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8화 (1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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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니 한국 음식도 먹어야지.

박씨 할머니는 매장을 훑어보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래서 뭔 일인데?”

“볼 일은 내가 아니라 저 짝이 있어.”

이장의 말에 박씨 할머니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저 총각이? 왜?”

박씨 할머니의 시선을 받은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끌려온 게 분명했다.

강현이 머뭇거리자 이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긴 왜야. 전에 맛없다고 그냥 갔다며? 그게 마음에 걸렸다잖어.”

“...내가 언제 맛없다고 했어?”

박씨 할머니는 이장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강현을 보았다.

“내가 입이 짧아. 그러니 신경 쓰지 말아.”

그리 말하고 나가려는 박씨 할머니를 이장이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먹어 봐. 그래도 생각해서 만들었다잖어. 좋아하는 나물까지 넣어서.”

“예. 드시고 가세요.”

박씨 할머니는 이장의 손에 이끌려서 못 이긴 척 자리에 앉았다.

강현은 그런 박씨 할머니를 놔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이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요즘 젊은 친구 같지 않게 참 성실해.”

이장의 말에 박씨 할머니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가 떨어졌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이기 때문에 몸에 익었다.

박씨 할머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를 바라보았다.

노란 면과 싱싱한 녹색 빛의 원추리. 그리고 소복하게 올라온 갈색 고사리.

소박해 보이지만 정성이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먹어 보고 솔직하게 말해줘. 맛없으면 이래서 맛이 없다. 괜히 거짓부렁 할 생각 말고. 그게 저 짝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지.”

이장의 말에 강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까와 말이 달랐지만, 상관없었다.

“예.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강현은 접시를 내려놓고 자리를 피해줬다.

그렇게 강현이 떠난 뒤에도 박씨 할머니는 뚱한 표정으로 파스타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혀? 음식 놓고 영감 제사라도 지내는 겨?”

“...이 노친네가 말을 해도 꼭.”

박씨 할머니가 이장을 노려보다가 포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 입.

“...!”

박씨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그런 박씨 할머니를 보며 이장이 히죽 웃었다.

“어뗘? 괜찮지?”

“...”

“왜? 별루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나쁘진 않네.”

박씨 할머니가 눈을 흘기고는 그리 말했다. 그러자 이장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하여튼, 솔직하지 못하단 말이여.”

박씨 할머니는 못 들은 척 다시 포크를 움직였다. 입 안에 들어갈 때마다 나물의 싱그러움과 바다의 짭조름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만 해도 내키지 않았다.

나물은 무쳐서 먹어야 본연의 맛이 가장 살아난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구먼.’

나물과 해산물, 면이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소한 맛.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이장은 그런 박씨 할머니에게서 시선을 떼고 매장을 둘러봤다.

“여기가 없어졌을 때, 형님이 실망을 많이 했지.”

그러자 박씨 할머니의 포크가 멈췄다.

“밥맛 떨어지게 죽은 사람 이야기는 왜 꺼내?”

날카로운 목소리에도 이장은 태연스럽게 대꾸했다.

“일 년 했으면 충분혀.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겨? 그러면 저승 간 형님도 편히 못 지낼 겨.”

“...”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고. 그만 자기의 삶을 살어.”

이장의 말에 박씨 할머니는 한동안 입을 닫고 있다가 다시 포크를 움직였다.

그 모습에 이장도 그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다.

대신 강현을 보며 화제를 돌렸다.

“저 짝이 사람이 좋아. 보니깐 슈퍼의 나물을 싹 쓸어왔더라고. 상관없는 늙은이들까지 챙기려고 하고.”

이장의 말에 박씨 할머니는 강현을 힐끗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꼭 그것만은 아닐걸.”

“응?”

이장이 돌아봤으나 박씨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포크를 들어 올렸다.

박씨 할머니는 강현의 모습에서 절실함을 보았다.

단순히 어른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걸 고려해도 사람이 좋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박씨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자 이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먹다 말고 어디를···.”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 이장이 눈을 껌뻑였다.

강현에게 다가간 박씨 할머니가 주머니를 꺼냈다.

“얼마야?”

“아뇨. 이번에는 제가 대접하는 거라···.”

박씨 할머니의 눈썹이 올라갔다.

“장사하겠다는 놈이 그러면 어떻게 해!? 받을 건 받아야지. 네 음식까지 가치를 없게 할 거야?”

따끔한 호통에 강현이 움츠러들었다.

얼떨결에 금액을 이야기하자 박씨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꺼냈다.

그리고는 이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노친네한테도 제대로 받아! 함부로 퍼주는 거 아니야.”

그리 말한 박씨 할머니가 문으로 향했다.

그런 박씨 할머니를 보며 강현이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봐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사라진 박씨 할머니.

뒤늦게 이장이 강현의 곁으로 왔다.

“하여튼, 나이를 먹어도 저 성격은 바뀌지 않어.”

그리 말한 이장도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꺼냈다.

“아뇨. 정말로 괜찮습니다···.”

“받어. 저 양반이 한 말이 맞어. 그리고 안 낸 걸 알면 나한테까지 성질을 낼 거여.”

이장은 그렇게 강현의 손에 돈을 건넨 후에 매장을 떠나갔다.

강현은 받은 돈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빈 그릇으로 향했다.

“...성공, 인가?”

기쁜 마음도 있지만 아직 얼떨떨했다.

그리고 아쉬움.

강현이 만든 파스타가 상상했던 맛을 냈는지 궁금했다.

지금의 강현으로서는 알기 힘들었다.

