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72)

벨리알은 눈을 가린 채로 색색 숨을 내뱉었다. 숨은 뜨거웠고 간신히 눈만 뜨고 있는 듯했다.

난 어쩔 줄 모르고 벨리알에게 물었다.

“벨랼, 마니 아파?”

“……그래. 아파.”

서둘러 내 모자를 벗어 벨리알의 얼굴을 닦아주고 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언젠간 먹으려고 했던 사탕이 녹아 있었다.

얼른 녹은 사탕이라도 벨리알 손에 쥐여주었다.

“요고 머거.”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했다.

벨리알은 피식 웃더니 눈을 가렸던 손으로 사탕 껍질을 벗겨서 입 안에 넣었다.

우물거리는 벨리알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너무 달아.”

대공님하고 똑같이 단 음식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래두 벨랼 이제 안 아플 꼬야.”

“넌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응? 그건 무슨 말이지?

눈물이 살짝 그렁거리는 채로 벨리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벨리알이 말했다.

“난 너한테 못된 짓만 했어. 맨날 꺼지라고 하고, 지켜주지도 못했어.”

“…….”

“그러니까 이러지 마. 나쁜 기억이 생겨봤자 너만 아파.”

그 말 하나하나에 고통이 스며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나쁜 기억이 벨리알의 머릿속에 아주 깊숙이 박혀 있는 것처럼.

난 다시 벨리알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가 손을 슥 피했다.

“이러지 마.”

“벨랼…….”

“넌 나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된 거야.”

벨리알은 나쁜 기억에 잠긴 듯 우울해 보였다.

난 고개를 저었다.

“벨랼, 갠차나. 그런 표종 하지 마.”

“무슨 표정.”

“나쁭 과거에 갇쵸 이찌마(나쁜 과거에 갇혀 있지 마).”

그 말에 벨리알이 눈을 크게 떴다.

난 벨리알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가져다 대고 문질렀다.

“나나가 무리쳐 주께.”

“……뭘.”

“벨랼의 나쁭 기억.”

날 못 지켜줘서 자책하는 것도, 약하다고 하는 것도, 대공님을 무서워하는 것도.

“외로어하는 것두.”

그 말에 벨리알의 루비색의 눈이 흔들렸다.

벨리알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말했다.

“넌 왜 날 안 무서워해?”

“안 무셔니까.”

“무서워해! 너 때문에 내가 여기 갇히게 된 거잖아.”

“아냐. 벨랼이 나나 때매 가친 거야. 독, 신성력 독이야.”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음식에 들어 있는 독은 신성력 독이었을 것이다.

납치당하기 전 벨리알의 마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벨리알 몰래 신성력을 썼는데도 통하지 않았어.’

거기다 마기 자체에는 영향이 없는 독.

‘그렇다면 신성력 독뿐이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벨리알을 납치하려던 사람에게 나는 장애물이었을 테니까.

난 그 말을 하며 벨리알의 몸 안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예상대로 독 때문에 신성력이 파스스 사라져 갔다.

벨리알도 그걸 느낀 건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에게 신성력이 듣지 못하게 하는 약을 먹인 건지 궁금하겠지.

답은 간단하다.

“나나 때매 벨랼이 다칭 고야.”

“…….”

“나나가 먄해.”

벨리알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젖었어.”

“웅. 비가 내리니까.”

“마기가 강했더라면, 신성력 독 따위에 막히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너에게 결계를-”

“벨랼. 이미 간해.”

“넌 왜 나보고 계속 강하대.”

벨리알이 피식 웃었다. 그러며 말했다.

“원래 내 역할은 이게 아닌데.”

“욕할?”

“너 그거 알아? 쥬테페는 널 내쫓기 위해서 날 이용했어.”

그 말에 난 그냥 눈을 깜빡였다.

“그롤 줄 알아쏘.”

“……알았다고?”

“쥬빼, 나나 시로 하는걸.”

벨리알이 말을 듣다가 이내 푸하하 하고 웃었다.

이게 그렇게 웃긴 말이었나.

멍하니 있는 날 두고 킥킥거리던 벨리알이 겨우 자리에 앉아서 날 보며 말했다.

