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 직장을 잃었습니다 (2)
후보등록은 한참 전에 끝났다.
워낙 공화당 텃밭이라 다른 당에서도 후보는 안 냈고, 여기는 공화당이랑 민주당 후보밖에 없다.
근데 공화당 후보가 정치자금법으로 잡혀갔다. 심지어 선거운동 중에 말이다.
민주당 사냥개들이 이빨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전체적인 대국을 위함이었다. 선거운동 중에 정자법 위반으로 잡혀간 공화당. 와꾸가 좋다.
남은 후보는 나 뿐이다.
* * *
만약 출마하지 않았다면.
만약 1500만원 기탁금만 올려두고 선거운동을 안했다면.
만약 공화당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잡혀가지 않았다면.
만약 양판석 의원의 사위가 검찰이 아니었다면.
만약 여기가 경상남도가 아니라서 민주당이 큰 관심이 없었다면.
만약 민주당에서 집중적인 후반 지원사격을 와주지 않았다면.
-네! 통영시 고성군! 현재 민주당 한승문 후보가 61.2%로 당선 확정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한승문! 한승문!"
"됐다아아아!!"
나는 금뱃지를 얻을 수 없었겠지.
"승문아! 대따! 대따!"
"어, 어으으...!"
"야! 이제 의원님이라고 불러야 돼! 진짜? 진짜?"
이모부가 신나서 나를 껴안고, 이모가 오열하며 바닥에 쓰러지고. 여도연이 내게 달려들어 멱살잡고 활짝 웃고,
민주당 사무팀장이 내게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선거 운동원들이 달려들어 소리를 지르고, 열성 당원들이 내게 꽃가루를 뿌리고,
기자들이 수십년 만의 청년 국회의원, 경상도의 유일한 민주당 국회의원을 취재하러 마이크를 들이민다.
"가, 가,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만약 내가 두드리지 않았다면,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모든 정치판이 그렇듯.
'만약'이란 단어는 아무 쓸 데 없는 것이었다.
*
"아아, 한승문 의원."
"야, 야, 양의원님!"
양판석 의원이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1500만원 맡겨두고 이름만 빌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은혜를 입었군 그래."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의원님 덕분에 제가-"
"그래. 그래. 알았어."
그는 자기 의원실에 나를 앉혀두고 싱글벙글 미소지었다.
"자네가 당선된 게 참 다행이야."
"아, 감사합니다!"
"인사는 그만하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아는 것도 모르게. 모르는 것도 모르게. 명문대 나왔다고 실컷 잘난체 해봐야 죽도밥도 안 된다. 이게 내 신조였다. 나는 수행비서로서 항상 충실함을 드러냈었다.
지금은 충성을 증명할 때가 아니다.
경상남도의 20대 청년 장애인 민주당 국회의원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의원님이 민주당의 활로를 여셨습니다. 국회에 젊은 피를 수혈하셨고, 소수자의 권익 대변과,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주의 타파를 몸소 증명하셨-"
"짧게."
"축하드립니다 당대표님."
"그래. 그래. 핵심만 말하는 게 중요해."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넌지시 읊조렸다.
"이름만 올려놓을 줄 알았는데 전 재산을 갖다박더군. 젊은놈이 기특해서 사위한테 말 좀 흘렸는데......"
양판석의 사위는 검찰이었다.
"큰 건수를 올려버렸지 뭔가?"
공화당 의원을 정치자금법으로 보내버린 게 양판석이었다.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게 양판석이었다.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다. 양판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이 어찌됐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는 거다.
나는 굳센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처박았다.
"허어."
양판석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율무차를 내밀었다.
"사람 부담스럽게 굴지 말고 이거나 좀 들게. 몇년동안 붙어다닌 놈이랑 같이 의정활동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영광입니다, 의원님."
"어깨에 힘 좀 풀고."
"넵."
4선 민주당 거물의 계보원이 된 순간이었다.
* * *
사실, 여도연이 종종 격투기 대회에서 상금도 타오고, 나름 신체 스펙도 탁월하다고는 하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꾸 옷 벗겨서 링에 내보내려고 하는 바람에 위쪽이랑 자주 마찰을 일으켰던 것이다.
승부조작을 거부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게 가장 컸다. 아무튼 복잡한 뒷사정이 있다.
