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 새로운 시대의 필승전략 (2)
국군에서 제공한 숙소에 도착했다.
침대도 있고, TV도 있고, 가운데에 책상과 의자도 있는 생활관이다. 이미 나머지 일행은 거기 널부러져 있었다.
여도연은 창가에 서서 전화를 받고 있고,
“우와, 요즘 군대 진짜 좋아졌네. 침대도 있어?”
“군부심 그만부리고 조용히 있어.”
“내가! 어? 특전사! 어어?"
양일호와 이호정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 꽁냥대고 있다.
감기자는 하얗게 질린 상태로 누워있고, 천화란이 감지윤과 감 석을 꼭 껴안고 있다.
특히 감지윤 못 날아다니게.
피, 뭐냐. 아무튼 마지막에 구출된 학생은 무표정으로 주륵주륵 흘러나오는 눈물을 군용 담요로 닦아내고 있었다. 담이 좀 세보인다.
군인 두 명이 나를 침대에 앉혀주었다.
양판석이 내 옆자리에 앉아 방긋 미소지었다.
“한의원.”
“예.”
“우리 정치 좀 할까?”
* * *
일행들이 대충 손을 흔들며 우릴 반겨줬지만, 우리는 그에 신경쓰지 않고 쑥덕쑥덕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괴수를 잡기 위한 서울 파괴.
지상작전사령부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걔네 손목을 꺾어버리면 차차관이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서울을 포기하자는 건 너무 과격한 방식이야.”
잠시 머뭇거리자 양판석이 내게 교휸을 주었다.
“작전이 옳은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세.”
맞다.
그건 군인의 문제이지,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들이 그걸 싫어할 거라는 게 중요해. 우리가 전면에 나서면 똥물을 뒤집어쓴다 이 말이야.”
“어째 표현이 조금 저렴해지셨습니다.”
“조용히 하게.”
양판석 의원은 적을 만들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호구취급 받으면서 내어줄 건 내어주는 편이었다.
단, 그는 항상 알면서 당하는 사람이었지,
모르고 당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판세를 눈에 담고 있다.
“중요한 건 지작사 손목을 비트는 거 아닌가? 우리가 작전을 굳이 옹호할 필요는 없지.”
“......지작사는 국민 여론이 무서워서 차차관의 명령에 거부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론을 선동하자?”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양판석도 크게 다른 생각은 아니었는지, 씨익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대본을 하나 짜 봤는데......”
“살짝 터프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정치인 둘이 머리를 맞대었다.
*
대충 1시간에 걸친 협의가 끝나고, 양판석이 차차관에게 ‘정무적’ 작전을 설명하러 자리를 떴다. 폭탄을 던지려면 사령관의 허락이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생활관 문을 지키던 군인에게 부탁했다.
“저어......”
“ㄴ, 넵! 중사! 한 용 근!”
“다리 한 쪽이 없어서 그러는데, 목발 두 개만 좀 가져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군인이 자리를 뜨자 양일호가 실실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생활관은 처음이시죠?”
“군부심 좀 적당히 부려라, 장애인한테 이러고 싶냐?”
“에헤헤, 미필, 미필.”
이호정이 양일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이쪽으로 의자를 하나 끌고 와서 다리를 꼬아 앉았다. 스타킹이 다 찢어져 있었다.
“의원님. 아, 호칭이 살짝 어색하네. 아무튼, 어디 갔다오신 길이에요?”
“국방부 차관 뵙고 왔다. 그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 실세야. 자세한 건 이야기 못해.”
이호정도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게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거 한국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랍니다.”
“뭐?”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렸다고 해요. 자세한 건 파악 안됐는데, 베이징, 뉴욕, 도쿄, 그냥. 어지간한 주요 도시 전체에 게이트가 열렸어요.”
염병.
“지구멸망이냐?”
“다른 나라 사정은 잘 모르겠고, 일단 우리나라는 전국민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네요.”
“도로망이 마비됐겠군.”
