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집 앞에서 주야장천 뻗치기 하던 기자들.
연말연시가 다가오니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연말은 가족과 함께.
밝아오는 새해도 가족과 함께다.
- 대표님. 밝은 새해에는 더욱더 강건하시며, 아름답고 따뜻한 가정 이루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 다 이루어지는 한 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 알았어, 알았어. 톡 그만해. 우리 황 과장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기요.
- 예, 대표님. ♡♡♡
- 그런 거 날리지 마라.
- 앗, 넵!
- 대표님. 2030년 한 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다가오는 2031년은 더욱 풍성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주하 씨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세요.
- 네~
김주하.
김주성의 여동생이다.
며칠 전, 학교를 졸업한 그녀가 뜬금없이 찾아왔다.
무명 클랜에 정식으로 입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졸업 후 직장을 구하고 있거니와.
이왕 일할 바에야,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고 싶다는 취지였다.
김주성이 쓸데없는 소릴 지껄인듯했다.
꿈속에서 말이다.
때마침 경리 직원을 뽑던 차, 흔쾌히 수락했지만.
언제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만두도록 했다.
이에, 그녀도 흔쾌히 수락했다.
어쨌든, 내일이면 12월 31일이다.
아공간을 획득할 수 있는 단 하루뿐인 날.
아공간을 획득하러 북한산에 오를 생각이다.
그런 다음, 부산으로 슝~
권왕의 유물이 있는 해운대 장산에 오를 생각이다.
***
다음 날.
트레이닝복을 걸친 후, 슈트를 착용했다.
장검도 착용했다.
스테이지란 곳에 처음 가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백팩에 500m 생수와 칼로리 바도 챙겼다.
백팩을 메고, 마스크를 썼다.
출발 준비가 모두 끝났다.
‘변환.’
그림자 병사들을 전송석으로 변환시키자, 반경 1km 이내의 625곳이 통제하에 들어왔다.
‘아니지.’
나도 이제 챔피언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그림자 전사가 필요 없었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5/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625)
‘변환.’
그림자 전사도 전송석으로 변환시켰다.
반경 1km 이내의 750곳이 통제하에 들어왔다.
‘이동.’
1km 밖,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순간 이동 후,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골목길을 나와 도로변에서 택시를 잡았다.
“어서 오세요.”
“북한산요. 기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쿠, 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하하하~”
택시를 타고, 아공간 스테이지가 있는 북한산으로 향했다.
***
대서문, 무량사, 보리사, 북문, 원효봉, 원효암 등.
기본 코스를 시작으로 둘레 길 전부를 쭈욱 훑었다.
그런데, 아무리 훑어도 아공간 스테이지가 보이지 않았다.
750개의 그림자로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도 없었다.
내 정보가 잘못됐다는 소리였다.
‘골치 아프네.’
북한산이 틀림없었다.
분명 이곳에서 아공간 스테이지가 발견됐었다.
‘대체 어디야.’
( 태민. 절벽 아래다. )
( 뭐? )
뜬금없는 요물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 절벽에서 마력이 느껴진다. )
녀석의 말에 긴가민가했지만, 일단 절벽 쪽으로 이동했다.
절벽에서 내려다보니, 절벽 중턱에 동굴이 하나 있었다.
( 설마, 저곳을 말하는 거냐? )
( 그래. )
“하.”
요물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절벽 중턱이지만, 적어도 300m 이상은 내려가야 할 높이다.
‘뭐 하나 쉬운 게 없군.’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았다.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쭈뼛대는 게 익스트림 스포츠 같았다.
절벽에 단검을 꽂으며 추락 속도를 늦췄다.
그렇게 서너 번 꽂으니, 동굴에 안착할 수 있었다.
요물의 말이 맞았다.
동굴 입구에 새하얀 게이트가 생성돼 있었다.
게이트로 진입했다.
***
게이트 내부는 평범한 동굴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30m 정도 들어가자, 투명한 막이 펼쳐져 있었다.
투명한 막을 만져보았다.
젤리처럼 진득거렸다.
하지만, 달라붙거나 하지는 않았다.
( 태민, 고민할 게 뭐 있나? )
요물의 말이 맞았다.
투명한 막을 통과하거나, 아님 되돌아가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투명한 막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
놀랍게도, 무기와 슈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니, 투명한 막 바깥쪽에 무기와 슈트가 놓여 있었다.
무기와 방어구 없이 맨몸으로 통과하라는 소리다.
‘재밌네.’
나는 과감하게 동굴 내부로 진입했다.
50m 정도 진입했을 때.
동굴 천장에서 포이즌 뱃이 튀어나왔다.
포이즌 뱃은 수박만 한 크기에 박쥐 날개가 달린 놈들로.
입에서 독침을 쏘는 놈들이었다.
헌터가 아무리 강해도 포이즌 뱃 수십 마리를 맨몸으로 감당하기는 불가능했다.
더욱이, 독침을 맞는 즉시 아웃이었다.
괜히 아공간 스테이지가 아니었다.
◈ 그림자 준남작 : 챔피언 등급의 그림자 기사(5/5), 엘리트 등급의 그림자 투사(25/25), 뱅가드 등급의 그림자 전사(125/125), 베테랑 등급의 그림자 병사(625/625)
‘뭐, 그래봤자지만.’
애초에 무기와 방어구 따윈 필요 없었다.
