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 사상 최강의 감찰관 (3)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창립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부검의 두 명이 시체 사진을 검수하며 투덜거렸다.
“마누라가 나보고 시체냄새 난데…….”
“형수님 얼굴이라도 보신 게 다행 아닙니까?”
이어지는 건 대화가 아닌 한숨뿐.
매일 밀려드는 시체 수백 구의 신원을 확인하느라 퇴근조차 못하는 게 그들의 일상이었다. 천만 명 이상이 죽어나간 탓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공무원들 팔자가 상팔자이다만은, 사람보다 시체를 더 많이 보고 있으면 삶에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 속에 누군가 찾아왔다.
“아이고오- 수고들 하십니다!”
둥근 안경.
순한 미소.
날렵한 눈매.
그리고 노란 봉다리에 들어 있는 박카스 뭉치.
감 기자는 연구원들에게 박카스를 건네며 사근사근 미소 지었다.
“국정원에서 맡겨놓은 시체 좀 보러 왔는데. 괜찮을까요?”
* * *
초상관리부 감찰관이라는 건 공직사회의 깡패와도 다름없는 위치였다.
이건 공무원 직제와는 상관없는 개념이다.
차기든 차차기든 차차차기든 언젠간 대통령을 해먹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정치인의 측근이니, 그 어떤 공무원이 함부로 대들겠는가.
덕분에 감 기자는 순식간에 시체 앞에 설 수 있었다. 직접 확인한 시체는 으스러진 고깃덩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게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된 건가요?”
“아, 예. 방부처리하고, 체내 마력도 걷어내고…….”
연구원은 퍽 담담하게 설명했다.
익숙한 눈치다.
이에 감 기자가 물었다.
“아, 체내 마력도 걷어냅니까?”
“예. 마력이 함유된 유기물을 그대로 놔두면 좀 이상하게 변질될 수도 있어가지고……. 일단 중화제 뿌리고 나서 방부처리를 합니다. 그리고…….”
각종 전문용어가 가미된 설명이 이어졌다.
“흐음…….”
나름 와이프가 이 분야 선구자였고, 장녀가 힘 좀 쓰는 초능력자였던지라, 감 기자는 설명을 절반 정도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원은 헌터의 시체를 처리하는 데 아주 능숙해 보였다.
감 기자가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심드렁하게 질문을 흘렸다.
“허이고…… 헌터들이 많이 죽나 봅니다.”
“목숨 걸고 일하는 직업이잖습니까. 하하…….”
“하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바닥이니…….”
죽음에 대해 논하는 건 다소 껄끄러웠기에, 감 기자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을 틀었다.
“헌터들이 최대한 안 죽게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쯧……. 이 사람은 사인이 뭐였죠?”
“아, 훼손이 너무 심해서…….”
“그러면 다른 헌터들은 보통 뭐 때문에들 많이 죽습니까?”
“어, 글쎄요…….”
연구원은 짧은 고민 끝에 문득 답했다.
“……이빨?”
“……으음.”
취재원칙 첫째.
특별한 것을 찾아낸다.
* * *
감 기자는 생각했다.
오명훈의 죽음이 ‘특별’한 이유는 뭘까.
그를 알기 위해서는 ‘보통’ 죽음에 대해 알아야 했다.
“…….”
괴수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나, 괴수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은 정형화된 바가 있었다.
괴수는 사람을 대체로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사람을 물어뜯는다.
그렇기에 감 기자는 물려 죽은 시체들을 분석했다.
“…….”
대부분의 시체는 아주 처참한 모습이었고,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 남아 있거나, 절반 이상이 손실된 상태였다.
괴수에게 먹힌 탓이다.
하나, 오명훈의 시체는 달랐다.
“……뼈가 참 많네요?”
“예?”
“이거 시체 성분 분석 가능합니까?”
연구원들은 퇴근도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고깃덩이를 뒤적거렸고, 그 결과는 다소 흥미롭게 다가왔다.