이호정은 인터넷 기사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방송사 별로 말하는 꼬라지가 전부 달라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북한 침공설, 150만명 사망설, 대통령 사망설, 국군 서울 포기설, 외계인 설, 휴거......”
언론에서 헛소문만 지껄이는 건 아닌 모양이다.
툭. 툭. 누가 어깨를 두드린다.
“야, 전화.”
여도연이 갑자기 내 귀에 전화기를 대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울먹이고 있다.
-야 이 녀석아! 먼저 통화한다면서...!
“아, 이모...! 죄송합니다. 통화할 시간이 안 나서....”
-그래...! 살기 바빠서 키워준 애미는 생각도 못했다 이거지? 응?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거야? 나는 니 부모 아니야!?
“이모랑 저랑 같은 핏줄인데......”
아, 뭐라고 말해야 되냐. 애처로운 눈빛으로 여도연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씨익 웃으며 전화기를 들이밀 따름이었다.
솔직히 연락 까먹은 건 내 잘못 맞다. 너무 쓰레기였다. 심지어 문자도 한 통 못 남겼다.
“아, 아니...! 통신이 오락가락해서......”
-그래! 핑계도 좋아 어!? 누구는 가슴 찢어지는데! 어!?
“죄송합니다......”
아 쫌!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이모부가 전화를 인터셉트했다.
-승문아! 개안나!
“아, 네. 지금 국군 계엄사령부에 있어요.”
-다친 데는 없고!
“그으, 왼쪽 다리를 잃어서......”
-문디 쌔끼야! 이 상황에 헛소리가 나오나!
이모부가 곡소리를 냈다.
-지금 으데고!
"계엄사령부라니까요."
-아, 맞다. 아무튼! 와 거기있노!
"구출됐으니까 여기 있죠."
-아, 그릏네.
"이모부 솔직히 할 말 없죠."
-......마! 살아있음 됐지, 뭘 더 바라나!
그의 우렁찬 고함소리를 들으며 전화기를 여도연에게 돌려줬다. 그녀는 험상궂게 미소지으며 폰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승문 의원님?”
“아, 고마워요.”
“아닙니다!”
나는 군인에게 드디어 목발을 건네받았다. 마침 양판석 또한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컨펌 났어.”
“아! 다행입니다!”
“목발도 구해놨군. 슬슬 이동하지. 아, 그래.”
양판석이 슬며시 미소지었다.
“눈물연기 할 줄 아나?”
“대학교 연극동아리 에이스였습니다.”
*
계엄 사령부는 온갖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군인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각자의 역할을 지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헤치며 복도를 걸었다.
“기자들은 따로 모을 필요도 없어. 여기 건물 앞에 알아서들 모여 있다고 하네.”
“다행이군요.”
앞에서 길을 뜷던 양판석이 설명했다.
“지금 정부 차원에서 한 오피셜이 전혀 없어. 잡스러운 거 빼면 우리가 처음이야.”
“어그로는 잘 끌겠습니다.”
“어그, 뭐?”
“주목이요.”
“영어쓰지 말게. 노인은 이런 걸로 소외감 들어.”
양판석과 나는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차차관도 썩 좋아하는 눈치더군. 대본은 잘 외웠나?”
“수행비서 때, 제가 연설문도 자주 써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도 그렇군. 잘할 거라고 믿네.”
“예?”
원래는 양판석이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자네가 하게.”
“아, 그, 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죽기 직전에는 카리스마 철철 넘치더니. 이제 좀 평소 모습이 보이는구만.”
양판석은 껄껄 웃으며 앞장서 걸어갔다.
정치인은 관심을 먹고 산다. 그리고 이번 기자회견은 모든 정치인들이 탐낼만한 자리였다.
대한민국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자리다. 앞으로 이 기자회견이 십수년동안 자료영상으로 쓰일 수도 있다.
“뭐어, 내가 나가봤자 늙은이가 용케 살아남았다는 소리만 듣지 않겠나. 자네가 목발 절뚝이며 나간다면 모양이 좀 괜찮을 것 같아.”
“아, 그......”
“나는 자네 뒤에만 서 있겠네.”
