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9화 (9/296)

EP 3 - 새로운 시대의 필승전략 (1)

헬기에 타자마자 나를 기다린 건 여도연의 멱살잡이였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제대로 빡이 돈 그녀의 험악한 얼굴이 보였다.

“-!! -! -!”

헬기 엔진소리에 묻힌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남들은 사납게만 바라볼 험악한 인상이 눈가에 아린다.

늘 그렇듯,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의 걱정을 받아들였다.

* * *

살아남기 위해서 학생 하나를 버렸다.

아니, 버렸다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가.

구출하지 않았다.

우연이란 참 짓궂은 것이라, 마침 내가 구한 녀석도 학생이었다. 그나마 교복이라도 다른 게 어디인가.

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구사일생으로 헬기에 오른 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활짝 미소짓더니 내 손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고 흔들었다.

그녀는 촉촉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군복을 보고 안심하는 기색이다. 그리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슴을 쥐어뜯는 것을 보니,

누군가를 잃은 모양이다.

톡. 톡. 양판석 의원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마이크가 달린 헤드폰을 건넸다. 그제서야 대화가 된다.

“의도가 어찌됐든. 자네가 목숨 하나를 살렸네.”

“......죄송합니다.”

현관문 안에 괴물이 있었거나, 수십명의 생존자가 우르르 몰려나왔다면. 헬기 자체가 추락했을 수도 있었다.

“감정적인 도박은 위험한 거야. 똑똑한 사람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라고 믿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인사는 됐어. 어깨 피게나.”

문을 닫아야 하는가 열어야 하는가. 두드리면 열려야 하는 게 문인가, 아니면 누군가 열어줘야 하는 게 문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경기도 북부 계엄사령부로 가는 중이야. 거기 어지간한 사람들 다 모여있다고 하더군.”

“안전합니까?”

“괴물들 그, 구멍. 그래, 구멍은 서울 중심부에만 있는 모양이야. 강남 위주로 피해가 심해지고 있어서 북쪽은 그나마 사정이 괞찮다고 하네.”

안전한 곳으로 간다니 참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헬기 너머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점차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기절하듯 헬기 바닥에 쓰러졌다.

*

“야! 내려!”

볼을 툭툭 건드는 여도연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헬기가 땅에 있다. 나는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여도연은 남들 시선 신경도 안 쓰고서 나를 업어버렸다. 반쯤 골탕 먹이려는 모양이다. 뒤통수를 툭툭 때려봤지만 미동도 안한다.

젠장. 군인들의 요상스런 눈빛을 받으며 업혀갔다. 어떤 군인 하나가 내게 담요를 덮어줬다. 이게 권력의 맛인가.

문득, 옥상 헬리포트에서 세상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도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따금 들리는 커다란 포성이 공기 속에 울린다.

“전쟁났네...”

“뭘 새삼스럽게.”

여도연이 읏차 하고 나를 똑바로 잡더니 총총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업혀간 곳은 어디 휴게실이었다.

양판석은 어떤 군인과 대화하고 있었고, 나머지 일행은 의자에 추욱 늘어져 있다.

멍한 얼굴로 앉아있던 여학생이 파르르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났다.

“아, 안녕하십니까.”

여학생은 숫기없는 목소리로 살짝 인사하더니, 조심스레 내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피, 채원. 피채원이라고 합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학생. 다친 데는 없고?”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의원님이 열어주신 덕분에...!”

관자놀이쪽 혈관이 터졌는지 극심한 두통이 뒤따랐다. 살짝 휘청거린다. 세상이 빙빙 돈다.

“괘, 괜찮으신가요!”

“어, 어으. 괜찮아요. 잠을 못자서 그런가......”

“호, 혹시 저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말고 푹 쉬어요. 학생이나 나나 죽다 살아난 신세 아닙니까.”

학생이 어쩔 줄 몰라서 어버버거리는 와중, 양판석의 부름이 들려왔다.

“승문이.”

“예?”

양판석 의원이 군인들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같이 좀 가지. 아, 저 친구 좀 부축해주게나. 다리가 불편해서.”

