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1)
“괴수 위치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 와이즈힐! 전선에서 300㎞ 떨어진 지역이고, 현재 빠른 속도로 이동 중입니다!”
“여보세요? 나 대한민국 김두식 장군입니다. 카퍼필드 사령관 있으면 바꿔 보십시오. 원폭기가 움직였다고 들었는데. 뭐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한민국 지하벙커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관료고 군인이고 할 것 없이 패닉에 빠져 버렸다. 괴수 하나가 5분만에 도시를 으깨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게 무슨……!”
양판석마저도 평정심을 잃었다.
각성제 해외지원에 관한 국민투표를 앞둔 상황. 공포에 질린 국민들이 국부를 유출하려는 행동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리고 나는 이번 국민투표에 정치생명을 걸었고, 내가 실각되는 순간 양판석은 레임덕이 시작된다.
따라서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위기인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의 위기이기도 했다.
그 판단이 선 순간, 나는 자리를 박찼다.
“각하. 혹시 비행기 남는 거-”
없냐고 물어보려던 그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화, 화면을……!”
통신병이 컴퓨터를 두드리자 어떤 위성영상이 중앙 모니터에 송출됐다.
그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홍선아가 왜 저기 있어?”
* * *
치이이이이익-!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의 대장벽에 부딪혔다. 모래가루는 잿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검은 서릿발이 흩날리는 날이다.
꿀꺽, 홍선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쿠르르르릉-!
동시에 불의 대장벽도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전진하기 시작했다.
거센 화염과 모래폭풍이 맞물리며 천둥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흙먼지가 잿가루가 뒤섞이며 세상은 지독한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모래먼지 너머의 실루엣은 헤아릴 수 없이 거대했다.
사막을 헤엄치는 뱀의 몸통은 꿈틀거리는 산맥과도 같았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사냥꾼의 판단이 끝났다.
“……!”
공격 명령을 내리는 장군처럼, 홍선아가 손을 들어 앞으로 향했다.
불의 대장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발하듯 무너져내렸다.
화르르르륵 -!
수평선을 질주하는 해일처럼, 불의 대장벽이 지평선을 달리기 시작했다.
불꽃으로 된 쓰나미가 모래폭풍을 휩쓸었다. 모래가루가 잿더미가 되어 흩날렸다.
화염의 파도가 모래폭풍을 밀어냈다. 그것은 모래와 불꽃의 전쟁이었다.
“크윽……!”
그녀의 화염 장벽은 마을 하나를 지켜낼 정도였고, 그것을 넘어뜨려 만든 폭풍 또한 기상현상에 비견될 정도였다.
덕분에 홍선아의 코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검은 피는 턱을 타고 뚝 뚝 흘러내려 하얀 와이셔츠를 적셨다.
세찬 눈발처럼 휘날리는 흙먼지와 잿가루가 폐부에 스며드는데, 붉은 마력은 온몸에 요동치며 핏줄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렇게, 거대한 해일은 모래폭풍의 중심을 향해 질주했고, 이내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사력을 다한 일격.
이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금방이라도 멸망할 것처럼 요동치던 세상은 정적에 휩싸였다. 지진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모래와 불꽃의 폭풍이 지나간 땅에 잿가루만 화산재처럼 조용히 내렸다. 바람마저도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에는 음산한 공포가 존재했다. 사냥꾼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매연 속을 직시했다.
그렇게 홍선아의 눈빛이 어둠 속을 향하니,
어둠이 붉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번쩍, 3쌍의 붉은 눈빛이 빛났다. 괴수의 눈동자는 홍선아를 직시했다.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어둠 자체가 괴수의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작게 꿈틀거리자, 대지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우웅 -!
갑작스런 충격파에 모든 잿더미가 밀려나고, 사막의 태양빛이 다시 세상을 비추었다.
사막을 뒤트는 뱀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 비늘은 흑요석처럼 번들거렸고, 그 눈빛은 붉은 마력으로 선명히 빛났으며, 그 몸통은 지평선에 솟아오른 검은 산맥과도 같았다.
