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3화 (3/296)

EP 1 - 직장을 잃었습니다 (3)

국회의원 선서가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뭔가 떨어졌다.

누군가 시멘트 조각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근육덩어리. 뾰족뾰족한 뿔이 달린 근육덩어리.

그게 촤악 펴지면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으스러뜨렸다.

나는 항상 판단이 빠른 사람이었고,

가장 먼저 왼발을 절뚝이며 의사당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보다 먼저 달려갔다. 누군가는 멍하니 서있었다. 누군가는 무언가에게 잡혀서 아작아작 씹어먹히고 있었다.

난 다행히도 도망치는 쪽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회의 자리배치였다.

선수가 많은 사람, 즉, 의원을 오래 해먹은 사람이 뒤쪽에 앉는다.

나는 초선의원이다. 그러니 가장 앞쪽에 있다. 고로 괴물 코앞에 있다.

다행히도 민주당인지라 가장 구석이었다. 공화당 초선들은 이미 곤죽이 나고 있다.

뒤쪽으로 도망칠 수 없다. 왼발이 의족이라 잘 뛰지도 못한다. 뛰다가 의족 박살나면 걷지도 못한다. 그러면 죽는다.

나는 걸어서 도망쳐야 한다. 누구한테 부딪히지도 않고, 행여 넘어지지도 않게.

모든 사람이 괴물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 나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도연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나 구하러 오면 좆되니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괴물은 이리저리 쏘다니는 사람들을 잡아 족치고 있었다.

괴물은 이미 계단 위로 올라가 책상을 으스러뜨리며 사람들을 뭉갠다. 대통령 예비후보 지지율 24% 받는 사람이 죽는 걸 봤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전화 신호음을 들으며 천천히 앞으로 간다.

국회 앞쪽 가장자리에 비상구가 있다.

여도연이 전화를 받았다.

-야! 씨발! 방금 하늘에서 뭐가-

"국회 안으로 들어오지 마. 테러범이 사람들 죽이고 있고, 나는 비상구로 탈출 중이야."

괴물이라고 하면 안 믿는다.

-뭐?

"어어. 침착. 침착하고. 국회 정문에서 기다리지 말고, 차 끌고 국회 후문으로 와. 전화 끊지 말자 우리."

-아, 알았어. 일단 후문? 후, 후문?

"교통사고 내지 말고 후문으로 와. 난 비상구로 나갈 테니까."

괴물이 이리저리 점프하며 사람들을 으깨는 와중, 혼자 태연히 전화받으며 걸어가는 꼬라지가 미친놈으로 보일 것 같았다.

정말 다행히도, 3m 짜리 괴물은 사람들 잡느라 정신이 팔려서 이쪽으로 안 왔다.

나는 비상구 문으로 걸어가서, 문을 닫으려,

-콱!

문 틈으로 주름진 손이 들어왔다.

"허....! 자, 자넨가? 다행이군."

하얗게 질린 양판석 의원이 거친 숨을 내쉬며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문을 닫았고, 심지어 잠궈버렸다.

양판석은 4선 의원이다. 맨 뒤쪽에 있었을 거고, 가장 먼저 나갔겠지.

근데 지금 국회 앞쪽 비상구에 나와 함께 있다.

그, 말은,

"국회 정문에도 괴물이 있습니까?"

"그래. 가, 가자고."

그는 겁에 질려 내 손을 붙잡았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나는 주름진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한테 못해준 적은 없는 상사였으니까.

둘 중 한 명이 먼저 도망치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왼발 병신이었고, 그는 허약한 60대 노인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부축하며 천천히 비상구 계단을 내려왔다. 양판석 의원이 거친 숨을 내몰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 그래. 그나저나 꽤 침착하군 그래,"

"그러게요. 저도 제가 이렇게 침착할 줄은 몰랐습니다."

"내, 내, 월남에서 이런 놈들 자주 봤지. 듬직하군."

그는 베트남 전쟁 유공자였다.

아무튼 우리는 서로를 꼬옥 끌어안다시피 부축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와 나는 한 층씩 내려올 때마다 비상구 문을 잠구어버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는 무의식적으로 한 짓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비상구로 탈출하는 사람을 쫓아서 괴물이 올 수도 있었으니까. 라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 우르르 몰려오면 깔릴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태연히 양판석에게 알려줬다.

"후문에 제 누나가 있습니다."

"차량은?"

"K5 하나 뽑았습니다."

"국산이군. 의원은 그래야지."

우리는 미친놈들처럼 이야기하며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갔다.

"병신과 노인이라 그런가 속도가 좀 느리네요."

"자네가 날 업을 수는 없나?"

"손 놓아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의원 되니까 싸가지가 없어졌군."

긴장을 풀려는 심산이었을까. 우리의 정신나간 수다는 끊기지 않았다.

"도착입니다."