금방 군인 하나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소총을 매고 있는 것을 보니 여기가 전쟁터구나 싶다.

“고맙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잡고 일어나시죠.”

군인 하나가 더 따라붙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반쯤 연행되듯 붙들려 복도를 걸었다.

양판석과 이야기하던 아저씨 하나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의원님. 국방부 차관 차재균입니다.”

“아, 한승문 의원입니다. 살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차관님.”

차재균 차관이면 차차관인가. 그는 앞장서 길을 안내하며 상황을 알려주었다.

“대통령께서 수도방위사령관을 서울지역 비상계엄사령관으로 지정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시작부터 화끈한 소식이었다. 차차관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방사령관 또한 사망했습니다.

국무총리께서도 돌아가셨고,

그 다음은 기재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이긴 합니다만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 아래로는 찾고 있지도 않고요.”

지금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없다는 뜻이었다.

“계엄사령관을 관리감독하셔야 할 국방부 장관님도 마찬가지로 연락 두절이십니다. 일단은 제가 장관 대행을 맡고 있습니다.”

이 아저씨가 지금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리고 계엄사령관의 감독자였다.

즉,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없는 지금,

한국군 통수권자였다.

나는 군인 두 명에게 업혀가며 간신히 말을 붙였다. 아부를 떨 시간이다.

“지금이 의전서열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지요.”

“네. 대통령은 공석, 국방부는 제가 권한대행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엄사령관은 계엄협조관이었던.”

차차관이 힘껏 문을 열어제꼈다.

“여기 장강명 제 1군단장이 맡아야 하지만.”

그는 텅 빈 책상 상석에 앉아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마찬가지로 사망한 관계로 그냥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상황이 꽤 터프하게 돌아간다.

차재균 국방부 차관은,

군 통수권자 겸 계엄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손짓으로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커다란 테이블에 세 명이 자리하자 차차관이 눈짓으로 군인들을 물렸다. 문이 닫히며 순식간에 밀실이 완성되었다.

“의원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차재균 국방장관 권한대행 국방차관 겸 계엄사령관은 다크써클 진한 눈빛을 흉흉하게 빛내며,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해나갔다.

말이 빠르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다.

“물론 지금 제가 한 일이 다소 초법적인 일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통신 끊겼는데 직무대행 찾다가 서울 날려먹을 바에는 현명하신 선택 같습니다.”

“그, 한......”

“한승문입니다.”

“네, 한의원님. 말씀 잘하셨습니다.”

차재균 국방장관 대행 국방차관 겸 계엄사령관이 우리에게 해명했다.

“제가 왜 1군단장 자리를 뺏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는 차관 임명된 지 반년도 안 지난 사람이고 반년 전까지만 해도 1군단장 차재균 중장이었습니다.”

내가 원래 해먹던 자리

비상시니까 또 해먹고 있다는 소리였다.

애국인가 독재인가. 살짝 모호하다.

“물론, 서류상 계엄사령관은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전부 다 제 부하였던 치들이라 사실상의 지휘권은 제게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 없댄다. 그는 피곤한지 눈을 껌뻑이며 우리에게 질문했다.

“국회는 어찌 됐습니까?”

“의사당이 무너졌고 대부분의 의원들이 행방불명입니다.”

“제가 확인한 사망자만 수십명은 됩니다. 우리는 강북으로 탈출해서 망정이지, 나머지는 어찌 되었을는지......”

차재균 국방차관은 진중하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국가 비상사태니만큼 최대한 간단하게 말씀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울을 박살내는 데 동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건 이제부터 이 양반이 설명해야 하는 일이다.

“적군은 포로를 잡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1천만 국민들 사이로 괴수가 퍼져나간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괴수가 더 이상 못 퍼지게 포위망을 구성한 상태에서, 민간인을 대피시킨 다음 중화기를 동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에서 사람만 빼낸 다음, 탱크로 날려버리겠다는 소리였다. 이제 슬슬 이 양반 성격이 감이 잡힌다.

인텔리하게 생겨서는 터프하기 짝이 없다.

“근데 지상작전사령부에서는 국민들이 집에 대피해있는 동안 중화기 배제하고 보병 투입시켜서 서울 탈환하겠답니다. 총알이 괴수에게 박히긴 하겠습니까?”

