 온 것이었다.
“어휴, 대체 뭔 일이여.”
매장 안을 두리번거리던 이장은 주방에 놓인 각종 나물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뭣이여. 진짜로 만든 것이여?”
“예. 혹시 평가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평가? 아, 좋지.”
이장은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테이블에 턱, 하니 앉았다.
설기가 어째서 자신을 끌고 왔는지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강현은 그런 이장을 놔두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평가.
스스로 이 말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도마 앞에 선 강현의 손이 떨렸다.
“...그래. 해보자.”
짧게 심호흡.
떨리던 손이 어느새 멈췄다. 그리고 강현이 팬을 들어 올렸다.
* * *
파스타를 담은 접시가 나오자 이장의 붉어진 코가 벌름거렸다.
“향이 좋아.”
그리 말한 이장이 강현을 보았다.
“알겠지만, 나도 미국 요리를 안 좋아혀.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할 테니 그리 알게.”
단호하게 말한 이장이 곧 머쓱해졌는지 다시 말을 보탰다.
“뭐, 그렇다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다 그 짝을 위해서 그러는 거니.”
“알고 있습니다.”
헛기침한 이장이 다시 접시를 보았다.
“어디, 민호네 색시나 상후가 그렇게 자랑하던 실력 좀 볼까?”
포크로 면을 뜨는 이장. 곧 원추리와 섞이 파스타 면이 이장의 입으로 들어갔다.
“음?”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한번 떠먹는 이장.
강현은 그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곧 이장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어떻습니까?”
조심스러운 강현의 물음. 그러나 이장은 굳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이럴 게 아니지.”
“이장님?”
“잠시만 기다려. 이것도 이대로 놔두고!”
그리 말한 후 매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강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런 이장이 떠난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야···.”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떠난 이장이 돌아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떠날 때와 달리 무언가를 들고 왔는데, 하얀 병의 정체는 바로 막걸리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파스타를 먹은 후 막걸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크으. 좋구먼.”
감탄을 내뱉는 이장을 보며 강현은 다시 물었다.
“괜찮나요?”
“보면 몰러? 술이 땡기면 그게 맛있는 거지!”
안도감이 올라왔지만, 강현의 원하는 대답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장은 포크로 한 입 더 떠먹고는 입을 열었다.
“봄이여.”
“예?”
“미국 국수에서 봄내가 물씬 풍긴다고. 이거라면 그 양반도 아무 말 못 하겠지. 이것도 맛없다고 하면 내가 따질 테니 걱정하지 마러.”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강현이 봤던 박씨 할머니는 맛없다고 말할 분 같지는 않았다.
그런 강현을 보며 이장이 혀를 찼다.
“아니, 실력이 이리도 좋으면서 그 짝은 너무 걱정이 많어. 그래서 어디 편히 살 수 있겠나. 때로는 놓아줄 줄도 알아야 혀. 그래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생기는 것이고.”
그리 말한 이장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비어있는 그릇.
“이번 일만 해도 그려. 박씨 할멈이 조금 깍쟁이 같긴 해도 사람을 싫어하진 않어. 그럴 것 같으면 잔치에도 안 왔겄지.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 것이여.”
이장이 몸을 일으켰다.
“뭐, 그래도 마을에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건, 기특혀네. 열심히혀. 이번에는 나도 도와줄 터니.”
이장은 그리 말하고는 매장 밖으로 나갔다.
이장이 떠나자 강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을에 어울리려고 노력한 건 아닌데.”
이장의 오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기가 짖었다.
“컹! 컹!”
“...같은 거라고?”
“컹!”
위아래로 움직이는 머리. 강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문뜩, 이장이 남긴 말을 떠올랐다.
‘이번에는 나도 도와줄 터니?’
맛을 본 걸 이야기하는 건가?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테이블과 주방을 다 정리했을 무렵 방울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문을 연 건 강현도 잘 아는 이였다.
박씨 할머니.
박씨 할머니는 안을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뒤에서 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여 들어가지 않고 뭐혀?”
“오자는 곳이 여기였어? 이 노친네가 대낮부터 뭘 잘못 먹었나. 왜 바쁜 사람을···.”
“바쁘긴 뭐가 바뻐. 맨날 방안에서 궁상이나 떨고 있었으면서.”
결국, 이장의 등쌀에 박씨 할머니가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