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6화 (226/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6화

EP 35-향수병(5)

「초인노조 폭력시위…… 11명 사망, 참극.」

「폭주도 심신미약? 유가족…… ‘오열’」

「최초 공격자이자 최초 사망자로 알려진 헌터 K씨…… 미등록 헌터로 확인. 정부의 관리 소홀인가?」

헌터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11명이 죽고 42명이 다쳤다.

하물며 대낮에 부산 대로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 버스가 날아다니던 모습이 이미 전국에 생중계로 퍼졌다.

시위는 진압되었으나 여론은 진정되지 못했다. 전국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여론, 언론, 인터넷, 국회…….

당연히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등록 헌터가 폭주했다고 초인지원청 책임이라고요? 헌팅 안 하는 헌터는 등록할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 방법도 없고요. 본인이 능력 안 쓰고 살겠다는데, 강제로 끌고 와서 등록시킬 순 없잖아요?”

“청장님, 진즉 전 국민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치안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인적자원을 왜 관리하지 못했냐는…….”

“이보세요. 아직 사망자도 추산을 못 했습니다. 몇 년이나 지난 지금도 심심하면 수도권에서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데, 전 국민 전수조사를 어떻게 합니까? 비용은 또 얼마나 들고요? 또 강제로 시켰으면 자기들이 합니까? 인권침해 소리만 나오지?”

“그래도 김주영 씨 유가족들은 초인지원청이…….”

“이쯤 합시다. 아직 피해 추산도 안 끝났는데 인터뷰해서 뭐하나……. 괜히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마시고, 나중에 따로 기자회견 하겠습니다.”

“청장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아, 그만하라니까!”

* * *

상황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충돌의 책임을 찾기 힘든 탓이었다. 실제로 상황이 굉장히 모호했다.

1. 경찰이 먼저 헌터를 자극.

2. 자극받은 헌터가 폭주.

3. 경찰 중상.

4. 진압 과정에서 헌터 사망.

5. 충돌.

경찰 잘못이라는 말도 있고, 헌터 잘못이라는 말도 있다. 경찰이 빌미를 제공했으나, 헌터가 선공했고, 또 사살은 경찰이 먼저 했으니까.

한편, 자발적인 비현역&미등록 초상능력자가 헌터 아카데미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닌 점을 들어, 정부의 관리 소홀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여러 가지 쟁점이 부딪히고 있었다.

경찰이 과잉진압한 것인가, 폭주한 헌터의 잘못인가, 또 폭주는 심신미약에 해당하는가 등등…….

현역 정치인인 나조차도 전부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고, 불행하게도 초상능력에 대한 법은 아직 성숙하게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덕분에 상황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다들 취향껏 편을 갈라 싸웠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으니까.

그러나 사회가 이 꼬락서니로 흘러가는 건 분명히 정부 책임이었다.

“……도저히 덮을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닙니다.”

지금까진 언론사 단속하면서 대통령 임기 끝나는 것만 기다렸지만, 나는 결국 이번 사태가 정부 손에서 떠나갔음을 인정해야 했다.

“어차피 임기 말이라 개혁안도 통과 못 시킵니다.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우리 앞길도 막막해질 겁니다. 정부 실책 인정하고 책임자 뽑아서 경질시키죠.”

비공식 국무회의서 조심스레 내놓은 한마디에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했다.

평소 내 발언권의 크기를 생각하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가장 먼저 입에 거품을 문 건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그렇게 성급히 결정하진 맙시다.”

경찰청은 행안부가 담임하고 있는바, 비참하게 매타작을 당하는 경찰청장 다음으로 멍석에 들어갈 양반은 행안부 장관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잖습니까?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천천히 진정시키면 되지요. 사실 우리가 너무 당황한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허헛.”

대충 뭉개고 넘어가자는 소리였다.

이를 두고 잠시 갑론을박이 있었다.

“뭐……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괜찮은데요?”

의외로 행안부 장관을 편드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행안부 장관이 대선주자 여론조사를 돌리면 2% 정도는 나와서였다.

정치 하루 이틀 할 거 아니면, 그 정도 인재는 쓰고 버리는 게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회의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주로 정겨웠던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추억팔이 하는 식이었다.

“그, 왜, 쌀값 강제 동결 직후만 해도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물대포는 쐈어도 보상은 제대로 해줬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그거는 매년 하는 거 아닌가? 정부랑 쌀값 협상하는 거 쪼려고……. 나는 그렇게 아는데요.”

“맞습니다. 뭔 놈에 농협에서 전단지까지 나눠주는 게 폭동입니까? 이제는 아주 집회신고 비용 내기 싫어서 문화제라고 하던데. 나, 참.”

