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에는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일 리 없잖아.’
하지만 이 지독한 꿈은 더욱 생생하게 리미에의 숨통을 조여왔다.
“……리미에.”
원혼들이 리미에에게 다가왔다.
“닥쳐! 이딴 악몽 같은 거 깨버리면 그만이야!”
리미에가 격렬하게 부정하며 도망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우습구나.”
그 순간 뒤에서 튀어나온 파리한 두 팔이 리미에의 목을 훅 끌어안았다.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죽여놓고서, 넌 멀쩡할 줄 알았니?”
귓가에 불쾌한 웃음소리가 달라붙었다. 리미에가 흠칫 놀라 돌아보자 원혼이 목을 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는.”
“내가 기억나니?”
여자는 리미에가 마왕과 연결되기 위해 제물로 바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리미에는 여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내 몸에서 그 더러운 손 떼!”
리미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아직 주제 파악을 못 하나 보네.”
리미에가 발악할수록 여자는 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온몸이 기분 나쁜 것에게 휘감기는 기분이다.
“그, 그만둬!”
이제 보니 여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팔을 당겼다.
누군가는 발을 붙잡았다.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온몸에 알 수 없는 손길이 리미에에게 들러붙고 있었다.
리미에가 주위를 둘러보자, 원혼들이 얼굴을 들이밀며 웃었다. 소름이 쫙 끼친 리미에가 온몸을 떨며 눈을 부릅떴다.
“나, 나는 주신의 성녀야! 나한테 삿된 짓을 했다간 주신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다!”
그 순간 원혼들이 달라붙은 리미에의 온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리미에는 사지가 찢어지고, 무너지는 생생한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의 마지막.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 씹혀 사라졌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차마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정신을 놓았던 리미에가 번뜩 눈을 떴다.
‘다, 다 꿈이었나?’
하지만 리미에는 주변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단이잖아?”
리미에는 제단에 매달려 있었다.
“성녀님의 뜻에 따라 악마들을 죽여라!”
“더러운 배신자를 죽여라!”
주위에 가득한 사람들이 리미에에게 돌을 던지며 욕했다. 바닥에서 치솟은 불길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 일렁거렸다.
“왜, 왜, 왜…….”
그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원혼들이 리미에의 근처에 나타났다.
“다 끝난 줄 알았니?”
“아직, 아직이야.”
리미에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원혼들에게 애원했다.
“내, 내가 다 잘못했어.”
“네가 잘못했다고?”
“그래. 내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저질렀어. 다시는 그런 잘못 하지 않을게. 제발 용서해 줘.”
원혼들이 입꼬리를 씩 올려 웃었다.
“역시 너는 아직 그대로구나.”
“무, 무슨 소리야.”
리미에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온몸이 꽁꽁 묶인 채였다.
“내, 내가 뭘 하면 용서해 줄 거야? 그냥 나를 고통받게 하려는 건 아닐 거잖아. 그렇지?”
그러자 원혼들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네게 바라는 게 없어.”
“네가 우리를 이해하길 바랄 뿐이야.”
“그동안 네가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켰던 죗값을 치르는 것뿐.”
리미에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그, 그래서 그게 뭔데! 내가 뭘 해야 하는 거냐고!”
“걱정할 필요 없어.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무슨…….”
“너는 아마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불길이 리미에의 발끝부터 태우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던 리미에가 고통 속에서 불현듯 깨달았다.
반복되던 죽음.
어쩐지 익숙한 풍경.
“설마…….”
“맞아, 너는 우리를 희생시켰던 방법 그대로 끝없이 죽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최소한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지.”
매캐한 연기가 목을 죈다.
“안 돼! 싫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리미에가 온몸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리미에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녀가 희생시켰던 자들의 손에 끝없이 처형당할 예정이었다.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줄 신은 그 어디에도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