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03화 (203/296)

EP 30 - 이게 다 한승문 때문이다 (1)

평의원 직선제가 통과됐다.

국가원수들이 임명하던 세계초인기구의 지도부를 초인들이 직접 선출하겠다는 소리였다. 물론 각국 정부는 이를 쿠데타로 간주했다.

WPO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한 유령회사였다. 그러니 지금의 사태는 집 지키던 개가 주인을 물어뜯은 격이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 선거캠프 관계자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EU를 장악한 헌터들이 점차 야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평의회 직선제는 사실상 WPO를 뮤턴트들에게 넘겨주자는 겁니다!”

이 발언이 장작이 되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U를 장악한 헌터들이라면 곧 국경없는 기사회를 의미했고, 그들은 호주사태 이후로 최대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게다가 히어로라며 추켜세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뮤턴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은 흔하디흔한 인종차별주의자와 다름없었다.

물론 이는 수많은 공화당 선거캠프 관계자 중 하나의 발언에 불과했지만, 민주당이 여론몰이를 시작하자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드디어 그 음습한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증오로 정권을 잡은 차별주의자들은! 드디어 헌터와 초능력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고…….”

민주당 대선후보가 뉴욕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이자, 공화당은 그제서야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 수습과정에는 문제의 발언을 쏟아낸 인물을 색출하여 조지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정작 그 인간은 한참 전에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후였다.

한승문이 선물한 돈가방을 들고서 말이다.

* * *

[이게 다 한승문 때문이지! 그럼 누구 때문이여?! 그 씨벌놈이 코쟁이 양놈 새끼들 먹여 살린답시고 세금 들고 날랐는디. 으이? 내가 씨벌 서울! 서울 살던 사람이여! 근디 언제까지 반지하 먼지 꾸댕이에서 소금에 밥 비벼먹고 살어야 허냐 이 씨벌-]

[……네. 생방송이라 잠시 통신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시위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된 모양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수님?]

[에…… 상당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커먼센스라는 게 있거든요? 지금 정부에서 이런저런 발표들을 하고 있지만은, 어찌됐든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포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 정부가 국민을 포기했다고요?]

[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커먼센스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니까 일반 대중의 심리에 따르면요? 각성제 해외지원이요? 그게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에……. 그러니까. 해외사정이야 어찌 됐든! 경제가 우선 아니냐! 뭐, 이런 스탠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갑작스런 방송사고에도 앵커와 아나운서, 그리고 논객은 아주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현장 리포터 같은 경우에는 문책을 당할 것이 뻔함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크흠!”

그리고 나는 이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왠지 요즘 따라 나를 욕하는 뉴스가 많아지는 기분이다. 선거철이라서 그런가.

나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른 채널에서도 대충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제3차 호남 신도시 계획 발표에도 부동산 광풍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문제가 심각한데요, 일각에서는 ‘낙동강 방어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한승문…….]

달칵.

[총선이 다섯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공천권 파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경제 이슈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습입니다. 한편 국민당에서는 한승문 전 장관…….]

달칵.

[가계부채가 연일 최대치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빚 없이 사는 국민이 전체의 1할조차 되지 못하는데요, 한편 수도권 출신 1천만 피난민들의 주거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전문가들은 이번 겨울 동사자 위험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네, 다음 뉴스입니다. 한승문…….]

제기랄.

보통 선거철은 언론이 사람 하나 부여잡고 줘패면서 시작하는 게 전통인데, 아무래도 이번 시즌 술안주로는 내가 당첨된 것 같았다.

각성제 해외지원 이후, 경제 문제에 발목을 거하게 붙잡혔다.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나를 원망하는지라 후유증이 심각하다.

하물며 지금은 선거철 아닌가.

정치인이 숨만 쉬어도 아홉시 뉴스에서 까이는 시기다. 그러니 정말 말 그대로 숨소리도 내지 말아야 했는데, 뉴스가 온통 내 소식으로 도배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악재였다.

그래서 울적하게 TV만 쳐다보고 있으니, 모처럼 희소식이 들려온다.

“굴 먹어라!”

“오!”

이모부가 접시에 굴을 산더미처럼 쌓아왔다. 나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휙 돌렸고, 집구석에서 핸드폰만 만지던 여도연도 헐레벌떡 달려왔다.

원래 겨울 굴이야말로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었다.

