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11화 (11/296)

EP 3 - 새로운 시대의 필승전략 (3)

“내가 민주당으로 살면서 빨갱이라고 선동 당해본 적은 많은데......”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해 각 지방경찰청이 비상연계를 결의했습니다. 각 지자체는 군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며......

-한승문 의원이 폭로한 쿠데타 모의에, 성난 시민들이 도로 행진에 나섰습니다.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내란 모의 중단하라!

-중단하라!

-군사 정변 타도하자!

-타도하자!

양판석 의원이 씨익 미소지으며 TV 채널을 돌렸다.

“누굴 반동이라고 몰아간 적은 처음이야.”

“......효과 좋네요.”

“재밌군.”

* * *

양판석과 내가 계획한 언론플레이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두 번의 군사정변을 겪은 나라에서 쿠데타를 언급하는 건 종북몰이보다 효과가 더욱 컸다.

지상작전사령부가 언제 반발했냐는 듯 충성스런 태도로 돌변했고, 차재균 차관은 순식간에 국군을 장악했다,

그는 1군단과 7기동군단을 이용한 서울 포위작전을 실행한다고 한다.

“1군단은 아시아 최대 크기의 포병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7기동군단은 한국이 보유한 탱크의 과반수를 보유한 한국군의 최대규모 주력부대야.”

“어, 음......”

“1군단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강북에서 천천히 밀고 내려갈 거고, 7기동군단이 강남으로 순식간에 치고 올라갈 걸세.”

“그렇습니까?”

“7기동군과 1군이 각각 최대규모 군단과 그 다음 규모 군단이니, 나머지 군단들은 포위망 형성과 북한 쪽 전선을 경계하는 중이야. 이해했나?”

이해 못했다.

“네, 이해했습니다.”

*

“이것 좀 들지.”

“감사합니다. 의원님.”

“하아... 나도 사회로 돌아오니까 숨통이 트이는군. 노인이 야생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잘 알았어.”

양판석은 너스레를 떨며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잠시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의원님 덕분에 국방부와 연락한 건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 번이나 죽을 뻔했지 않나. 이 배라먹은 놈들은 할애비가 염라대왕 목전인데 연락 한 번이 없어......”

양판석 의원은 자식들이랑 사이가 좀 별로였다.

“연락 한 번이 없었습니까?”

“기껏해야 까톡 몇 개야. 나도 화나서 답장 안했네. 전화를 해야지, 전화를......”

“지금 전국민이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텐데, 가족분들께서도 통신장애에 시달렸을 겁니다. 너무 상심 마시죠.”

양판석은 픽 하고 헛웃음을 내뱉더니, 주름진 미간을 꾹꾹 눌러 펴기 시작했다.

“자네도 참 기구해. 국회의원 된 지 오늘로 6일 째인가?”

“그끄저께 계엄사령부 도착했으니까... 네, 6일차 국회의원이네요.”

“살아서 호강하자고.”

“감사합니다.”

그는 내 손등을 툭툭 두드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문득 양판석이 뒤돌아 손짓했다.

“아, 한의원.”

“예, 의원님.”

“그으, 감지윤이나, 천화란. 그리고 자네 누나같은 경우 말이야......”

초능력자.

“자네가 차재균 차관이랑 이야기할 수 있겠나?”

“저 혼자서요?”

“어어, 지금 대검찰청 차장검사랑 약속이 있어서 말일세. 검찰총장 죽어서 그 친구가 검찰총장 대행인데 우리 쪽으로 포섭하려고.”

“일단 ‘있다’ 정도로만 설명 끝내고서, 차후 조치는 양의원님 오셨을 때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래주면 고맙고.”

*

생활관으로 돌아가니 감기자가 드디어 수혈을 받고 있었다.

“아아, 감기자님. 다행입니다.”

“......아, 의원님.”

“그, 파상풍 주사는 맞으셨습니까?”

“네, 지금은 좀 괜찮습니다.”

옆에서 그를 간호하던 천화란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해요, 의원님.”