으스러진 고깃덩이를 이루는 건 대부분이 뼛조각과 근섬유였지, 내장기관을 이루던 성분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장기관이 거의 안 남아 있네요? 뼈가 많고요.”
“원래 야생동물이 내장 먼저 먹잖습니까.”
“괴수가 뼈 발라 먹는 짐승은 아닌데…….?”
괴수는 사람을 먹는다. 부위 가리지 않고 먹는다.
절반만 먹으면 그냥 절반을 먹는 거지, 내장만 골라 먹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그가 알기로는 그랬다.
이에 감 기자가 의문을 표했다.
“……내장이 썩어 없어졌으려나요?”
“어어. 글쎄요. 사망시간은 시체 발견시간과 그리 멀진 않았습니다.”
“내장이 썩어 없어질 정도로 시신이 방치되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취재원칙 그 둘째.
“…….”
자극적인 뇌피셜을 생산하고 증거를 때려 맞춘다.
* * *
사람에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있다. 괴수에게 먹혀 반쯤 으스러진 시체이지만 이상하게도 내장이 쏙 빠져있다.
그런데 괴수는 내장만 골라먹는 짐승이 아니다.
‘……어라.’
‘그러면 왜 시체에 내장이 없는 거지? 그것도 이 사람만…….’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 스쳤다.
감 기자는 일단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여보.”
“왜.”
“내장만 골라먹는 괴수가 있나?”
“차라리 탕수육 부어먹는 괴수가 있냐고 물어보지 그러셔?”
감 기자의 뇌리에 문득 ‘한승문’이라는 이름 석 자가 스쳤지만, 그는 애써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내고 다시금 질문했다.
“글쎄. 내장만 쏙 빼먹는 괴수가 있어?”
“……저녁밥은 다 먹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옛날 생각나서 조금 역한데.”
천화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에게 서울에서의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당신 뭐 르포르타주인지 뭔지 집필한다고 취재하는 거면 마누라 말고 다른 사람 고르셔요. 집에서까지 그 지긋지긋한 거 떠올리기도 싫으니까.”
“아니, 왜 책 쓰는 것 가지고 구박을 해싸?”
“책 쓰겠답시고 이리저리 싸돌아 댕기니까 그러죠.”
냠. 천화란이 숟가락으로 매실장아찌를 퍼먹었다. 감 기자는 자신을 째려보는 와이프의 새침한 눈빛에 씁쓸한 미소로 대꾸했다.
“취재하는 거 아니야. 그냥, 장관님이 뭐 알아오라 그래서-”
“위험한 거야?!”
“아니. 위험한 건 아니고-”
“위험한 거야!?”
“……글쎄 안 위험하다니-”
“위험한 거냐고!”
강박적인 질문이었다.
천화란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쓸데없이 정의롭고 오지랖 넓은 남편을 바라보았고, 결국 그 걱정스런 눈빛에 감 기자가 항복했다.
“……별건 아니고. 그냥, 국정원 요원이 북한에서 죽었는데 나보고 조사하라네.”
“……그걸 하겠다고 했어?”
“응!”
방에서 둥둥 떠다니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감지윤은 부엌에서 들려오는 와장창 소리에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 * *
이게 무슨 일인가 화들짝 놀라 날아온 감지윤을 다시 방으로 돌려보내고서. 천화란은 미간을 꾹 꾹 눌러 피며 감 기자의 질문에 대꾸했다.
“……괴수는 기본적으로 살덩어리야. 게이트 바깥으로 튀어나온 다음부터 주변 환경에 맞춰 진화하지. 그래서 우리가 아는 동물들이랑 비슷한 면이 가끔 보이는 거고.”
감 기자가 눈빛을 빛내며 수첩을 꺼내자, 천화란은 푸욱 한숨을 내쉬면서도 미소 지었다. 애초에 저 눈빛에 반했던 거였으니까.
“……그래. 그래서 게이트 안에 있는 괴수들이 좀…… 징그럽지. 인스턴트 게이트에서 나온 완성형 개체들은 특히 징그럽지. 지구 환경이랑은 상관없는 외계생물 비슷한 거니까.”
