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따사로운 햇살이 세상을 비추었다.
솨아아아-
어디에서부터인지 모를 신성력의 비가 시원하게 쏟아져 세상을 정화했다.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이 기적 같은 순간을 탐닉했다.
“성녀님의 기적이다!”
“성녀님께서 마왕을 무찌르는 데 성공하셨다!”
비를 맞은 성기사들은 충만하게 차오른 신성력에 감탄했다.
“이것이 주신께서 축복하신 성녀님의 힘이신가? 정말 대단하군.”
“그나저나 아무리 성녀님이라 하셔도 홀로 마왕의 봉인구 속으로 들어가시다니. 정말 대단하셔. 보통 용기로 되는 일이 아닐 텐데.”
그들은 마왕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을 되새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왕은 맞서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악이었다.
‘그런 존재와 맞서다니.’
아무리 신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하지만 그런 존재를 상대한 것 자체가 놀라웠다.
“역시 성녀님은 성녀님이시라는 건가.”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마녀에게 속아 그런 분을…….”
불현듯 죄책감에 사로잡힌 성기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성기사들은 교황을 무사히 깨워 데려온 리미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왕의 예언.
마족이 된 폐태자.
수상한 행적을 보이던 슬라데이체까지.
“……우리는 처음부터 마왕에게 속아 넘어갔던 거지. 이런 말은 늦었지만, 우리는 성기사 자격이 없어.”
“그래, 진짜 성녀님을 몰라뵙고, 마녀의 편을 들어 그분을 해하려 했으니.”
아마 슬라데이체가 아니었다면 나나는 정말 리미에의 계략대로 성기사들에게 희생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좀 이상한 게 있네.”
마물과의 전투를 마치고 숨을 몰아쉬던 한 성기사가 물었다.
“칼릭스 전하께선 정말 마족이었던 게 맞는 건가? 성녀님께선 도대체 왜 마족을 옆에 두셨던 거지?”
슬라데이체에 대한 다른 오해가 모두 풀렸어도, 마족인 칼릭스에 대한 부분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마녀의 수작에 당해 잘못된 것을 본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일순 성녀님의 모습이 마왕의 마녀처럼 느껴지지 않았었나.”
“그랬던 거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성기사단의 죄야. 이래서야 성기사라고 할 수도 없겠어.”
사건을 하나하나 세심히 따져 볼수록 그들은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성기사 하나가 자책하는 동료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 마음은 이해하네. 하지만 판단은 성녀님께서 하실 일이야. 성녀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든 겸허히 받아들이세.”
“그래, 그것만이 그분께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
성기사들의 시선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마왕의 봉인구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