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8 - 초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와이루즈 시가 있던 자리에 사막밖에 없습니다. 지형이 바뀌었어요.”
“……좌표를 잘못 검색한 거겠지.”
조수를 밀어낸 관측원이 위성지도를 조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좌표값을 입력해도 사진은 변하지 않는다. 모니터는 그저 사막 한가운데로 보이는 곳을 띄우고 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관측원이 엔터 키를 누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종국에는 광기에 차서 버튼을 연타한다. 지켜보던 조수가 관측원을 만류했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저기 맞다니까요!”
“우리 부모님이 거기 있어.”
“…….”
도시는 전선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최후방이었다. 수많은 피난민이 거주했고, 대부분이 돈이 없어서 외국으로 탈출하지 못한 원주민들이다.
관측원은 한참이나 좌표를 붙잡고 위성지도를 조작했다. 하지만 모니터는 여전히 사막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좌표값을 입력해도 지도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를 보여주고 있다.
그곳은 사막이었다.
사막이었다.
* * *
“공군 불러 이 새끼야!”
“여기는 ADF 항공사령부. LCC-19 응답하라. 반복한다. 여기는 호주방위군 항공사령부. 7함대의 즉각적인 공습이 필요하다…….”
“시간 없으니까 확실히 말하세요. 괴수입니까? 지진입니까? ……아니, 그것도 모르는 새끼가 왜 지휘관이랍시고 앉아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 군부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었다. 악재에 악재가 연거푸 겹치니 인력들이 전부 패닉에 빠진 것이다.
애초에 총리가 야반도주하고 군인들이 정권을 잡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미국이 갑자기 핵폭탄 32발을 쏟아부은 지는 12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또 사고가 터진 것이다.
“……지하에 있는 괴수가 올라와서 도시 하나가 모래에 덮였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자네들이 단체로 미쳐버린 건 아니고?”
그러니 갑자기 불려나온 허버트 중장의 지적은 충분히 합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중장을 설득하는 데에는 2분짜리 위성영상 하나면 충분했다.
“어, 음…… 어우…… 그래.”
영상을 확인한 허버트 중장의 입이 다물어졌다. 사람 하나가 처형당하는 영상은 스너프 필름이라고 부르지만, 7만 명이 죽어 나가는 영상은 재난영화였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 생지옥에서 군부 장성씩이나 하는 인간도 그닥 정상인은 아니었으니, 중장은 빠르게 제정신을 되찾고 대처하기 시작했다.
“현 사태는?”
“빌딩을 무너뜨린 지진 이후 지반이 솟아오르며 거대한 산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산사태처럼 모래가 쏟아지며 도시가 매장됐습니다. 그 원흉이 위성사진으로 관측됐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중입니다.”
“괴수는 어디로 움직이고 있지?”
“퍼스로 향하는 중입니다.”
“……퍼스 도시? 아니면 퍼스 지역?”
“이미 그 근처에 괴수가 올라왔잖습니까. 어디로 가든 사람 사는 곳입니다.”
호주는 인구밀도가 극도로 낮다. 그래서 모든 인구가 도시 몇 개에 몰려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퍼스는 가장 커다란 도시 중 하나였다.
남서부의 해안도시인 퍼스는 단순 인구가 90만이고, 인근 주거지를 포함하면 200만 가량의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물론 그건 옛날 이야기고, 인류가 대륙 끝자락으로 밀려난 지금 상황을 고려하면 약 300만. 혹은 그 이상에 육박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인구 7만 명짜리 소도시를 일격에 무너뜨린 괴수가. 지금 인구 300만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동 중이라는 말인가?”
“이미 거기 있습니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는데.”
“유감입니다.”
“으음.”
중장은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미 끔찍한 현실을 살고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핵폭탄 투하해.”
* * *
핵폭탄은 폭격기로 이송되었다. 일정한 지역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표적을 상대로 핵미사일을 쏘는 건 썩 유쾌한 선택지는 아니었으니.
하지만 괴수로 가득한 하늘에서 폭격기가 움직이려면 전투기 편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우연히 부딪히는 거지만 그놈들은 일부러 달려드니까.
때문에 다윈 공군기지에서 출발한 핵폭격기 편대는 약 2000km의 거리를 1시간 30분에 주파하기로 결정했다. 최대속도보다 30분이 늦어진 계획이었다.
“그러니 우리 목표는 1시간 30분을 버티는 거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전선에서 병력을 빼면 전선이 밀린다. 요즘은 개미들 때문에 큰놈 하나보다 작은놈 수백만이 무서워. 일단 전투헬기로 대응해봐.”
호주 사령부의 판단은 비교적 적절했다. 놈은 전술적 위협이 아니라 전략적 재해다. 어줍잖게 육군 투입해봐야 큰 효과는 없을 것이었다.
문제는 전투헬기도 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대지 미사일은 놈이 지하에 걸쳐 있어서 불발했습니다. 게다가 인근 모래폭풍 때문에 헬기 2대가 추락했습니다.”
