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화 (1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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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쫓아와야 한다?

“저분은?”

아까 인사를 나눌 때는 없던 할머니였다.

“아, 박씨 할멈?”

강현의 시선을 눈치챈 이장이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런 시끄러운 자리를 싫어하는 양반이여.”

이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민호와 수진을 보니 어색하게 웃었다.

“...나쁘신 분은 아닌데, 낯을 가리세요.”

“그렇군요.”

강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셋의 표정을 보니 그러한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장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작년에 남편이 죽었어. 그전까지 그래도 곧잘 나왔는데 요즘은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그래서 억지로 불렀건만···. 에잉.”

이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참. 아무튼 그 짝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강현은 시선을 떼고 술잔을 홀짝였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나 할머니의 뒷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상실감.

강현도 느껴본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미각을 잃어서 요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감정.

물론 강현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일평생을 함께해오던 동반자를 잃었으니 강현이 느낀 상실감보다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이장의 말대로 강현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강현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강현이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잔치가 끝나자마자 오픈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장비와 홀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매장의 문이 열렸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들어온 노인.

할머니는 청소 중인 강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안 열었어?”

“예. 금요일부터 열어요.”

박씨 할머니는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는 천천히 매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를 보며 못마땅한 듯 입을 열었다.

“저 낡은 건 버리지. 왜 갔다 썼어?”

“아직 쓸만해서 놔뒀어요. 마을 분위기와도 어울려서요.”

강현의 말에 박씨 할머니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알았어. 일 봐.”

퉁명스럽게 말하고 몸을 돌리는 박씨 할머니.

강현은 그런 박씨 할머니를 붙잡았다.

“오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장의 이야기를 들어서일 거다.

그런 박씨 할머니가 일면식도 없는 강현의 매장까지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다.

“...안 열었다며?”

“이미 재료는 있어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강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박씨 할머니가 테이블에 앉았다.

가운데를 놔두고 구석진 자리.

“그래서, 여긴 뭐 파는데?”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강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양식을 팔아요. 파스타나 피자 같은 것들이요.”

“파스타가 미국 국수 말하는 거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줘봐.”

강현은 정리하던 걸 옆으로 치웠다.

‘마침 잘 되었어.’

돈가스와 햄버거 때와는 달랐다. 강현은 아직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토마토소스나 크림소스, 오일이 있는데 어떤 게 좋으세요?”

“...뭐 이리 많아? 그냥 앞에 말한 걸로 줘.”

“예.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강현은 홀에 있는 설기를 힐끗거렸다.

‘홀 좀 부탁해.’

강현의 신호에 설기가 몸을 일으키더니 박씨 할머니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갔다.

털썩, 박씨 할머니의 옆에 자리 잡는 설기. 그러자 무뚝뚝했던 박씨 할머니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는 박씨 할머니.

박씨 할머니의 눈빛은 강현이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역시나 요리를 먹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었다.

그를 확인한 강현은 시선을 돌렸다.

손을 씻은 후 불을 켠다.

보글보글 끓자 소금과 식용유를 살짝 넣어주고 바로 면을 삶는다.

그리고 옆에는 소스를 준비했다.

토마토소스에 치킨 스톡이 아니라 야채 끓인 물을 넣는다.

토마토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치익.

주걱이 소스를 휘젓자 진한 토마토 향이 코를 자극했다.

끓어오르기 시작한 소스에 익은 면을 넣는다. 그리고 면과 소스가 잘 섞이도록 팬을 돌려준다.

토마토소스가 졸아지면 긴 나무젓가락으로 한 바퀴 면을 말아준 뒤, 접시 위에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내려준다.

그 위에 올리브오일과 바질 한 조각을 올린다.

뽀모도르 파스타.

토마토란 뜻이었지만, 토마토소스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파스타.

‘좋아. 완벽해.’

강현은 접시를 들고 홀로 나갔다.

“토마토 파스타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테이블 위에 파스타가 올라갔다. 그러나 박씨 할머니는 선뜻 손을 뻗지 않고 있었다.

“포크 말고 젓가락으로 준비해드릴까요?”

“됐어.”

박씨 할머니는 고개를 젓더니 포크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이 자리를 피해줬다.

식사 중에 옆에 계속 서 있는 것도 부담일 거다.

그렇게 주방에서 정리하고 있자 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갈게. 얼마여?”

강현이 고개를 돌리자 몸을 일으키는 박씨 할머니가 보였다.

‘벌써?’

음식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강현은 서둘러 홀로 나갔다.

아직 반 이상 남은 파스타.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셨나요?”

“됐으니 어서 계산이나 해줘.”

강현이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억지로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고는 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남게 된 강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파스타 접시를 바라보았다.

* * *

“...뭐가 문제지?”

새롭게 만든 파스타. 그러나 설기의 반응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흔들리는 꼬리가 설기의 기분을 나타내줬다.

“컹! 컹!”

“맛있다고?”

“컹!”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최고라고 할 순 없었지만 무난한 흔들림.

“...그래, 고마워.”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모든 이의 입맛에 맞출 순 없었다.

사람 중에는 양식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강현 역시 스스로 확신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답을 모르면 물으면 돼.’

예전처럼 혼자만 삭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정말로 매장 오픈이 코앞이었다.

결국, 강현은 파스타를 내려놓고 매장 밖으로 나갔다.

* * *

마을 중턱에서 쉬고 있는 이장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정자에 앉아서 노인분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현이 다가가자 이장이 반색했다.