이미지, 이득, 설득력. 등.
양판석 또한 여러 가지 셈을 거친 결과였겠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내게 기회를 양보했다. 나를 정치적으로 키워주려고 하고 있다. 이건 정말 귀중한 찬스다.
차마 감사하다고 인사할 기회도 없이 우리는 계엄사령부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철문 앞에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
천천히 심호흡을 계속하며 나아간다.
우리가 올라갈 단상이 보인다. 벌써부터 마이크와 카메라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접근을 눈치챈 기자들이 벌써부터 셔터를 누르고 있다.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소음이 가슴을 졸인다.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국군의 대피계획은요!”
“괴물들이 뭡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쇼! 몇 명이나 죽은 겁니까!”
기자들이 달려들며 수많은 질문들을 내지르고, 군인이 그들을 경계선 바깥으로 몰아낸다.
마지막으로 양판석과 눈을 맞췄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목발을 절뚝이며 양판석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단상에 올라섰다. 그가 내 뒤에 섰고,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한승문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자 카메라 불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국민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발표에 앞서 참혹히 희생된 국민들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조의와, 위정자로서의 사죄를 전하겠습니다.”
나는 파들파들 떨며 단상 옆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가서, 비루한 몰골로 허리를 깊게 숙였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사망했고, 생존자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궁금한 건 이런 게 아닐 것이다. 폭탄을 하나 던진다.
“그, 그리고. 유재광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나는 잠시 침을 삼키며 포토타임을 가졌다.
“국무총리, 기재부 장관,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 제 1 군단장을 비롯한 수많은 각료와 장성들이 목숨을 잃거나, 연락 두절중인 상황입니다.”
기자들이 노트북을 미칠 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현재, 이 사태에서 국민을 구출하고 있는 적법한 국군의 통수권자는 차재균 국방부 차관입니다.”
양판석과 내가 머리를 싸맨 결과가 이것이다.
국민 여론이 무서워서 명령을 못 따랐다면,
당장 발등에 불을 질러버리면 된다.
“허나. 지휘에 협조해야 할 ‘일부 군인’들이.”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누구든지.
“정치적 이유로 하극상을 일으켰습니다.”
‘일부 군인’이 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차재균 국방차관이 지시한 서울시민 대피 작전이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뒈지기 싫으면.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국군을 지휘한다면, 이는 개인 사병을 유용하는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엄중히 쏘아붙였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국난을 틈탄 군사 쿠데타의 발생을 진심으로 우려하는 바입니다.”
나는 다시금 헛기침하며 포토타임을 가졌다.
“국군은! 재산 피해보다는 인명 피해 방지를 우선으로 작전을 수립하고 있으며,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괴수의 확장을 저지할 것입니다.”
차재균이 부탁한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재, 서울 중심부를 기준으로 괴수들이 민간인 사이로 퍼져나간 상황입니다.
강북 지역 국민들은 북쪽으로 대피하시고, 강남 지역 국민들은 남쪽으로 대피하십시오, 국군이 서울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또한, 괴수의 능력이 인간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바, 교전에 응하기보다는 좁은 통로가 있는 은신처에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살아남으신 국회의원 여러분께 간곡히 요청합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구분을 떠나, 신속히, ‘괴수 대응에 대한 특별 위원회’의 설치를 제안합니다.”
수많은 의원이 사망으로 인해 궐원된 지금, 제적의원의 수는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신속히 국군과 접촉하여 전시戰時의사당으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에는 0급 기밀로 관리되고 있는, 전쟁용 국회의사당이 지하에 있다.
“국회의사당은 무너졌지만, 국회는, 무력에 기초한 군사정변을 방지하고, 괴수에 대한 조치를 논의하며,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병풍이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집결해야 한다. 의원 하나로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헌법으로 보장된 군 통수권자의 지휘를 벗어나, 사익을 위해 군을 유용하는 내란 세력에 대해서는, 엄중한 국민의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모이기만 한다면, 뜻이 맞기만 한다면,
모든 법안과 탄핵을 주도할 수 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무궁한 영광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