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72)

어찌나 꼭꼭 잘 숨는지 방 몇 개는 열어봐야 나타난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폐태자 궁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폐태자 궁이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진짜 이렇게 던지고 가도 돼? 그래도 황자인데 음식까지 잘못 주면…….”

“그렇다니까! 몇 년째 내가 이러고 있는데 아무 문제 없는 거 보면 모르겠냐? 폐태자가 황자냐?”

사용인들이 모여서 킥킥거리는 소리였다.

‘세상에. 저게 뭐람!’

그제야 나는 정기적으로 청소한다는 폐태자 궁 꼬락서니가 왜 이 모양인지 깨달았다.

‘청소는커녕 더럽히고 있었네.’

어쩐지 내가 주는 음식도 잘 안 먹으려고 하더니…….

‘저것들이 음식 가지고 뭐 하는 거야!’

일부러 먼지나 머리카락 같은 걸 뿌린 듯한 음식들을 정기 배식이랍시고 놓고 있었다.

시종들이 조롱하듯 킥킥 웃으며 폐태자에게 말했다.

“전하, 저희는 분명 청소도 하고, 음식도 드렸습니다. 오해하시면 큰일 납니다?”

“전하를 위해서 나온 음식이 이런 음식밖에 없는 걸 어쩝니까. 저희도 잘 드리고 싶지만, 저주가 워낙 무서워서 그럽니다.”

“야, 다들 살살 말해. 그러다 황후 폐하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저주를 옮기면 어떡해.”

저주랑 어린애 괴롭히는 게 무슨 상관이야!

더 속상한 건, 폐태자는 무심하게 그 소리를 듣고 넘기고 있다는 거였다. 아마 익숙해서겠지.

어쩌면 폐태자는 익숙한 모욕 따위, 그대로 넘기고 빨리 끝내버리는 게 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싫거든!’

“이게 모야!”

내가 성큼성큼 다가가자, 폐태자를 보고 있던 시종들이 흠칫 놀랐다.

“고, 공녀님? 오늘도 오시는 거셨습니까?”

다들 급히 내게 인사를 올렸지만, 나는 그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모 하는 고야. 지금 청소하러 온 고 쟈나.”

청소한 티도 나지 않는 주변을 쭉 둘러보던 나는 가까이서 폐태자 식사라고 나온 음식들을 살폈다.

‘다 쓰레기네.’

진수성찬인 양 상한 음식이 가득한 식탁을 두 손으로 확 엎어버렸다.

챙그랑.

쨍-

그릇들이 깨지고, 음식물이 섞이며 개판이 났다.

“누구 모그라고 이론 고 가져아쏘(누구 먹으라고 이런 걸 가져왔어)!”

“고, 공녀님. 진정하십시오.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시종들은 황후의 총애를 받아 폐태자 궁에 들락거린다는 내 눈치를 살폈다.

“저희도 정상적인 음식을 드리고 싶었지만, 이게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말이 대?”

“진짭니다. 간혹 폐태자 궁에 있는 저주 때문인지 음식이 이렇게 잘못되곤 합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설마 처음부터 이런 음식을 가져왔겠습니까?”

시종들은 모두 결백하다는 듯 폐태자의 저주 탓을 했다.

‘폐태자의 저주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니, 이런 식으로 둘러대겠다?’

나는 폐태자를 바라봤다.

폐태자는 반박할 의지도 없는 양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아니야.’

이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으면, 화낼 생각도 안 들게 되니까.

시종들을 올려다보며,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그 말 지쨔야?”

“예, 물론입니다. 저희가 어찌 고귀한 슬라데이체 공녀님을 앞에 두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맞습니다. 다음에는 더 신경 써서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시종들은 구명줄이 생겼다는 양 앞다투어 말했다.

그때 그들의 귀에 바로 자신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전하를 위해서 나온 음식이 이런 음식밖에 없는 걸 어쩝니까.

기이할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시종 하나가 급히 변명하려 했다.

“그러니까 저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를 잘못 말한…….”

난 말없이 머리핀의 핑크 토파즈를 한 바퀴 돌렸다.

-야, 다들 살살 말해. 그러다 황후 폐하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저주를 옮기면 어떡해.

황후까지 언급한 클라이맥스.

나는 그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시종들 역시 둘러대는 말 따위로 통할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닫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짓말해네(거짓말했네).”

이 머리핀은 아이비가 친구가 된 기념으로 머리에 달아준 선물이다.

‘언제든 음악을 준비해 두는 게 레이디의 소양이잖아요? 나나도 하다 보면 그 깊은 재미를 알 수 있게 될 거예요.’

정말 아이비 말대로 하고 있으니 녹음하는 재미를 알 것 같았다.

“환후 폐하 모욕도 해쏘. 폐하 저주 안 걸려쏘(황후 폐하 모욕도 했어. 폐하 저주 안 걸렸어).”

“…….”

“지금 큰일 나찌?”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