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5화
EP 34-향수병(4)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괴물들이 쑴풍쑴풍 쏟아진 이후로, 세상은 반쯤 지옥이 되었다.
그러나 지옥 중에서도 특별히 더 좆같은 지옥이 있었는데, 특히 남아메리카가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곳이었다.
드넓은 아마존이 통째로 마굴魔窟이 되었고, 어지간한 도시는 마약 카르텔이 장악했다. 심지어 마석에너지, 포션 따위의 신기술을 개발할 여력도 없다.
역사적으로 보통 그런 상황에선 누군가 침략전쟁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법인지라, 괜히 마약깡패들한테 침략당하기 싫었던 미국은 몇 가지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마약조직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하고. 민주정부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내전을 일으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말로 민주정부를 회생시켜 주기도 하고.
대체로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조지고, 남아메리카를 되살리는 식이었는데, 이는 정말로 남쪽으로 갈수록 나라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이었다. 멕시코 갱단과 멀어질수록, 아마존 정글과 멀어질수록 상태가 나았으니까.
특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거점기지였다.
정치적으로는 친서방 민주정권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세계 3대 곡창지대라고 불리는 팜파스 평야를 끼고 있어, 헌터만 때려박으면 식량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냉전 당시 대한민국처럼 미국의 무제한적인 지원을 받으며 민주주의의 보루로 기능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그랬다.
“아르헨티나가 붕괴했습니다.”
“뭐요?”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습니다. 사실상 중남미 헌터 군벌이 뒤에서 관여했다고 보여지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편의점 딸기우유 먹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선 나라 하나가 엎어졌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마당에 무슨 일이 안 일어나겠는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회의실로 갑시다.”
* * *
부산정부청사 지하 2층 회의실은 작고 비좁다. 고작 책상 하나에 모니터 하나만 달랑 올라가 있다.
그러나 모니터 화면 안에 대통령이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이 추진하던 남미 경제지원 정책이 깨졌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당국으로서는 쉽사리 답변 드릴 수 없는 내용이라…….]
양판석 대통령은 불쌍한 CIA 협력관을 붙잡고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른 청와대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헤드폰을 쓰고 멋쩍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어, 한 실장. 소식은 들었고?]
“네. 오자마자 질문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안보협력관님? 제가 알기론 재작년 10월에 한웅건설 헌터들이 미국 요청으로 아르헨티나에 파견됐었는데요. 그분들 안전은 어찌…….”
CIA 협력관이 아니라 양일호 초상관리부 장관이 대신 대답했다.
[그분들은 제가 지난달에 귀국시켰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장관님. 혜안이 있으시군요.”
[그건 아니고요. 건설사 선정 과정에 비리가…….]
“아, 아무튼 불행 중 다행입니다.”
회의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한때 국회의원으로서 청문회장에서 사람 여럿 조져본 청와대 수석들은 그 실력으로 CIA 협력관의 입을 간단히 열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뭔 일이 나든 한국이랑 별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괜히 마약조직 지지고 볶는 데 관심 끄기로 결정했다.
미국이야 우리가 국제평화군이라도 만들어서 보내주면 좋아 죽겠지만, 운 좋게도 양판석 대통령의 임기는 2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지금은 청와대 힘으로 검찰총장도 못 갈아 치우는데 뭔 놈의 해외파병인가- 라는 논리로 우리는 깔끔하게 남미를 손절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려던 그때였다.
[……저기, 잠시만. 다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국가안보실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부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 네이버에 속보로, 아니. 언론에 뉴스속보가 뜬 것 같은데요.]
장관급 공무원이 말을 더듬는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국가안보실장도 다시 멘탈을 잡았는지, 표정을 굳히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크흠, 최근 주목받던 연합노조 측 초상능력자들이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사망자가 셋이고, 중상자가 열다섯이 넘어갑니다.]