그 눈빛은 어쩐지 전보다 누그러져 있었다.

“너, 사람 보는 눈은 좋구나.”

“웅. 나나 시로하는 사람 마나쏘.”

그 사이에서 난 어떻게든 헤쳐나가려고 했다.

고아인 날 미워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개중에는 너 같은 애니까 부모가 버리고 떠나간 거라고 막말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리미에와 함께 다닐 때는 리미에의 주변 사람들이 날 무시했다.

신전 사람들도 날 무시했다.

“나나는 시로함에 익수케.”

벨리알은 나의 말에 할 말이 없는 듯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벨리알이 입을 열었다.

“나도 사람들이 미워하니까 괜찮아.”

“벨랼은 다전해. 사람드리 몰라소 그래(벨리알은 다정해.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대했어. 날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거야.”

벨리알이 고개를 숙이고 하는 말에 난 뾰로통해져서 벨리알의 뺨을 척 잡았다.

갑자기 찐빵처럼 눌리는 볼에 벨리알이 날 번쩍 올려다보았다.

“말해짜나. 나나가 나쁭 기억 업애주께!”

“…….”

“벨랼은 반짝반짝 빛나는 사라미야.”

벨리알은 말을 잃은 듯 눈만 홉뜬 채로 날 보고 있었다.

“나나가 나쁭 기억 쪼차내 주께.”

“…….”

“사란들에게 벨랼 올마나 다전하지 말해주께.”

“…….”

벨리알의 눈이 아까보다 더 거세게 흔들렸다.

난 그런 벨리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정말 그래 줄 수 있었다. 벨리알이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

“긍까 벨랼 나나랑 가치 요기소 나가.”

“……어떻게 나갈 건데.”

“나나 힝 마나.”

다행히 신전에서 신성력 독에 대해 배운 적 있다.

‘이제 신성력으로 치유도 할 수 있으니, 신성력 독도 치료할 수 있어.’

특히 나는 신성력이 많아 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해독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넣은 것보다 더 많은 신성력을 쓰면 되겠지.

“긍까 나나의 신선룍 다 너어주께(그니까 나나의 신성력 다 넣어줄게).”

“넌 그러다가 어떻게 되는 건데.”

그건……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난 굳이 그 말을 벨리알에게 하지 않았다.

벨리알의 손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벨리알도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난 후- 숨을 내쉬고 모든 신성력을 벨리알에게 천천히 주입하기 시작했다.

파스스- 파스스-

신성력이 흩어질 때마다 더 집중해서 신성력을 넣었다.

‘좋아.’

내 예상대로 아주 조금의 신성력이라도 뚫고 가서 독을 해독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신성력이 바닥날 즈음 난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차.’

신성력 때문에 독이 안 들었는데, 몸 안에 신성력이 사라지니 독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 같다.

약 기운이 점점 내 몸을 장악하고 있었다.

‘안 돼. 쓰러지지 마.’

벨리알을 간호해 줘야 하는데.

이상하게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 오는 통증이 느껴졌다.

왈칵.

내 입가에서 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벨리알의 두 눈에 그런 나나의 모습이 담겼다.

붉은 눈이 동요로 흔들렸다.

피가 앞섬을 적셨다.

“야, 너 이거 뭐야!”

당황한 벨리알이 힘없이 쓰러지려는 내게 달려왔다.

‘신성력 고갈 때문인가 봐.’

“갠차나, 벨랼. 나나 멀쩡해.”

“멀쩡하긴 뭐가! 피를 토하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어!”

벨리알은 절박하게 소리치며 내 피를 막으려고 입가를 문질렀다. 하지만 내 입에선 왈칵 피가 또 나오고 말았다.

사색이 된 채 나를 안은 벨리알.

“쪼그만 게 너 지금 나 치료하려다가 잘못돼서 죽는 거 아니야?”

아냐, 그런 거 아냐.

하지만 침 삼키는 것도 힘들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당장 의사를- 젠장!”

벨리알이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으로 벽을 쾅 세게 쳤다.

벨리알의 품에 늘어져 있던 내가 떠듬떠듬 말했다.

“도만가. 곧 사란들 오 꺼야. 벨랼 옴기려고.”

“뭐?”

그때 밖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