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 사상 최강의 감찰관 (4)
인간의 가장 큰 천적은 인간이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었고, 헌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총 맞으면 죽습니다. 예외가 좀 많긴 하지만 대체로 총 맞으면 그냥 죽어요.”
그러니 감 기자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인간사냥이라는 게 아주 현실성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는 겁니다. 당장 헌터가 서포터 죽이고 시체 유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하루이틀 일은 아니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정형적인 대처법 또한 존재했고, 3세계를 떠돌던 종군기자는 이런 쪽으로는 반쯤 프로에 가까웠다.
“결국 인신매매라는 건 돈 때문에 하는 겁니다. 즉, 장기를 팔아먹을 곳이 있다는 거죠.”
“…….유통망을 조지면 답이 나오겠군요.”
“제가 반평생을 중동 독재자 뒤를 캐고 다닌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가는군요. 비자나 좀 끊어주십쇼.”
* * *
감 기자는 본인이 북한에서 정보를 캐오겠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필요없는 리스크를 굳이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아, 예. 접니다. 네.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다름이 아니라-”
나는 감 기자를 북한으로 보내는 대신 국정원장에게 전화 한 통을 걸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감 기자는 내 연락을 받고 찾아온 감지윤에게 뒷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갔다.
그러나.
“……뭐가 어째요?”
“죄송합니다. 북한 측에서 더 이상 요원들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건을 여기서 덮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윗선에서도 큰 일을 앞두고 북한 측과 무리한 마찰을 빚고 싶지 않다는-”
“내가 바로 그 윗선입니다. 이게 뭐하자는 소립니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사를 확대하려 하자 북한에서 조금 꺼림칙한 반응을 드러냈고,
국방부와 국정원은 어차피 2차 한국전쟁 끝나면 북한 통째로 집어삼킬 거, 그냥 그쪽 장단에 맞춰주자는 의견을 낸 것이다.
양판석도 그에 동조했다.
“서울사태 당시 우리가 북한으로 밀어버린 괴수들 때문에 60만 명이 죽었던가? 인민군은 예성강 방어선을 사수하느라 2할 가량이 목숨을 잃었고 말이야.”
“…….”
괴수를 북한으로 밀어버리자는 작전을 낸 사람이 나였으니,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다.
허나, 애써 외면하던 사실이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어차피 개성이야 반동 새끼들 텃밭이었으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무마했지만. 어디 그게 전부겠나? 그쪽에서도 나름의 타협을 제시한 거야.”
“…….”
“어차피 그쪽이 을이고 우리가 갑이니 따져봐야 쥐뿔도 없다는 걸 아는 것이기도 했고. 공포 분위기가 확산될수록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했고…….”
양판석은 거기서 말을 끊고 입을 닫았지만. 나는 대충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
어차피 우리가 60만이나 죽였는데. 북한에서 끽해야 십수 명 실종된 것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자는 소리였다.
이건 2차 한국전쟁이라는 거사巨事를 앞둔 마당에 양국 사이에 트러블이 생겨봐야 좋을 게 없다는 식의 정치논리였고.
“……알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퍽 합리적인 논리였다.
* * *
“아니, 그래서 일을 여기서 묻겠다는 겁니까?”
내가 국정원에게 따져 물었던 말을 감 기자에게 그대로 전해 받으니 감회가 오묘했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일에 스스로가 이렇게 무덤덤해졌다는 사실에도 감회가 오묘했다.
“쩝.”
결국 혀나 한 번 차고서는 소주잔을 기울인다. 쓰라린 알코올이 목울대를 지나고, 나는 다분히 불콰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도 나랏일 혼자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아직 꺼림칙하긴 한데, 주류 의견이 저러니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아니, 이게 뭔……!”
“또 북한으로 괴수를 밀어버리자는 작전을 낸 사람이 저였으니. 60만의 목숨빚 앞에 그리 떳떳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감 기자는 득달같이 따져물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사람이 죽었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파봐야 할 것 아닙니까!”
“거, 참…….”
확실히, 나도 적당히 타협하긴 했으나, 꺼림칙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북한의 독재자인 리용수는 우리와 꿍짝이 아주 잘맞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핵폭탄을 휘두르던 이전 독재자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쓰읍.”
리용수는 겉으로는 남한 정권을 씹어먹으려 들면서도, 지금까지의 그 어떤 지도자들보다도 더 남한 정부와 깊이 야합한 인물이었다.
당장 사태 초기 당시 인민무력상이던 리용수의 컨택을 받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숨어 있던 벙커를 날려 버린 게 우리였고.
