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펜과 종이를 달라며 손을 뻗었고, 대공이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펜을 주었다.
나는 주먹으로 펜을 꾹 잡고 빼뚤빼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나 예쩍 주신미랑 여신미 요기서 은춍 내리서셔(옛날 옛적 주신님과 여신님이 여기서 은총 내리셔서)~”
사제인 내 신분을 이용하여 구약을 대면서 흥얼흥얼 그림을 그렸다.
그들이 정말로 찾는 마력석이 매장된 운디네 해협의 경로를 말이다.
어차피 신성이 있는 나에게 마력은 쓸모없고, 저 마석들은 너무 커서 웬만한 기반과 기술력이 없는 사람은 캐낼 수도 없다.
그럴 바에야 신전과 사이가 나쁜 슬라데이체가 제격이다.
‘성녀 리미에에게 들어갈 리 없으니까.’
난 펜을 탁 내려놓고 당당히 말했다.
“다 모름미다. 교유건 애둘 싱성력 수업 드 때 싱하 드렀슴니다. 긍데 이제 나나 못 감니다. 나나 밥버러지구 쓸모업다구 버러져씀다. 글구(다 모릅니다. 교육원 애들 신성력 수업 들을 때 신화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나 못 갑니다. 나나 밥버러지고 쓸모없다고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말까지 한 난 대공을 슬쩍 본 다음에 말했다.
“웅디네 해욥 유명함미다. 나나도 알고 이씀미다.”
“…….”
“또 누가 누가 아고 이쓸까요?”
자, 난 힌트 다 줬다!
그 말에 대공이 멈칫거렸다.
‘힌트. 눈치챘구나.’
내가 활짝 웃을 때 그는 미미하게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고작 이 정도 돈에 말해준 이유가 뭐지?”
“아직 다 알려준고 아닝데여.”
“……?”
“다움 건 담 시간네(다음 건 다음 시간에)…….”
난 금화를 끙차끙차 사제복 안으로 넣으며 말했다.
“오눌처럼 반짝반짝 더 주면 알려주께요. 글구 나나 소언 이씀다(오늘처럼 반짝반짝 더 주면 알려줄게요. 그리고 나나 소원 있습니다).”
“소원? 뭐지? 저택인가. 땅인가? 네가 말한 파견 사제?”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파견 사제로는 부족했다. 공국민이 되어야 하니까.
“후언 사제 대게 해쭈세요(후원 사제 되게 해주세요)!”
“…….”
파견 사제는 단순히 귀족가에 머무는 사제다.
‘여전히 신전 소속이지.’
하지만 후원 사제는 달랐다.
후원 사제는 대공이 직접 책임지는 사제다. 공국민이 되기도 훨씬 쉽다!
“나나 밥 하루에 한 끼만 먹어두 댐미다(나나 밥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됩니다).”
“…….”
“그…… 주근 드시 조욘히 사제 일만 하게씀미다. 대곤밈 바해 앙 대게 함미다(그…… 죽은 듯이 조용히 사제 일만 하겠습니다. 대공님께 방해 안 되게 합니다).”
공작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난 결국 마지막 필살기를 날렸다.
“나나 후언해 주면 정보 전부 다 공짜!”
“…….”
안 되겠다. 난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배꼽 인사를 했다.
“가, 가께여. 안뇽히 가세, 아니. 계쎄여.”
돌아가려던 난 내가 든 금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대공이 나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주군은 나쁜 분은 아닙니다.’
뒤를 이어 엘의 말이 떠올랐다.
난 금화 주머니를 내려놓고 뒤돌아 책상 앞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대곤밈 조은 사람임니다. 곤데.”
난 내가 받은 종이와 펜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이내 웃는 얼굴을 그렸다.
그리고 그걸 내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이러케 우스면 더 조은 타람(이렇게 웃으면 더 좋은 사람)!”
난 옆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 배시시 웃었다.
왠지 이번엔 정말로 대공이 날 보고 웃은 거 같았다.
‘착각인가?’
어쩐지 내가 그린 것처럼 따스한 미소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