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악령이 인호를 향해 달려든다. 인호는 악령이 내뻩는 주먹을 상체를 기울여 피한 후 곧바로 반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반격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꺄아아악-!
악령의 몸에 붙어 있던 기괴한 얼굴 중 하나가 쭉 늘어나 인호를 향해 주둥이를 쩍 벌린 것이다. 녹색 액체가 줄줄 흐르는 입이 인호의 상체를 물어뜯으려 했다.
인호가 다급히 뒤로 몸을 뺐지만, 완벽히 피하지 못하고 정장 상의가 뜯기고 만다. 뜯겨나간 곳 주위로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뭉클 피어오른다.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상의가 녹아내린 액체가 피부에 닿자 통증이 전해진다. 악령이 기괴하게 웃으며 인호에게 달려든다. 악령의 공격을 피한다. 아니, 피하려 했다.
퍽-
인호가 방향을 틀려 할 때 악령의 몸에서 무언가 쑥 빠져나와 인호의 등을 후려친다. 인호는 재빨리 악령과 거리를 벌린다.
악령의 모습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상체에 붙어 있던 얼굴들이 길게 빠져나와 있다. 고통스러운지 잔뜩 찡그린 얼굴들이 촉수 괴물처럼 흐느적거리고 있다.
“이번 건 조금 화끈했네.”
“널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야. 마음에 들어?”
인호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이제 밥값 좀 하자.”
“우씨. 난 항상 잘하고 있다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일렁이며 검은 정장을 입은 뚱보가 걸어 나온다.
뚱보를 본 악령이 인상을 찌푸린다. 축구장에 들어서기 전 그의 신경을 자극하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인호와 대화를 나눌 때만 해도 토룡 황동호의 결계가 자신의 신경을 자극한 줄 알았다. 그런데도 무언가 찝찝했다.
뚱보를 보고 나니 줄곧 느껴졌던 찝찝함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승사자라니…… 반칙이잖아.”
악령의 표정은 연기하는 것인지 몰라도 여유로워 보였다.
“얘가 신삥 저승사자라고 해도 저승사자인 것은 변하지 않거든. 너희들의 천적이지.”
“크크,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 본 적 있나? 저승사자 실종 사건?”
인호가 의아한 듯 뚱보를 바라본다. 심각한 표정의 뚱보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의미다.
악령이 재미있다는 듯 인호와 뚱보를 보고 비웃는다.
“저승사자는 악령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지. 그들은 망령들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존재들이야. 그런데 말이야. 과연 모든 악령들이 저승사자를 두려워할까?”
악령이 검지를 펴 좌우로 흔든다.
“그건 아니거든. 악령들 중에는 저승사자들도 꺼리는 강력한 존재들이 있어. 그 악령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 저승사자 여럿이 덤벼들기도 하지. 운이 좋으면 악령을 소멸시키거나 지옥불에 던져 넣을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악령이 뚱보를 보며 히죽 웃는다.
“반대로 악령이 저승사자를 죽여버리는 거지. 말이 틀렸어. 죽이지 않아. 소멸시키지.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거든.”
뚱보가 흠칫 몸을 떤다.
“저승사자들을 소멸시키면 악령들은 한층 더 강해져. 왜인 줄 알아? 저승사자들이 쌓은 업을 삼킬 수 있거든. 그렇게 저승사자들이 소멸되지. 그런데 아주 대단하신 저승판관들과 옥황상제께서는 지고하신 신격만큼이나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 저승사자의 소멸을 외부에 알리지 않아. 그래서 소멸된 저승사자들은 ‘임무 미복귀’라고 따로 분류되고 있어.”
인호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악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인호와 인연이 있는 저승사자들이 그런 사실을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인호는 피식 웃는다.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하지만 한 가지 빼놓은 이야기가 있어. 넌 고작해야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악령일 뿐이잖아. 네가 말한 저승사자를 소멸시킬 정도의 힘을 지닌 악령이 아니라는 뜻이지.”
“정확해.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지는 않잖아. 나는 죽기 전부터 영혼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 내 주변에 있던 영혼들은 대부분 아주 무시무시한 악령들이었지. 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은 잘 알지? 왜 그랬을까?”
인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악령을 바라본다.
“죽은 후 강력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야. 어떻게? 주위의 악령들이 알려줬거든. 그리고 난 이미 저승사자를 한 명 소멸시켰지. 물론 주변의 악령들이 도움을 줬어. 그래서 아주 강력한 힘을 얻었지.”
“그런 것이었군.”
인호는 이제야 대충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악령이 어떻게 저런 강함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악령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
망령은 악업을 쌓으면 악령이 되고, 악업을 쌓을수록 강해진다.
악령이 벌인 일들이 악업을 많이 쌓게 했을 테지만 지금의 강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악령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아니, 가능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해주지. 내가 널 어떻게 아느냐 물었지? 당연하잖아. 너, 그리고 네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네 주위에 있는 도사, 신부, 중, 박수, 만신까지. 그들 때문에 몸을 사리던 악령들이 한 둘이었겠나? 억울하게 소멸된 악령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기에 우리들은 은밀히 힘을 키웠지.”
“네가 대놓고 나를 저격한 이유는 이제는 은밀히 행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 되나?”
“맞아.”
악령이 사악하게 웃는다. 악령이 뚱보를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훑는다. 뚱보는 오한이라도 온 듯 부르르 몸을 떤다.
“네가 조력자의 도움을 받고 저승사자를 불렀으니 나도 누군가를 불러야겠지?”
악령의 뒤쪽에 엄청난 힘을 품은 붉은 기운들이 모여든다. 기운들이 하나둘 형체를 갖춘다. 당장이라도 피를 뚝뚝 흘릴 것같은 새빨간 악령들이었다.
