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172)

‘이게 무슨 일이지?’

대신관을 뵙기 직전의 대기실.

한 귀족 영식이 말리는 사제 앞에 다 대고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내 눈을 봐라. 난 금안의 아이다. 그러니 주제 파악 좀 하고 자리 좀 비키지?”

“죄송하지만 대신관님은 만나실 수 없습니다.”

영식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빼액 소리를 질렀다.

“난 이 대신전의 정식 사제가 될 고귀한 몸이다. 그런 내가 어째서 대신관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거지?”

“그 어떤 신관도 대신관님을 언제나 만날 수 있지는 않습니다.”

“나처럼 신성력도 넘쳐나는 사람이 대신관님을 만날 수 없다면 누가 만난다는 소리냐.”

“안 됩니다.”

사제도 적잖게 화가 나는지 점차 목소리가 가라앉고 있었다.

보통은 이 정도 하고 물러나야 할 텐데, 소년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 내가 신성력 테스트에서 그저 그렇게 나와서 무시하는 거지! 그렇지?”

시끄럽네, 진짜.

난 에휴 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상황은 대충 알겠다.

저 남자애는 신성력 검증 때 신성력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고, 대신관을 만나서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정식 사제가 되려고.

‘순 헛소리뿐이네.’

원래라면 더 확실하게 쫓아내야겠지만, 고위 귀족이라 그러지도 못하는 것 같고.

결국 귀족 소년은 손에 신성력을 발현했다.

“좋아. 어디 한번 네가 내 신성력을 보고도 더 무례할 수 있는지 지켜보지.”

급하게 사제들이 달려왔지만 소년은 신성력을 거둘 기미가 없었다.

대신관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다간 내 차례까지 밀리겠어.’

난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소년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먄의 아이(금안의 아이)?”

“그래. 난 선명한 금안의-”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돌리며 우쭐대던 소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렇겠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금안. 이렇게 순도가 높고 찬란하게 빛나는 금안은 처음일 테니까.

그에 비해 그의 눈동자는 회색기가 섞여 금안이라 치기도 민망해 보였다.

“선묭한 금안에, 신성력도 대단한데 왜 안 만나주냐고 해찌?”

나는 그 애의 애매한 금안을 빤히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말대로묜 더 신성력이 뛰어난 사람이 우월한 거네?”

난 신성력을 발현해 남자애의 신성력을 잡아먹었다. 신성력은 더 강한 신성력에 끌어당겨지니까.

남자애의 손에 있던 신성력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끌어당겨졌다.

텅 빈 자신의 손을 보고 소년이 창백하게 질렸다.

“나나가 너보다 더 쎄니까 넌 비쿄야게따.”

처음 당해 보는 경험인지 귀족 소년은 당황한 얼굴로 어버버거렸다.

“나, 난 도에븐 백작가의 차남이야. 다른 사람과 똑같은 취급을…….”

“나도 기족이야.”

“…….”

“슬라데이체의 나나라고 해.”

“…….”

“도에븐 백자까는 약소하니까 비쿄야게따. 그치?”

이제 완전히 기가 죽은 도에븐 은 우물쭈물 주위를 둘러봤다.

‘도와줄 사람이 있을 리 없지.’

가뜩이나 정숙해야 할 대신전. 사제한테 신성력을 마구 휘두르는 광경을 모두가 목격하기까지 했다.

사제들은 무섭도록 고요한 얼굴로 도에븐 공자를 빤히 쳐다봤다.

도에븐 공자는 시뻘겋게 얼굴을 물들인 채 신전 밖으로 도망쳤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제님.”

도에븐 공자에게 시달리던 사제가 바로 고마움을 표했다.

“별고 아니미다.”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나나 사제, 대신관님 만나러 와씀미다.”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대기실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기다렸다.

‘어차피 대신관은 미리 약속을 잡아주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누가 됐든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신전 사람들은 내 의젓한 행동에 감명받은 듯했다.

그때, 대신관의 방에서 한 사제가 바로 나와 인사했다.

“사제 나나 님. 대신관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이, 이렇게 바로?

아무튼 내게는 무척 좋은 일이다.

“녜. 감샤함미다.”

난 카밀라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부탁한 뒤 대신관을 만나러 들어갔다.

* *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