"문 조심히 열게.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국회에는 파아란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있다. 이따금 일호, 이호, 삼호랑 노가리까며 산책을 하던 곳이다.

운동장이 붉다.

괴물이 한 마리가 아니다.

하늘에 파란 구멍이 뜷려있다. 괴물들이 꿈틀대며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다.

온갖 양복쟁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고, 형언할 수 없는 괴생명체들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날뛰며 사람을 죽였다.

머리를 물어 공중에 날리니 붉은 피가 저절로 솟구친다. 팔 다리가 벌레 다리처럼 꺾여 사방에 흩뿌려진다.

양판석 의원이 구역질하며 토를 했다. 내 양복과 구두에 살짝 묻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양의원을 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우선순위 변경이다.

"누나. 괜찮아?"

-야, 씨발. 씨발.

차를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거치대에 놓고 스피커폰으로 해놓은 모양이다.

온갖 비명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린다. 비명소리, 깨지는 소리, 죽는 소리, 브레이크 밟는 소리.

-니 어디야.

"지금 나왔어. 후문으로 갈게."

-아응아아ㅏ아ㅏㅏ!!

-이, 씨발! 씨발! 씨발!

-옆에! 옆에 사람! 꺄아아악!

양일호, 이호정, 강석호가 함께 있는 모양이다. 국회의원 축하파티라도 열어주려고 몰래 짰던 모양이다. 서로 전화번호는 알고 있는 사이였으니.

나는 토악질하는 양판석을 잡고 후문으로 끌고갔다. 수틀리면 버리려고 했지만 노인네가 나름 열심히 쫓아온다.

4선 중진에게 목숨빚을 입힌다. 썩 괜찮은 도박이다.

"일행 계십니까?"

"일단 후문으로 가지."

일행이 없다고는 안했으나 그들과 합류하려는 생각은 없나보다. 냉정한 판단이다. 우리는 그나마 한산한 후문으로 최대한 빨리 걸어갔다.

계단이 아니라 평지라서, 또, 죽기 직전의 위기라서 그런가, 둘 다 상당히 빠르게 후문에 도착했다.

양판석과 나는 손잡고 낑낑 달려갔다. 노인과 병신의 조합이다.

-지금 어디야아!

"국회 5문, 아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못알아먹는다.

"국회랑 한강이랑 가장 가까운 쪽 문으로 나가고 있어."

K5는 4인용 차량이다.

나, 누나, 양판석, 일호, 이호, 삼호,

6명이다.

"차량이 더 빠를테니까 그쪽에 존나 커다란 주차장 있지. 거기서 커다란 봉고차 한 대만..."

아니. 아니다. 서울 전체는 몰라도, 대충 이 근처 전체가 작살이 났다. 다들 차타고 도망치려 할텐데, 차를 탄다라.

교통사고나거나 교통정체 때문에 죽기 딱 좋다.

"누나, 누나!"

-씨빨놈아! 뭐!

여도연의 거침없는 핸들링 솜씨와, 죽어나가는 일호, 이호, 삼호의 소리가 들린다.

"국회의사당에서 정확히 뒤쪽 방향으로 좀 가면, 서울 마리나라고 선착장이 있어."

-무, 뭐?

"우리 요트타고 가자."

나는 환하게 웃으며 양판석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도 대충 통화내용을 들었는지 안색이 방긋 폈다.

이 할아버지 국가 유공자 따려고 빽 써서 월남 간거라, 베트남에서 요트 몰았다.

지금도 자주 몬다.

*

우리는 국회 5문으로 빠져나갔다. 저 멀리 국회한옥사랑채 옥상에 올라간 사람을 괴물이 끌어내려 잡아먹는 게 보였다.

저기 가끔 대통령도 와서 뭐 먹고가는 곳이었는데 말이지.

"조심하게!"

잠시 주변을 살피며 감상에 빠져 있으니 양판석이 나를 뒤로 잡아당겼다.

코 앞으로 120km로 질주하는 차량 하나가 지나갔다.

뒤질 뻔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아닐세. 선착장으로 가는 게지?"

"네. 괴물들이 사람들 쫓아오네요."

"그러면 사람들 없는 곳으로 가야지."

우리는 뛸 수 없었다. 그러니 정확한 코스를 골라야 한다.

여의도에서 12년 조금 넘게 생활한 정치인이 앞장을 섰다. 그가 길을 알려주는동안, 나는 작은 여유를 가지며 통화에 집중했다.

"우리 선착장으로 가는 중이야."

-흐, 흐으! 흐으으...!

여도연이 흐느끼고 있다.

-바, 바, 방금 너야?

아무래도 나를 치고갈 뻔했던 차량이 그녀가 몰고있는 K5였나보다. 나는 자연스레 대답했다.

"뭔 소린진 모르겠는데 선착장으로 와."

