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새아가 (70)화 (70/282)

<70화>

루시엘은 에메랄드를 쥐고 자신의 마나를 한번 흘려 보았다.

놀랍게도 반응이 있었다.

루시엘이 만든 에메랄드는 허공에 살짝 떠올랐다가 이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반면에 일반 에메랄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신기하다.’

루시엘은 제가 만든 에메랄드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빨리 에리카를 내 편으로 만들면 좋겠다.’

보석에 숨은 힘의 비밀을 풀고 싶으니까.

동생이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동생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가 없었다.

고민하던 루시엘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녀를 찾아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정리한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할아버지 서재에 있겠지?

루시엘이 방에서 나오자 베시가 물었다.

“아가 마님!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역시 딸기지요?”

“응. 딸기가 제일 좋아!”

베시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로즈도 다가와서는 물었다.

“그럼 가장 좋아하는 색은요?”

“……좋아하는 색?”

“네.”

“……잘 모르겠어. 색깔은 다 곱고 예쁜걸.”

“하긴 우리 아가 마님은 우유처럼 뽀얀 피부라서 어떤 색이든 잘 받…….”

그러자 옆에서 베시가 쉬잇, 하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면서 로즈에게 눈치를 주었다.

루시엘은 두 사람이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로즈가 내미는 마카롱이 든 상자를 받았다.

“아무리 시내를 샅샅이 뒤져도 솜사탕 파는 곳이 없었어요. 대신에 이 마카롱이 정말 맛있대요. 영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친구가 없어서인지 루시엘은 다른 영애들이 무얼 좋아하는지를 듣고 있으면, 별세계 이야기 같았다.

“정말?”

루시엘이 상자를 열어 보자 알록달록한 색색의 마카롱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카롱 속에는 크림까지 가득 들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

“하나만 드셔 보세요.”

“앗, 그럼 같이 먹자.”

“저희 먹을 것도 사 왔답니다. 가져가셔서 드세요.”

“응…… 고마워! 로즈.”

루시엘은 마카롱 상자를 들고는 총총걸음으로 할아버지 서재와 통하는 응접실로 향했다.

열린 문틈으로 안이 보였다. 할아버지 대신 에리카와 그녀보다 어린 소년이 보였다.

에리카는 서류를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옮겨 적고 있었고, 소년은 옆에서 따분하단 표정으로 앉아 마나 공을 만들어서 손안에서 회전시키고 있었다.

루시엘 또래로 보이는데 실력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에리카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푸른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구름 문양이 그려진.

그렇다는 건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라는 뜻인데.

루시엘이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 순간, 소년이 슬쩍 다가와서 내다봤다. 남색 머리칼의 소년은 눈가에 눈물처럼 점이 콕 박혀 있었다. 보라색 눈동자가 루시엘을 보곤 약간 커졌다.

“……?”

“넌 누구?”

“에레스, 왜 그래? 누가 오셨어? 아…… 루시엘 아가씨?”

루시엘을 본 에리카가 놀라면서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에리카. 안녕하세요.”

루시엘이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귀엽게 웃었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볼은 밀가루 반죽처럼 쭉 늘어날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루시엘 아가씨. 그런데 어쩌지요? 오늘 길리아트 님께서는 베르가 자작님을 만나러 가셨는데.”

“아.”

루시엘도 잘 알고 있었다. 베르가 자작만 만났다 하면 반나절은 있다가 오시곤 한다는 걸.

“오늘은 할아버지를 뵈러 온 게 아니에요. 에리카랑 이거 나눠 먹으려고 왔어요.”

루시엘이 자기 덩치만 한 마카롱 상자를 내밀자, 에리카가 얼른 받아 들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에레스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루시엘을 바라보았다.

“누나, 얘 누구야?”

“에레스, 버릇없이 굴면 못 써.”

에리카가 얼른 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루시엘이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자, 에리카가 서둘러 설명했다.

“루시엘 아가씨. 이 아이는 제 동생 에레스예요.”

“그때 말했던 에리카의 동생이구나. 반가워. 나는 루시엘.”

“난 에레스.”

또래인 것 같아서 루시엘은 생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짧게 대꾸한 소년에게 에리카가 눈총을 주었다. 에레스는 루시엘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별안간 깜짝 놀란 듯 되물었다.

“자, 자, 잠깐만! 설마…… 너가!”

“응?”

“에레스, 존댓말.”

“네가 우리 마탑주님 제자…… 세요?!”

“응.”

“와, 말도 안 돼.”

에레스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왜?”

“아, 아무것도 아냐.”

에레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차기 마탑주가 되기 위해서 길리아트 님의 제자가 되려고 했는데. 그는 제자를 들이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거절당했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말랑한 게 나타나서는 길리아트 님의 제자라니 억울했다.

“……너처럼 조그만 애기가 어떻게 제자가 됐어?”

“에레스, 루시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해.”

“……괜찮아요. 또래인 것 같은걸. 길리아트 할아버지께선 내 마력이 강하고 순수하다고 해 주셨어.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마력이 맑다고? 그게 뭐야. 나도 마력 맑은데…… 그치, 누나?”

“그건 아닌 것 같아.”

에리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칫, 뭐가 아니야.”

“마력이 맑은 사람은 눈이 투명하게 빛나거든. 루시엘 아가씨 눈을 봐. 보석 같으시잖아.”