“그으, 혹시 사모님도 파란 거 보이십니까? 지윤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허공에 파란 게 둥둥 떠다닌다고.”

천화란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이처럼 세상이 파랗게 보이지는 않아도, 지윤이가 뭘 띄우거나, 날아다닐 때 파란 게 겹쳐서 보이기는 해요.”

“그러면 파란 안개가 초능력과 연관이 있다는 거군요.”

“정확히는 파란 알갱이들이에요.”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감지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구름 맞아! 이거 봐!”

“엄마가 그거 쓰지 말랬지...!”

천화란이 둥둥 떠있는 핸드폰을 잽싸게 잡아채고서 주머니에 숨겼다.

“하아. 대충 안개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알갱이들이 뭉쳐있는 형태에요. 그리고 초능력과 이것들이 뭔가 관련이 있다고 봐요.”

그녀는 텅 빈 컵을 들고 오더니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적거렸다.

“이, 알갱이들을, 물분자 형태로 조작하면......”

컵에 몇 방울의 물이 고였다.

“......뭔 짓을 하신 겁니까?”

“으으..... 살짝 두통이 오긴 해도, 이 알갱이들로 물까지 만들 수 있어요.”

“뭐, 뭔 마나에요? 마력이야?”

“예?”

“아, 아뇨, 뭐. 게임에 나오는 거 있습니다.”

야,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지금 국방부 차관님 뵈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

나, 감지윤, 천화란, 여도연은 계엄 사령부의 어느 밀실에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다들 긴장한 나머지 말문을 트지 못했다. 우리는 차관을 기다리며 약 20분을 소모했다.

차재균 차관이 급박한 걸음으로 걸어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손짓으로 부관을 내보내고서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기다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한지라 시간이 참 부족하네요. 대충 20분 정도 만들었습니다. 한승문 의원님께서 찾으셨다고 하던데, 어떤 용건이십니까?”

다다다다 말하는 건 여전했다. 설명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윤아.”

“이야아앙!”

감지윤이 슈퍼맨처럼 손을 들더니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풍선처럼 떠오르더니 개구리 헤엄을 친다. 천화란이 민망해서 얼굴을 감쌌다.

차재균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차관님, 혹시 초능력 믿으십니까?”

“............아. 네. 이게, 어. 음.”

천화란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일반인은 보이지 않는 파란 알갱이들이 허공에 퍼져있어요. 이걸 어떻게 조합을 하면......”

컵에 물이 생겼다. 아까보단 살짝 늘었다.

“물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원리는 모르지만 칼에 맞은 제 남편을 제가 치료하기도 했고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제 누님의 경우에는 신체능력이 생물인간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람이 누굴 업고서 괴물을 피하는 게 가능합니까?”

차재균이 멍한 얼굴로 읊조렸다.

“계속 말씀하시죠.”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초능력자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괴물 시체를 보면 파란 보석들이 나오는데.”

나는 우와아앙 거리면서 허공을 헤엄치는 감지윤을 가리켰다.

“이 아이가 몸에 보석을 갖다 대니 그걸 흡수했습니다. 파란 게 세상을 뿌옇게 채웠다고 말만 하던 애가, 그 다음부터 숟가락을 띄우기 시작했고요.”

나는 책상을 살짝 치며 몸을 기울였다.

“뭔가 있습니다. 차관님.”

차재균 차관이 어벙벙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뭔 마나랑 마석도 아니고......”

“아시네요?”

“린이지 좀 했습니다.”

린저씨였나보다.

차재균 차관은 셔츠 카라에 달린 마이크를 누르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의정부는 장중장이 알아서 하라 그래. 그으, 1시간 정도 더 있어야겠어. 무슨 일 생기면 부르고.”

차차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따라오시죠.”

그는 나를 힐긋 쳐다보더니, 다시 마이크를 입에 댔다.

“휠체어 가져와.”

*

차재균 차관이 어느 으슥한 창고의 문을 열었다. 주변에 사람 하나 안 지나다니는 통제구역이었다.