우리가 북쪽으로 몰아버린 서울 괴수들 때문에 개성에서 수십만이 죽어나가도 반동분자 잘 죽여줬다며 좋아하던 게 저쪽이다.
심지어 전략핵 두 개 빼고 모든 핵폭탄을 받아오는 대신, 중국에서 넘어오는 괴수들을 막아주고 있는 게 우리 아니었던가?
게다가 지금은 개방된 북한 국경 인근을 헌터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마석을 벌어오고 있다. 그게 국내 마석 공급의 2할가량이다.
“쯧…….”
그러니 우리와 북한은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라 봐도 무방했다. 악어가 입을 닫으면 악어새가 죽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물론 대부분이 줄타기의 달인 원옥분 선생의 업적이긴 했으나. 외교관계라는 게 고작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엎어지는 건 아닌 거였다.
나는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소주 두 병째에 취했는지 혀가 풀려 있다.
“그러니까…… 북한이 갑자기 이러는 게 뭔가 있다는 증거는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또 따져 묻기가 조금 뭣한…….”
“에이씨 진짜……!”
달그락!
감 기자가 던지듯이 내려놓은 모나미 볼펜이 데구르르 굴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
“…….”
GS 24 편의점 앞의 플라스틱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밤바람이 불어와 소주 봉다리에 부스럭거렸다.
나는 불콰하게 취한 채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고, 감 기자는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장관님. 진짜 이럴 거예요? 사람 죽은 일 아닙니까. 이거.”
“…….”
“변한 거예요?”
반쯤 웅얼거린다 싶은 대답이 돌아왔다.
“……모릅니다.”
“거, 진짜. 우리 지금 무슨 드라마 찍습니까? 나는 뭐 정의로운 기자고, 한 장관님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적폐 정치인이야?”
“모른다니까…….”
“아 모르긴 뭘 몰라!”
신경질적인 물음이었고, 나는 무기력한 답변을 돌려줬다.
“그…… 뭐냐. 저기…….”
“뭐요.”
“우리 치안관들이 정기적으로다가 북한 쪽을 시찰하는데…….”
“뭐요?”
“취재 목적으로 사람 하나 끼워 넣는 것 정도는 아무도 모를 거라구요…….”
* * *
“그렇게 됐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도연 씨!”
해맑게 미소 짓는 중년의 웃음을 보며, 여도연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심정이었다.
“……장기털이범들을 잡으러 간다고요?”
“정확히는 대략적인 유통망을 파악하러 가는 거죠. 그리 위험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아는데.”
“감이죠, 뭐. 저 감 좋습니다.”
감이 좋다고 말하는 감 기자의 말에, 여도연은 가벼운 헛웃음만 새어나올 따름이었다. 물론 웃겨서 그런 건 아니다.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한승문의 권력이 점점 늘어날수록 치안관들에게 주어지는 지원 또한 나날이 두둑해졌다. 기획재정부에서 알아서 예산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여도연은 번듯한 사무실의 멋들어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실상 치안관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까.
검푸른 코트에 달린 태극무궁화 금장이 그녀의 위치를 증명했다. 그녀가 대한민국 치안관인 동시에 경무관이며, 공무원 직제로는 3급의 부이사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계급장이다.
그러나 금뱃지보다는 못한 모양이다.
“……여보세요?”
-왜. 뭐.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북한 장기털이는 또 무슨 소리고.”
-어, 음……. 그냥 감 기자님 모시고 북한 나들이 한 번 갔다온다 생각해.
“뭐?”
-파이팅!
“야, 잠깐, 잠깐만. 끊지 마! 이 씹-”
* * *
여도연이 치안관이라는 귀찮은 노릇을 자처한 이유는 괴수를 무찌르고 사람을 구하겠다는 공명심이 가장 컸다.
무기력한 이전 사회에서의 자신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다. 사람 구하고 다니는 동생에 대한 기특한 마음도 있고 말이다.
허나, 막상 치안관 노릇을 이어가다 보니 그녀가 진정 경계하게 된 것은 사람이었다.
장전읍으로 향하는 금강산 샛길. 단풍잎 바스락 거리는 오솔길을 걸으며, 여도연은 퍽 건조한 어투로 쏘아붙였다.
“……거, 조심하십쇼.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니까.”
“어이구. 무적의 도연 씨도 무서워하는 게 있으십니까?”
아저씨의 실없는 농담에 여도연은 정색으로 대처했다.
“심심하면 서포터 때려죽이는 헌터에, 총 들고 탈영한 인민군에, 포주랑 연결된 주먹 새끼들에…… 아주 별별 또라이들이 다 있다니까…….”