악령들의 수는 모두 셋.
하나, 하나가 이전에 상대했던 연쇄살인마 빙의 악령만큼이나 강하다. 인호가 입술을 질겅인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퇴마행을 벌이며 지금처럼 긴장한 순간이 없었다.
인호의 손이 팔의 검은 문양 안으로 파고든다.
잠시 후 인호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쥐여 있었다.
“대단한 기운을 품은 검이군. 익숙한 기운이기도 하고.”
인호의 검은 죽음의 기운을 품은 검이다. 인호는 악령의 뒤에 나타난 세 악령을 바라본다. 어쩌면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겁하게 지원군 부른 거냐?”
“누가 할 소리?”
악령이 뚱보를 보며 말했다.
“딱 봐도 무게 추가 안 맞잖아. 사실 얘는 1인분도 안 되거든.”
“누가 봐도 1인분은 넘을 것 같은데? 무게 추도 얼추 그쪽으로 기울 것 같고.”
대화를 나누는 인호와 악령을 보며 뚱보가 분노로 몸을 떤다.
“그래도 나는 다시 무게 추를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인호가 삼신령을 꺼낸다.
딸랑- 딸랑-
삼신령이 청아한 울림을 토해낸다.
악령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삼신령의 방울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까닭이다. 인호의 뒤로 신비로운 안개가 피어오른다. 악령들이 안개를 보며 지독한 악의를 토해낸다.
안개에서 걸어 나오는 이들.
긴 머리를 틀어 올려 은비녀를 꽂은 부장과 저승사자, 그리고 처음 보는 저승사자까지.
부장이 인호의 옆에 선다.
“오셨어요? 귀찮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인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뒤에 선 저승사자가 인호를 보고 인상을 와락 구긴다. 부장이 바라보자 저승사자가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삼신령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시는 것처럼 상황이 아주 안 좋거든요. 이놈 하나만 믿고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죄송합니다.”
인호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뚱보가 부장과 눈이 마주치자 얼음처럼 굳어버린다.
부장은 악령들에게 시선을 던진다.
“반가운 얼굴들이네요.”
부장을 본 악령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미친년.”
“미친년.”
악령들이 으르렁거린다. 인호가 의아한 듯 부장을 힐끔 보며 묻는다.
“미친년이요?”
“호호,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욕이잖아요. 인호 씨. 방금 삼신령 너무 자주 쓴다고 뭐라 했지만. 이번에 우리들을 부른 건 아주 잘한 일이에요. 저 악령들은 상제께서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악령들이거든요.”
“임무 미복귀 때문입니까?”
부장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지워진다. 부장이 악령을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한다.
“쓸데없는 말을 하였구나.”
부장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인지 인호와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악령이 잔뜩 얼어있다.
“이제 인원도 딱 맞는 것 같으니 시작하죠.”
인호가 안쓰러운 눈으로 뚱보를 바라본다.
“역시 뚱보는 아직 1인분도 안 된다 이거죠?”
인호의 실없는 농담에 부장이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누가 날 상대할 거지? 아, 네가 좋겠네. 우리 풀어야 할 매듭이 남아 있잖아. 그렇지?”
악령들 중 가장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악령이 씨익 웃는다.
“오랜만이야. 저승 판관들도 두손 두발 다 든 미친년. 백 년 전에 묶인 원한을 드디어 풀게 되는구나.”
악령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부장이 고개를 돌린다.
“인호 씨.”
“네. 부장님.”
“인호 씨는 누구?”
“저야. 뭐…… 가장 약한 놈이죠. 저기, 저놈.”
인호와 대화를 나누던 악령이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나머지는 알아서 분배해.”
“네, 부장님.”
저승사자들이 대답하며 좌우로 벌려 선다.
각자의 상대가 정해지자 인호가 검을 빙빙 돌리며 손목을 푼다.
“이제 좀 균형이 맞춰진 것 같네. 그렇지?”
악령이 대답 대신 주먹을 날린다. 주먹을 피하자 그의 몸에서 돋아난 촉수들이 인호를 노린다. 촉수 끝에 달린 얼굴들이 기괴한 울음을 토해낸다.
입을 쩍 벌린 채 물어뜯으려 다가오는 얼굴 중 하나를 검으로 베어낸다.
끼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내는 얼굴.
인호는 악령과의 거리를 좁히며 검을 빠르게 벤다. 뒤로 물러서는 악령의 몸이 흐릿해진다. 인호가 가볍게 도약하며 몸을 빙글 돌린다. 검이 수직으로 떨어진다. 얼굴 중 하나가 촉수에서 잘려 바닥에 떨어진다.
“감이 좋네.”
“그 덕에 지금까지 잘 살아 있는 거지.”
인호가 악령과의 거리를 좁힌다. 촉수 끝에 달린 얼굴이 토해내는 액체를 모두 피하지 못해 옷이 녹아내린다. 액체가 피부에 닿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지만, 인호는 입을 꾹 닫은 채 악령의 뒤를 쫓을 뿐이다. 자신이 상대하는 악령에게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다른 저승사자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네 개의 촉수를 모두 잘라낸 인호가 땅을 박차며 도약한다. 양손으로 쥔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악령을 수직으로 베어간다.
* * *
끼이익-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서자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민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몸을 돌린다.
“어머. 어쩌죠? 소장님 자리에 안 계신데.”
“괜찮아요.”
들어선 이가 이민정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여기 소장 보러 온 사람 아니니까요.”
“그러면 누굴 보러 오셨나요?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아시죠?”
고개를 끄덕인 상대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이민정을 바라본다.
“내가 보러온 사람은-.”