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성녀가 악당을 구원한다는데요 172화 (172/172)

칼릭스의 데릴사위 선언.

‘이거, 황실과 합의된 거 맞아?’

현재 이오카르 황제의 파멸 이후 제국의 제위는 공석이 되었다.

원래라면 황태자인 칼릭스가 바로 제위를 이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현재 칼릭스가 임시 황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모두 이 혼란이 수습되면 칼릭스가 제위를 이어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나는 겨우 가족들의 품에서 빠져나와 돌아가려는 칼릭스를 붙잡았다.

“마중 나와준 건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그게 아니라 진짜로 우리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올 거예요?”

칼릭스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빈말하는 것 봤나?”

“그러면 황제는 누가 해요?”

“에스테반 그 녀석이 하겠지.”

“에, 에스테반 황자 전하가요?”

“애초에 황제 자리에는 별 관심도 없었어.”

나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

칼릭스는 이제야 그걸 알았냐는 것처럼 나를 보며 픽 웃었다.

“내가 황제가 되려고 했던 건 네가 그랬으면 해서였어.”

“하지만 전-”

“나도 알아. 네가 강요할 마음 없었던 거. 굳이 따지면 나도 누구도 널 빼앗을 수 없는 위치를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고.”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가 다정하게 나를 바라봤다.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해졌다.

‘칼릭스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늘 이래.’

칼릭스는 표정 변화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가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를 볼 때만큼은, 칼릭스의 진심이 아주 선명히 느껴졌다.

“그러면 그 생각이 왜 바뀌셨는데요?”

“황제 자리에 집착하다가 더 소중한 걸 잃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칼릭스가 큰 손으로 제 앞머리를 살짝 쓸어넘겼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너야. 그런데 그 자리에 있으면, 오히려 너와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어.”

권력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하물며 절대 권력인 황제라면 더 하다.

‘세라피나 황후도 마지막에 잘못해서 변하고는 했지.’

이오카르 황제까지 가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사람은 절대 권력이 얼마나 사람을 추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니까.

‘칼릭스가,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네.’

담담한 고백에서 숱한 고민이 묻어났다. 칼릭스가 날 위해 고심했을 순간이 짐작돼 괜히 설렜다.

“무엇보다 황제가 되면 바쁘잖아.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그렇죠?”

“너도 성녀라서 바쁜데 두 사람 다 바쁘면 우리는 언제 만나.”

칼릭스가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황제 같은 걸 해서 괜히 시간을 날려 먹을 순 없지.”

그의 손길이 기분 좋아 나도 모르게 부비적거리다 흠칫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지만 슬라데이체에 데릴사위로 들어오게 되면, 전하가 불편할 텐데요.”

나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였다.

“절 배려해 주시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저 때문에 전하가 고생하는 건 싫어요.”

칼릭스가 마냥 당할 사람은 아니라지만, 슬라데이체가 보통 사람들인가.

분명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칼릭스를 괴롭힐 거다.

“역시 칼릭스 때문에 제가 살아 돌아왔다는 걸 더 말해줘야겠어요.”

칼릭스가 말려서 가족들에게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걸 밝혀야 할 거 같다.

그러자 칼릭스가 픽 웃었다.

“이미 아실걸?”

“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쉽게 너한테 청혼할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

도대체 언제 칼릭스가 청혼을 쉽게 했다는 거지?

내 의문스러운 표정에 칼릭스가 명쾌하게 말했다.

“네 가족들은 이미 다 허락한 거나 다름없어. 자존심 때문에 바로 승낙 안 하는 척한 거지.”

어쩐지 칼릭스의 표정이 매우 자신만만했다.

“그, 그래요?”

내가 아는 우리 가족들이 그럴 만한 사람들인가?

“이래 봬도 정보 길드장이었어. 사람을 싫어하긴 하지만, 사람 파악하는 데는 도가 텄지.”

칼릭스가 기습하듯 볼에 뽀뽀했다.

“잘 봐. 곧 인정해 줄 거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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