합리적인 이야기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차관님은 서울을 버리고 사람만 빼가자는 이야기시죠? 탱크로 밀어버리게.”

“정확합니다.”

“지작사는 서울 안 상하게 보병으로만 어떻게 잘 해보자는 거고요.”

“그렇습니다.”

“계엄사령관은 몰라도, 차관님이 지금 국방장관 대행인 건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군 통수권이 차관님께 있는 거 아닙니까?”

양판석이 금방 핵심을 잡아냈다.

“하극상이군.”

차차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양의원이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서울을 무너뜨린 오명을 지기 싫은 게지.”

“국민들은 자택으로 대피시키고 보병으로 서울을 탈환하겠다면서 제 명령에 반발하는 중입니다. 총알이 박히기는 할는지......”

나는 차관에게 물었다.

“지작사를 설득하기 위해 힘을 실어달라는 말씀이십니까?”

해석: 서울 뽀개는 거 같이 책임져달라고?

“요약하면 그렇습니다.”

젠장. 아수라장에서 탈출하자마자 정치판에 내몰렸다. 그게 그거긴 한데 아무튼 머리가 아프다.

양판석이 되물었다.

“서울을 정말 포기해야 합니까? 어쩌면 나라에 망조가 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사실상 국토의 절반을 버리는 셈인데......”

“서울을 버린다기보다는 괴수를 잡는 과정에서 서울을 부수자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괴수는-”

“아뇨, 아뇨. 우리도 며칠동안 편하게 숨어있다가 온 건 아닙니다. 세 번이나 괴수 코앞에서 쫓기기도 했지요.”

양판석이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너무 과격한 판단이 아닌가 라는 겁니다.”

“첫째.”

차차관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나열했다.

“적의 수량을 모릅니다. 게이트에서 괴물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온다면 반영구적인 소모전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둘째, 괴물이 민간인과 섞여있는 이상 효율적인 화력투사가 어렵습니다. 민간인을 전투구역에서 빼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리고요?”

“마지막, 시설이고 나발이고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봅시다.”

차차관은 우리에게 작전 동의서를 내밀었다.

“서울을 ‘탈환’해서 국민을 ‘구출’하는 게 아니라. 서울을 ‘포위’한 상태로 국민을 ‘대피’시키는 게 옳다고 봅니다 저는.”

국회의원 된 지 3일밖에 안됐는데 별 꼴을 다 본다. 차재균 차관이 서류를 가리키며 쓰게 미소지었다.

“도와주십시오.”

심지어 깊게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서울을 포기한다라. 사람만 빼낸 다음 탱크랑 자주포로 죄다 박살을 내버리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의미없는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끌었다.

“여기에 서명하면 서울을 버린 역적이 되는 거네요. 상당히 급진적이고 성급한 작전입니다.”

“그러면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차재균은 국군 통수권자다. 지금 윗대가리들이 싹 다 뒤져버린 상황에서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다.

원래 좀비영화만 봐도 생존자 집단에서 총 들고 있는 사람이 최고 권력자다. 그리고 그건 국가 단위에서도 변하지 않는 소리다.

서울 대피 작전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차재균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차재균 차관이 국군을 전히 장악하는 데 힘을 실어준다면.

판단에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서명해야죠.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봅시다.”

양판석 또한 그걸 모르지 않았다.

“누군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

차재균은 우리의 서명을 받아 챙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양판석과 나는 군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차재균과 지상작전사령부 사이의 갈등.

서울 파괴를 두고 벌이는 알력싸움.

하극상.

“양 의원님.”

“으음.”

“우리 서명만 받아가지는 않았겠지요?”

“아마도.”

말 안 듣는 아랫놈들 달래기에 국회의원 둘로는 부족하다. 어디서 구출한 고위각료들 서명도 받아갔겠지.

집권 공신이 되기에는 살짝 부족하다.

“......자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내가 아까 도박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나?”

“이건 이성적인 도박입니다.”

“거, 말 되는군.”

이왕 지원사격에 나설 거면 확실하게 갈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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