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172)

“어머, 그게 무슨 소리니?”

사나웠던 샤를린이 태연하게 일어나 손을 탈탈 털었다. 샤를린은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어린애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을 함부로 모함하면 못 써.”

“모함이라니?”

나는 샤를린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동안 당신이 했던 모든 게 증거인데.”

“…….”

“처음엔 단순히 당신 마력이 특이한 줄 알았지.”

사람의 기운에는 그 사람만의 특징이 있다. 그래서 나는 샤를린이 마탑주라 특이한 줄 알았다.

“하지만 당신이 날 위협하려고 마법을 쓸 때, 이 마도구에 담긴 마력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

샤를린의 마력에는 ‘대공비님이 만든 마도구’에 사용된 마력이 섞여 있었다.

저 여자가 자랑처럼 마력을 꺼내 보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아니야, 우리 가족들 덕분인가?’

정보 길드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평소 쓰던 스케치북에 끼워져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사랑한다.]

아빠의 글씨체였다.

예전에 쓴 쪽지인 줄 알았으나, 새로 쓴 쪽지였다.

‘대공비님이 좋아하시던 간식으로 위장해서 올라온 이상한 모양 간식.’

그건 벨리알이 만든 간식이었다.

내 방의 모든 물건 역시 섬세하게 바뀌어져 있었고, 언제나 방에는 온기로 가득해 있었다.

‘난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그제야 나는 내가 지나치게 대공비의 그림자를 의식하고 있었음을, 가족들이 내 곁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한테 못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

그래서 나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 더 확실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이런, 들켰구나.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샤를린은 긴 연두색 머리카락을 넘기며 피식 웃었다.

“넌 어려서 모르겠지만, 난 슬라데이체를 위해서 거짓말한 것뿐이란다. 다들 대공비를 그리워하잖아? 그래서 솜씨를 좀 보였던 거야.”

그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 알았지.

“그럼 이건 뭘까?”

나는 정보 길드에서 받아온 봉투에서 서류 몇 장을 얄밉게 흔들어줬다.

먼 거리에서 봐도, 샤를린은 이걸 반드시 기억할 거다.

“어라? 누군가의 성적표잖아. 그런데 세상에……!”

[샤를린 엘리샤라]

[마력 보유량: C]

[마력 색: 녹색]

샤를린의 여유로운 얼굴이 미세하게 무너졌다. 나는 과장되게 놀라 하며 말했다.

“마력 보유량도 적고, 우연이라기엔 지금 마력 색과도 다른걸.”

“…….”

“그런데 애초에 마탑주가 된 것도 마법 논문 덕분이었잖아? 신기하게도 그 논문은 시간 마법과 타인의 마력을 사용하는-”

“그 입 다물어.”

샤를린이 분기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 마력을 가져다 쓰는 게 뭐가 문제야?”

“다르지! 그렇게 마력을 뽑아다 쓰려면 조건이 필요하잖아!”

타인이 마도구에 남긴 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샤를린 마도구에 남긴 마력은 일회성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이렇게 계속 사용하려면.’

살아 있을 때…… 마력을 뽑았어야 한다.

“당신은 도둑이야.”

나는 샤를린을 노려봤다.

“염치없기도 하지.”

잠시 숨을 참던 샤를린이 내게 성큼 다가왔다. 머리 위로 샤를린의 그림자가 위협적으로 늘어졌다.

“……난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안다. 신전에서 학대당했다지?”

“갑자기 말 돌리기야?”

“우리가 꼭 싸워야 할까? 한번 생각을 해보자는 거야.”

샤를린은 내 팔을 붙잡고 힘을 꽉 주며 속살거렸다.

“어차피 너도 그 여자 자리 잡아먹은 건 똑같아.”

샤를린의 분홍색 눈동자에 녹금색 마력이 번뜩이며 근처에 식물들이 자라려던 순간.

“너 같은 게 내 덕분 아니었으면 여기 있지도 못했- 커억!”

갑자기 샤를린이 피를 토했다.

그녀가 피를 닦아낼 틈도 없이 검은 마기가 그녀를 벽으로 후려쳐 버렸다.

“그 개소리, 들어주지도 못하겠군.”

나는 공격이 날아온 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왜 대공님이 저기에 있지?

‘원래 내가 부르려던 건 쥬테페였는데.’

“내 딸이 누구 자리를 잡아먹어?”

대공님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다가와 나를 안아 들었다.

“나나는 내가 사랑하는 딸이자, 슬라데이체다.”

며칠 전에도 대공님의 품에 안긴 것 같은데, 이상하게 눈에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벽이 갈라질 정도로 세게 부딪쳤던 샤를린이 놀란 눈으로 대공님을 바라봤다.

“가, 갑자기 어디서…….”

“그거야 이건 처음부터 당신을 위해 판 함정이니까.”

대공님의 뒤로 아벨, 벨리알, 쥬테페가 순서대로 나타났다.

“물론 우리 막내가 내 생각보다 열심히 해줘서 문제였지만.”

응? 함정이었다고?

쥬테페와 눈이 마주치니, 쥬테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야, 나도 몰랐어’ 하는 시늉을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뭐가 어떻게…….’

아벨이 바닥에 엎어진 샤를린을 향해 다가갔다.

샤를린이 바닥을 긁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나, 나는 멜의 진실을 알고 있어. 나를 죽이면 평생 그 비밀을 알 수 없-”

“우리가 널 봐준 게 그 말을 싶어서였을 것 같아?”

아벨은 샤를린의 손등을 콱 밟았다.

“그걸로 식물 마법사인 당신을 속일 함정을 준비했을 뿐이야.”

“…….”

“그런데 하물며 당신 마력조차 아니었다니.”

샤를린의 손등을 잔인하게 짓밟은 아벨이 눈빛을 악마처럼 빛냈다.

“정말 주제를 모르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