비타민이 풍부해서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을 예방하기 좋고, 이제 막 껍질에서 나와 윤기가 줄줄 흐르는 굴을 초장에 찍으면 세상만사가 형통해지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여도연은 굴을 껍질째 으적으적 씹어먹는 기염을 토했다. 오직 강체술사만 가능한 헛짓거리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모부(횟집 사장, 52)는 싱글벙글 미소 지었다.

“맛있제?”

“꿀맛이네요!”

“그래! 그래! 많이 있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이 귀한 걸 어디서 나셨대요? 요즘 물가도 장난이 아닌데…….”

“마! 올해는 장사 망해가지고 물고기 썩어난다!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 니들 아니면 먹을 사람도 없어! 하하하!”

* * *

“하. 이거 경제 어떻게 못 살리냐…….”

진지하게 고민을 토로하자, 이호정이 피식 웃으며 까칠하게 대답했다.

“그거 살릴 수 있었으면 진즉에 대통령 했죠.”

“거,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생각을 좀 해봐!”

“그러면 한반도 대운하라도 지으시든가요!”

“차라리 IMF에서 돈을 꾸라고 해라!”

나는 경제 문제의 심각함을 체감하고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친아버지처럼 나를 길러준 이모부마저도 원망스런 눈빛을 보내는데 남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형편이 어려울수록 나에 대한 원망이 심해지는 분위기였고, 당장 유튜브만 봐도 정의봉으로 한승문 때려 죽인다고 발악하는 인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겨울은 가혹했다.

이에 대해 양일호가 우물쭈물 의견을 제시했다.

“그냥 당분간 잠수 타시죠……?”

국민은 개돼지니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해질 거라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이거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 당분간은 나도 자숙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연예인도 도박하다 걸리면 몇 년은 쉬는데, 정치인이 경제 말아먹었으면 몇 달은 쉬는게 예의였다.

무엇보다 슬슬 양판석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내가 너무 막나가지 않았던가. 각성제 40만개를 호주에 풀어버리지를 않나. WPO를 헌터들에게 홀라당 던져버리지를 않나.

내 포지션은 양판석의 오른팔 정도였는데, 체급이 커지면서 점점 양판석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래서 잠시 존재감을 죽이는 시간을 가지려던 계획이었는데…….

“이러다가 진짜 어디가서 맞아 죽을 것 같다…….”

“…….그렇긴 해요.”

나는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 치안이 옛날만큼 좋은 건 아니었다. 우리는 6.25 전쟁에 비견될법한 대혼란을 겪은 지 몇 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당장 서울 생존자들이 군인 시체에서 주워다 쓰던 K2 소총도 회수가 끝나지 않아서, 심심하면 총기사고가 터지고는 했다. 그래서 남부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충청도는 잘 안 간다.

게다가 헌터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미등록 헌터로 음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깡패, 살인청부업자, 재벌가의 하수인, 그리고 정치인의 은밀한 사주를 받는 독심술사 같이 말이다.

물론 미등록 각성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때려잡는 방안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삐져서 외국으로 날라버리면 국가만 손해였다. 그래서 미등록자는 괴수사냥과 마석교환만 금지하는 중이다.

아무튼 이 험악한 세상에서 장수하고 싶으면 미움 살 일은 안 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전 국민의 30%가량의 증오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왠지 요즘 들어 나를 비난하는 뉴스가 잦아지는 느낌이다. 물론 언론사를 소유한 재벌들을 장전읍에서 담가 버린 게 나이긴 했지만, 하루 종일 내 욕만 듣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어쩔 수 없긴 했다.

“아. 이거. 경제 살려야 하는데…….”

그렇게 국가를 위한 고민에 몸부림치던 그때였다.

이호정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어, 최보. 무슨 일이에요? 오늘 행안위 품앗이 간다면서.”

전화를 받던 이호정의 표정이 싸악 굳어지더니, 그녀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TV를 틀었다.

TV에서는 모처럼 뉴스속보로 국회를 띄우고 있었다.

[속보. 대통령 선거법 개정안 발의]

* * *

「노동가능연령을 17세로 변경하자는 논의는 종종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피선거권 제한을 20세로 바꾸고. 대통령 피선거권 제한을 30세로 바꾸자고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젊은 정치를 추구하는 게 왜 잘못됐습니까?」

「차라리 32세로 바꾸자고 하세요! 다음 대선때 한승문 전 장관이 32세 아닙니까?」

「애초에 피선거권 연령제한이 이렇게 높아진 이유가 옛날 군사정권이 30대 기수론을 견제하려던 탓이었지요. 그러고보니 원옥분 전북지사는 군사정권 부역자 아니었습니까?」

“저거, 저, 저……! 저 미친놈 저거 방송에서 뭐하는 짓이야!”