뱀이 똬리를 틀자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반이 붕괴하며 모래먼지가 치솟았다.
뱀이 고개를 들었다. 머리에 쌓인 모래가 떨어져 산을 이뤘고, 솟아오른 그 머리가 태양을 가렸다.
그리고 입을 벌리니,
캬아아아아아악 -!
뱀이 마치 태양을 삼키는 것 같았다.
* * *
“……가망이 없군.”
홍선아의 싸움은 호주군 사령부에게도 전해졌다. 사령부의 모든 군인들이 그녀의 분투를 지켜보았다.
이에 허버트 중장이 입을 열었다.
“핵폭탄 말고는 방법이 없어.”
홍선아는 모래폭풍 속에서 싸웠으나 사령부는 위성을 통해 이를 내려다보았다. 덕분에 전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불의 장벽으로 모래폭풍을 막아 세우고, 인근 전체를 불꽃으로 뒤덮었으며, 그 거대한 괴수의 몸통에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덕분에 괴수는 홍선아의 존재를 인지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질주를 잠시 멈추고 그녀를 상대하려 똬리를 틀었다.
그게 전부다.
“저거 보이나? 저 시꺼먼 놈은 화상도 안 입었어. 애초에 지하 수백, 수천미터의 압력과 열기를 버티던 놈이니…… 쯧.”
허버트 중장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원폭기는 어디지?”
“현재 샌드스톤 인근 상공을 지나고 있습니다. 도착까지 대략 25분 남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투하하라고 전하게. 시민들이 대피하건 말건, 헌터가 싸우건 말건.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한다.”
지켜보던 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긴장된 얼굴로 중장 앞에 섰다.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중장님.”
“왜?”
중장은 상당히 피곤한 눈치로 대답했다.
참모장이 부릅뜬 눈으로 허버트 중장에게 항변했다.
“……전혀 상관이 없는 외국인도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군인들이 싸워볼 생각조차 않고 자국민 머리 위에 핵폭탄을 떨어뜨린다고요?”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초인협회 회장이야. 추정치 S랭크의 파이로키네시스지. 그런 인간도 상처 하나 못 냈어. 저놈이 본격적으로 날뛰면 얼마나 죽을 것 같나?”
“아직 대피하지 못한 피난민들이 수천명입니다! 중장님!”
“그러면 자네가 저 괴수 막을 거야?”
“그러려고 시도라도 해야죠! 그러라고 있는 군대 아닙니까!”
“그거 시도하는 동안 괴수가 퍼스를 덮치면? 그래서 8천명이 아니라 90만이 죽으면? 자네가 그것도 책임질 수 있나?”
“예!”
참모장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책임의 무게를 모르는 건지, 그 무게를 견딜 도량이 큰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핵폭탄 투하 명령을 거두십시오!”
“지랄…….”
중장은 비속어를 쓰며 낄낄거렸다.
갑자기 터져나온 웃음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그 웃음소리는 정상인의 것이 아니었으니.
“…….저, 정신이 나가셨군요. 이만 지휘봉 놓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역사에 죄를 짓지는 못하겠습니다.”
“남의 죽음을 책임지겠다고? 이런 개소리를 봤나…….”
참모장의 입이 다물어졌다. 중장의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던 탓이다.
비웃음을 참지 못하던 중장은 손목시계를 보며 핵폭탄 투하 시간을 가늠했다.
“어차피 핵폭탄 투하 명령 내린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야. 나 같은 중장 찌그레기가 이 지랄을 하는데 최고사령부에서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없네.”
“…….”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러나? 내가 다 덮어쓰라는 것 아닌가.”
중장이 맥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별다른 감정 없이 그저 피곤해 보였다.
“……결국 핵폭탄은 떨어져야 하고, 괴수는 죽어야 하네. 그게 전부야. 부차적인 문제는 내가 떠안고 갈 준비가 됐어.”