어차피 내가 사냥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소환.’
그림자 기사와 그림자 투사를 소환했다.
그 모습에, 포이즌 뱃 수십 마리가 벌떼처럼 몰려왔다.
이윽고, 그림자 병력과 포이즌 뱃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비행 마수는 확실히 달랐다.
포이즌 뱃 수십 마리가 공중에서 독침을 쏘자, 그림자 투사가 녹아내렸다.
놈들에게 당한 그림자 투사만 무려 10여 마리.
고작 베테랑 따위에게 엘리트가 사냥당한 것이다.
그림자 기사의 활약이 없었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놈들을 모두 처리한 후, 포이즌 뱃 우두머리까지 처리해 버렸다.
우두머리의 심장에서 마정석을 꺼낸 후, 주변을 살폈다.
동굴 한편에 녹슨 상자가 놓여 있었다.
녹슨 상자를 열었다.
정육면체 모양의 황금빛 큐브가 들어있었다.
큐브.
이것이 바로 아공간이었다.
큐브를 만지자, 스르륵 몸에 흡수가 됐다.
- 아공간을 획득하셨습니다.
‘아.’
아공간을 열었다.
가로, 세로 5m 크기의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
투명한 막을 통과한 후, 땅에 떨어진 슈트를 착용했다.
장검과 백팩을 주워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장검을 떠올리자 장검 손잡이가 손에 잡혔다.
장검을 뽑았다.
빈 공간에서 검이 스르릉~ 뽑혀 나왔다.
사람들이 왜 아공간, 아공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이라, 미리 비행기 표를 예약했었다.
“엇, 이태민이다.”
“어디?”
“저기.”
“어머! 진짜네.”
“에이, 설마.”
“아냐. 닮았어.”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이 숙덕거렸다.
스튜어디스도 마찬가지.
그녀들도 날 보며 숙덕거렸다.
“저, 혹시. 이태민 헌터 아니신가요?”
스튜어디스가 말을 걸어왔다.
“아닌데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닮으셔서….”
마스크를 썼건만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았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떠난 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해운대 로망스 호텔에 짐을 풀었다.
사우나도 가고, 안마도 받았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말끔히 풀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늦은 저녁, 해운대 백 사장을 거닐며, 겨울 밤바다도 실컷 구경했다.
복잡한 강남보다는 부산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 날.
꼭두새벽에 일어나 장산에 올랐다.
장산 스테이지 역시, 북한산과 마찬가지로 절벽에 위치해 있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후, 게이트로 들어갔다.
!!
‘맙소사.’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니었다.
외계 문명.
즉, 마도 문명의 신전이었다.
건물 전체가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었다.
대리석에는 신비한 문양과 도형 그리고 각종 외계어들이 새겨져 있었다.
보통 이런 것을 마법진이라 불렀다.
내가 들어온 직후, 신비한 문양과 도형 그리고 외계어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마법진이 발동된 것이다.
거대한 마법진도 황당한데, 빛까지 발현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기함할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황금빛 빛이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
눈을 뜬 곳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잠시 후, 스윽 하고 뭔가가 나타났다.
!!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나였다.
[ 크크크. 역시, 파멸의 공간인가. ]
그것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바로, 야수라는 것을.
[ 이거 어쩌나. 봉인이 풀려 버렸네. ]
야수가 시익 웃었다.
[ 아차! 너는 모르겠구나. 이곳이 어떤 곳인지. ]
야수가 검지로 날 가리켰다.
[ 불쌍한 놈. 세상에, 그 많은 유물들 중에서 하필이면 이곳을 선택하다니. 넌 정말 운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다. ]
[ 무슨 소리지? ]
[ 너만은 이곳을 피했어야 했다. ]
[ 무슨 소리냐니까! ]
[ 잘 들어. ]
야수가 자신의 귀를 검지로 가리켰다.
[ 이곳은 파멸의 공간, 내가 널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크크크… 크하하하! ]
야수가 대소를 터트렸다.
어렴풋이 느꼈었다.
전무진을 없앤 후, 내 안에서 야수란 놈이 눈을 떴을 때.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 그래. 내가 바로 크리스탈 조각이다. 네가 영혼 상태에서 흡수했던 바로 그 크리스탈 조각. ]
[ …. ]
[ 그리고 네게 종속된 부유령. 그 녀석이 바로 크리스탈 코어다. ]
[ 뭐! ]
야수의 말에 깜짝 놀랐다.
크리스탈 코어라니,
[ 모든 힘을 잃어버린 병신 같은 놈이지. ]
[ 그게 무슨…. ]
[ 됐고. ]
야수가 쪼그려 앉았다.
[ 에효~ 그나저나, 나도 참 지랄 같다. 내가 어쩌다 너 같은 하급 종에게 종속됐는지. ]
야수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 이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굴복해라.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그럼, 살 수 있다. 농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넌 확실히 죽는다. ]
[ 미친…. ]
황당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굴복이라니.
감히, 날 뭘로 보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 아공간을 처먹더니, 간땡이가 부었구나. ]
[ 이봐,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넌 절대로 이길 수 없다. ]
[ 길고 짧은 건 대봐야겠지. ]
[ 만용이다. 살려줄 때 무릎을 꿇어라. ]
[ 너, 혓바닥이 길구나. ]
[ 감히! ]
야수의 몸에서 살기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