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7화 (227/296)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227화

EP 34-향수병(6)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을 비롯해서 나라 전체가 선거 하나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사실상 모든 이슈가 선거전에 매몰된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과장 좀 보태서 정치인이 방구 뀌면 탄소배출 문제가 떠오르고, 바이오 회사 주식이 올라가며, 공기업 바이오 연구소 프로젝트가 올스톱된다.

그냥 그런 시기였다. 서울탈환. 초인폭동. 국제정세…… 모든 사안이 정치싸움의 주제가 되니까. 모든 권력이 사소한 문제로 피를 보는 시기니까.

“한승문 실장님!”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초인폭동 사건으로 인해, 직전 초상관리부 장관이었던 내가 두들겨 맞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한승문 비서실장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초인폭동으로 3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나는 며칠간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총파업을 강행한 초상능력자 연합노조가 헌터협회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터협회 창립자로서…….”

“예.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혁신작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장관직에서 사임한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일각에서는 3대 길드와 한승문 비서실장님의 유착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제가 몇 년 전에 군산분리법을 발의하지는 않았겠지요. 양일호 장관도 그렇고요. 근거 없는 네거티브에는 대응하지 않겠습니다.”

“최근 노조파괴 혐의로 입건된 GS 아이기스 천금순 사장과는…….”

“저 천금순 그분이랑 친분 없습니다.”

그래도 원래 맞는 것도 맞아본 놈이 잘 맞는다고, 나는 거의 인간 샌드백 수준으로 정부에 가해지는 모든 압력을 흡수했다.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정권심판론을 간신히 저지한 것이다.

자칫하면 적폐청산 살생부에 올라갔을 이름 여럿을 구해낸 순간이기도 했다.

당연히 내가 이렇게 열심히 두들겨 맞는 동안, 청와대가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았다.

[실장님. 여기 민정수석실입니다.]

“예, 말씀하세요.”

[홍근영 의원이 국회 초상관리위원회 국방당 간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헌터협회 박상윤 상임고문과 접촉한 정황을……]

* * *

차기 대선 여론조사

1. 원옥분-35.7 퍼센트

: 前 대통령 권한대행 現 전북지사

2. 유재경-26.9 퍼센트

: 前 경제부총리 前 국무총리 現 국회의원

3. 김두식-16.2 퍼센트

: 前 충청군구사령관 現 국무총리

4. 홍근영-4.6 퍼센트

: 現 국회의원

“흐음…….”

이번 대통령 선거의 형세는 대략 1강 2약의 양상이었는데, 원옥분이 치고 나가고 유재경과 김두식이 따라가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원옥분, 유재경, 김두식이 나란히 기호 1, 2, 3번으로 출마하는 건 아니다.

원옥분과 유재경은 같은 국방당 소속이었고, 오직 한 사람만이 국방당 명찰을 달고 대선에 나갈 수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 의원정수 비례대로 나오는 선거보조금 두둑하게 받으면서 대선 뛰고 싶으면, 국방당 당내 경선을 이겨야 한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이건 돈만 달린 문제가 아니었다.

경선에서 탈탈 털리고 무소속으로 쫄래쫄래 기어나온 후보를 예뻐해 줄 국민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또, 국방당 내부 계파 문제도 있고. 분당사태가 일어나면 3자가 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고. 청중엽이 유재경을 스카우트하는 변수도 있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

정치가 대개 그렇듯이.

여하튼 원옥분은 국방당 내부경선에서 유재경을 (최대한 아름답게)주저앉힐 필요가 있었는데, 그때 써먹은 카드가 바로 홍근영이라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건가?”

“본인이 써먹은 사람은 본인이 치우셔야죠.”

“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제 못 덮어요.”

원옥분은 전북도지사 주제에 배짱 좋게도 부산에 선거캠프를 차리고 있었는데, 영호남 민심을 둘 다 처먹겠다는 못된 놀부 심보가 보였다.

사실 이 할머니야말로 만악의 근원이었던지라 말이 곱게 나가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의 패션을 지적하며 사무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분이 개나리색 정장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코디가 입으래요? 아니면 보좌관이?”

“뭐,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지라던데.”

