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번 편지를 교류하다가 아이비 로링턴 영애의 저택에 놀러 가게 됐다.
“반가워요, 공녀. 내가 공녀를 초대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요?”
우아한 물결치는 적발, 신비로운 청보라색 눈동자.
세라피나 황후가 독화 같은 화려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면, 아이비 로링턴은 정원 속 말린 장미 같은 빛바랜 고아함이 느껴졌다.
“사실 나이와 상관없이 공녀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불러본 거랍니다.”
“구롬미까?”
“그래서 선물을 주고 싶은데, 이 루비 브로치는 어때요?”
아이비가 뜬금없이 자신이 하고 있던 루비 브로치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이렇게 보여주면 바로 알아보려나요?”
“저본에 하고 이똔 브로치(저번에 하고 있던 브로치)?”
“맞아요. 제가 제일 아끼는 브로치 중 하나거든요.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공녀에게 이 브로치를 선물하고 싶어요.”
아이비가 추억에 잠긴 듯 브로치의 루비를 엄지로 쓸었다.
‘많이 아끼나 보네……’
그때 브로치에서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특허는 마시멜로 카페의 악재가 될 겁니다. 로고스 소백작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제릭의 목소리다.
-단언컨대, 공녀님께서는 이 내기를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아이비의 엄지가 브로치를 누르자, 소리가 멎었다.
“어때요, 공녀가 보기에도 아낄 만하죠?”
“오, 온제(어, 언제)…….”
“부끄럽지만, 녹음이 내 취미예요. 원래 훌륭한 아가씨는 음악에 소양이 깊어야 하거든요.”
보통 레이디의 소양은 악기 연주다.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구곤 보통 아끼(그건 보통 악기)…….”
“어머, 이게 바로 내 연주예요. 사람 목소리가 가장 훌륭한 악기란 말도 있잖아요?”
아이비가 내게 사르르 웃어줬다.
‘그, 그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나한테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이비의 공증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물증이 생기는 셈이니까.
나는 아이비에게 물었다.
“구래소 영애 하고 시픙 곤 몹니까(그래서 영애 하고 싶은 건 뭡니까)?”
“음, 일단은 새로 사귄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아이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난 옛날부터 예쁜 동생이 생기길 바랐거든요. 그러니 공녀에게 그냥 선물로 줄게요. 어차피 난 공정하게 내기를 주관한 것뿐인걸요?”
아이비의 말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었다.
“나나도 예뽀 언니 죠아해. 구치만 세산에 곤짜 옴는 고 아라요(나나도 예쁜 언니 좋아해. 그치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알아요).”
“그러면…… 오늘부터 언니라 불러주기.”
“오, 온니?”
졸지에 오빠에 이어 언니까지 생겼다. 내 서툰 발음에 아이비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걸로 됐어요. 공녀에게 필요한 공증 계약서도 준비해서 보내줄게요.”
이렇게 알아서 퍼주는 걸 보면 분명 다음 거래가 있을 거다.
“이제 나나도 온니 얘기 드러주께. 아이비 온니, 나나하테 부탁 이쏘요(이제 나나도 언니 얘기 들어줄게. 아이비 언니, 나나한테 부탁 있어요)?”
“역시 황후 폐하와 마르셀라 대부인이 아끼는 공녀는 다르네요. 하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아이비의 청보라색 눈동자가 화사하게 빛났다.
“지금은 공녀의 사업이 내기에 이길 정도로 완벽하게 성공하는 게 우선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