“……아이고. 두야.”

“여보세요? 어, 납니다. 김 의원 저거 신상발언 시간에 지금……! 당장 입 다물라고 하세요!”

국회는 지금 혼돈과 공포에 빠져 있었다. 국민당 의원 하나가 상임위에서 실시간으로 토론회를 열어버린 까닭이었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현역의원을 억지로 끌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급하게 도착한 이호정도 손가락 빠는 것 말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이 기습적인 토론회는, 좌파 우파 진영논리와, 한승문에 대한 대선출마 여론을 한껏 자극한 다음에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해당 사건을 일으킨 국회의원은 국민당 내부에서 ‘한승문계’로 분류되던 인간이었고, 토론회 이후 기자회견으로 한껏 어그로를 끈 다음 어딘가로 잠적해버렸다.

사건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한승문 전 장관이 선전포고를 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합니다. 어쩌면 청와대의 의중이 담긴 시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응이 영 좋지 않다는 게…….」

「대한민국 경제를 망친 인간이! 대선에 나가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여론을 등진 정치인을 우리가 심판해야 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 국회에 모입시다! 참석을 못하시더라도 후원과 구독으로 집회를 응원…….」

「그런데 재미있는 게요? 이번 발표 이후에 톱3의 지지율이 하락했어요. 원옥분 지사. 유재경 총리. 그리고 김두식 사령관. 이 하락한 지지율이 어디로 가겠어요? 지금 대선 나가려고 살짝 간보시는 분한테 가지 않겠어요?」

국민당 지도부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이는 당 차원에서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고, 일개 의원의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대선 나가려고 간 보다가 여론 안 좋으니까 물러선다. 이번에도 그냥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지지층의 비호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태반이었다.

이는 최근 한승문의 이미지가 바닥을 친 영향도 있었지만,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토론 도중에 굉장히 자극적인 발언들을 연달아 늘어놓았던 탓이 컸다.

일단 원옥분 지사를 군사정권 부역자로 매도하면서 보수세력을 자극했고, 노동가능연령에 대해 논하면서 ‘여자들이 인형 눈이라도 붙여야 하는 형편’이라며 여성계와 빈민층을 동시에 자극했다.

그 결과, 유일하게 비난당하지 않은 것은 전라도 호남 지방이었고, 전라도는 양판석 대통령의 지지기반이라는 점에서 사태가 심상찮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검찰. 양판석 대통령 아들. 마약사범으로 기소.」

「기획재정부. 호남 퍼주기식 토목공사. 암울하다는 전망.」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다.

* * *

원래 대선을 앞둔 선거는 예비 대선이 된다. 따라서 임기 중에 커다란 선거가 생긴 대통령은, 누가 이기든 그때부터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원옥분이 검찰을 움직였고, 유재경이 기획재정부를 움직였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덕분에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양판석이 되어버렸다. 내가 해외로 각성제를 퍼준 사건이 이렇게 이어져버린 것이다.

“…….”

원래는 당분간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모처럼 정치권에서 벗어났으니 휴식기를 가지려고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당장 검찰에서 우리 이모의 로펌 변호사 시절 경력을 조사한다는 소문이 있고, 국민당 내부에서는 신수광이네 애들이 우리가 힘이 빠진 틈을 노려 공천권을 장악하는 중이다.

게다가 기획재정부에서도 경제 망했다고 확성기를 들고서 랩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경제전문가인 유재경 총리에게 힘이 실리니까 말이다.

“…….후우.”

총체적 난국.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원님…….”

“…….”

“범인…… 찾아낼까요?”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휴가 도중에 다급히 돌아온 피채원이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녀석을 만류했다.

그리고 피채원에게 범인을 색출하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채원아…….”

“네…….”

“원래 정치인은 뭘 해도 욕먹는 거다. 하다 못 해 쓰레기만 주워도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욕을 먹어요.”

“…….”

“그러니까 정치인이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니?”

“……일을 잘한다?”

“아니. 다른 놈들을 죄다 병신으로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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