“지난번 선거 때는 거의 뭐 박정희 흉내를 내시더니 이번에는 선거전략을 바꾸셨나 봅니다?”

“유행은 맨날 바뀌니까.”

원옥분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오히려 칼자국 사이로 비치는 흐린 눈을 껌뻑거리며 내게 되묻기까지 했다. 선거 출마경력이 길어지니 안면마비 때문에 흐려졌던 발음도 나름 정확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홍근영이 치우라고?”

“예.”

애초에 홍근영은 국방당 당내경선에서 ‘서울탈환’ 운운하면서 뜬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유재경은 치명타를 입었고 말이다.

치명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올 게 뻔한 서울탈환을 어떤 미친놈이 추진한단 말인가? 결국 유재경은 피난민들 앞에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망설임이 유재경을 경제전문가에서 회색분자로 만들었다. 홍근영이 피난민 표를 흡수하자 국방당 당내경선도 기울었다.

그렇게 위기에 처한 유재경에게, 원옥분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 거다.

경선 패배 승복하면 국무총리 앉혀주겠다고.

그래.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그, 홍근영 의원 사주해서 유재경 낙마시킨 것까지는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헌터들을 데리고서 부산 한복판에서 시위를 벌여요?”

원옥분이 항변했다.

자기 책임 아니라고.

“그놈은 내가 직접 데려다 쓴 것도 아니야. 알잖나? 몇 다리 건너서 뽐뿌질하면 알아서…… 나는 대면한 적도 없고.”

그러니까, 양판석처럼 사람 목에 폭탄목걸이 채워놓고 수족처럼 부려먹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용당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사람을 움직였다는 소리였다.

정치권에서 흔한 일이긴 했다. 멀쩡한 사람 펌프질해서 허파에 바람 넣는 거. 당장 나조차도 가끔 써먹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일의 스케일이 달랐다.

“그렇게 책임 회피하지 마시고요. 어쨌든 본인이 저지른 일은 스스로 해결하시죠. 청와대가 선거에 개입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왜 선거 개입인가? 따져보면 홍근영 의원이 내란선동해서 사보타지를 한 건데. 적당히 갖다가 체포하는 건 일도 아닐 테지.”

“검찰은 그쪽이 잡고 있는데 왜 우리더러 일을 떠넘깁니까?”

“아니, 그렇게 시위하다 피를 볼 줄은 홍근영이도 아마 몰랐을 거야.”

“……하!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자기도 몰랐겠군요. 누가 멀쩡한 시위가 피바다가 될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방송 타러 돌아댕기던 놈이 집구석에서 손톱만 뜯고 있다던데. 그러니까 어지간히 했어야지.”

“그래요. 말씀 잘하셨습니다. 31명이 죽었어요. 그런데 니탓 내탓하면서 이럴 겁니까? 예?”

“쓰읍…….”

원옥분이 침음성을 삼켰다.

그래. 본인도 홍근영이가 이렇게 폭주할 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홍근영이도 평화롭던 시위가 31명 합동장례식으로 변할 줄 몰랐겠고.

정치가 이렇게 지랄맞은 거였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었으니까. 표 좀 받겠다고 저지른 일이 곧장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수습하기 위한 과정에서조차 돈과 표가 필요했다.

나는 결국 원옥분에게 제안을 넣었다.

“……거, 새만금 신도시에 피난민 거주단지 분양하면서 잡음 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잡음이야 늘 있지. 그런데 이번 거는 그쪽에서 만든 거 아닌가?”

“그거 분양 조례 가지 쳐서 시행령으로 받아줄 테니까 홍근영이는 그쪽에서 정리하시죠.”

“…….”

원옥분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쨌건, 앉은 자리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 처우를 결정하는 게 우리네 직업이었으니까.

“그러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홍근영은 그날 저녁 검찰에 입건되었다.

비현역 헌터들을 사주해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혐의는 아니었고, 평범한 불법 정치자금 혐의였다. 4.6%짜리 대선주자치곤 허무하긴 했다.

사회적인 파장도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당 경선에서 원옥분이 승리하며 홍근영의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홍근영이 관심을 받은 건 4.6%짜리 대선 지지율 덕분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국방당 경선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며칠 떠들썩하다가 정치인 하나가 조용히 정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놈이 남기고 간 상처는 결코 작지 않았다.