“……그래?”
“움직이는 곳마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생깁니다. 게다가 진짜 사막뱀처럼 온몸을 요동치며 옆구리로 움직이는 바람에…… 거의 사막 전체를 몰고 다니고 있습니다.”
비록 그 초현실적인 장면이 머리로 상상되지는 않았지만, 위성사진은 모래폭풍으로 된 소규모 태풍을 보여줬다.
장성은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며 침착을 지켰다. 이 생지옥에서 괜히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으니.
“……기사회 쪽은?”
“오는 중입니다. 3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하긴, 초음속 폭격기가 1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혹시 텔레포터는 없다던가?”
“없답니다.”
“상황 참 좆같이 돌아가는군.”
그 말에 틀린 구석은 전혀 없었다.
괴수는 여전히 인구 300만이 거주하는 지방에서 활개치고 있다. 이미 마을 몇 개가 휘말려 수천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행여 90만 이상이 밀집한 도심지로 향한다면…….
그때는 정말 멸망이 아른거리는 상황이 되겠지.
장성은 전술지도 앞에서 결단을 내렸다.
“……지금 S급 마석이 6개인가 있었지?”
“그렇습니다.”
“헬기에 매달아서 보내. 지렁이에게 미끼를 던져주자고.”
초인만 마석을 흡수하는 건 아니다. 괴수들에게도 생태계가 있다.
S급 마석 6개 정도면, 저 SSS급 괴수를 유인할 수는 있겠지.
“……와이즈힐 방향으로 저 빌어먹을 지렁이를 유인해라. 인구 밀집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린 다음에, 핵폭탄을 직격시키자고.”
“잠시만요, 사령관님. 괴수를 와이즈힐로요?”
“뭐.”
“거긴…… 사람이 사는 곳 아닙니까?”
“그래. 와이즈힐은 인구 8천 명가량의 소도시지. 그 윗동네인 세인트 카프레는 대략 11만 명이 거주하는 피난민 밀집구역이고, 그 아랫동네인 제이파도 4만 명짜리 도심지고 말이야.”
중장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문제는 그 반대편이 인구 9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곳이고, 그 주변에 몰린 사람들만 대충 어림잡아 200만이 넘어간다는 사실이네.”
“하지만 사령관님. 8천 명을 20분 내로 대피시킬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기름 때문에 차량도 이용이 불가능한데……”
“이봐. 그 괴수가 아직까지 도심지를 덮치지 않은 것은 내가 보기에 천운이야. 지금이라도 당장 90만 명을 깔아뭉갤 수도 있다고. 게다가 핵폭탄 도착했을 때 괴수가 도심지에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중장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판단을 망설이기에는, 그의 군생활이 너무도 파란만장했던 탓이었다.
“간단해. 90만 내지 200만을 지키기 위해, 8천명을 희생시킨다.”
“…….”
“그리 어려운 셈법은 아니지 않나.”
* * *
와이즈힐은 전형적인 서구권의 시골마을이었다. 커다란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과, 샷건이 들어있는 차고지가 있는 곳.
지평선을 채운 밀밭에 경비행기로 농약을 치고, 으슥한 밤에는 권총 든 양아치들이 어슬렁거리며 콧구멍으로 술을 처먹는 곳.
그런 어디에나 있을 법한 시골 마을에, 흔하디흔한 재난영화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저, 저희도 태워주세요! 태워달라고! 이 개자식아!”
“일단 그리로 갈게. 애들 데리고 기다리고 있어, 자기야!”
지평선에서 몰려오는 쓰나미에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것은 그게 모래폭풍으로 된 쓰나미라는 것이었다. 덩달아 지진도 조금 심했다.
차에 기름을 숨겨뒀던 사람들은 사정이 조금 나았고, 권총을 쥔 사람들은 운전자를 쏴 죽이고 차를 뺏었으며,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업고 뛰어서 도망쳤다.
그리고 모든 재난영화가 그렇듯이, 마을 외곽에는 한 노인 하나가 길바닥에 앉아 멀리서 밀려오는 쓰나미를 지켜보고 있었다.
“…….”
주름진 노인은 다가오는 죽음을 묵묵히 기다렸다.
백내장에 흐려진 눈동자에 주마등이 맺혀 눈물이 글썽거릴 때.
누군가 뒤에서 다가와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여기서 뭐 하세요?”
“……어, 씨, 깜짝이야!”
노인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눈웃음이 예쁜 동양인 하나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노인에게 물었다.
“안 도망치세요?”
“……도망치는 것도 이젠 지쳤소.”
유언에 가까운 말이었다. 노인과 여인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노인은 헛기침을 하고선 멋들어지게 유언을 읊기 시작했다.
“도망만 치는 인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소.”
“……그런가요?”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불을 붙여야 먹을 게 생기지,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 결국 밥이 다 타버리면…… 아무튼 도망만 쳐봐야 아무 소용 없다 이거요. 크흠!”