“그건 장관님들이 1차 시위를 못 봐서 그렇습니다. 처음에 쌀값 동결됐을 때는 부산 시내에 소까지 풀어놓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 황소가 편의점 들이받았다가 식물인간 된 사람이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어라, 나는 왜 그 이야기를 처음 듣지요?”

“……아, 그거, 있습니다.”

대체로 그런 내용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언론사 보도국장들에게 연말 선물을 두둑하게 챙겨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청와대가 처신을 영악하게 하는 편이었고, 국민들도 어지간하면 촛불시위에서 끝냈다.

무엇보다 정부가 폭동에 대처하는 자세가 꽤 괜찮았다.

보통은 적당한 관계자 목을 잘라서 구치소에 담갔다 뺐는데, 어차피 양판석 인맥은 대부분 운동권이라 선공후사 정신으로 문제없이 이행됐다.

연립정권이라 X랄할 야당도 없으니 정부도 맘 편히 실책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두둑하게 안겨주고.

여론 좀 잠잠해지면 만만한 대기업 하나 때려잡아서 민심 좀 달래고…….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보면 어지간한 건 뭉개고 넘어갈 수 있었다. 임기 4년 차에 지지율 60% 유지하는 대통령의 위엄이었다.

그러니 이 지경이 됐는데도 대충 뭉개자는 소리가 나오는 거였다.

“솔직히 이번 일은 그냥 가슴 아픈 비극입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어요.”

그래. 그렇게 따지면 행안부 장관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경찰청장 경질 문제로 몇 주 끌고, 유가족 앞에서 행안부 장관이 눈물 짜내고, 특별법 통과시켜서 보상금 두둑하게 뿌리고, 국회에서 몇 명이 야지 좀 놓으면서 유튜브 찍고.

그때쯤이면 대통령 바뀐다. 그러면 정부는 대충 뭉개고 넘어갈 수 있다. 실제로도 그게 가장 피를 덜 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예외다.

행안부 장관에겐 유감이지만 나는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래도 이번 사태는 성격이 다릅니다. 헌터들이 들고 일어난 건 처음 아닙니까?”

헌터들이 폭동을 일으킨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헌터는 국민들에게 극심한 비호감을 사는 직종이다.

심지어 사상자의 대부분이 경찰이었기에 민심도 조금씩 쏠리고 있었다.

헌터노조의 개혁안을 받아들이기 싫은 대기업 PMC들이 언론에 돈을 풀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가 정부에게 유리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헌터들은 표도 안 되지 않습니까? 심지어 이번에 사고 친 양반들은 현역도 아니고. 그러니까 마음 편히 넘길 수도 있겠죠.”

“한승문 비서실장님.”

“가만있어 보세요……. 지금 문제는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겁니다. 정부가 억울하게 독박 쓰는 한이 있더라도 이거 도로 붙여놔야 해요.”

정론이었다.

정론이긴 했다. 그러나 사실상 행안부 장관에게 나가 죽으라는 소리였다. 덕분에 회의실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싸해졌다.

행안부 장관의 표정이 악귀나찰처럼 변했고, 양일호 초상관리부 장관은 나더러 ‘대체 어쩌자는 거냐’는 눈빛을 보내며 전전긍긍했다.

양판석 대통령의 입은 언제나처럼 무거웠고, 대통령과 내가 침묵하고 있으니 양일호 초상장관이 애써 중재에 나섰다.

“아, 아하하, 확실히 국내 여론이 나뉘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굴 편들어주면 사회불안을 가속시키는 것밖에 더 됩니까?”

“…….”

“무엇보다 헌터들을 너무 몰아세우면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도 있는 거고요. 헌터들이 아무리 소수라지만 핵심 인적자원들이니만큼…….”

“한승문 비서실장님.”

행안부 장관이 양일호의 말을 끊었다.

2%짜리 대권주자와 비서실장 꼬붕의 차이였다.

행안부 장관은 마피아 보스처럼 목소리를 깔았다.

“굳이 편한 길을 놔두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내가 행안부 장관의 말을 끊었다.

15%짜리 대권주자와 2%짜리 대권주자의 차이였다.

당연히 말의 파급력도 달랐다.

“……!”

“……!”

내가 책임지겠다. 그 말이 나온 순간 야차와 같은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던 행안부 장관이 프로포즈라도 받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양판석 대통령도 흠칫 놀라며 내 손목을 붙잡았는데, 대충 눈빛으로 ‘괜찮은 거 맞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노조가 워낙 강경하게 굴기는 했어도, 아주 틀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요.”

“…….”

“솔직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헌터 연합노조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서울탈환 반대.

초인차별 금지.

헌터협회 정상화.

서울탈환은 그 홍근영인가 하는 뭐시기가 어그로 좀 끌겠다고 내세운 공약이니 그렇다 쳐도.

초인차별은 내가 옛날 장관하던 시절에 필요에 따라 주장하기도 했고, 철폐하기도 했다.