“도연 씨가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아, 진짜…….”
“하하하! 기럭지가 길어서 그런가 옷빨이 잘 사네요!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배경도 좋은데.”
이게 무슨 꼴이람…….
평생 써본 적도 없는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쓴 여도연이 생각했다. 널리 알려진 얼굴을 가리기 위한 술책이라지만 영락없는 양아치 꼴 아닌가.
가죽점퍼에 오토바이 헬멧, 허리춤에는 빠루까지. 아주 정석적인 삼류 헌터의 복장이었지만, 여도연은 쫙 달라붙는 패션이 어색하기만 했다.
“……하. 그 새끼. 진짜.”
하여튼 동생 놈이랑 엮여서 좋을 게 없다.
등급 정하는 게 본인인데 가족이 9급이면 눈치 보인다면서 아직까지 8급 헌터 신세인데다.
압구정파 동대문파 친목 다져야 한다고 맨날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가시방석에 앉지를 않나.
이제는 팔자에도 없는 북한까지 왔다.
“…….하아.”
물론 북한 쪽 국경이나 금강산이야 매번 들락날락 거린다지만, 제대로 북한 시내까지 찾아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치안관이 북한 쪽에 행정력을 발휘하면 안 된다는 방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장전읍은 북한이라고 하기에도, 남한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곳이었다.
“아-이! 와서 놀다 가라야! 사내놈 심보가 고저 오소리 오줌보만해서야 어디 쓰갔니!”
“크흐흐……! 쒸이…… 뿔년. 오빠가 괴수 새끼들 골통 까부수고 올 테니까아-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라? 으응?”
“아잇……! 모른다야!”
무너진 백화점에서 훔친 화장품으로 치장한 홍등가의 호객행위, 그리고 그들 틈바구니에서 일회용 사랑을 즐기는 헌터들.
대낮부터 반짝이는 네온싸인으로 빛나는 도박장과, 어디서 주워온 건진 몰라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빠칭코 기계.
“아저씨! 씨발 기계 돈 먹었잖아!”
“어어! 빠찡꼬 까부수디 말라!”
“이 씹……! 빨갱이 새끼가 얻다 대고 반말이야!”
이곳 장전읍은 애초부터 금강산을 찾아오는 외국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해외 바이어들이 오가는 거대한 항구도시였던지라, 원래부터 수많은 호텔과 유흥가가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남한에서 거대 PMC들이 대부분의 사냥터를 관할구로 독점하고,
충청방어선 인근의 자유사냥지대가 반쯤 포화상태에 이르러,
하위 헌터들이 반쯤 무너진 삼팔선을 넘어 사냥을 개시한데다,
이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 생각한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북한지역 사냥을 지원하니.
관광으로 먹고살던 항구도시가 거대한 유흥가로 변모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감 기자가 감탄했다.
“와아……! 이 정도로 발달되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80년대 서울 요정집 같다.”
“……다니셨어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는 그때 국민학생이었습니다. 큰일 날 말씀을!”
감 기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스마트폰으로 사방팔방을 찍어댔고, 여도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기적어기적 길거리를 힐끔거렸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관광객 행색이다.
그들은 한참동안 장전읍의 향락가를 배회했고, 여섯 시쯤 되어 노을이 아른거리자 여도연은 문득 이게 지금 뭐하는 짓거리인가 싶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장기매매 잡는다면서 온종일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만 먹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자칭)원조 평양냉면은 맛있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저기요. 감 아저씨.”
“예?”
감 기자는 지치지도 않는 모양인지 아직도 찰칵찰칵 길거리를 찍어대고 있었다. 불러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모습에 여도연은 살짝 고양된 목소리로 질문했다.
“관광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일은 언제 하십니까?”
“어허,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어차피 우리 근처에 사복경찰만 여덟 명이던데요. 아니. 경호원인가.”
“흐음. 장관님이 그래도 누님을 많이 챙기시나 봅니다. 강철도 씹어 먹는 사람인데!”
헬멧 속의 여도연이 뚱하니 침묵하는 동안, 감 기자는 뭐가 그리도 웃긴지 깔깔거리다가 가볍게 답했다.
“그래요! 갑시다 이제!”
“아, 예. 이제부터 모래밭에서 김 서방 찾으면 되는 겁니까? 유통망인지 뭔지…….”
“아뇨, 집에 가야죠.”
“예?”
이건 또 무슨 귀신이 시나락을 까먹나 싶어 여도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감 기자는 방긋 웃으며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방금까지 길거리를 찍어대던 그 물건이었다.
“볼일 다 봤습니다.”