「헌터 연합노조의 총파업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현장에는 고 김주영 헌터의 영정이 내걸렸습니다. 경찰 측 유가족들은 정부를 향해……」

비현역 헌터들이 반정부 성향으로 돌변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는데, 인터넷상에서 유가족들을 향한 모욕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경찰이 더 많이 죽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자연스럽게 정치권도 여론에 편승했다. 헌터는 표가 안 되는 직종이었으니까.

「각성자가 먼저 경찰을 공격했습니다. 그게 팩트입니다.」

「경찰이 먼저 헌터를 자극하지 않았습니까? 평범한 집회 참가자를 자극하고 공격한 건 엄연히 국가 권력이었습니다.」

「평범하다고요? 아니, 갓 스무살 된 의경들한테 뒷담화 좀 들었다고 죽이려 드는 게 정상입니까?」

「그렇게 왜곡해서 말씀하지 마시고요.」

「비각성자라도 뒷담화 좀 들었다고 칼 들고 달려드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하물며 염력으로 팔목을 날려 버렸는데 그게 어떻게 평범합니까?」

「그건 의무교육을 강제하지 못한 정부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정치인들의 언어 선정이 괴물을 잡는 ‘헌터’에서 ‘각성자’와 ‘비각성자’로 변화했다. 일반 대중과 헌터들을 분리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대통령 선거 후보자 1번부터 6번 중에 헌터랑 친한 인간이 하나도 없어지자, 사회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헌터에게 적대적인 분위기로 말이다.

그러자 헌터들도 당연히 반사회적으로 변했다.

“현역 헌터들이 총파업에 동참했다고요?”

“예…….”

하다하다 현역 헌터들이 일을 놓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정확히는 최근 노조가 강제로 해체당했던 GS 방위대행사의 국내 헌터들이었다.

비현역 헌터들의 파업은 공사비용증가, 유통업체 파산, 동사무소 청소용역 증가 정도의 영향을 미쳤지만, 현역 헌터의 파업은 차원이 달랐다.

해당 도시 부동산이 폭락했고, 군대가 추가로 투입되었으며, 마석 생산량 감소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다. 그만큼 수출에도 지장이 생겼고.

당연히 이를 수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몇 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 내 업무였다.

“각성제 발주량을 늘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수량을 조절할만한 물건이 아니에요. 차라리 치안관을 늘리는 게…….”

“국방당 박정균 원내부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 걸려있지 않던가요? 마침 지역구도 근처인데 민심 수습 차원에서…….”

“홍선아 협회장은 당분간 호주에 있는 걸로 합시다. 귀국 시기를 늦추죠. 어차피 정치에는 관심 없으니 본인도 찬성할 겁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정치권이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가족 잃은 사람들을 향한 비수가 인터넷에 떠돌았다.

서울탈환의 경제성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그렇듯 피난민을 향한 증오로 이어졌다. 피난민이 일으킨 총기사고가 조금씩 늘었다.

그렇게 사회가 조금씩 문드러지는 가운데, 정부의 모든 역량이 대한민국이 그나마 나라 꼬라지를 유지하게 하는 데에 집중되었다.

사실상 총체적 장기부전 상태에 빠진 환자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정도의 노력이었다. 지금은 대통령 임기 끝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렇게. 어찌저찌.

대통령 선거 당일이 되었다.

* * *

“누구 찍었나?”

“예?”

“누구 찍었냐고. 대통령.”

대통령의 질문이었다.

나는 양판석을 빤히 바라보다 대꾸했다.

“대통령님은 누구 찍으셨는데요?”

“그건 비밀이지.”

“저도 비밀입니다.”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의 대화라기에는 너무도 유치했다. 우리는 서로를 비웃으며 청와대에서 짐을 챙겼다.

사실 청와대가 아니라 코드네임이 ‘청와대’인 지하벙커였기 때문에 챙겨야 할 짐이 굉장히 많았다. 이불, 베개, 가방, 옷, 노트북, 인감도장…….

덕분에 나는 양판석의 생필품을 모두 확인했다. 그는 임기 대부분을 지하벙커에서 보낸 유일한 대통령이었으니까.