-아, 으, 흐으, 사람,내, 내가 칠 뻔했는데, 내가,

"개소리 마시고 일단 오세요?"

-아, 그, 아, 가, 간다. 가...!

정치인의 덕목은 거짓말이다.

*

양판석의 루트 선정은 기가 막혔다.

우리는 국회 주변에 심어진 조경용 나무숲, 그리고 고작 작은 횡단보도 두개를 거쳐 선착장에 도착했다.

최단거리는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마주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건 기적이었다.

"아아아아악!"

저 멀리 죽어나가는 사람은 여럿 구경했지만 말이다.

"서, 선착장, 선착장일세."

"요트 열쇠 필요합니까?"

서울 마리나 건물 안에서 열쇠 빼와야 하려나.

"저기에 내꺼 하나 있어. 요트 위 화분 밑에 여분용 열쇠 하나 있다네."

양판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헐떡였다. 운전해야 하는 양반이니 살짝 부축해줬다.

국회의사당은 여의도다. 여의도는 한강 아래쪽 강변에 속한다. 즉, 육로로 탈출하려면 한강 남쪽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선착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강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요트 몰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느 요트가 의원님 겁니까?"

"두, 두번째 도크, 좌측 세 번째."

나는 그를 부축하며 절뚝거렸다.

-선착장 도착했어! 어디야!

"요트 많은 데 맞지?"

-어어, 찾았다! 찾았어!

반쯤 개작살이 난 차량이 우리쪽으로 털털거리며 굴러왔다.

하얀 차가 붉다.

사람 피일까 괴물 피일까. 아무튼 살았으면 됐다.

차 문이 열리고 여도연이 달려와 울면서 나를 껴안았다. 사납고 매운 여자였지만 어째 요즘따라 우는 걸 자주 보는 것 같다.

"스, 승문아...! 승문이, 내 동생...!"

-찰싹!

나는 힘껏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그녀의 볼을 붙잡고, 이마에 뽀뽀를 몇 번 해줬다.

"누나. 사랑해. 진짜. 살아있어서 고마워. 근데 이 할아버지 좀 업어줘. 저기 두 번째 도크, 아니. 주황색 줄 있고, 하얗고 검은 깃발 달려있는 요트로."

"어, 어어."

"정말 미안, 낭비할 시간이 없어서 그래."

금세 그녀가 양판석을 들쳐업었다.

"처자, 저기, 저기로......"

그녀는 등에 업은 양판석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에서 하얗게 질린 1, 2호가 가까스로 기어나왔다.

그 깔끔한 이호정은 입에 토를 머금고서 질질 흘리고 있었고, 양일호는 어디 부딪혔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일호, 삼호, 나 부축 좀 해줘."

"혀, 형, 이거 뭐야. 익, 씨발...!"

"흐, 흐흐, 사람, 사람이......"

애들이 정신을 못차린다.

"부축 좀 해줘라. 나 다리 병신이다 얘들아."

나도 정신을 못차리는 모양이다.

"......야, 강석호 어디있어."

3호가 없다. 양일호와 이호정 뿐이다. 그나마 침착한 이호정이 정신을 먼저 차렸는지, 내 말에 대답했다.

"석호, 석호, 애들."

무슨 소린지 이해했다.

강석호는 부모님이 없는 집 가장이다. 동생이 둘이나 있다. 그리고 걔네는 국회유치원에 있을 것이었다. 아마 아이들을 구하러 갔을 것이었다.

정확히는 국회 정문으로 나가면 있는 산림비전센터 아이교육관으로 달려갔겠지. 여기는 서울 마리나. 국회 후문에서 더 가면 있는 요트 선착장이다.

너무 멀다.

"일단 요트부터 타자."

"네?"

"요트부터 타고 석호 구하러 가자고."

요트를 타고 지상에 있는 석호를 구하러 가자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아, 알겠어요, 형."

"호정이 너도 빨리 와."

"어, 어어! 가자. 가야지......"

지금은 이유가 아니라 핑계가 필요한 때다.

*

-부와아앙!

커다란 요트가 덜덜거리며 선착장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요트 조종실에 널부러져 헐떡이며 심호흡했다.

양판석은 어느 때보다 정력적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여도연은 무표정으로 무너지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일호는 미칠듯이 웃어제끼며 울고 있었다.

이호정은 부서진 구두를 만지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째 나만 멀쩡한 것 같다.

"......한의원, 저거 보게."

양판석이 허탈한 얼굴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2층짜리 건물만한 괴수가 국회의사당을 쾅쾅 부수고 있었다. 파란색 돔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다른 곳도 사정은 대충 비슷하다. 멀쩡한 곳이 없다. 제발 괴물들이 물로만 안 왔으면 좋겠다.  물론 내 바램이 이루어질 지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

단 하나, 확실한 건.

EP 1

직장을 잃었습니다

END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