“왔어? 그 짝도 한잔할래? 파전이 아주 기가 막혀.”

“아뇨. 그보다 잠시 괜찮을까요? 여쭤볼 게 있어요.”

“그래? 잠깐만 있어.”

강현의 표정을 본 이장이 노인들에게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강현은 이미 안면을 익힌 노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이장을 따라나섰다.

“박씨 할멈이 갔었다고? 그 양반이 웬일이래.”

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이장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형님이 자주 가긴 했었지.”

“형님이요?”

“그 양반 남편. 다방에 자주 갔었어. 맨날 거기서 죽치고 앉아있으니 그 양반은 싫어했지만.”

다방. 그제야 박씨 할머니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현의 매장이 있는 곳은 원래 다방을 하던 곳이었다.

죽은 할아버지와 연이 있던 장소였다.

역시나 강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 일이 아니어도 입맛이 까다로운 양반이니.”

이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는 위로하듯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짝 실력이 좋다며? 민호네 색시나 상후도 그리 말하잖아. 모든 사람을 어찌 만족시키나? 자신 있게 혀.”

이장의 말이 맞았다. 그를 알면서도 쉽게 물러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박씨 할머니가 아니라 강현의 문제였다.

“...그럼, 혹시 할머님께서 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을 아시나요?”

실력이 아니라 기호의 문제라면?

강현의 물음에 이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곧 실소를 흘렸다.

“젊어서 그런지 열정이 대단혀네. 아주 보기 좋아.”

그리 말한 이장이 까칠한 수염을 쓸어내렸다.

“고기도 싫어하는 양반이라. 어디 보자···.”

생각에 잠겼던 이장이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나물을 좋아혀. 전에는 직접 산에 나가서 나물을 캐오고 그랬지. 그리고 전도 좀 먹을 거여.”

“어떤 나물요?”

“나물이 나물이지 뭔, 나물이여. 아, 봄에 많이 캐긴 했어.”

이장의 말에 강현의 눈이 빛났다.

“감사합니다!”

강현은 이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강현을 향해 이장이 손을 들어 올렸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쉬엄쉬엄 혀!”

돌아가는 강현의 옆으로 하얀 털 뭉치가 쫓아왔다.

뒤늦게 자리로 돌아간 이장의 눈이 커졌다.

“아니, 전이 다 어디 갔어?!”

수북하게 쌓여있던 전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러게?”

“방금까지 있었는데.”

노인들도 어리둥절했다.

* * *

“나물이라.”

매장으로 돌아온 이장에게 들은 걸 떠올렸다. 고기도 싫어하신다고 했다.

머릿속으로 사찰 음식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강현의 매장은 어디까지나 양식당이었다.

“...맞게 개량하면 돼.”

그러나 문제는 있었다.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

‘우리의 비평가께서는 야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지.’

토마토 파스타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샐러드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각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

똑똑한 설기라면 맛을 구분할 거다.

‘하지만 그것도 먼저 재료가 있어야지.’

나물이 필요했다. 읍내까지 나가야 하는 걸까?

그렇게 고민하던 강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매장 밖에 놓인 자전거.

오늘 아침에 이장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모처럼이니 한번, 가볼까?”

옆 마을. 강현의 시선에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강현은 설기의 입 주변이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걸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 *

페달을 밟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천천히 변해가는 전경. 신이 난 설기가 자전거 옆을 지나쳤다.

‘...이런 것도 괜찮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뒤를 따르면서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얼마 가지 않아서 사라졌다.

“허억.”

거친 숨이 올라왔다. 언덕길.

먼저 올라간 설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오르는 걸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무슨 언덕이···.’

최근 산에 자주 올라가서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강현이 자전거를 끌며 언덕을 오르자 위에 올라갔던 설기가 다시 내려왔다.

“낑, 끼잉.”

“...괜찮아.”

강현을 위로하는 설기. 단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을 뿐이다.

강현의 발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올라가는 설기.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후에나 강현은 언덕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내리막길.

그 끝에는 마을 하나가 보였다. 작긴 했으나 강현이 사는 마을과 비교할 것은 아니었다.

바람이 땀에 젖은 강현의 머리카락을 어지럽혔다.

강현은 언덕 위에서 다시 안장에 앉았다.

“이제 잘 쫓아와야 한다?”

고개를 갸웃하는 설기를 보면서 강현이 페달을 밟았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자전거.

“컹! 컹!”

뒤에서 설기의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옆에 하얀 털 뭉치가 따라붙었다.

짧은 다리가 보이지도 않는다.

강현은 자신을 추월하는 설기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페달을 굴리지 않아도 자전거가 나갔다.

강현은 브레이크에 손을 올린 채 바람을 만끽했다.

희미하게만 보이던 마을이 점점 가까워져 갔고 강현의 땀과 피로도 바람에 씻겨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브레이크를 당겼다.

먼저 달려가던 설기가 뒤늦게 강현을 보고는 속도를 늦췄다.

이윽고, 완전히 멈춘 자전거 옆으로 뛰어와서 빙그르르 돌았다.

재밌어! 또 하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볼일 끝나고.”

어차피 장을 본 후에 또 언덕을 넘어야 했다.

‘...저 언덕을 말이지.’

힐끗, 뒤를 돌자 높게 솟은 언덕이 보였다. 내려올 때는 신났지만 다시 오를 걸 생각하니 아찔했다.

강현의 말에 설기는 아쉬운 표정으로 강현의 곁에 붙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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