* * *
“그, 뭐냐. 사실 사람장사라는 게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와서 그렇지. 흔한 듯하면서도 엄청 어려운 일이거든요? 유통망이라든가 운반책이 아주 비밀스럽고 조직적이어야 하고, 또, 수술인력이나 브로커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부산으로 돌아가던 길.
텅 빈 군사도로를 질주하던 감 기자가 흥겹게 웃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니까 동네 깡패가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란 말이에요. 결국 범인은 무조건 정부 아니면 기업이야. 나머지는 걔네 하수인이고.”
조수석의 여도연은 감 기자의 설명을 흥미롭게 청취했다.
“그런데 결국 장기팔이는 돈 때문에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참 영양가 없는 시장이거든? 리스크가 크잖아요. 잘나가는 선진국이잖아. 걸리면 속된 말로 뭣 되는 거지.
그러니까 헌터 장기 떼다 팔아먹으려면 중동이나 아프리카. 유럽을 가야지. 기업이 굳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어요.”
“…….”
“그러면 위치적 제약을 받는 북한 정부가 한국 헌터를 조졌을까? 그것도 아니거든요. 리용수라는 양반이 이런 시대에 쿠데타로 정권 잡아놓고 몇 년 동안 멀쩡히 살아있는데다, 이제는 자기가 먼저 2차 한국전쟁이라는 빅딜을 제시했단 말이야. 적어도 주제 파악 못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북한 정부에서 추진했을 가능성도 적어요.”
감 기자는 물 흐르듯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왜 한국 헌터일까. 왜 굳이 위험하게 한국에서 이 지랄일까. 한국 헌터가 다른 나라 헌터랑 다른 게 뭘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까 답은 뻔하더라고.”
여도연이 뒤통수에 망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답했다.
“……각성제?”
“정답.”
오직 한국의 헌터들만이 대부분 인위적으로 각성된 이들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헌터가 수백배는 많은 이유가 오직 각성제뿐이었다는 거다.
즉, 각성제를 연구하려면 각성제를 복용한 헌터의 시신을-
“……!”
여도연이 충격에 말을 잃었다.
“…….”
“…….”
밤길은 어두웠고, 군사도로를 질주하는 차 안에는 적막이 내려앉았으며, 감 기자는 콧노래를 흘리며 노상을 질주하다가 담담히 설명을 이어갔다.
“뭐어, 굳이 한국 헌터들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긴 해요. 북한이 사람으로 장사하기 좋은 곳은 맞으니까. 비각성자 장기 털어가려는 사람들도 아마 북한으로 몰려들었을걸요? 나는 개인적으로 그중 한 기업의 일탈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가.”
“…….”
“정부는 인민을 팔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고. 북한이 돈 벌 방법이라고는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것뿐이고. 해외 투자유치 받기 위해 기업을 마구잡이로 들여놨을 거란 말이야. 용의자는 참 많아.”
“…….”
“근데, 하나 분명한 게 있어요. 정부든 기업이든 나중에 걸려서 뒤지기 싫으면 북한에서 연구를 진행하면 안 된단 말이야. 북한은 곧 남한이 먹을 거라고. 그러니까 북한에서 구한 장기를 외국으로 무조건 빼내야 해.”
여도연은 감 기자가 하루 종일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티 안 나게 북한에서 장기 유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국제구호를 명목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거 아니겠어요?”
“…….”
“장전읍이 딱 좋아. 대규모 유흥가 항구도시. 남북한 어중간하게 섞여서 둘 다 손 뗀 곳. 장기 밀봉해서 외국으로 쏘든 원산으로 쏘든, 아니면 중국으로 보내든, 여기가 진짜 핫스팟이란 말이야.”
“……그래서 거기 사진을 찍은 거예요?”
“그렇죠. 의심되는 기업들은 다 찍어놨죠. 다 아는 곳들이더만. 제약회사, 유령회사, 군수회사, 등등. 대충 서른여섯 개 정도.”
감 기자가 여상스레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거 다 장관님한테 넘기면 알아서 파보지 않겠어요?”
“……아무것도 안 나오면요?”
“그러면 뭐 처음부터 조뺑이 쳐야지!”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끝내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여도연이 모처럼 넋나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까 말했잖습니까. 저 감 좋은 사람이라니까요? 차재균이도 이렇게 잡았어.”
“…….”
하얀 보름달 아래. 검은 차체가 태백산맥을 등지고 동해안의 해안도로를 질주했다.
여도연은 검은색으로 출렁이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인지 모를 구토감에 휩싸였다.
폭풍전야였다.
EP 25
사상 최강의 감찰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