나는 여도연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창고로 들어갔다. 차차관이 불을 켜고서 문을 잠구었다.

“사실......”

촤악. 차재균이 방수포를 걷어냈다.

“괴수 시체에서 나온 보석의 경우는 이미 확인된 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탄약통 하나를 들고와 책상 위에 턱 하고 올려놨다.

“정확히는, 포격이 진행된 자리에 남은 파란 부스러기들이었습니다만. 혹시 몰라서 수거하라고 지시했었지요.”

탄약통을 열자 파란 유리조각들이 가득 차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게 그때 그 보석이랑 비슷했다.

차재균 차관이 담담하게 읊조렸다.

“감지윤 양의 경우에는 보석에 접촉한 이후로 능력이 향상된 것 같은데......”

그는 가죽장갑을 끼며 천화란을 바라보았다. 이 보석 가루들을 감지윤에게 대어봐도 되냐는 의미였다.

천화란은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할게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아니, 잠깐만.

“우리는 창고 밖으로 나가는 게 어떨까요?”

“......”

“아, 아니. 터질수도 있고......”

나는 안전성에 의문이 들어 내뱉은 말이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쓰레기처럼 쳐다봤다.

“차재균 차관님은 지금 중요한 몸이시고, 나머지가 굳이 옆에 있을 필요는......”

“......”

“아닙니다. 가시죠.”

차재균이 보석 부스러기를 한 줌 쥐었고, 천화란의 손바닥 위에 천천히 부었다.

“으이이...!”

눈살을 찌푸린 천화란의 요상스런 신음성과 함께 보석이 빛이 되어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뭔가 달라진 거 있습니까?”

“어어, 그, 살짝 더 잘보이는 것 같은데요?”

“뭐가요?”

천화란이 살짝 꺼림칙하게 대답했다.

“알갱이들이요. 지윤이가 한 말이 뭔지 알 것 같네요. 세상이 잘 안보일 정도로 뿌얘요. 파란 안개처럼......”

“그러면 아까처럼 물은 못 만드시는 겁니까?”

“아, 아뇨. 그, 느낌적인 느낌이......”

천화란이 허공에 헛손질하자 양동이 한 바가지만한 물덩이가 생겨났다.

“꺄으앗!”

- 촤악!

물덩이가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의 머리통에 쏟아졌다.

뚝. 뚝.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차재균이 무표정으로 천화란을 지긋이 응시했다.

*

“......괴수 시체에서 나온 마석을 대면, 초능력자의 능력이 강화된다. 대충 맞는 말씀 같습니다.”

차재균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전력화시키기에는 초능력이 얼마나 강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아, 잠시만요.”

차재균이 책상에 몸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으로 가린 얼굴에서 한탄이 새어나왔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괴수도 나왔는데 초능력자도 있을 만하지 않습니까?”

“잠시 생각 좀 정리하겠습니다.”

천화란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내 뒤에서 휠체어를 잡고있는 여도연의 배를 뒤통수로 콩 찍었다. 말랑했다.

“돼지야.”

“뭐.”

“누나도 저거 흡수하자.”

“뭐?”

“파워풀. 오케이?”

차재균은 ‘이게 어벤져스도 아니고...’라고 중얼거리며 탄식했고, 그 위에서 방실방실 웃는 감지윤이 개구리 헤엄으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여도연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탄약통에 손을 넣었다. 부스러기는 충분히 많다.

“썅! ......아, 죄송합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욕설에 당황하며 부스러기 몇 줌을 몸에 집어넣었다.

“누나, 근력 테스트 좀 해봐.”

찰싹. 찰싹. 그녀는 금방 내게 다가와서 내 뺨을 툭툭 건드렸다. 살짝 모멸감이 들었지만 나는 얌전히 되물었다.

“강해진 것 같아?”

“글쎄, 잘 모르겠-”

-콰직!

그녀가 잡은 휠체어 손잡이가 으스러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도연이 작게 읊조렸다.

“씨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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