“그러면 식성은 어때?”
“놈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짐승 같아도. 매커니즘이 달라. 소화기관이란 개념이 없어. 마력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그러면 사람을 왜 먹는 건데?”
“그러니까…… 음…….”
천화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비전문가에게 전문지식을 소개하기 위한 비유를 고르는 중이다.
“……유기물을 먹고서 그걸 영양분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건축 자재로 쓰는 거야.”
“음?”
물론 이과의 설명이었기에 문과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얼빵한 감 기자의 표정에 천화란이 설명을 덧붙였다.
“무슨 소화를 시켜서 영양소를 만들고, 그걸로 세포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먹고 사람의 몸으로 자기네 몸을 진화시킨다고.”
괴수의 본질은 살덩어리로 된 슬라임이었다. 촉수와 점막과 눈알이 뒤섞인 살덩어리가 근본인 진화체였다.
“괴수가 80kg짜리 사람을 먹으면 몸무게가 80kg 늘어나. 사람이 그대로 분해되어서 괴수의 몸을 이루게 된다고.”
“…….그럼 내장만 따로 골라먹는 괴수는 없겠네?”
“그렇지. 천 원이랑 오천 원 떨어져 있는데, 한 장만 주워가는 사람은 없잖아.”
“……그래?”
감 기자는 심란해졌다.
천화란의 말에 틀린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사람의 내장만을 탐하는 괴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내장을 탐하는 괴물은 분명 존재한다.
“…….”
그 괴물의 이름은 사람이다.
* * *
“사람이 헌터를 죽이고 장기를 빼낸 다음에 야산에 던졌다?”
“예. 장관님.”
“그 증거는 오명훈 씨의 으스러진 시체에서 유독 내장이 적었기 때문이고요?”
감 기자의 보고서는 아주 파격적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북한에서 헌터를 노리는 범죄자 혹은 범죄조직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감 기자가 덧붙였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그냥 정황을 보니 그렇겠구나- 싶은 정도입니다.”
“……만약 그 추측이 틀렸다면요?”
“틀리면 제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까?”
“으음…… 그건 아니죠.”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네요?”
감 기자는 살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취재든 수사든 이렇게 노가다 하는 게 정석입니다.”
그리 웃으며 소파에 늘어져 홍삼캔디를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피식 웃게 된다. 감 기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끔찍한 음모론에 대해 논하면서도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확실히, 있을법한 내용이군요. 아주 그럴듯한 음모론입니다. 소름끼치네요.”
“제가 원래 소설은 잘 쓰잖습니까?”
“……허. 그렇긴 했지요.”
능청스런 말에 평범하게 대꾸하기는 했지만, 나는 감 기자의 입에서 ‘소설’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긴장을 바짝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
돌이켜보면, 감 기자의 ‘소설’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추측을 다시금 주워섬겼다.
“……장기를 노린 초인사냥이라.”
물론 국정원 8급 헌터가 괴수에게 죽었는지 사람에게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애초에 8급이라 해봐야 내가 모르던 8급 헌터다. 음지에서 놀던 양반인지라.
그런 그가 인간사냥을 당했다? 장기까지 털렸다? 누가? 왜? 어떤 배짱으로?
반쯤 으스러진 시체 하나에서 내장이 없었다는 게 고작 하나밖에 없는 근거다.
당연히 깊이 파고들수록 헛웃음만 나오는 추측이다.
문제는 그걸 입에 담은 사람이 감 기자라는 거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거 보십쇼. 장관님”
“……뭔데 그러십니까?”
그는 내게 지도 한 장을 들이밀었다.
강원도의 지도였다.
금강산 근처에 붉은 점들 수십 개가 찍혀 있었다.
“내장 성분이 없는 헌터의 시체입니다. 모두 혼자 다니던 사람들이었고, 시체는 아주 끔찍하게 으스러져 있었지요.”
“…….”
“그런 시체가 대략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생산됐다는 게 신기하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