“아니, 칫솔이 왜 이리 낡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빨 안 닦은 지도 꽤 됐군.”

“뭐요?”

“가글만 해도 양치해주는 거, 그, 거시기가 있네. 한 번 써버릇 하니까 그것만 쓰게 되던데.”

“그 좋은 걸 왜 혼자서 쓰셨죠……?”

“좀 비싸서. 국립과학연구소에 개인주문했지. 신기술이라 아직 상용화도 안 됐을 거야. 세금은 안 썼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저한테는 왜 안 알려주셨습니까?”

“대통령의 특권이지.”

칫솔 안 쓰고 이빨 닦는 게 대통령의 특권일 줄이야. 오늘도 무덤까지 들고 가야 할 비밀이 또 하나 생겼다. 이상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특권도 이젠 끝이군요.”

“그렇지?”

“뭐, 섭섭하진 않으십니까?”

“섭섭하긴 뭐가 섭섭해.”

양판석은 은은하게 웃으며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있었다. 베개에 흰머리가 꽤 많이 붙어 있다. 대통령의 탈모도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고.

나는 그에게 계속 말을 붙였다.

“나름대로 대통령 열심히 하셨는데. 소감 정도는 말씀해주시죠.”

“아, 거, 아까 낮에 말했잖나. 보국안민과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방송용 말고요.”

“후련하고. 아쉽고. 뭐, 정 궁금하면 전직 대통령들 자서전이라도 찾아보던가. 나는 뭐 다를 줄 알았나?”

솔직히 그랬다.

하늘에서 괴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 당선된 첫 번째 대통령 아닌가. 그런데도 양판석은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는 별 말 없이 짐을 전부 챙기더니, 참모들을 불러다가 다독이고서 청와대를 나왔다. 어차피 임기가 아주 끝나지는 않아서 내일도 출근하긴 해야 할 것이었다.

방은 오늘 빼지만 남은 임기 두 달 정도 얼굴 비추면서 인수위에 이것저것 알려줘야겠지.

사실 서로 뻘쭘하니까 자주 보지는 않을 거였다.

그와 나는 저녁으로 장어구이를 먹었는데, 양판석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거의 다 먹었을 즈음에 TV에서 원옥분 당선확정이라는 개표결과가 떴다. 그걸 보고서 소주를 몇 병 더 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음식점에서 나올 때 즈음, 양판석이 내게 말했다.

“그때도.”

“예?”

“국회에서 도망칠 때도 이렇게 부둥켜안고 있지 않았나?”

“아, 그때요.”

국회의사당 천장을 뚫고 괴수가 떨어졌을 때. 양판석을 부축하고 비상계단을 절뚝거리며 내려갔었다.

“뭐, 그랬죠.”

“막, 한강에서 보트 타고 도망치고. 그랬어. 응?”

“그러다가 이상한 놈이 보트 들이받아서 엎어질 뻔하고.”

“하. 그 보트 그거. 내가 마누라랑 같이 타고 다니던 건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워.”

장마철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저녁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추적추적 부슬비가 내렸다.

습한 공기가 답답했지만, 옆에서 알코올 냄새가 나는 덕에 그나마 괜찮았다.

“자네는 이제 뭐할 건가?”

“예?”

“뭐, 외국 나간다는 소리도 있던데.”

“어우! WPO는 다시는 안 갑니다. 차라리 유튜브나 한 번 해볼까 싶어요. 인맥도 있고, 채원이가 인터넷 그런 걸 잘해서…….”

“거, 거, 저, 옛날에는 정치인들 은퇴하면 고상하게 책이나 썼는데, 요즘은 다들 유튜브 하나?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 하여튼 요즘 세상은…….”

“자서전도 결국 돈이 되니까 썼던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유튜브도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

“그런 거죠. 뭐.”

대통령 양판석은 임기를 마치면서 유튜브나 한 번 해볼까 라는 말을 남겼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또 다른 비밀이었다.

나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아마, 새벽 4시 즈음에 충청북도 제천에서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누군가에겐 불행하게도,

당선 첫날에 게이트가 터진 거였다.

EP 34-향수병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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