에리카의 말에 에레스가 놀라서 루시엘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하긴 정말 신기하긴 했다. 이렇게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진짜 별인 줄. 눈에 뭔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어.”

* * *

볕에 그을렸지만 한결 좋아 보이는 얼굴로 길렌 백작이 주군을 찾았다. 루이비드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지며 물었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길렌 백작이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그래, 미스릴의 양은 얼마나 되나?”

“……더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동굴의 깊이가 어마어마합니다. 황실에 넘겨준 에메랄드 광산의 채굴권 기한이 약 1년이었지요?”

“그랬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쪽의 엄청난 이익입니다.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이게 전부 아가 마님 덕분이지요!”

길렌 백작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기뻐했다. 공작은 그렇게 좋은 티를 내는 백작이 못 미더웠다.

“어디 가서도 그런 표정 짓지는 말고.”

“옙. 물론입니다.”

“황성과 거래를 진행한 이상, 알 놈들은 알 테지만.”

“동굴 근처에 아예 암막 실드를 쳐 두었으니, 엿보려고 해도 엿볼 수 없을 겁니다.”

“잘하고 있다. 계속 진행해.”

“예.”

처음 다루는 광물이니, 갑옷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 군사 기밀을 발설하는 자는 영지에서 추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새어 나갈 수 있는 것이 정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도리어 먼저 미끼를 던지는 방법을 택했다.

거대한 정보 조직 길드 ‘호크아이’의 가장 오래된 상위 고객이 바로 벨슈타인이었다.

특히나 불법 사업으로 뒤가 구린 카빌 후작가에서 벨슈타인의 정보를 요구하자 그 즉시, 공작에게도 보고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빌 후작이 벨슈타인에서 현재 벌이는 불법 고리 대금업도 루이비드는 꿰고 있었다.

예의 의상실에서의 작은 사건마저 있었으니 카빌 후작가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벨슈타인의 내부 기밀과 동태를 면밀하게 알아내려고 하니, 그 저의가 무척 의심스러웠다. 조직원에게 거대한 자금까지 써 가면서 말이다.

그런 카빌 후작이라면 프란델 호수 건은 크게 관심을 보일 거라 쉽게 예상이 되었다.

카빌에게 정보를 흘리는 것에 대해서는 황실에서도 허락했고 말이다.

황실 입장에서도 카빌 후작은 주변을 배회하는 거슬리는 파리 같은 가문이었다.

―역시나 카빌 후작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정보 조직원이 고했다.

“알았다. 이제 슬슬 움직이겠군.”

카빌 후작이 손을 뻗어 올 경로는 정해져 있다. 움직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벨슈타인 영지 내에서 그런 일을 벌인 거겠지.

공작이 통신구를 껐다. 안 그래도 기다리기 지루하던 차였다.

그는 서늘한 웃음을 베어 물며 중얼거렸다.

“그 더러운 낯짝을 드디어 보겠군.”

* * *

“에레스는 무슨 맛 좋아해? 초콜릿? 사과?”

“……초코.”

역시 남자애들은 초콜릿을 좋아한다니까.

루시엘이 해맑게 웃으면서 초콜릿 마카롱을 자그만 손으로 집어서 에레스에게 내밀었다. 에레스는 일단 마카롱을 받아는 들었지만 못 미더운 듯 이리저리 살폈다.

루시엘은 마카롱 박스를 들어 에리카에게 보여 주면서 물었다.

“에리카는 무슨 맛 좋아해요?”

이런 고급 디저트를 접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탑에서 근무하면 봉급이 나왔지만, 고급 디저트를 먹어 볼 정도로 그녀의 형편은 여유롭지 않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가난한 가문 출신의 고아였다.

에리카는 잠시 고민했다. 무엇보다 마카롱을 권하는 루시엘의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했다.

“어…… 저는 이 노란색으로 할게요.”

“아, 그건 커스터드 크림 맛이래요.”

루시엘이 대답하곤 자신은 분홍색 마카롱을 집었다. 역시 딸기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앙, 하고 입안에 넣자 바삭하고 쫀득하게 씹히는 머랭의 식감과 어우러지는 달콤하고 꾸덕한 크림의 조화란 최고였다.

루시엘과 에리카가 마카롱을 오물오물 씹으며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너무 맛있어.”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

“에레스도 얼른 먹어 봐.”

에레스도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마카롱을 아그작 씹자, 놀랄 만큼 달콤한 초콜릿의 향연에 나머지도 홀랑 입안에 넣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마카롱을 하나 더 집어 먹었다.

공작가의 아이라더니, 이런 고급 디저트를 늘상 먹는 모양이었다.

달콤한 디저트 덕분일까.

어색해진 분위기는 한결 풀어졌고, 에리카의 입가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루시엘 아가씨 덕분에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뭐, 잘 먹었어.”

여전히 툴툴대긴 해도 에레스도 한결 친근하고 다정하게 굴었다. 루시엘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맛있는 건 모두에게 통한다.’

“두 사람이 잘 먹어서 다행이에요.”

마카롱을 계기로 대화를 나누며 루시엘은 에레스와 에리카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에레스는 올해 열두 살, 에리카는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에리카는 마탑의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반면, 에레스는 실력을 쌓으면서 간단한 마법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놀랍게도 그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벌써 3서클 마법사이자, 속성을 발현한 마법사라고 해서 루시엘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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