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72)

“나나 엎지르면 안 돼요.”

“……녜.”

난 식사 당번 사제님이 시키는 대로 뜨거운 수프 통을 밀고 갔다.

교육원의 아이가 할 일은 아니었지만, 난 잠자코 따랐다. 이곳은 나에게 보육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몸은 무척 추운데 손은 뜨거웠다. 하지만 뭐라 말하면 다시 인내의 방에 갇힐 테니 묵묵히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당을 보았다.

귀족들이 대다수인 교육원의 옷은 모두 맞춤 제작이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딱 맞춘 옷을 입고 있었다.

한마디로 신전 내의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냥 나한테만 쓸 돈이 없을 뿐.’

난 그들에게 쭉정이니까.

‘리미에처럼 신성력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 없는 한…….’

“나나! 왜 이렇게 늦습니까!”

식사 당번 사제의 핀잔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열심히 수프 통을 밀었다.

“바프롬 사제님, 평안하십니까?”

“어머. 유르줄라 가문의 아이작 사제님. 오늘도 은총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참, 저번에 유르줄라 가문 티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제님은 나에게 늦는다고 핀잔을 줄 때는 언제고 고위 가문 사제에게 아부를 떨기 급급했다.

아마 또 이 수프가 식으면 내 탓이 될 것이다.

“무슨 말씀을요.”

그렇게 말한 아이작 사제 오빠는 날 보며 피식 웃었다.

저번에 내가 슬라데이체에서 헌금을 받아왔을 때 비법을 알려달라며 알랑방귀를 뀌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저번에 슬라데이체 대공가에 간 아이가 있다던데.”

“……그러했죠. 하지만 역시 슬라데이체가 주신님을 받아들일 리 없었습니다. 거짓말하기 좋아하는 나이대 아이의 장난이니 용서하세요.”

“그럼요. 애초에 저는 믿지도 않았답니다.”

제일 귀찮게 굴던 주제에 말이 많다. 하지만 지금 내겐 그를 비웃을 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수프 통을 미는데…….

“아!”

아이작이 수레바퀴에 발을 걸었다.

와당탕탕 소리가 나며 수프가 신전 바닥으로 흩어졌다.

“나나!”

“제, 제성해요……. 아!”

놀라 급하게 수프를 담아 보려고 작은 손을 담갔다가 오히려 뜨거워 손을 데고 말았다.

식사 당번 사제는 매우 화가 난 듯 보였지만, 그녀는 그래도 나를 좋아하는 축에 속했다.

“가서 손 씻고 방에 가서 기다리세요. 도저히 못 봐줄 꼴이군요.”

“……녜.”

난 그녀 말대로 방에 가서 양동이에 담겨 있는 빗물로 손을 닦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방 아래 투입구가 열리고 빵과 마실 물이 들어왔다.

“……제가 이걸 드린 건 원장 사제님께 비밀입니다.”

아까 식사 당번 사제님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밥을 먹는구나. 이틀 만에 먹는 것임에도 별로 슬프거나 기쁘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근데 손을 들긴 힘드네.’

겨우 빵 한 조각을 뜯어 입으로 밀어 넣으려는데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빠르게 꼴깍꼴깍 물을 삼키고 빵은 침대 밑에 숨기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방문을 여는 것이 더 빨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문이 열렸다.

역시나 원장 사제님이었다.

“……밥이 잘 넘어가나 보군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는 나에게 그녀가 문을 닫고 다가왔다.

“말해보십시오. 어떻게 슬라데이체를 구워삶은 겁니까?”

평소와는 달랐다. 그녀의 목소리 톤에서 전과 다른 분노가 느껴졌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을 꼭 감았다. 발끝에서부터 소름 끼칠 정도의 두려움이 타고 올라왔다.

이를 꽉 깨문 아멜리아가 내 어깨를 거칠게 붙잡아 다그쳤다.

“감히 너 따위가! 어떻게 꼬셨냐고 묻지 않느냐!”

어지러워. 배고파. 무서워.

곧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여기서 기절하면 다시 인내의 방에 갇힐 텐데…….

눈물이 핑 돌았다.

멍하니 허공만 보면서 눈물을 툭 떨어뜨린 순간.

내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짧은 팔로 얼굴과 머리를 감쌌지만,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 얼굴을 보자 참아왔던 눈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

“대곤…… 밈.”

슬라데이체 대공이었다.

“꿈인가…….”

환상인가.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 꿈속에서도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내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날 껴안은 대공님을 꼭 안고 고개를 도리 저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대곤밈. 나 데려가.”

나나 이제 밥 안 먹어도 돼. 예쁜 옷 다 빼앗겨도 돼.

“나나 무서어.”

여긴 무서워. 지옥이다.

“갇히기 시러.”

다시 한번 쥬디도 소피아도 베카도……. 그리고 대공님도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결국 기절해 버렸다.

웅웅거리는 귓가로 ‘늦게 와서 미안하다’라는 대공님의 말이 들려온 것 같았다.

어차피 모든 건 꿈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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