나는 27세. 그녀는 28세다. 28세면 한창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격투기보다 얼굴, 몸매를 보는 한국 시장에서는 썩 매력적인 나이는 아니었다.
여도연의 실력은 출중하다. 그러나 월드 클래스는 아니고, 국내 톱도 아니다. 그냥저냥 잘하는 정도. 본인 또한 그걸 알고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했다.
허나, 애초에 업계에 안좋은 소문이 퍼진 선수를 매니지먼트에서 데려갈 리 없다.
이모 또한 내게 넌지시 부탁했다. 니 누나 잘 부탁한다고.
대형 로펌 변호사인 그녀가 딸자식이 격투기 선수 하는 걸 좋아할 리 없었다. 이모는 원래부터 여도연과 사이가 살짝 삐걱거렸다. 그래서 내게 돌려말한 거겠지.
"누나."
"왜, 의원님."
나와 여도연은 곱창집에 마주앉아 있었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에 고기를 쑤셔넣었다. 원래는 먹으면 안되는데 당선 기념 회식이라 먹는다고 그랬다.
어쩌면, 운동선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는 것으로 넌지시 뜻을 전한 것일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과한 해석일까.
"공무원 할래?"
여도연은 묵묵히 고기를 집어먹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것들이었다. 근육 만든다고.
그녀는 사나운 눈매를 이따금 찌푸리기도 했고, 퍽 곱상한 얼굴을 손으로 일그러뜨리며 한숨을 푸욱 내쉬기도 했다.
나는 양판석 옆에서 술상무를 겸하며 간을 혹사시키는 게 일상이었지만, 여도연은 단 한 번도 술을 마신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가 먹던 소주를 병째로 원샷했다.
그리고 식탁에 엎어졌다. 머리카락 때문에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말없이 한참동안 엎드려 있었다.
누군가는 꿈을 이뤘고, 누군가는 꿈을 잃었다.
*
내가 보좌관이었으니 의원실 돌아가는 모습은 아주 잘 안다.
4급 보좌관 두 명. 5급 비서관 두 명. 그 아래 시다바리 5명. 총 9명이다.
4,5급은 각각 수석비서, 정무비서, 지역구비서, 정책비서로 역할이 나뉜다.
밑에 시다바리 5명은 커피타고 운전하고 정책짜고 경호하고 홍보하고 술상무한다.
나는 시다바리 중에 7급 수행비서였다. 운전기사도 하고 가끔 검은 돈도 나르고, 아무튼.
중요한 건, 나는 보좌진이었고, 보좌진은 보좌진 끼리의 커뮤니티가 있으며...
"와, 미친..."
"이제 의원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합니까?"
"형! 나, 형 따라가도 돼요? 우리 영감님 너무 지랄맞아서 그래..."
나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야야, 어깨 좀 주물러봐라."
"갑질스캔 앓고 가시려고 그러나..."
"냅둬요. 초선이잖아."
나와 친하게 지내던 3 명의 시다바리가 있다. 4, 5 급은 아니고, 8, 9급 시다바리들이었다. 우리는 늘 모이던 국회 구석탱이 휴게실에서 노가리를 깠다.
"형! 당선자 되고 어땠어요?"
"어떠긴 뭐가?"
"맨날 수석보좌관이 지랄한다고 뒷담화 깠잖아요."
"그 아줌마 나랑 눈도 못 마주치더라."
"와하하하!"
양일호가 깝죽대며 배꼽을 붙잡았다. 깝죽이 1호다.
"아무튼 신세 피셨네요. 축하드려요."
"넌 어째 심드렁하다?"
"뭐어, 우리 영감 낙선해서 직장도 잃었구. 공무원 연금 타는 것도 날아갔구우. 에휴. 온갖 성희롱 참으면서 일했는데, 졸지에 백수되게 생겼네요."
"지금 데려가 달라는 뜻이지?"
"딱히 그렇게는 말씀 안 드렸는데?"
"그래. 잘 가."
"오빠, 이러지 마."
이호정이 눈빛을 빛내며 내 손목을 잡아챘다. 까칠이 2호다.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형님."
"니네 의원님도 낙선했다며? 낙동강 오리알이네?"
"......네."
"우리 소년가장도 내가 데려갈 꺼니까 표정 풀고."
"가, 감사합니다! 형님!"
"솔직히 예상했지?"