순식간에 화상회의가 잡음으로 물들었다. 모두가 동시에 입을 여는 바람에 아무런 말소리도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관리자 권한(양판석 대통령이 컴퓨터 다루기 힘들다고 넘겨준 권한)으로 장관급 미만 모두를 음소거하고 입을 열었다.
“어디서 나온 정보입니까?”
[자세한 사상자 현황은 정상욱 경찰청장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지금 언론에도 보도되고 있고요.]
[언론에 보도됐다고요? 아니 그게 무슨……!]
경찰청에서 사고를 쳤고, 그 경찰청이 사고 치면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행안부 장관은 피가 거꾸로 솟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저 양반 국회의원 시절에 사자후도 여러번 질렀었는데. 나는 행안부 장관이 급발진 못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일단 진정하시죠, 장관님. 실장님? 계속 말씀 좀……. 다들 조용히! 네. 조용히.”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헌터협회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습니다. 의경 몇몇이 시위대를 자극했고, 현장에 있던 헌터 하나가 의경을 공격했는데…….]
* * *
[현장은 지금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이 경찰특공대가 시위대 사이로 진입했고! 방금 전 경찰버스에 옮겨붙은 화재로 유폭이 발생하여…….]
[긴급 속보입니다. 방금 전, 연합노조 초상능력자들과 경찰병력이 충돌했습니다. 자세한 피해규모는 확인된 바 없으나, 최소 2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
[시위대 측 헌터의 폭주로 의경이 중상을 입자, 경찰이 진압에 나섰고, 진압 도중에 해당 헌터가 사망하며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부산정부청사 현관에 있는 커다란 TV에서 온갖 뉴스가 쏟아졌다.
아나운서들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공무원들은 쏟아지는 전화에 혼비백산하며 뛰어다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보세요? 예. 대통령 비서실 한승문 실장입니다. 아직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습니다. 보도국에 전해주시죠.”
“정상욱 경찰청장님이시죠? 한승문 실장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경찰이 먼저 공격했습니까? 시위대가 먼저 공격했습니까?”
“초인지원청은 뭐하고 있어요? 공안이고 치안관이고 싹 다 부산으로 보내세요. 소방관도 전부 달려오는 마당에 뭐하는 짓이야!”
“헌터협회는 오피셜 자제하고. 예. 예. 유감표명도 가급적이면 협의하고 갑시다. 길드 차원에서도 협조 부탁드리고요.”
전화 돌리는 것만으로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숨돌릴 틈이 생겼다. 피채원이 부산정부청사 1층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가져왔다.
“목 좀 축이시죠.”
“어, 어어.”
“여기 앉으시고요.”
“그래.”
의자도 아닌 곳에 털썩 걸터앉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어느새 식은땀에 흠뻑 젖은 모양이다. 등짝이 축축하다.
피채원은 손수건으로 내 이마를 톡톡톡 닦아주며 귓가에 작게 중얼거렸다.
“정부청사 안에 시위대가 들어오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 지하주차장인데. 경비원들이랑 실랑이 중이네요.”
“……하이고.”
“어떻게 할까요.”
“쎄냐?”
“객관적인 수치는 잘 모르겠는데. 헌터가 폭주하면 등급은 상관없잖아요.”
“……”
나는 지나가던 헌터를 하나 잡아 세웠다. 옛날에 초상관리부에서 헌터들 능력 측정해주는 친구였다.
마침 염동술사다.
“어어, 정희 씨. 오랜만이네요.”
“아, 안녕하세요, 장관님! 아니, 실장님!”
“지금은 어디였지? 국토 재개발 TF였나? 아무튼 미안한데, 잠깐 나랑 어디 좀 갑시다.”
“네? 아뇨, 저 문현동에 지원요청 들어왔…….”
“잠깐이면 돼요. 비행은 할 줄 알지?”
“아, 아뇨.”
“지금부터 배우면 되겠네.”