‘...언젠가, 알 수 있겠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올 거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천장을 응시하는 설기.

천장에 뭔가가 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꼭 딴청 하는 것 같네.’

강현은 의아해하며 설기를 불렀다.

“설기야.”

“...”

대답 없는 설기.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박씨 할머니와 이장이 한 말 때문이었다.

피식, 웃은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기는 괜찮아. 일을 도와줬잖아.”

그제야 설기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갸우뚱하는 머리.

진짜?

그리 묻는 것처럼 보였다. 강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였다.

“그리고 가족이잖아.”

강현의 말에 설기의 귀가 올라갔다.

애교를 부리듯 강현의 발에 몸을 비비는 설기.

그렇게 오늘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 * *

“읏짜.”

쿵, 가방을 내려놓자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 전부네.”

강현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수풀 위에는 평소보다 많은 짐들이 놓여있었다.

이제 매장 오픈이 삼 일 남은 시점.

강현은 설기와 함께 이세계를 찾아왔다.

매장을 연다고 해서 못 쉬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설기도 있으니.’

요 며칠 나물 파스타만 먹였더니 강현이 주는 걸 의심부터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짐과 장비를 가득 챙겨온 것이었다.

‘이것들은 할아버지 댁에 놔둬야겠네.’

매번 들고 오는 것도 일이었다.

강현은 배낭을 짊어진 채로 가방을 들어 올렸다.

저절로 찌푸려지는 인상.

‘진짜, 무겁긴 하네.’

그때, 갑자기 무게가 가벼워졌다.

“응?”

고개를 돌리자 설기가 가방을 받치고 있었다.

“컹! 컹!”

밑에서 빨리 가자고 짖는 설기를 보며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그래, 고마워.”

그렇게 강현과 설기는 걸음을 옮겼다.

설기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숲을 걷는 건 쉽지 않았다.

금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결국,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자 설기가 다가왔다.

“끼잉, 낑.”

괜찮아?

위로하듯 강현의 뺨을 핥았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오늘은 이 근처에서 지내자.”

도저히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돌아갈 것도 생각해야 했다.

식량을 먹으면 조금 가벼워지긴 했지만, 장비의 무게는 어쩔 수 없었다.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다가 배낭에 기댔다.

짐이 가득 들어있는 배낭만큼 기대기 좋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쉬고 있으니 다시 설기가 돌아왔다.

“컹! 컹!”

“따라오라고?”

강현의 예측이 맞았는지 설기가 제자리에서 돌았다.

‘충분히 쉬었으니.’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설기의 뒤를 따랐다.

험난한 숲을 요리조리 지나가는 설기.

곧 나무들이 사라지고 자그마한 공터가 나타났다.

“컹!”

공터 앞에선 설기가 강현을 향해 짖었다.

어때하고 묻는 설기.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네.”

강현의 말에 설기가 기쁜 듯이 공터를 뛰며 돌아다녔다.

바닥에 풀이 적고 돌 때문에 울퉁불퉁하긴 했지만,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인 공간은 제법 분위기가 있었다.

강현은 바로 배낭을 내려놓고 장비를 꺼냈다.

텐트와 타프, 매트와 침낭, 그리고 의자.

여기까지는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강현은 배낭 깊숙한 곳에 깔린 물건을 꺼냈다.

“얘라면 충분하겠지.”

바로 4인용 코펠이었다. 냄비와 팬의 크기도 전보다 컸다.

백패킹에 어울리지 않는 크기.

그에 맞춰서 그릇과 식기도 새로 주문했다. 새로운 장비를 본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예전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개시.

강현은 이어서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얼음물과 아이스팩이 들어있는 가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스박스나 다름이 없었다.

여기에 비장의 재료가 들어있었다.

“오늘은 양식이 아니야.”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이 피식 웃었다.

설기가 양식이 뭐고 한식이 뭔지 알 리가 없었다.

강현은 가방에서 네모난 통을 꺼냈다.

그리고 통 안에 든 붉은 빛.

김치.

어제 박씨 할머니가 주고 간 묵은지였다.

함부로 퍼주지 말라고 하셨으면서 아침 일찍 묵은지를 머리에 이고 왔다.

“미국 요리만 할 줄 알지 이런 건 없지? 매번 느끼한 것만 먹으면 탈 나. 한국 사람이니 한국 음식도 먹어야지. 뭐든, 뿌리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해.”

그렇게 쏘아붙이고 떠나갔다.

뚜껑을 열자 잘 익은 김치들이 보였다. 호기심에 다가왔던 설기가 안을 보고 실망했다.

“끼잉.”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설기. 그런 설기를 보며 강현이 피식 웃었다.

“기다려 봐. 이걸로 진짜 맛있는 걸 해줄 테니.”

강현은 버너를 설치하고 위에 냄비를 올렸다.

그리고는 묵은지를 냄비에 깔았다.

큼지막하게 썬 양파와 통후추, 페페론치노를 올린다.

다음으로 설탕, 고춧가루, 간장을 넣은 소스를 위에 뿌리고 소주를 살짝 부어준다.

소스는 미리 만들어왔다. 많은 양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치의 맛이었다.

강현은 절반이 넘게 남은 소주의 뚜껑을 닫았다.

‘남은 건 이따가 마시면 되겠지.’

이후 물을 김치가 잠길 정도로 부어준 후.

마지막 메인인 돼지고기를 올린다.

강현이 삼겹살을 꺼내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꼬리가 다시 살랑살랑 움직였다.

냄비의 뚜껑을 덮은 강현이 버너에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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