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성녀가 악당을 구원한다는데요 168화 (168/172)

한순간의 정적.

-맞아, 나나는 내 딸이야.

모두가 충격적인 진실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리엘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 마리엘 대공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배 속의 아이.

방금 전 나나를 죽일 뻔했던 마녀 리미에가 그 원흉이었다.

-그 아이를 제가 죽이게 해주세요. 당신의 목숨은 유지될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어요.

-맞아요, 그 애가 진짜 성녀예요. 그래서 그 아이를 없애려는 거예요. 이제 충분하지요?

리미에의 실체가 까발려졌다.

‘저런 여자한테 속아서 성녀님을…….’

‘성녀님께서는 저 여자 때문에 자신의 혈육도 모르고 죽음을…….’

그들이 리미에의 수작에 놀아나는 사이, 나나는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희생했다.

짙은 죄책감이 모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그 어떤 자책도, 나나의 가족이었던 슬라데이체가 가지는 절망만큼 크지는 못했다.

-아직 어린 아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살아 남아줬지.

벨리알이 이를 꽉 깨물었다.

‘나나가 어머니의 딸이 맞았어.’

저 말.

저 증거.

저것을 위해서 슬라데이체는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그날, 나나에게 선물처럼 진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형, 그렇게 되면 깜짝 파티라도 열어주는 게 어때?’

‘파티 같은 게 필요한가?’

‘나나야 뭐든 상관없겠지만, 기왕 얘기해 주는데 소소하게라도 파티를 열어주면서 말하는 게 좋지. 그러면 나나가 더 감동받을 거 아냐.’

‘야, 역시 쥬테페 넌 똑똑해서인지 다르다. 파티를 열어주면 도토리가 또 터질 것처럼 울먹거리겠구먼.’

벨리알은 히히덕거리며 나나가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하면서 웃었다.

그들의 예상과 달리 친딸이 아닐 경우, 슬쩍 친딸 얘기를 묻고 둘러댈 핑곗거리도 준비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벨리알의 눈에 나나의 모습이 담겼다.

“형, 저게 다 진짜야?”

이제야 드러나는 마리엘의 고백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벨리알이 헛웃음을 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니가 저렇게 돌아가시게 된 거고, 나나는 정말 우리의 짐작대로 슬라데이체였던 거고?”

“그래.”

아벨이 천천히 대답했다.

“시공간의 틈에 남아 있던 어머니의 마력과도 나나의 신성력을 비교해 보았다.”

“…….”

“나나는, 어머니의 친딸이 맞았어. 우리의 친동생이었다. 몇 번이고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아벨의 대답은 벨리알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

벨리알이 정말 어머니의 말을 불신해서 아벨에게 물어봤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래?”

벨리알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지금, 저게.”

겨우 눈물을 참고 있던 벨리알의 눈가가 시뻘겋게 변했다.

“지금 도토리는 저 얘기를 들을 수 없잖아. 도토리가 얼마나…….”

이따금 나나는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했었다.

그리고 마리엘의 친딸이 있다는 사실에 그 아이를 찾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슬라데이체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모두 나나가 친딸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더욱.

아마 나나가 살아 있었다면, 자신이 친딸이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을 거다.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듣고 기뻐할 나나가 세상에 없었다.

“미안하다.”

아벨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내가 너무 늦었다.”

“이건 나나한테 너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

벨리알은 뒷말을 겨우 삼켰다.

“하, 하하…….”

나나의 손을 들고 있던 쥬테페가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새삼 마음 아파할 거 없어. 나나가 친딸이든 말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쥬테페.”

“나나가 어머니의 딸이면 뭐가 달라지긴 해? 이제 나나를 되살릴 수 있게 되나?”

쥬테페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빨리 말해주는 건데. 괜히 감추서 그 애가 고아라 생각하며 죽게 했어.”

“쥬테페, 너무 자책하지 마라.”

쥬테페의 괴로운 목소리에 대공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쥬테페의 녹금안이 대공을 향했다.

“어떻게 자책을 안 해요.”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니까.”

대공이 입술을 꽉 깨물며 천천히 말했다.

“이 모든 건 어리석은 내 잘못이다.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대공이 물끄러미 품 안의 나나를 바라봤다.

‘거짓말 같구나.’

나나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그를 향해 환히 웃어줄 것 같았다.

‘……이제야 네가 내 친딸인 걸 알았는데.’

그동안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며 잘해줄 기회조차 잃고 말았다.

‘마리엘.’

새삼 나나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길게 늘어진 분홍색 머리카락과 고운 이목구비가 마리엘을 떠올리게 했다.

왜 그동안 그렇게 조심하고, 확신하지 못했는지 불가해할 정도로.

‘난 결국 당신도, 당신이 지키려던 아이도 지키지 못했군.’

대공이 천천히 일어나 아벨을 돌아봤다.

아벨은 그들 중 가장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대공의 눈에는 그 누구보다 절망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벨, 수고 많았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오거나, 진실을 찾겠다고 나서지 말고 이쪽을 도왔더라면.”

“그건 내가 결정한 일이다. 너는 네가 할 일을 잘 해주었다.”

“아닙니다.”

아벨은 대공의 위로에도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 번 더 노력하겠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어떻게든, 나나를 되살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나가 어떻게든 슬라데이체로…….”

“그러지 말거라.”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아벨의 붉은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으로 흔들렸다.

“……어째서.”

“나도 네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면 어째서.”

아벨이 격양된 어조로 되물었다.

“설마 세간의 명예나 질서 그런 것들 때문입니까?”

“너도 알지 않느냐. 우리가 언제 그런 것을 신경 쓴 적 있더냐.”

슬라데이체만큼 사람들의 인정에 무관심한 이들도 없으리라.

“그런 게 아니라면 왜 반대를-”

“나나가 그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대공이 나나를 끌어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나라고 나나가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겠느냐. 내가 그 누구보다 그러기를 바란다.”

“…….”

“그 누구를 희생해서라도 그 애의 미소를 보고 싶다. 다시 슬라데이체로 데려와 그 애에게 해주지 못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나나의 명예를, 나나의 희생을 더럽히는 일이 된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방법은 신의 질서에 맞서는 흑마법뿐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런 짓을 저지르려다 실패한 자가 바로 그들의 앞에 있었다.

이오카르 황제.

“너도 나나가 어떤 아이인지 알지 않느냐. 그 아이가 어떤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하지만 저는.”

아벨이 죽은 나나의 손을 잡았다.

“아직 해주지 못한 것이, 해주지 못한 말이 너무 많습니다.”

“미안하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벨이 한 줄기의 눈물을 뚝 흘렸다.

그 순간 멀리서 나타난 칼릭스가 나나를 보며 허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나?”

“칼릭스 황태자.”

“나나가, 정말 죽은 것입니까.”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던 칼릭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황태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쩔 거지? 이미 나나는-”

“난 포기 안 합니다.”

칼릭스는 이미 눈깔이 돌아 있었다.

“다시 나나를 내 곁에 데려올 겁니다.”

그 순간 칼릭스의 몸 안에 있던 기운이 소용돌이치듯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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