* * *
지하주차장에서 열불(진짜 불)내던 헌터 하나를 기절시켰다.
정부청사 유리창에 벽돌 던지려던 시위대 몇 명을 경찰에 넘겼다.
경찰버스 통째로 들고 날아다니던 염동술사 하나를 잡아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시위현장 들어가겠다고 경찰한테 몸빵하는 기자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대충 그러고 부산정부청사로 돌아오니까 시위가 진압되어 있었다.
뉴스로 확인했다.
[부산 일대에서 벌어진 과격시위가 중단되었습니다. 경찰당국은 32명에 달하는 초상능력자 전원의 신변을 확보했고, 현재 부상자 치료와 피해규모 파악에 나선 것으로…….]
경찰청장에게도 문자가 와 있었다.
-실장님, 정청장입니다. 집회 진압했습니다. 부족한제가 심려를 끼쳐드린 것 죄송합니다. 모두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부디 우리 경찰식구들 나중에 피보는 일 없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경찰청장이 진압 끝났다면 진짜로 끝난 거였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붙잡고 있던 헌터를 놓아줬다. 부산 상공 한 바퀴 돌았더니 헌터가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정희 씨, 수고했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절했나보다.
공무원 친구들이 그녀를 숙직실로 데려가는 사이, 나는 피채원을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했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진압 과정에서 행인 2명이 보도블록에 맞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피해자가 중학생들이라 한동안 초상능력자들에 대한 비토여론이 돌았습니다. 아무래도 경찰이 보도블록을 손으로 빼서 던지진 않았을 거고, 염동술사가 힘을 휘두르면서 돌덩이가 날아갔을 거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오보였네요. 죽지는 않았답니다. 한 명은 경상이고, 한 명은 지나가던 힐러가 치료했고요. 그래서 임의로 정정보도 하라고 문자 돌렸습니다.”
“잘했어. 그리고 또?”
“아르헨티나 쿠데타 소식이 묻혔고요. 주왕산 괴수 추적이 실패했다는 소식도 묻혔네요. 충청방어선 설치 이후 괴수가 남쪽을 뚫은 첫 번째 케이스인데…….”
“으슥한 산골짜기에서 게이트가 열렸을 수도 있지. 주한미군 호루스 시스템은 추적에 실패했고 말이야.”
“그렇다면 가벼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정치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고. 다른 소식은?”
“국회의원 하나가 시위현장 지나가다 쓰러졌는데 과거이력 보니까 쇼하는 것 같고요. 다른 특이사항으로는 연합노조 집회 참가자들이 인터넷에 반정부 성향의 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나는 주변 눈치를 슬쩍 봤다. 그리고 으슥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채원이 눈치껏 따라왔다.
조용한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일반 여론은?”
“국정원 여론조사팀 분석 결과를 받았어요. 정부에 호의적인 편이라고 합니다.”
“하긴, 임기 끝나기 직전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과반을 넘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마른 세수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정치적인 위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양판석은 사고 터질 때마다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는 데에는 도가 튼 양반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반쯤은 그랬고.
2달 쯤 뒤면 대통령이 바뀌긴 하지만 원옥분이든, 유재경이든, 김두식이든, 대통령 될 만한 인간들과는 이미 쇼부를 본 상태라 적폐청산 당할 걱정도 없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채원아.”
“네.”
“국정원에 리포트 하나만 맡기자.”
“어떤 리포트요.”
“일반 시민들이 헌터에게 가지는 적대감.”
“그건 너무 뻔하지 않나요. 다들 굶어 죽는데 괴물 잡아서 수십억을 받아 챙기고. 그런데도 살기 힘들다고 데모해서 부산을 뒤집어엎고……. 헌터협회가 지금까지 문제가 많았던 것도 맞지만, 사실상 헌터 노조는 끝났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적대감이 헌터를 탄압하자는 주장에 얼마나 많은 표를 가져다주는지. 거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
“……”
“그러면 누가 노조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