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쥬테페가 나한테 줬다지만 그래도 의미가 큰 선물인데!
‘어, 어떻게든 수리를 해야 하는데-’
나는 열심히 수정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고장 난 기계를 고치듯이 때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였다.
수정 구슬에서 나오던 빛이 깜빡거리다가 꺼졌다.
“고쳐진 건가?”
“그거 뭔데?”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가 수정 구슬에 정신이 팔려서 잊었지만, 방금 전 길드장의 상태도 별로 좋지 못했던 게 뒤늦게 생각났다.
“길드장, 이제는 괜찮아? 아까 전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잠깐 그 수정 구슬 좀 줘 봐.”
“이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수정 구슬은 왜?”
“그 수정 구슬이 내 안의 기운과 반응해서 뭔가가 일어났어.”
나 때문이 아니라 길드장 때문이었어?
‘그, 그러면 설마……!’
“길드장, 혹시 슬라데이체 혈족이야?”
길드장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난 슬라데이체와 조금도 관련 없는 핏줄이야.”
“길드장의 기운과 반응했다길래.”
“일시적으로 마도구의 강한 마력과 반응했단 얘기지.”
길드장이 손을 내밀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수정 구슬을 쥐여줬다.
수정구슬을 살핀 길드장이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강한 마력을 부여해서 만든 마도구엔 마법사 본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 있어. 아마 내 기운이 그 기운이 적이라 생각해서 터져 나온 것 같아.”
“그러면 방금 내 손에서 빛났던 건 뭐야?”
“글쎄,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네 신성력이 나오고서 빛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그렇긴 했다.
‘길드장에게서 나온 검은 기운을 신성력으로 휙 막고서야 수정 구슬이 빛났지.’
길드장은 장난감처럼 수정 구슬을 가볍게 던졌다가 쥐었다.
“어쩌면 마도구가 신성력의 보호를 받지 않는 너를 감지한 걸 수도 있고. 원래 강한 신성력은 본능적으로 마법을 튕겨내기도 하잖아.”
그건 또 뭔 소리람?
“그러면 뭐, 내가 슬라데이체 혈족이라도 된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놀랍지도 않았다.
“굳이 아니라고 부정할 것도 없지 않아?”
“시기적으로 따지면 그럴 수 있겠네. 하지만 그래도 난 아닐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도 그런 걸 욕심내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진짜 염치없는 거지.’
물론 그런 망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주신님께 기도했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찾게 해주세요.’
가끔 고아원에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중 내 부모님이 있기를 계속 기대했다.
친자식을 찾은 부모에게 느껴지던, 그 뜨거운 유대감과 애정이 몹시 부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부모님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신전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교육원 아이들의 부모가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쟤는 누군데 혼자 있니?’
‘엄마, 쟤가 그 금안의 아이야. 부모 없는 보육원 평민.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서 맨날 혼자 있어.’
‘금안이면 귀족가에서 입양할 법도 한데, 애가 얼마나 별로면. 쯧쯧.’
그때부터 나는 주신께 빌었다.
‘우리 부모님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이 생기게 해주세요.’
리미에를 위해 나를 이용하다가 버렸던 바이칼로스, 함께 어울려 다녔던 원정대원들.
나는 그들을 내 가족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나는 가족이 아니었다.
‘나는 가족 없이 살아야 하나 봐.’
그럴 때, 정말 기적처럼 나타난 게 슬라데이체였다.
공국민으로 받아주기만 하면 감지덕지라 생각했는데. 슬라데이체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친혈육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내게는 나를 사랑해 주는 슬라데이체가 그 누구보다 중요했다.
‘그러니 더 욕심내면 안 돼.’
여기서 내가 진짜 친가족이기를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었다.
길드장이 묘한 어조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진짜 슬라데이체 핏줄이라면 그보다 좋은 게 없을 텐데.”
“가능성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거든.”
나는 길드장을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진짜 공녀가 아니더라도 나는 진짜 슬라데이체 공녀야. 그러니 굳이 친자식이 아니어도 돼.”
그때 내 안의 내가 조소하듯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나도 모르게 손을 조금 움찔했다.
고아원에서 입양되는 아이들을 꽤 많이 봤다. 그리고 그 애 중 열에 일곱은 돌아왔다.
그때 돌아왔던 애 하나가 내게 말해줬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입양아는 입양아야. 피가 안 섞인 우리는, 진짜 핏줄보다 사랑받을 수 없어.’
솔직히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불안해지는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다.
“아무튼 그 수정 구슬, 고장 나지는 않은 거지? 그러면 됐어.”
“…….”
“그보다 생각해 보니 길드장한테 조사를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슬라데이체 대공비인 마리엘 빈에 대해 최대한 조사해줘. 사소한 것까지도.”
대공비는 슬라데이체의 상처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이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 꾹 참고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어.
“그리고 샤를린 엘리샤라에 대해서도 알아봐 줘. 샤를린 엘리샤라는 8마탑주인데-”
그때 길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협탁 아래의 칸을 쓱 열어 문서 봉투를 꺼냈다.
“가져가.”
“정보 길드에 있던 대공비님 정보인가 보지?”
그런데 봉투 안에 있는 문서에는 대공비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샤를린도 있잖아!’
역시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는 뭐가 달라도 엄청 다른 모양이다.
길드장이 턱을 괴며 말했다.
“정보 길드에 정보를 의뢰할 땐 대가가 따르는 거 알지?”
“좋아. 얼마야?”
이렇게 빨리 정보를 받았으니 솔직히 돈을 아낄 일이 아니다.
‘그리고 파트너라 반값이니까!’
하지만 길드장이 요구한 건 돈이 아니었다.
“네 정보를 줘.”
“내 정보?”
“우린 정보 길드니까, 가끔 돈보다 훨씬 귀중한 정보로 값을 치르거든.”
“나에 대해서 뭘 원하는데?”
정보 길드에서 탐내는 내 정보가 뭐가 있을까?
‘앞으로 내 사업 계획 같은 거?’
분명 심상치 않은 걸 물어볼 것 같아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지금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다 해도, 길드장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너를 울렸던 원흉을 말해.”
“……뭐라고?”
“방금까지 울려고 했잖아. 그렇게 울컥했던 이유를 알고 싶어.”
당황해 눈을 끔뻑거렸다.
“그게 왜 궁금해?”
“넌 우리 길드에 손해를 입혔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야.”
“…….”
“그래서 내가 파트너쉽을 맺자고까지 한 사람이지. 그런 네게 일어난 일을 알고 싶을 뿐이야.”
이상하게 가슴이 술렁거렸다.
“힘들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 주기적으로 거래할 파트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물었을 뿐이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대에게서 모든 것을 이해받는 기분이 들고 말았다.
‘길드장,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인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았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내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커튼 너머의 길드장이 움찔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