"......헤헤."
강석호가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얌전이 3호다.
나는 그냥 일호, 이호, 삼호로 부른다. 성격도 대충 맞고, 착실하고, 능력도 있고, 열심히 사는 20대 들이다. 나는 일단 이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기로 했다.
"격투기하는 누나 알지? 내 누나가 경호원 겸 수행 7급으로 올 거야."
"정말요?"
"일단 일호랑 이호가 8, 9급으로 오자."
"예쓰! 인턴 탈출!"
"고마워요. 한 급수 올랐네."
석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석호는 가장이잖아. 먹여살릴 입이 많으니까 6급. 섭섭하지는 않지?"
"네!"
"뭘, 다 아는 사이에..."
일호와 이호가 흔쾌히 친구의 승진을 축하하자 삼호가 살짝 눈물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4급 보좌관 두 분, 5급 보좌관 두 분은 양의원님이랑 우리 어머니 친구 중에서 고르기로 했어. 나랑 면식있는 사람들은 좀 껄끄러울 테니까."
이호정이 머리카락을 꼬며 되물었다.
"글쎄요. 방 빼게 생긴 사람들은 죽을맛일텐데."
"꼬우면 평소에 잘했어야지."
"하! 말 잘하셨네."
친구들한테 생색도 충분히 냈다.
*
"......좋아?"
"예. 좋아 죽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뭐, 국회에서 일하던 놈이 더 잘 알겠지만."
"변변호사님 말도 잘 들어야죠."
변소정 변호사는 변변이라는 변변찮은 별명을 가진 사람이다.
"이모. 친구중에 보좌관 관심있는 사람 있어요?"
"많지. 근데 너랑 같이 일하기는 좀 꺼려하더라."
"에이......"
이유는 뻔했다.
운으로 당선된 국회의원, 잠깐 반짝 했다가 4년짜리 계약직으로 정치인생 끝낼 날파리.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투자하기에는 살짝 아쉬운 시간이다.
"너, 6789에 친분으로 박았다며?"
"친구 세 명이랑 누나요."
"욕 먹을 텐데......"
"일단 살고 봐야죠 뭐. 나 없으면 백수되는 애들인데."
대형 로펌 현직 변호사인 변소정 변호사는 품위있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내게 충고했다.
"어릴 적부터 약삭빠른 놈이라 별 걱정은 안 된다만, 그래도 항상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 젊어서 출세했다고 웃기만 해도 욕먹는 세상이야."
나는 이모를 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그냥 걱정된다고 하시면 안 되요?"
"......참, 나."
*
"안녕하십니까, 양의원님!"
"어어, 한의원. 어감이 살짝 묘한데. 양의원과 한의원이라니..."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은지 드립을 친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레 웃어주었다. 이건 충분히 익숙한 짓거리였다.
"한승문이가 끌어주는 차를 못타니까. 뭔가 좀 아쉬워."
"죄송합니다. 본의아니게 자리를 비우네요."
"뭘, 또, 그런 말을!"
항상 돌려말하는 이 양반의 특성 상, 나는 더 이상 수행비서가 아니니까 남들 앞에서 너무 숙이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보좌진은 다 구했고?"
"네."
"친분에 너무 얽매이는 것도 안 좋아."
"자기 사람 잘 챙긴다고 칭찬받지 않을까요?"
"허어. 그도 그렇군. 벌써부터 정치질을 하다니. 내가 떡잎은 잘 본 모양이야."
"감사합니다."
국회 근처에서 만난 양판석 (사실 오는 거 기다리고 있었다) 의원과 만나 함께 국회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몰려들었다.
"어어, 한의원. 축하해요. 큰 일 해줬어."
"아닙니다. 당에서 도와주신 덕분인데요."
"한승문 의원 나이가 몇이었, 아 그래 스물 일곱. 한 살만 어렸어도 김영삼 기록 깨는 건데 말이야."
"하하,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어, 한의원? 유세때 한 번 봤지요?"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양판석 의원에게 몰려든 사람들이 그와 인사하고 나서 옆에있는 내게 얼굴도장을 찍어줬다. 정말 유명한 정치인부터, 야당 대표까지.
반쯤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대한민국에 나처럼 성공한 20대가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꽃길에 손 끝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끼에에엑!"
선서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근처에 있던 의원 하나를 죽여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