허버트 중장은 책임을 질 준비가 됐다. 그 책임을 질 자신이 없는 이들은 모두 이 땅을 떠났다.
아직 도망치지 않고 이 빌어먹을 곳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인간성을 증명했다.
그러니 국민들의 머리 위로 핵폭탄을 떨어뜨리겠다는 장성과, 그를 묵인하는 정부까지.
모두가 이 땅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성을 버려야 했다.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혀야만 했다.
그러니 누군가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
“결국 모두를 살릴 수는 없네.”
“중장님!”
“이놈 끌어내.”
헌병대에서 붙들려 끌려가는 참모장을 바라보며, 허버트 중장은 담뱃불을 붙였다.
“……하.”
가벼운 자조와 함께 중장의 시선이 위성영상으로 향했다.
괴수는 다시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꿈틀대고 있다. 그로부터 도망치는 작은 마을은 마치 장난감처럼 보인다.
조금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이 이처럼 우습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그만큼 비참하다.
가까이에서는 비극이겠으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
그래서 중장은 웃었다.
“……핵탄두 15발을 주문했으니 기사회 쪽 출병을 막으라고 전하게. 그래야 나중에 면이 서겠지.”
* * *
커다란 수송기를 눈앞에 두고, 수많은 헌터들과 장교 하나가 대치했다. 장교는 비행기 입구를 철벽같이 막아세우고 있었다.
“비행기가 왜 못 뜬다는 겁니까!”
뤼미에르의 입에서 보기 드문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삿대질까지 하며 군인을 몰아붙였다.
“우리는 헌터고! 지금 괴수를 잡으러 갈 겁니다! 이유가 더 필요합니까? 당장 수송기 띄우십시오!”
“유감이지만 조종사들이 없습니다.”
“시드니에 조종사들이 한 명도 없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군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부에서의 명령이다. 기사회의 출격을 최대한 늦추라는 것.
이는 핵무기 사용의 필수 불가결함을 선동하려는 속셈이었다.
기사회가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핵무기를 사용했다고 말해야 국민들에게 그나마 면이 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사회가 핵폭발에 휘말린다면 그거야말로 괴수 이상의 재앙이고, 기사회가 현 시점에서 도와주지 않아야 나중에 책임분산도 되고 말이다.
물론 기사회가 그걸 모르는 바보가 아니다.
“어이.”
결국 다니엘 웰링턴이 고무장갑을 벗었다. 덥수룩한 수염의 서양인은 음산한 목소리로 군인을 불렀다.
“거, 군인 양반.”
툭, 두꺼운 핑크색 고무장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전류가 번쩍거리는 손아귀가 드러났다.
숙련된 초능력자도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초상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치지직! 웰링턴이 자신의 주먹을 맞대고 두둑거리니 섬광과 함께 스파크가 튀겼다.
“내가 멱살이라도 잡으면 당신은 뒈져.”
“…….”
“하나만 묻지. 내가 참을성이 있어 보이나? 응? 내가 언제까지 이 좆같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아? 이 좆대가리 새끼-”
본토 영국 발음의 욕설이 쏟아지려던 그때.
치지직-!
전기 튀기는 소리와 함께 군인이 쓰러졌다.
“으르르르륽……!”
“……!”
“……!”
다니엘 웰링턴이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고. 뤼미에르는 진짜로 살인이 난 건가 싶어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이 상황에 여유로운 사람은 단 하나.
전기충격기로 군인을 기절시킨 감기자였다.
“아이고. 손이 미끄러졌네.”
“…….”
“…….”
감기자는 전기충격기를 주섬주섬 뒷주머니에 숨기며, 유려한 프랑스어와 함께 뤼미에르에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혹시 어디 가실 데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 방금 그거 전기충격기-”
“잘못 보셨겠죠.”
“그거, 그, 전기충격기, 그거…….”
“저 비행기 면허 있는데.”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