한때 히어로 마케팅을 했다가 하급 헌터 때려잡으려고 세금 올리면서 헌터 이미지를 시궁창에 처박지 않았던가.

또, 헌터협회를 협회장이 아니라 대기업 상임고문단이 운영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만든 것도 나였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내 책임이었고 말이다.

그 덕에 대기업이랑 알콩달콩 지내면서 세금 빨아먹고 경제 살리긴 했지만, 경제 살렸으면 구시대적인 방식을 버리는 게 맞았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 여럿 죽어 나가기 전에 했어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애써 웃어 보였다.

“대통령님 임기도 곧 끝나시는데 흑역사를 남길 수는 없죠. 가급적이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자네…….”

양판석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은 ‘자네 지금 무슨 개수작인가?’ 정도였겠지만, 대통령이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문 탓에 남들은 대통령이 감동해서 말을 못 잇는 줄 알았다.

특히 1분 전에는 나를 죽이고 싶어 했던 행안부 장관이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예의상 그에게도 한마디 건넸다.

“우리 구본모 장관님도 곧 전남지사 선거 준비하시는 걸로 아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사고로 마음 상하시면 안 되죠. 대통령님 임기는 제가 책임지고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실장님……!”

테이블 건너편에 있던 행안부 장관이 곰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덩치가 곰 같기도 했지만 정말로 기세가 곰 못지않았다.

행안부 장관은 내 손이 아프도록 꽉 붙잡고 한참이나 덕담을 늘어놓았는데, 닳고 닳은 양판석과는 달리 정말로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 * *

“자네 지금 뭐 하자는 건가?”

회의가 끝나고. 양판석 대통령이 나를 남겼다. 그는 갑자기 담배가 확 땡기는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사고를 칠 거면 상의를 하던가. 뭔, 이렇게 혼자 질러버리면 어떡해?”

“각하를 향한 제 충정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치익-

양판석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밀실에 담배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에 숨겨놨던 말들을 꺼냈다.

“솔직히, 애국 헌터들은 전장에서 피 흘리는데, 공사장에서 막일하는 헌터들이 돈 달라고 경찰 쥐어 팬다는 소리 하면 금방 진정될 것 같기는 합니다.”

“…….”

툭, 양판석이 입에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대통령님?”

“아.”

양판석은 담배를 주워 재떨이에 넣었다. 담배가 아까운 눈치였지만 다시 담배를 물을 체면은 없었나 보다.

아니면, 입맛이 확 가셨던지.

“어, 음. 그래. 악마 같은 소리군.”

“그렇지요?”

“그래서 왜 안 하던 짓을 하나?”

“누가 이 악마 같은 소리를 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려고요.”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뭔가?”

“국정원에게 받은 보고서입니다. 헌터에게 가지는 적대감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죠.”

청와대는 주로 국정원 보고서를 애용했다. 선거 컨설턴트에서는 못 하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보안 걱정도 ‘거의’ 없고.

(지난 선거 때 양판석이 이긴 이유 중 하나가 국정원이 원옥분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양판석에게 건넨 보고서에는 주로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사람들이 헌터를 싫어하는 이유는 경찰이고 시위건 뭐건 간에 그냥 ‘내가 못 쓰는 초능력을 저놈들이 써서 그렇다’라는 거였다.

“노골적이군.”

“그렇죠.”

“하지만 뻔한데. 이걸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그거 마지막 페이지 좀 읽어 보십쇼.”

보고서의 결론은 이거였다.

“지금 상황에서 헌터들 탄압하자고 하는 인간이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흠.”

“사실 헌터 탄압 가장 많이 한 게 저 아닙니까? 어쩌면 저같이 나이도 어린놈이 15%나 받는 이유가 그걸지도 모르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자네가 직접적으로 구한 목숨만 전부 합해도 최소 700만이 넘어가.”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양판석은 말없이 들고 있는 국정원 보고서를 팔락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헌터 노조가 거하게 일을 친 덕분에 국민들이 헌터를 마음 편히 증오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선거철에.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양판석은 저절로 말을 이어갔다.

“노조가 워낙 뜬금없이 기어 나오긴 했지. 맥락도 없고. 내실도 없고.”

“그러니까요.”

“배후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누구요? 헌터 노조를 만든 사람? 아니면 노조를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하고, 헌터들 탄압하자고 주장하려는 사람?”

“같은 사람이잖나.”

“글쎄요.”

나는 확신했다.

“잘은 몰라도, 가장 먼저 헌터들 탄압하자고 기어 나오는 놈 아니겠습니까?”

* * *

「‘서울탈환’ 주장했던 홍근영…… 초인폭동 유가족 방문.」

「헌터 정권에 반기 든 홍근영…… “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야.”」

「홍풍(洪風), 선거 막판 붉은 돌풍 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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