노인은 그럴듯한 명언을 내뱉으려다 혀가 꼬여서 말을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 민망함에 헛기침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이 동양인은 그 헛소리가 인상 깊었는지 옆에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여인이 노인에게 물었다. 그 은은한 미소에 노인은 약간 얼이 빠지는 것 같았다.
“도망치는 게 나쁜 건가요?”
“……나쁜 건 아니지. 그냥 편한 것뿐이요. 그런데 살면서 편한 길만 갈 수는 없으니까 문제지.”
“그런가요?”
“……글쎄.”
노인이 문득 인생을 회고했다.
어느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전부 잊어버리고, 여인과의 대화에 몰두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사실 앨리스 스프링스 사람이요. 여기에서부터 정확히 1967km 떨어진 곳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노인과 여자부터 차에 태워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양심이 남아 있던 시절이라, 젊은이들 자리를 밀어내고 피난용 버스에 탔지.”
“……노인보다는 젊은이가 더 쓸모 있을까요?”
“현실적인 문제 아니요.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했어. 나같은 늙은이를 대피시켰으니 밥만 축내고 앉았지. 젊은 애들이 대피했으면 무너진 잔해더미에서 고물이라도 주워 와서 팔지 않았겠소?”
“……고물이라도 주워오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을 살려야 하는 걸까요?”
“적어도 포트 오거스타에서는 그랬소. 괴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남부를 덮쳤을 때, 그때는 정부가 노인과 여자를 버려두고 기술자와 고위공무원, 그리고 건장한 남성들 위주로 배에 태우더군. 나머지는 항구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전부 죽었소.”
“그러면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살아 계시죠?”
“나야 어떤 재벌놈 트렁크 가방에 몰래 쏙 들어갔지. 미친년 하나가 거의 사람 몸무게만 한 가방 대여섯 개를 배에 싣더군. 보석이랑 현찰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이었소. 그 가방들만 없었어도 일가족이 피난선에 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늙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거 큰일날 소리를 하네! 아, 생각은 생각이고 현실은 현실이지. 살고 싶은 거야 인간의 본능 아니요? 노인들 먼저 대피시키면 안 된다는 거야 내 생각이고, 그렇다고 내가 대피를 안 하는 건 그냥 미친 거지!”
“지금 안 도망치고 계시잖아요.”
“…….”
노인은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모처럼 지평선을 보니 어느새 모래폭풍이 가깝다. 지진도 점점 심해지고 있고, 어두운 그림자도 스멀스멀 마을을 향해 접근한다.
노인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마음 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진심을 드러냈다.
“……삶보다, 더 소중한 게 있더라고.”
“…….”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탈출할 때, 나는 내 아들을 버리고 도망쳤소. 병신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평생 부모를 고생시키던 녀석이지. 마누라도 그놈 때문에 화병으로 죽었고. 나도 허구헌날 술만 처먹으면서 인터넷에서 병신짓이나 하다가 고소당하는 등신새끼 꼴 보기도 싫었고……”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연 끊으라 할 때 끝까지 참았는데, 그렇게 내팽개치니까 속이 참 시원하더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건 속이 시원한 게 아니야. 마음에 구멍이 뚫린 거지.”
“…….”
“내가…… 내가, 그놈을 보고싶은 게 정상이요?”
여인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원래 미워할수록 사랑하는 거잖아요.”
그녀는 흙먼지를 툭 툭 털고 일어났다. 어느새 모래폭풍은 눈앞에 아른거린다. 거대한 유사(流沙)의 해일이 마을을 쓸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모래의 폭풍 앞에, 인간은 참으로 작고도 작았다. 저어 멀리 어둡고도 노오란 지옥 속에서 일렁이는 거대한 그림자가 근원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긴장감에 쿵 쿵 울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홍선아는 이렇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냥 마음가는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한 것 같아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요?”
“양심이고 도덕이고 국익이고…… 그냥 구하고 싶어서 구하는 거지. 뭐 있나요?”
거센 모래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폭풍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입가에는 누군가를 닮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걸고서.
“이유야 어찌 됐든. 옳은 건 옳은 거니까.”
“…….”
“저기, 어르신! 혹시 살아남으면 하고 싶은 일 있으세요?”
노인은 이거 미친년인가 싶으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잽싸게 대답했다.
“……콜라! 콜라 못 먹은 지 벌써 3년째요!”
“펩시요? 코카콜라요?”
“아니 지금 그게……! 아, 아무튼 펩시!”
“오케이! 접수!”
세상은 어느새 밤처럼 어두웠다. 모래폭풍이 다가와 태양을 가렸다. 거대한 지진은 재앙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예고했다.
노인은 두려움에 엎드려 죽음을 기다렸고, 노인의 앞을 막아선 홍선아는 어둠 속 무언가를 응시하며 팔을 벌린다.
그리고,
따뜻한 열기에 고개를 든 노인의 눈동자에 불꽃이 번지고,
노인의 눈앞에는 폭풍을 막아 세운 거대한 불의 장벽이 솟아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